⑨증시 폭락별곡..경제위기 증폭

  • 등록 2000-09-24 오전 8:16:42

    수정 2000-09-24 오전 8:16:42

"사러리 사러리랏다. 청산에 사러리 랐다. 미수랑 신용없는 청산에 사러리랏다. 줄라 줄라 줄라 샹~~ 욜라리 욜라" 주가폭락이 계속되자 한 투자자가 고려시대 "청산별곡"을 개작해 "폭락별곡"이라는 제목으로 인터넷증권 사이트에 올린 글이다. 투자자들의 원망이 배어있다. 증권사이트에는 최근 정부를 비난하는 글까지 하루에 수십 건씩 게재된다. 한 투자자는 "국민의 고통은 안중에도 없이 국민과 민주주의를 볼모로 서로의 정치적인 이해득실로 민생을 도탄에 빠뜨리고 있는 국회를 해산하고 대통령은 경제 비상조치라도 취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초헌법적" 주장도 서슴지 않았다. 증시는 불안감을 뛰어넘어 공포감에 휩싸이고 있다. 정부의 부양책에 대한 거부감은 크다. 시장에 맡겨야 한다는 것이다. 직접적 수급조절은 구시대적 발상이라는 것이다. 정부는 구조조정을 앞당기기 위해 공적자금 조성 등 환경정비에 나섰다. 유가 상승 등 외부변수는 통제하기 어려운 변수이므로 구조조정의 속도와 강도를 높이겠다는 생각이다. 외국인들은 한국증시를 폭격하고 있다. 거래소와 코스닥에는 외국인의 폭격 앞에 상처입은 투자자들의 한숨과 신음이 가득하다. 정치권은 여전히 정쟁에 골몰한다. 주가가 40포인트 이상 폭락하면서 "노 코멘트"를 말하는 애널리스트들이 많아졌다. 코스닥 담당 애널리스트들은 기술적 분석이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SK증권처럼 일찌감치 종목추천을 포기하는 곳도 생겼다. 추천종목을 내놓으면 주가가 더 떨어져 체면만 구긴다는 얘기다. 주가폭락은 위기를 재생산한다. 더 큰 위기를 부른다. 악순환의 고리이자 근원지다. 투자자의 "폭락별곡"은 악순환과 경제위기의 전주곡이 될 수 있다. ◇금융기관의 부실화 = 주가폭락은 금융기관에 엄청난 부실을 양산한다. 유가증권 평가손실 등이 발생하면서 손익과 재무상태에 악영향을 준다. 주가급락으로 일부 보험사들은 이미 고객의 보험금 지급요구가 한꺼번에 몰렸을 때에 대비해 적립해야 하는 "지급여력"이 떨어지고 있다. 국내 손해보험사와 생명보험사는 지난 7월이후 5500억원 이상의 상장사 주식을 순매수했다. 당시 종합주가지수는 800선이었으나 최근엔 500대로 떨어졌다. 회사마다 거액의 평가손을 기록하고 있다. 은행 종금사 등도 마찬가지다. 코스닥시장의 침체는 또다른 악몽의 시작. 코스닥기업이나 코스닥등록전 기업(프리코스닥)에 투자한 창업투자사들은 자금회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우후죽순처럼 생긴 벤처캐피탈은 "사망선고"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금융기관이 부실화되면 증자로 메워야 한다. 그러나 증자는 증시침체로 더 어려워진다. 증자 길이 막히면 외국투자자를 찾아 나서야 하지만 외국투자자들이 매물공세를 펴는 지금 제값을 받을 리 없다. 지난 3년간 공들인 금융구조조정은 원점으로 회귀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주가폭락과 함께 부실이 부실을 낳는 악순환의 악몽은 우리 앞에 현실처럼 성큼 다가왔다. ◇기업구조조정의 지연 = 대기업들은 자구노력보다 증자로 부채비율 200%를 맞췄다. 증시활황이 없었다면 이들 기업은 꼼짝없이 대우 꼴이었을 것이다. 주가폭락은 위기감을 증폭시키고 있다. 일부 기업은 이미 자금비축에 나섰다. 신규투자를 동결하고 유가증권을 현금화하고 있다. 연말에 만기가 도래하는 회사채는 금리인상, 수요위축 등으로 차환이 원활히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며 미리 손을 쓰는 곳도 생겼다. 증시침체는 기업자금줄을 죈다. 증자하기가 하늘의 별따기 만큼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증자를 하더라도 더 많은 비용을 감수해야 한다. 기관투자자의 자금이 주식에 묶이면 회사채 시장은 더 얼어붙는다. 특히 정부가 공적자금을 조성하기 위해 예금보험공사채권 40조원중 10조원가량을 채권시장에서 발행할 경우 회사채 시장을 잠식하는 "구축 효과"가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회사채 전용펀드 설정같은 대책이 나오더라도 회사채 발행여건은 악화될 수밖에 없다. 정부의 공적자금 추가조성은 이미 투입된 공적자금의 회수가 늦어진 탓도 있다. 증시가 좋다면 공적자금의 수요가 줄고 공적자금의 회수도 원활했을 것이다. 벤처기업의 자금난은 이미 시작됐다. "11월 대란설" "연말대란설"이 오르내린다. 미래의 수익 비전에 의존해 자본금을 늘려 운영자금을 조달한 벤처기업엔 생명선인 자금줄이 끊긴다. 벤처에 몰렸던 인재와 자금은 추가적인 수혈없이 홀로서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자원배분의 비효율성은 극대화될 수밖에 없다. 재벌의 붕락으로 생긴 빈자리를 메운 벤처기업이 아사 위기에 빠지는 것이다. 벤처기업을 육성해 일자리를 창출했던 현정부의 경제정책 근간이 무너질 수 있다. ◇소비위축과 경기 침체 = 경제에 대한 위기감이 확산되면서 거의 불황을 타지 않던 대형 백화점에도 찬바람이 불고 있다. 통계청이 지난 19일 발표한 "8월 소비자전망 조사 결과"에 따르면 6개월 전과 비교해 현재의 가계소비 심리를 나타내는 소비자 평가지수는 96.4로 4개월 연속 하락했다. 소비자 평가지수 100은 소비를 줄였다는 가구와 늘렸다는 가구가 같다는 뜻이다. 100에 못미치면 소비를 줄인 가구가 더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계소비심리가 위축되기 시작한 시기는 증시 침체 시기와 거의 일치한다. 가계 자산이 주식시장에 묶여 돌지 않는 상황에서 소비는 위축되게 마련이다. 하반기들어 가계대출 연체율은 다시 큰폭으로 높아지고 있다. 한빛 국민 조흥 외환 신한 하나 한미 등 7개 시중은행의 가계대출 연체율은 8월말 현재 3.20%로 6월말 2.44%보다 0.76%포인트 높아졌다. 이들 은행의 총가계대출금은 8월말 현재 46조5290억원으로 6월말보다 3.4%증가한데 반해 연체대출금은 1조4925억원으로 36%나 늘었다. 연체율이 이처럼 급증한 것은 가계의 "자금난"을 겪고 있다는 뜻이다. 신용카드 연체금액도 늘어나고 있다. 특히 1개월미만의 단기 채권은 크게 불어나고 있다. 법원에 파산신청을 하는 개인도 하반기들어 급증하고 있다. 경제의 세포 "가계"의 위축은 내수산업의 침체를 초래한다. 개인 대출의 부실화는 금융기관의 부실로 쌓인다. 실업률의 증가는 사회불안의 씨앗이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 경제가 악순환에 빠지면 탈출구는 더욱 좁아진다. 탈출구 찾기에는 정부가 나서야 한다. 구조조정을 가속화하는 것외에는 방법이 없다. 구조조정 발목을 잡은 정치권에 우리 미래가 달려있는 셈이다. 공적자금이라는 실탄을 하루빨리 마련해 "증시의 투매"와 "부실"이라는 적병에 맞서야 한다. 기아자동차 처리가 늦어지면서 초래된 IMF위기가 대우자동차 처리 지연으로 재발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정치권 정부 시장참여자가 모두 위기에 공감하는 것이 악순환 차단의 출발점이다. 시장내 일시적 수급으로 증시의 병세가 호전될 수 있지만 그건 근원적 치료를 방해할 뿐이다. 위기감이 고조됐을 때 이를 구조조정의 추진력으로 활용하는 지혜를 쓸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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