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던 남편 죽인 ‘칼부림’ 그놈…돌연사 한 이유는[그해 오늘]

2012년 8월21일 수원 ‘묻지마 흉기 난동’…1명 사망·4명 중경상
만취해 술집 여주인과 다툰 후 애꿎은 다른 여주인 성폭행 시도
실패하자 흉기 난동…가정집 침입해 1명 살해
유족 “그는 오직 살인이 목적이었다” 울분
구치소서 병원 이송 중 돌연 사망…원인은 ‘약물 쇼크’
  • 등록 2023-08-21 오전 12:01:36

    수정 2023-08-21 오전 12:01:36

수원시 장안구 일대에서 흉기를 휘두른 강 모씨. (사진=연합뉴스)
칼부림 포비아…‘범죄도시’ 된 대한민국

지난 7월 21일 오후 2시 7분 서울 지하철 신림역 4번 출구 인근에서 흉기 난동을 부려 1명을 살해하고 3명을 다치게 한 조선(33). 이 사건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지난 3일에는 경기도 성남 분당 서현역의 한 백화점에서 최원종(22)이 또 다시 불특정 일반 시민을 상대로 흉기 난동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그는 차량과 흉기를 이용해 1명을 살해하고 13명을 다치게 했다. 지난 17일 오전에는 서울 관악구 신림동 인근 한 등산로에서 일면식 없는 한 여성이 최 씨(30)에게 너클로 폭행과 성폭행을 당해 의식불명에 빠진 끝에 19일 결국 사망했다.

이러한 ‘묻지마 칼부림’ 사건 이후 최근 유사한 범죄를 저지르겠다고 예고하는 글들이 온라인 상에서 400건 넘게 확인됐다. ‘살인 예고’ 글을 올리는 이들 중 절반 가까이는 10대 청소년이라고 한다.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섬뜩한 살의 표출에 국민들이 공황에 빠지자 경찰은 사상 유례없는 ‘특별치안활동’까지 선포했다. 경찰은 지난 18일 온라인 상에 올라온 살인 예고 글들을 작성한 173명을 검거하고 20명을 구속했다고 밝혔다.

예나 지금이나 묻지마 칼부림에 대한 공포감은 여전했다. 당시 끔찍한 유혈 사태에 휘말렸던 피해자들은 도대체 무엇을 잘못한 건지, 어디서부터 문제가 발생했는지 아직까지도 이유를 알아내지 못한 채 그저 묵묵히 주어진 시간을 살아내고 있다. 물론 이건 그들이 ‘생존자’였을 때의 이야기다.

11년 전 오늘, 수원에서도 ‘묻지마 흉기 난동’

지금으로부터 11년 전, 2012년 8월 21일 자정께 경기도 수원시에서도 ‘인과 관계’ 없는 참극이 일어났다. 이날 이유 없이 흉기에 찔리고, 사랑하는 가족을 잃게 된 이들의 비명 섞인 울음소리가 곳곳에서 울려퍼졌다.

지난 2005년 두 차례 성범죄를 저지른 죄목으로 7년형을 선고받고 2012년 7월 군산교도소를 만기출소한 전과 11범의 강 씨(당시 39세). 그는 수원의 한 갱생보호시설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범행 전날 오후 9시 50분경 그는 장안구 파장동의 한 주점에 들어가 양주(12만 원) 1병과 과일 안주(4만 원) 등 16만 원 어치를 시킨 뒤 5만 원 권 4장 20만 원을 냈다. 그는 술에 잔뜩 취한 상태였다.

그러나 여주인이 봉사료를 포함하면 21만 원이라며 거스름돈을 주지 않자 말다툼이 벌어졌고 강 씨는 오후 11시41분경 112에 여주인을 직접 신고했다.

당시 112신고를 받은 노송파출소 직원은 주점에 가 2만 원을 돌려주는 선에서 중재하고 강 씨를 파장시장에 내려줬다. 경찰은 “당시 출동했던 경찰관이 강 씨가 신고자여서 별다른 범죄경력을 조회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참극은 그 이후 벌어졌다. 술에 취한데다 골목마저 어두웠던 탓에 애꿎은 다른 술집에 들어간 강 씨가 아무 관련없는 여주인을 상대로 성폭행을 시도하려다 미수에 그치자 흉기를 휘두른 것이다. 이후 주점에 들어온 손님 2명도 흉기에 찔리는 참사가 발생했다.

당시 강 씨는 “잔돈 2만 원을 마저 돌려받고 여주인을 혼내주려고 편의점에 들어가 과도를 샀다. 해당 주점을 찾으러 돌아다녔는데 술에 취해 찾지 못했다”며 “그러나 성폭행 할 의도는 없었다”고 진술했다.

그의 칼부림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어 강 씨는 500m 떨어진 정자동의 한 단독주택으로 침입해 고 씨와 고 씨 아내, 고 씨 아들을 찔렀다. 새벽 현관문이 열려있던 탓이다. 그 시간 집에서 잠자고 있던 일가족 3명은 고스란히 흉기 난동의 피해자가 됐으며 남편이자 아버지를 잃게 됐다. 이 모든 일은 불과 12분 만에 벌어진 참극이었다.

유족 “왜 선량한 사람들에게 이런 짓 했는지 묻고 싶다”

그 해 12월 12일 수원지법 형사11부(부장판사 이동훈) 심리로 열린 공판에서 강 씨가 휘두른 흉기에 숨진 고 씨의 아내는 검찰측 증인으로 출석해 “강 씨는 협박이나 욕설을 비롯한 한마디 말도 없이 흉기만 휘둘렀다”며 “오직 살인이 목적이었다”고 주장했다.

당시 집안이 어두워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며 살인할 의도는 없었다는 강 씨의 주장에는 “마루에 불이 켜진 상태였고 불이 꺼진 안방에서도 안방문을 열고 들어오는 강 씨의 짧은 머리를 분명히 봤다”고 반박했다.

이어 “아들은 수십차례 찔린 양팔 때문에 직장을 잃은 뒤 아직 집에서 쉬고 있고 나도 여전히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며 “왜 선량한 사람들에게 이러한 짓을 했는지 저 사람에게 꼭 묻고 싶다”며 진술을 마쳤다.

방청석에서 이를 지켜보던 고 씨 아들 또한 참혹했던 당시 상황이 떠오르는 듯 연신 고개를 숙이며 한숨을 쉬었다.

피고인석에 앉은 강 씨는 고 씨의 아내가 진술하는 내내 눈을 감고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돌연사는 ‘죗값’이었나…구치소서 병원 이송 중 숨진 강 씨

그로부터 4일 뒤, 강 씨는 구치소 내 수감실에서 얼굴이 창백해지고 구토를 하는 등 몸에 이상증세를 보여 동수원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이송 도중인 오전 10시 46분께 갑작스레 숨졌다.

4인실에 수감돼 있던 강 씨는 그날 오전 9시께 교도관들이 점검에 나섰을 때만 해도 특이증상을 보이지 않다가 1시간여 뒤 같은 방에 있던 수감자들에게 고통을 호소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 수원구치소가 2013년 1월 23일 발표한 강 씨의 부검결과는 ‘약물에 의한 쇼크사’였다.

구치소에 보낸 부검 보고서에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독성농도 이하 약물이라도 2개 이상을 함께 복용할 경우 상호작용에 의해 효과가 증대되고 이로 인해 발생한 쇼크가 사망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그 해 8월 수원구치소에 수감된 강 씨는 잠을 제때 이루지 못해 면회 온 가족의 도움을 받아 졸피뎀(불면증치료제)을 복용했고, 사망 며칠 전부터는 감기에 걸려 아세트아미노펜과 클로르페니라민이 함유된 감기약을 함께 복용했다. 감기약은 하루 3차례, 졸피뎀은 하루 2차례 먹은 것으로 전해졌다.

구치소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부검을 거쳐 그의 시신을 유족에게 인도했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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