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승에서 페미니즘 논쟁에 휩싸인 여중군자 '장계향'[미식가의 세계⑮]

여성 첫 요리책을 '음식디미방' 펴낸 장계향
  • 등록 2025-01-03 오전 12:00:18

    수정 2025-01-03 오전 12:03:03

소산 박대성이 그린 장계향 영정 (사진=장계향문화체험교육원)
[예종석 한양대 명예교수 겸 음식문화평론가] 인류의 역사는 음식의 변천사이기도 하다. 우리의 밥상은 이미 과거의 밥상이 아니다. 조선 후기의 기록에 성인 남자는 7홉(약 420g)의 쌀로 한 끼 밥을 지어먹었다고 한다. 요즘 공깃밥의 두 배 규모다. 예부터 한국인은 밥심으로 산다고 했지만 이젠 달라졌다. 최근 국민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집계가 시작된 1963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요즘 사람들은 한 끼에 평균 밥 반 공기 정도로 버티고 있다. 반면 돼지, 소, 닭고기 등 3대 육류 소비량은 지난해 기준 1인당 60.6㎏으로 쌀 소비량을 넘어섰다. 우리 경제의 산업화는 외식 산업의 발달과 함께 식생활의 서구화를 가져왔다. 20년 전만 해도 식탁에서 볼 수 없었던 브로콜리, 셀러리, 파프리카가 등장하고 식당에선 부대찌개, LA갈비와 같은 정체가 모호한 음식들이 팔리고 있다. 인스턴트 식품과 배달 음식의 소비도 날로 늘어가고 있다. 한 시대의 음식문화 발전에는 항상 그러한 변화를 주도하는 인물이 존재한다. 그들은 새로운 식재료와 요리법을 개발하고, 그것을 즐기며 평가하는 사람들이다. 편리한 식기와 식탁예절을 도입하는 것도 그들의 몫이었다. 오늘날의 음식문화를 만든 이들이 누구이며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브리야 사바랭은 “당신이 무엇을 먹는지 말해주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 주겠다”고 했다. 이제 우리가 누구인지를 알아볼 때다.
음식디미방 (사진=경북대학교 도서관)
여성 최초의 조리서이자 한글 요리서를 저술하다

장계향(張桂香, 1598년~1680년)은 조선 후기 요리책 ‘음식디미방’의 저자이다. ‘음식디미방’은 동아시아에서 여성이 저술한 최초의 본격조리서이며, 한글로 쓴 가장 완성도 높은 요리서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이 책이 지어진 1672년경 조선에서 여성은 이름 석 자로 사는 것이 용납되지 않았다. 그래서 장계향의 호칭도 대개 남편의 아호를 붙여 ‘석계부인 안동 장씨’ 또는 ‘이시명의 처 장씨 부인’등으로 기록돼 있는데 그나마도 양반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나중의 일이지만 장계향의 호칭에는 ‘여중군자’ 또는 ‘정부인’이라는 수식어가 더해지는데 이는 그녀의 공적과 잘 키운 아들의 출세로 얻은 영광의 훈장이다.

장계향은 신사임당에 비견될 만큼 뛰어난 인물이었다. 그녀는 당시 여성으로는 드물게 소학, 사서오경 등 경서를 두루 공부했고 시, 서, 화에 모두 능했다. 장계향의 행적을 기록한 ‘정부인안동장씨실기’에는 ‘학발시’ 3장을 비롯해 ‘소소음’, ‘희우시’ 등 7편, 9수의 시가 수록돼 있다. 그녀의 시에 대해 영의정을 지낸 채제공은 “중국의 ‘시경’ 삼백 편중에도 여성 작품이 많지만 ‘학발시’ 만한 것은 없다”고 했다. 장계향은 명필로도 알려져 있는데 특히 초서를 잘 썼다고 한다. 당시의 서예대가 정윤목은 그녀가 초서로 쓴 적벽부를 보고 그 기풍과 굳센 필세의 호기로움에 놀라 “중국 어느 대가의 글씨가 아닌가”라고 경탄했다. 또 훗날 오세창은 그녀의 글씨를 “풍아의 체와 종요, 위부인의 법을 갖췄다”고 극찬했다. 장계향은 그림에도 빼어난 재주가 있어 나비를 잘 그렸고, 인두화에도 능했다. 그녀가 10대 전후에 그린 맹호도는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장계향의 탁월함은 아버지 경당 장흥효로부터 비롯된다. 안동 출신인 경당은 학봉 김성일의 문인으로 서애 류성룡, 한강 정구에게도 사사하여 그 학맥은 퇴계로 이어진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아버지로부터 수학하여 일찍 상당한 학문의 경지에 올랐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수학과 시서화가 여성의 길이 아니라 하여 일체 그만 두게 된다. 장계향은 19살에 아버지의 제자였던 영양의 석계 이시명에게 후취로 시집을 간다. 석계에게는 이미 1남 1녀의 전실 자식이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낳은 6남 2녀와 함께 10남매를 훌륭하게 키웠다. 자식 교육에 있어 재주보다 착한 행실을 강조하며 성리학의 본질을 실천하도록 가르쳤다.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피폐해진 민초의 삶을 돌보는 구휼사업에서도 큰 자취를 남겼다. 동네에 도토리나무 숲을 조성해 어려울 때면 큰 가마솥에 도토리 죽을 끓여 소외된 이웃들을 수백 명씩 먹여 살렸다. 시부모를 지극정성으로 모셨으며 친정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3년 상을 치르고 아버지를 재혼시켰다. 나중에는 이복동생을 시집으로 데려와 자식들과 함께 가르치기도 했다. 덕행과 효심으로 점철된 삶이었다.

이렇게 수많은 미담과 고매한 인품이 알려지면서 장계향은 여성으로서는 드물게 ‘여중군자’라는 별칭을 얻는다. 또 그녀는 초야에 은거하던 산림으로 조정에 출사한 아들 이현일이 이조판서에 오르자 정부인에 추증되었다. 장계향은 70대 중반에 이르러 ‘음식디미방’을 저술한다. 책을 쓴 의도는 뒤표지의 후기에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 책을 이렇게 눈이 어두운데 간신히 썼으니 이 뜻을 알아 이대로 시행하고 딸자식들은 각각 베껴 가되 책을 가져갈 생각일랑 절대 하지 말며, 부디 상하지 않게 간수해 쉬이 떨어지게 하지 말라”

전래의 음식 조리법을 후손에게 대대손손 물려주기 위해 노인이 작심하고 저작한 것을 알 수 있으며 세심한 배려까지 엿보인다. 그러나 이 책이 후손들에게 17세기를 살았던 조상의 식생활을 세세하게 알려주는 귀중한 자료가 될 것을 장계향은 짐작이나 했을까.

음식디미방 요리법에는 고춧가루는 없다

책은 앞뒤 표지 2장과 백지 6장을 포함해 전체 30장으로 된 필사본이다. 책의 권두서명은 ‘음식디미방’이지만 표지서명은 ‘규곤시의방’(閨壺是議方)이라 한자로 적혀 있다. 한자명은 아마도 부군이나 후손이 당시의 식견으로 책의 격식을 갖추려 덧붙인 것으로 짐작된다. ‘음식디미방’은 현대식 발음으로는 ‘음식지미방’이 된다. 그 뜻은 ‘음식의 맛을 내는 방문’, 의역하면 요리비법쯤 되겠다. ‘규곤시의방’은 ‘부녀자의 공간에서 필요한 것을 풀이한 처방문’으로 해석할 수 있으니 비슷한 의미이다. 책의 첫 면에 머리말처럼 유일하게 한문으로 된 한 편의 시가 품격 있는 필치로 적혀 있다. 그 풀이는 “시집온 지 사흘 만에 부엌에 들어가 손을 씻고 국을 끓였지만, 아직 시어머니의 식성을 몰라 시누이에게 먼저 맛보게 하네”다. 이 시는 당나라의 왕건이 지은 ‘신가낭사’의 일부로 권두언으로도 적절한 구절이지만 장계향의 높은 학식을 짐작하게 하는 인용이다.

‘음식디미방’은 비슷한 시기의 다른 책들과 달리 중국 조리서의 영향을 받지 않고 한글로 옛날부터 전해지거나 자신이 개발한 요리법을 취합한 것이다. 장계향은 자신이 시집간 영양 지역의 조리법, 친정이 있는 안동의 음식, 심지어 어머니의 친정인 예천의 요리법까지 다 수록했다. 책은 총 146가지 항목으로 구성돼 있다. 면병류가 18가지, 어육류 74가지, 주류 및 식초류가 54개 항목이다. 분류가 지금의 안목으로 보면 그리 적확하지는 않다. 그러나 산간벽지에 살던 한 여성의 힘으로 이룬 방대한 저작이라는 점에서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놀라운 것은 해삼, 전복 요리법과 연어 알을 다루는 방법이 다 나와 있고, 곰 발바닥 조리법까지 기록하고 있다는 점이다. 해삼을 다루는 법이라는 별도 항목에서는 “함경도에선 해삼을 맑은 잿물에 익혀 우려서 쓰는데, 덜 우려내면 사람을 상하게 한다”고 했다. 그 시절 두메산골에서 이런 정보를 확보한 능력에 혀를 내두를 지경이다. 이 책을 통해 음식은 물론 그 시대 우리 국어의 모습을 엿볼 수도 있다는 점에서 그 가치는 더욱 높아진다.

재미있는 것은 ‘음식디미방’에 올라 있는 음식에는 고춧가루가 전혀 들어가지 않고, 그에 관한 언급조차 없다는 점이다. 산갓김치나 꿩고기 김치법 항목에도 고춧가루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고추는 흔히 임진왜란 전후에 한반도로 유입됐다고들 하는데, 기록상으로는 1614년 이수광이 편찬한 ‘지봉유설’에 ‘남만초’라는 이름으로 처음 등장한다. 식품학자들은 한 가지 재료에서 발효 음식이 우연히 발견되기까지는 200년 이상 걸린다고 본다. 아마 17세기 후반까지도 경북 영양 지방에는 고추가 전파되지 않았던 걸로 짐작된다. 1766년 유중림이 간행한 ‘증보산림경제’에야 비로소 김치를 담그는데 고추를 쓴다는 기록이 나오며, 고추장도 ‘만초장’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고추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정확한 시기에 대해서는 아직도 학자들 간 견해가 엇갈리고 있다.

장계향은 세상을 뜬지 300여 년이 지난 1990년대에 어이없는 논쟁에 휘말리게 된다. 소설가 이문열은 자신의 선대 할머니인 장계향을 주인공으로 해서 ‘선택’이란 장편소설을 출간했다. 그 내용은 장계향을 화자로 등장시켜 현대 여성들에게 자신의 삶을 고백하면서 동시에 그들을 힐난하는 형식으로 전개된다. “아내로서 이 세상을 유지하고 어머니로서 보다 나은 다음 세상을 준비하는 것보다 더 크고 아름다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라며 순종적인 전통 여성관을 피력한 것이다. 이러한 내막은 격렬한 페미니즘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논전이야 이 글의 관심 밖 일이지만, 영문도 모르는 지하의 여중군자가 얼마나 놀랬을까하는 걱정은 접어놓을 수 없다.

예종석 한양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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