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톡톡골프]이글 4번과 무(無) 홀인원

  • 등록 2011-05-14 오전 9:09:05

    수정 2011-05-14 오전 9:09:05

[이데일리 김진영 칼럼니스트] 구력 15년이 넘도록 홀인원을 한번도 못해 본 김 여사는 사실 그 짜릿함에 대한 동경이 없다.

왜냐, 이글을 4번이나 하면서 공이 단번에 홀에 빨려 들어가는 그 순간의 기쁨을 맛봤기 때문이다.

첫 이글은 어리둥절하기만 했다. 약 110야드가 남은 파4홀이었는데 분명히 잘못 맞은 것 같다는 느낌 속에 공이 핀 오른쪽으로 날아갔는데 그게 왼쪽으로 휘더니 계속 굴러서 쏙~ 홀에 들어가 버렸다. 사실은 그날 라운드는 회사 행사에 깍두기로 끼어서 했던 것이었고 동반자들은 그날 처음 만난 사람들이어서 민망하기 그지 없었다. 그래도 첫 이글이라고 아주 훌륭한 이글 패를 받았다.

두 번째 이글은 집념의 산물이었다. 남자 동반자들과도 곧잘 내기를 했던 김 여사. 당시에는 남자들과 같은 티잉 그라운드에서 플레이를 하곤 했는데 그날 실력자들과의 라운드인지라 전후반 2개씩 티잉 그라운드로 핸디를 받기로 했었다. 쭉 같은 티잉 그라운드에서 치다가 핸디캡 높은 홀 중 4개를 골라서 빨간 티(레이디스 티잉 그라운드)에서 플레이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날은 완전 김 여사 지갑 털리는 날이었다. 왜 그렇게 플레이가 안되던지. 만세를 불러야(지갑 다 털린 뒤 내기에서 빠지겠다고 선언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마지막 핸디 홀에 도착했다. 파5였고 레이디스 티잉 그라운드에 서니 좀 짧았다. 티 샷하고 남은 거리는 170야드. 정신을 집중하고 7번 우드로 힘껏 티샷한 공이 그린에 올라갔다. 2온.

하지만 그린에 가보니 공은 2단 그린 아래쪽에 있었고 홀까지는 S자 뱀 라인을 타고 10m는 족히 올라가야 하는 험난한 코스를 통과해야 했다. 그래도 이번이 마지막 기회다 싶었던 김 여사는 동반자들을 바라보며 ‘이글하면 몇 배?’하고 물었다. 다들 선배였던 남자 동반자들은 실실 웃음을 흘리면서 ‘넣기나 해 봐라’했다. 좋아! 마음을 다 잡은 김 여사가 연습스윙을 한번 하고 공을 때렸다. 어, 어, 어~~~ 소리만 들어도 알았다. 크크 들어갔구나. 반드시 넣어야 한다는 집념은 정말 무서웠다.

김 여사는 아직도 그날 그 그린에서 선배들이 보여줬던 흙빛의 얼굴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홀인원, 이글, 싱글 등등의 기록 그 자체로 행복하지만 내기와 동반됐을 때의 짜릿함은 진짜, 여름날 시원하게 들이키는 얼음 동동 띄운 동치미 국수 국물 맛이다.

세 번째는 다시 또 민망한 상황이었다. 너무 친절한 송여사 언니의 홀인원 기념 라운드였다. 언니의 홀인원 동반자가 2명밖에 없었던 터라 끼어 가게 된 날이었는데 파5홀에서 60야드 남기고 친 서드 샷이 미친 듯이 홀을 찾아 굴러 들어간 것이다. 허걱. 남의 잔치에 와서 이게 무슨 행패야? 어찌할 바 모르고 있는데 송여사 언니가 더 좋아했다. 음… 역시 언니 최고!

그렇게 파4 세컨샷, 파5 2온1퍼트, 파5 서드샷으로 종류도 각각인 이글 3번은 무슨 이유인지 모두 16번홀에서 나왔다. 신기하다. .

그리고 가장 최근 이글은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들과의 라운드 도중 오르막 120야드를 남긴 파4의 4번 홀이었는데 잘 맞은 세컨 샷이 그린 앞에 떨어지더니 한두 바퀴 굴러서 그냥 쏙 사라졌다. 오르막이었고 그린이 좀 높았지만 핀이 앞에 있었기 때문에 똑똑히 볼 수 있었다.

뭐 그 정도 거리에 그 손 맛이면 짧은 파3홀 홀인원이랑 뭐가 달라? 김 여사 마음에는 그런 생각이 있었다.

그런데 얼마 전 모임에서 손 여사가 홀인원 했다는 소식에 김 여사 생각이 좀 달라졌다. 구력이 이제 1년 조금 넘은 손 여사는 욕심쟁이 연습벌레다. 기초부터 탄탄하게 레슨을 받아서 폼도 예쁘고 ‘연습장이 집이냐’ 소리를 들어가며 열심히 샷을 다듬어 구질도 좋았다. 다만 거리가 조금 나지 않는 게 흠이지만…

그런 손 여사가 부부 대항전 모임에서 홀인원을 해버렸다. 180야드짜리였는데 몇 번인지 모를 우드를 휘둘러서 단번에 넣어 버렸단다. 단박에 모임이 시끌벅적해졌다. 모임 성격이 심플하여 뒷풀이도 간단하게 회비로 밥 먹고 홀인원 당사자가 빵 한 봉지씩 돌리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그 일 이후 김 여사 마음에 홀인원 욕심이 들기 시작했다. 뒷풀이가 간단해서 그런 거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어찌됐건 한 번 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내 공은 높이 떠서 딱 멈춰서니까 홀인원이 힘들어, 좀 굴러줘야 들어갈 확률이 높지…’ 라고 말하곤 했는데 ‘나도 그거 해봤어’하고 말하고 싶어졌다.

아니, 무엇보다 그 짜릿한 맛을 보고 싶어졌다. 궁지에 몰려서 파5홀 2온으로 퍼팅 이글했을 때처럼 이글이글 집념을 불태우면 될라나? 중얼거리는 김 여사 뒤에서 남편이 한 마디 한다.

손 여사 홀인원이 그냥 나온 건 줄 알아? 연습이나 하고 욕심을 내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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