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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이데일리 김정남 특파원] 미국 물가가 예상을 뛰어넘는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 올해 9월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이 5.4%에 이르면서 13년여 만의 최고치로 치솟았다. 특히 에너지, 식료품 같은 장바구니 물가가 폭등했다. 이에 연방준비제도(Fed)는 이르면 11월부터 테이퍼링(채권 매입 축소)에 나서기로 했다.
식료품 등 장바구니 물가 확 뛰어
13일(현지시간) 미국 노동부에 따르면 9월 CPI 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5.4%를 기록했다. 다우존스가 집계한 시장 예상치(5.3%)를 소폭 웃돌았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인 2008년 7월(5.5%) 이후 13년2개월 만의 최고치다. 최근 5개월 연속 5%대다. 연준 목표치(2.0%)를 넘는 고물가가 추세적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특히 지난해 9월 미국 경제는 최악의 코로나19 팬데믹에서 조금씩 벗어났던 시기다. 높은 물가 상승률이 ‘기저효과’ 때문이라는 분석의 근거가 약해진다는 의미다. 월가는 기저효과가 사라졌음에도 5% 중반대 높은 인플레이션을 보였다는 점을 주목하는 기류다.
가장 급등한 건 에너지 분야다. 1년 전보다 24.8% 뛰었다. 특히 휘발유 가격은 무려 42.1% 치솟았다. 국제유가가 배럴당 80달러 안팎까지 오르면서 덩달아 상승했다. 식료품 가격 역시 큰 폭 올랐다. 육류·계란 물가는 10.5% 상승했다. 또 중고차와 트럭 가격은 1년 전과 비교해 24.4% 폭등했다. CPI의 3분의1을 차지하는 주거 물가는 3.2% 상승했다.
한 달 전과 비교해 가장 많이 뛴 품목 역시 에너지와 식료품이다. 에너지 분야는 1.3% 올랐다. 시리얼·빵(1.1%), 육류·계란(2.2%), 유제품(0.7%), 과일·채소(0.6%), 무알콜 음료(1.2%) 등 일상과 밀접한 장바구니 물가가 폭등했다. 공급망 대란에 따른 기업 생산 비용 증가가 소비자 물가로 옮겨오고 있는 징후로 해석된다. 주거 물가는 0.4% 올랐다.
변동성이 큰 식료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물가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0% 뛰었다. 시장 예상에 부합했다.
“생산비용 증가, 소비자에 전가돼”
이날 수치는 최근 전 세계 공급망이 붕괴 수준에 이르며 인플레이션 압력을 높이고 있는 가운에 나와 주목된다. 블룸버그는 “물류 대란, 원자재 부족, 임금 인상 등이 전방위적으로 맞물리면서 생산 비용을 끌어올리고 있다”며 “이 중 상당 부분이 소비자들에게 전가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인플레이션 장기화 가능성은 월가의 최대 화두다. 세계 최대 글로벌 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를 이끄는 존 월드런 대표는 이날 국제금융협회(IIF)의 연례 총회에 나와 “높아진 기대인플레이션이 완화하려면 1년 혹은 2년, 어쩌면 그 이상 걸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관심사는 연준의 행보다. 연준이 이날 내놓은 9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 의사록을 보면, FOMC 위원들은 “(경제 상황이) 연준 목표치에 거의 도달했다”며 “자산 매입 속도를 줄이면서 곧 정책 정상화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또 “11월 FOMC에서 테이퍼링 결정을 내릴 경우 11월 중순 혹은 12월 중순부터 테이퍼링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월가에서는 이미 기준금리 인상 시기로 시선이 이동하고 있다. CNBC는 최근 국제통화기금(IMF)의 ‘긴축 준비’ 정책 조언을 두고 “중앙은행이 움직인다는 건 예상보다 빨리 기준금리를 올리는 걸 의미할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