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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료 인상에 고물가까지…쪽방촌엔 ‘잔인한 여름’

끼니 거르고, 선풍기 못 틀고…
점심‧저녁 주는 무료급식소, 경쟁 ‘치열’
“전기료 인상, 우리더러 쪄죽으란 소리”
정부 “취약계층 지원확대”…전문가 “환경개선 절실”
  • 등록 2022-06-23 오후 4:52:48

    수정 2022-06-23 오후 10:26:20

[이데일리 이용성 기자] “끼니요? 거의 굶다시피 하죠. 누가 우리에게 관심이 있겠어요. 근데 기자 양반, 라면 한 봉지 선물로 어떻게 안 되겠어?”

23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인근 쪽방촌. 이곳에서 만난 60대 A씨는 야윈 어깨를 움츠리며 고개를 숙였다. 아침엔 무료급식소가 운영하지 않아 끼니를 챙기지 못했다는 그였다. A씨는 “물가가 크게 올라 형편이 너무 안 좋아졌다”며 “라면 한 봉지를 사면 쪼개서 며칠을 끓여 먹는다”고 하소연했다.

23일 오전 서울 용산구의 한 쪽방촌의 모습.(사진=이용성 기자)
‘밥상 물가’ 치솟아…끼니 거르는 쪽방촌 사람들

올 여름 무더위 속 전기료 인상이 예고된 데다 최근 ‘밥상 물가’가 치솟으면서 취약계층들은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이데일리가 찾은 서울 용산구 서울역 인근 쪽방촌에선 곳곳에서 시름 앓는 소리가 들려왔다. 경기 침체에 사회 취약계층부터 무너지고 있는 형국이었다.

대부분 기초생활수급자인 쪽방촌 주민들은 물가가 오르면서 정부 지원금만으로는 삶을 감당할 수 없는 처지에 놓였다. 10년 가까이 쪽방촌에 살았다는 김모(65)씨는 “물가나 식재료가 오르면서 끼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라며 “무료급식소를 최대한 이용해야 하는데, 늦게 가면 밥이 금방 동나 경쟁이 치열하다”고 했다.

역시 쪽방촌 생활 10년차인 50대 강모씨는 “쪽방촌 사람들은 대부분 늙고 병들어 일하지도 못하고, 정부가 주는 돈으로만 의식주를 해결한다”며 “방세를 빼면 58만원으로 한 달을 살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곳저곳 아픈 곳이 많아 병원에 다니고 있는데 병원비에 교통비 등등 하면 거의 굶어야 하는 수준”이라고 했다.

다가올 무더위엔 벌써부터 걱정을 쏟아냈다. 정부 지원금을 쪼개고 또 쪼개 생활하는 이들에게 전기료 인상은 일반 사람보다 타격이 크게 다가오는 분위기였다. 김씨는 “여름에 쪽방촌 사람들은 무더위 쉼터나 선풍기 외엔 대책이 없다”며 “집에 선풍기가 하나 있긴 한데 전기료 때문에 지금은 안 튼다. 오늘은 비가 와서 다행”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70대 이모씨도 “선풍기가 고장이 났지만, 일부러 고치지 않고 있다”며 “쪽방촌 사람들에게 전기료 인상은 쪄 죽으라는 소리와 같다”고 토로했다.

23일 오전 서울 용산구의 한 무료급식소에 인근 주민들이 모여 식사를 하고 있다.(사진=이용성 기자)
치열해진 무료급식소…전문가 “환경 개선해야”

물가 인상, 경기 침체에 무료급식소는 붐비고 있다. 점심과 저녁 끼니를 때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잠시나마 시원한 에어컨, 선풍기 바람을 쐴 수 있어서다. 이날 서울역 인근 무료급식소는 문을 열자마자 주민 수십 명이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 무료급식소 관계자는 “약 200인분을 준비하는데 많은 분이 이용하셔서 30분~1시간 남짓이면 재료가 소진된다”고 전했다. 다만 식재료 값이 대폭 오르면서 무료급식소 사정은 예전만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무료급식소에서 매일 밥을 먹는다는 50대 B씨는 “예전보다 식사 정량을 적게 주고 음식이 간소해진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정부는 지난 16일 관계부처 합동으로 발표한 ‘새정부 경제정책 방향’에서 “사회적 약자에 대한 맞춤형 지원을 확충하겠다”며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기초생활보장제도는 실태조사, 중앙생활보장위원회 논의 등을 거쳐 지원대상·급여 수준을 확대하기로 했다.

전문가들은 지원금 확대 이외에도 취약계층을 위한 인프라를 구축하고, 사회적 인식을 전환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허준수 숭실대 사회복지학부 교수는 “쪽방촌에 사는 사람들 대부분은 절대 빈곤층에 고령화됐고 1인 가구가 많다”며 “사회적 유대 관계 등이 없어 다른 사람들에 비해 신체적, 정신적 건강이 굉장히 안 좋은 사람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역 복지 기관들이 취약계층과 함께 환경을 개선하고 중앙정부와 협력해 양적 질적으로 삶이 개선될 수 있도록 해야 하지만, 인력과 재원이 없는 상황”이라며 “정부가 전국의 쪽방촌을 조사해서,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이들이 무엇을 필요로 할지 파악하는 등 인권 측면에서 세심히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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