[해외로 뛴다]마지막 기회의 땅 미얀마..‘무한도전’ 나선 은행들

  • 등록 2014-01-16 오전 6:00:00

    수정 2014-01-16 오전 6:00:00

[양곤(미얀마)=이데일리 이준기 기자] 미얀마의 경제수도인 양곤의 첫인상은 예상을 빗나갔다. 흙먼지가 폴폴 날리는 비포장도로에 각종 오토바이가 시내를 휘졌고 다닐 것이란 상상은 이내 깨졌다. 양곤 국제공항을 벗어나자 예상외로 깨끗한 도심이 모습을 드러냈다. 잘 정돈된 도로는 이제 막 ‘개혁·개방’에 나선 미얀마의 미래를 보여주는 듯했다.

“미얀마는 15년 전의 베트남과 비슷하다. 아프리카를 빼면 마지막 남은 ‘기회의 땅’으로 볼 수 있다.” 양곤 시내 그린 힐(Green Hill) 호텔에서 만난 김학수 KB국민은행 양곤사무소장이 꺼낸 말이다. 미얀마가 베트남에 버금가는 신흥시장으로 부상할 것이란 게 김 소장의 전망이었다.

예상외로 정돈된 미얀마 양곤 시내의 모습.
반세기의 군정을 끝내고 2011년 2월 민간정부를 수립한 미얀마의 잠재 성장성은 무궁무진하다. 한반도의 3배에 달하는 국토와 7000만명의 인구, 풍부한 광물자원까지. 여기에 중국, 인도 등 전 세계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는 대국들과 국경을 맞대고 있어 ‘경제적 요충지’의 요건을 모두 갖췄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내 기업에 미얀마는 말 그대로 ‘노다지’인 셈이다. 국내 은행들이 미얀마를 주목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어느 개발도상국이 그렇듯 정치적 불확실성과 인프라의 미비 등은 미얀마의 ‘걸림돌’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가능성은 무궁무진하지만 일단 지켜보자’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호시탐탐 미얀마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 중국, 일본, 싱가포르, 태국 등은 국내 은행들이 일전을 벌여야 할 경쟁자들이다. 국내은행들은 ‘총성 없는 전쟁’ 속에서 미얀마판 ‘무한도전’에 나선 것이다.

◇은행들이 미얀마를 주목하는 이유

아웅산테러의 여파인지 우리에겐 ‘버마’로 더 알려진 미얀마. 국민, 신한, 우리, 하나, 산업, 기업, 수출입 등 국내 은행 7곳은 최근 1년새 미얀마의 문을 두드렸다. 국내 은행들은 그동안 꾸준히 해외진출을 시도했지만, 이 같은 ‘열풍현상’은 이례적이다. 은행들이 미얀마에 기대는 이유는 뭘까. 홍석우 신한은행 양곤사무소장은 “미얀마는 아시아 개도국 중에서도 가장 나중에 개방된 국가여서 성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나라”라고 진출 배경을 설명했다. 외국자본이 서서히 유입되면 결국 미얀마도 금융을 개방할 수밖에 없을 것이란 논리다.

이정우 미얀마 한인회장.
국내 은행들은 신정부가 적극적으로 국제사회로 복귀하려는 시도도 ‘긍정적 사인’으로 받아들인다. 2011년 2월 취임한 테인 셰인 대통령은 아웅산 수치 여사의 감금 해제 등 정치적 개혁은 물론 시장환율제도를 받아들이는 등 경제적 개방에 나섰다. 이로 인해 미국과 유럽연합(EU)이 가하고 있는 제재를 해제하는 데 상당한 역할을 했다. 이정우 한인회장은 “아직 정치적 불안이 해소된 것은 아니지만 개혁·개방이 계속되면 은행도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전 세계 은행 사무소만 38개..‘무한경쟁’

문제는 외국계 은행 유입에 대한 미얀마 정부의 보수적 견해다. 미얀마 현지은행이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미얀마는 국영은행 4개와 민영은행 22개 등 모두 26개의 은행이 영업 중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개도국이 그렇듯 개방의 압력을 마냥 버틸 수는 없을 것이란 전망이 많다. 미얀마에는 국내 은행 7개를 비롯해 모두 38개 은행이 사무소를 내고 ‘라이선스’를 기다리고 있다. 윈 또우(Win Thaw) 미얀마 중앙은행 외환감독국장은 “한꺼번에 너무 많은 외국계 은행에 영업을 허가하기는 쉽지 않다”며 “미얀마 중앙은행의 감독능력, 통제범위 내에서 은행 라이선스를 줄 생각”이라고 말했다.

윈 또우(Win Thaw) 미얀마 중앙은행 외환감독국장
현재 미얀마 정부는 외국계 은행들에 대해 ‘합작법인’과 ‘지점’의 두 가지 형태로 문호를 개방할 전망이다. 국내 은행들은 장·단점 분석에 들어갔다. 합작법인은 설립 자체는 쉽지만 ‘소매금융’이 제한되는 단점이 있다. 이 경우 현지 교포들을 상대로 거래할 수 없다. 미얀마 당국의 검사·감독을 받아야 하는 부담도 만만치 않다. 반면, 지점형태로 영업에 나설 경우 소매금융은 가능하지만, 언제 승인을 받을 수 있을지 오리무중이다. 다만, 지금까지 분명한 사실은 미얀마에서의 은행영업이 임박했다는 점이다.

◇“인도를 보라”..중요한 건 ‘인내심’

전문가들은 “미얀마의 정책 결정이 불투명한 만큼 끈기 있게 기다리는 것이 정답”이라고 말한다. 1996년 인도에 가장 먼저 진출한 신한은행이 수년간 적자를 거듭하다 최근에서야 수익을 내 다른 은행들의 벤치마킹 대상이 된 점을 되새겨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신한은행은 지난 2009년 인도에서 529만달러의 순이익을 올린 데 이어 2010년 614만달러, 2011년 726만달러, 지난해 778만달러 등 갈수록 수익성이 높아지는 추세다. 이정환 IBK기업은행 양곤사무소장은 “미얀마에서 단기간에 ‘성과’를 내기란 쉽지 않다”면서도 “일단은 미얀마 당국은 물론 국민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미얀마의 상징인 황금대탑 쉐다곤 파고다
은행을 신뢰하지 않는 미얀마 국민의 마음을 돌려놓는 것도 숙제다. 현재 은행을 이용하는 미얀마 국민은 전체 국민의 약 6% 수준. 군부시절 은행의 뱅크런 사태로 인해 미얀마 국민의 약 80%는 주로 ‘금고’를 사용한다. 이에 따라 국내 은행들은 ‘따듯한 금융’이란 슬로건을 내걸고 미얀마 국민의 호감을 사기 위해 각종 활동에 나섰다. KB국민은행은 작년 10월 양곤에 언어ㆍ문화 비정부기구(NGO) BBB코리아와 함께 ‘양곤 KB한국어학당’을 열었다. 앞서 우리은행은 작년 4월 미얀마 빈곤지역에 방과 후 학교를 설립하기도 했다. 김학수 소장은 “미얀마 현지인과의 우호적인 관계를 맺는 것이 성공의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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