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 밀러(사진) 미국 터프츠대 플레처스쿨 국제사 교수는 25일 이데일리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최근 미국이 발표한 반도체 지원법 가드레일(안전장치) 세부 조항의 여파와 우리 반도체 기업들의 대응 전략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당장 가드레일 조항이나 수출 통제 조치가 미칠 영향보다는 변화무쌍한 반도체 시장을 더욱 주목해 수익성에 이익이 되는 쪽으로 결정해야 한다는 현실적 조언이다.
밀러 교수는 정치사학적으로 반도체 산업이 글로벌 패권경쟁에서 주요한 역할을 해왔음을 분석한 ‘반도체 전쟁: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기술을 위한 싸움’(Chip War:The Fight for the World’s Most Critical Technology)을 지난해 11월 출간해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 책은 지난해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선정한 올해의 경영 서적으로 꼽히는 등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현재 미국 외교정책연구소(FPRI) 유라시아 프로그램 국장을 겸임하고 있는 밀러 교수는 국제 문제 전문가인 30대 신진학자로 미국과 중국의 반도체 전쟁을 비롯해 러시아 및 중국 정치·경제 등을 주로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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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 상무부가 발표한 반도체법 ‘가드레일’ 조항 세부안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미 정부의 보조금을 받을 경우 향후 10년간 중국 내 생산시설의 반도체 생산능력을 5% 이상 확장할 수 없다. 이와 관련, 밀러 교수는 이미 전 세계 반도체 공급망의 양분화가 시작된 만큼 해당 조항의 영향력은 크지 않을 것으로 봤다. “이미 미국을 필두로 한 서방의 대중(對中) 기술 규제와 중국 내 경제정책에 대한 불확실성 탓에 글로벌 기업들은 중국 생산 의존도를 낮출 것”이라며 삼성·SK 등 우리 기업들에 대해서도 “어차피 중국 내에서 생산능력을 크게 확장할 계획이 없었을 것이기 때문에 해당 조항이 기업들의 전략을 바꾸지는 못할 것”이라고 했다.
셈법 복잡해졌지만…“수익성 쫓아라”
그러나 미 수출통제 조치는 우리 기업들엔 달가운 소식은 아니다. 중국에 생산 공장을 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우리 기업은 1년간 유예조치를 받은 상태지만 올 10월 연장될진 미지수다. 게다가 ASML를 보유한 네덜란드, 소부장(소재·부품·장비)에 강한 일본까지 별도의 수출통제에 나서면서 우리 기업들의 셈법은 더욱 복잡해졌다.
이에 밀러 교수는 ‘수익성’을 쫒으라고 조언했다. 그는 최근 삼성이 용인에 300조원을 투자,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 구축 계획을 발표한 점을 상기시키며 “한국 내 대규모 투자가 사업적으로 더 낫다는 판단을 내린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삼성은 또 한국 내 투자 규모보단 작지만 텍사스 테일러 투자를 통해 더 큰 이익을 볼 수 있다고 결론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고도 했다.
따라서 밀러 교수는 우리 기업들이 미국에 보조금을 신청할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그는 “가장 중요한 건 (텍사스에 지어질) 새 생산 시설이 기업 비즈니스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또 고객들이 북미산 칩을 구매하는 옵션을 원하는지가 될 것”이라며 “많은 요소를 고려하면 보조금을 받아 (미국에) 지을 신규 생산 시설은 매력적인 투자처일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밀러 교수는 한국 정부를 향해서도 “업계뿐만 아니라 한국 정부 역시 미국, 일본, 네덜란드의 장비·기술 제한 조치에 협력할 필요가 있다”며 중국을 배제한 신(新) 공급망 구축의 중요성을 짚었다.
밀러 교수는…△하버드대 역사학 학사 △예일대 역사학 석·박사 △현 미국 외교정책연구소(Foreign Policy Research Institute) 유라시아 프로그램 소장 △현 미국 터프츠대 플레처스쿨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