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은행 총파업 비상..노조 요구와 정부대책

  • 등록 2000-07-02 오전 11:27:08

    수정 2000-07-02 오전 11:27:08

금융노조가 1일 보라매 공원 등지에서 대규모 집회를 벌이면서 오는 11일 예정된 "총파업" 추진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금융노조는 1일 집회 열기가 예상을 뛰어넘는 등 지난 98년 가을과는 다른 "단결"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노조측은 1일 집회 참가인원도 전국적으로 최소 4만~5만명에 이른다고 추산했다. 금융노조는 서울은행 등 시중은행 노조원들의 참여도가 높아 앞으로 총파업을 전후로 대응력이 강화되고 있다고 자체 분석했다. 정부도 금융파업이 실제 발생할 경우 금융대란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대책마련에 착수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파업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금융시장과 자본시장도 은행노조와 정부간 대치 국면에서 적잖은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합병 저지가 1차목표=금융산업노조가 파업을 선언한 것은 조직과 인원감축을 불러올 "은행합병"을 저지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노조는 최근 "강제합병 저지 및 관치금융 철폐를 위한 총파업 투쟁 대정부 요구사항"이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통해 강제합병방침 철회를 요구했다. 노조는 이와 함께 ▲금융지주회사법 제정유보 ▲경제각료 퇴진 ▲관치금융 철폐 ▲관치금융철폐 특별법제정 등을 내걸고 있다. 금융기관 합병과 관련, 노조는 "각 합병은행은 통합의 후유증을 극복하고 1∼2년 안에 수익을 낼 수 있는 기반을 가까스로 마련했다"며 "이런 상황에서 타율적 합병을 다시 강요한다면 조직과 사기가 또 헝클어지고 수익경영의 길이 더 멀어질 뿐"이라고 주장했다. 합병은 경쟁력 강화와 무관하므로 금융기관에 대한 "강제합병"정책을 백지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노조는 같은 맥락에서 은행 "합병"수단의 하나인 지주회사법 제정에 반대하고 있다. 노조는 "정부는 금융산업의 겸업화를 추진한다는 목적아래 금융지주회사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으나 이러한 행위는 편법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또 "공적자금 투입 은행을 금융지주회사로 묶게 되면 당장의 추가 공적자금 투입을 줄이면서 대형화와 겸업화를 추진할 수 있다고 강변하지만 결국 몇 년 뒤에는 금융지주회사의 민영화과정에서 은행주인 찾아주기와 민영화에 따른 공적자금 손실 문제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금융지주회사법은 3개 은행을 하나로 묶기 위한 조치에 불과하고 문제해결보다는 민영화 추진에 따라 은행을 재벌 또는 해외 독점자본에게 매각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얘기다. 노조는 정부가 제2의 채권시장안정기금에 또 다시 은행 등을 동원하는 것과 같은 편법으로 일관하고 있다며 이헌재 재경부 장관, 이용근 금융감독위원장, 이기호 청와대 경제수석 등 경제팀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노조는 관치금융이 통하지 않도록 근로자대표이사제와 노동조합의 감사추천권을 제도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동조합이 추천하는 사외이사로 감사를 구성하여 주주나 정부의 이익에 눈을 감는 행태를 뿌리뽑아야 한다는 것이다. 주주와 노동자가 공동으로 참여해 집행이사회를 선출하는 방식까지 발전돼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은행경영과 경영감시에 노조가 참여하는 권한과 수단을 제도적으로 보장해 달라는 것이다. ◇정부의 화전(和戰) 양면작전=정부는 금융 총파업 등에 대비한 듯 롯데호텔 사태에 경찰병력을 투입하는 등 잇따라 강공드라이브를 구사했다. 의약분업사태에 대한 비난여론이 높아진 가운데 국민생활과 직결된 금융기관 기능이 마비될 경우 국내외적으로는 "위기관리능력"을 의심받을 수 있다는 점을 의식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다른 한편으로 대화채널을 만드는데 총력을 쏟고 있다. 지난달 29일 열린 노사정위 본회의에 이헌재 재경장관, 진념 기획예산처 장관, 이용근 금감위원장 등이 모두 참여한 것도 이같은 노력의 하나로 해석된다. 29일 노사정위 본회의에서 참석자들은 재경장관 금감위원장 노사정위원장 한국노총위원장 등으로 대화협의체를 구성해 금융구조조정 문제를 논의하기로 했다. 이에 앞서 노동부도 노동부 재경부 금감위 등 관련부처 차관급과 금융노조 지도부가 만나서 고용조정의 방법과 절차 등에 대해 논의하자고 금융노조에 제안했다. 이남순 한국노총 위원장은 노동부 주선으로 지난 27일 이용근 금감위원장과 이헌재 재경부장관을 잇달아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금감위도 비공식적으로 금융노조 지도부와 만나자는 제안을 계속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저녁에도 금감위 관계자는 금융노조를 방문해 노사정위 안에서 대화할 것을 요구했다. ◇금융노조의 강경움직임=롯데호텔사태에 대한 정부의 강경대처는 노조의 반발만 키우는 역(逆)효과를 내고 있다는 지적이다. 금융노조측은 "의사들의 집단 폐업에는 꼼짝 못하고 그들의 요구를 거의 다 들어준 정부가 일반노동자 파업에는 강하게 대처한다"고 비난했다. 정부의 대화요구에도 금융노조의 반응은 냉담한 편이다. 이용근 금감위원장이 “합병에 따른 고용불안은 없다”며 노조와의 대화를 강조했지만 한편에서는 지난 28일 은행장회의에선 이정재 금감위 부위원장을 반장으로 대책반을 구성해 각 은행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라고 지시했다며 정부의 대화제스처를 "전력분산을 노린 양면전술"로 해석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 30일 오전 주택은행이 노조파업을 방해한 것에 항의하기 위해 방문한 금융노조 간부들이 경찰에 의해 강력 저지당한 것도 우량은행과 비(非)우량은행의 노조를 분리해 파장을 최소화하려는 의도를 드러낸 것이라고 주장했다. ◇파업시 금융대란 불가피=금융노조가 11일 파업에 돌입할 경우 전산망은 정상 가동되기 때문에 일반 시민들은 현금자동출납기를 이용하면 된다. 그러나 어음결제, 수출입관련 대외국제업무 등 기업의 은행업무는 사실상 전면 중단된다. 금융대란이 불가피하다는 얘기다. 정부는 지난 98년 가을 은행파업사태를 거울삼아 비상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금융노조는 3일에 총파업 찬반투표를 실시할 예정이다. 이어 10일 파업출정식을 갖고 11일 오전 8시를 기해 모든 은행이 참가하는 파업을 강행한다는 방침이다. 이에 발맞춰 각 은행노조도 잇따라 파업출정식을 갖고 총파업에 합류키로 결의하고 있다. 노조는 특히 이번 총파업이 지난 98년 9월 파업처럼 "실패"로 돌아간다면 거리로 내몰리는 살인적인 인원감축이 불가피하다면서 모든 역량을 동원해 총력 투쟁하겠다는 입장을 거듭 밝히고 있다. 정부도 대책마련을 서두르고 있다. 이용근 금감위원장은 3일 시중은행장과 조찬모임을 갖고 대책을 논의할 예정이다. 그러나 뚜렷한 해결책을 제시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은행합병과 정부정책 변화가능성=합병논의는 노조의 움직임이 활발해지면서 일단 수면밑으로 들어갔다. 정부의 2차구조조정 추진방향도 지주회사법을 통해 한빛 조흥 외환은행을 묶되 나중에 효과가 없다고 판단하면 개별 은행 자체적으로 판단해 다시 빠져나갈 수 있는 방안을 허용하는 쪽으로 변화를 모색하는 듯하다. 노조나 외환은행의 파트너인 코메르츠은행도 나중에 지주회사의 틀에서 빠져나갈 수 있다는 보장이 확고하면 일단 지주회사내로 들어갈 수 있는 명분을 얻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은행 합병 논의는 노조가 총파업 시점으로 삼고 있는 7월 11일이후 파업문제가 마무리 된 뒤 다시 수면위로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이용근 위원장이 지난달 26일 기자간담회에서 금융지주사와 합병을 연계하지 않겠다고 밝힌 것은 "원치 않으면 합병을 시키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금융지주회사의 한 틀로 묶는 것이 합병을 전제로 한 것이 아니다"는 뜻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 금융계 고위관계자들의 견해다. 결국 정부가 현시점에서 내놓을 수 있는 양보안은 노조나 외국자본의 동의가 필요하므로 일단 지주회사로 묶되 합병은 자연감원이 충분히 이뤄진 뒤 이해당사자의 동의와 시너지효과를 고려해 시행하거나 지주회사 이탈을 보장하는 쪽으로 후퇴하는 정도라는 지적이다. 그러나 국제경제 속에 국내금융기관이 살아남기 위해선 더 과감한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정부의 시각과 판단은 흔들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가장 큰 이유는 아니지만 정부 대(對) 노조의 대결을 피하려는 의도에서도 정부는 수차례 은행합병을 은행이 자율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미 정부 대(對) 노조의 대결 구도는 피할 수 없게 됐다. 정부가 나서 구조조정의 그림을 그리고 추진해야 하는 상황으로 분위기가 바뀐 것이다. 따라서 합병 등 구조조정은 급류를 탈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 정부로서는 고용불안감을 희석시키면서 밑그림을 그려 구조조정을 차질없이 진행할 수 있는 묘수를 찾아야 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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