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근로시간 단축이 노동개혁 시작이다

권순우 한국자영업연구원장
  • 등록 2023-03-24 오전 6:15:00

    수정 2023-03-24 오전 6:15:00

[권순우 한국자영업연구원장] 주당 최대 근로시간을 69시간으로 하는 근로시간 개편안에 브레이크가 걸렸다. “주당 60시간 이상 근무는 무리”라는 윤석열 대통령의 지적에 따른 것이다. 백번 옳은 지적이다.

이번 근로시간 개편안은 유감스럽게도 개혁의 방향이 길을 잃고 헤매는 모습을 보여줬다. 왜 그렇게 됐을까? 근로시간 유연화에만 집착한 나머지 정작 중요한 근로시간의 길이에 대한 고민이 빠졌기 때문이다.

물론 근로시간 유연화는 노동시장 개혁의 주요 과제다. 변화무쌍한 현실의 기업 환경에서 어떻게 따박따박 정해진 일정 대로만 일을 할 수 있겠는가. 현실 상황에 맞게 근로시간도 유연하게 운용하는 것은 상식에 가깝다. 기존의 제도가 이 상식을 제대로 담지 못하고 있으니 개선하는 것이 마땅하다.

문제는 근로시간 유연화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근로시간 단축의 과제를 간과한 것이다. 근로시간 유연화 설계의 필수 전제조건은 근로시간 단축이다. 왜 근로시간 단축이 중요한가?

우리나라 연간 근로시간은 1,915시간에 달해 선진국이라 할 만한 나라들 중 가장 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우리보다 근로시간이 긴 나라는 멕시코, 코스타리카, 칠레 정도다. 우리나라는 국민소득은 높을지 모르지만 일하는 시간이 길어 다른 나라들에 비해 삶의 질이 떨어진다. 긴 근로시간은 우리나라의 가장 심각한 문제인 저출산의 핵심 이유이기도 하다.

근로시간 단축이 중요한 또 하나의 이유는 크게 부족한 양질의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 내는데 필요하기 때문이다. 한국 기업들, 특히 대기업들은 대부분 가능한 적게 고용하고 최대한 일을 많이 하게 하는 과소고용·과잉노동의 고용 전략을 선호한다. 이런 노동절약적 고용방식을 지난 수십 년 동안 고수해 왔다. 그러다 보니 큰 기업의 괜찮은 일자리가 지나치게 적다. OECD 국가 중 250인 이상 대형기업에 종사하는 근로자 비중이 가장 낮을 정도로 과소고용은 심각하다.

기업들은 왜 이런 고용전략을 택했을까? 경직적인 노동시장 때문이다. 기업들의 과소고용·과잉노동 전략은 노동유연성이 크게 떨어지는 노동시장 환경에 적응한 결과다. 노동유연성은 대기업일수록 특히 떨어진다.

(그래픽=이미나 기자)


괜찮은 일자리가 늘어나려면 대기업을 중심으로 과소고용·과잉노동의 고용 관행이 바뀌어야 한다. 더 많이 고용하고 더 적게 일하는 방향으로 변해야 한다. 이를 달성하기 위한 핵심적인 두 가지 과제가 노동유연화와 근로시간 단축이다. 과소고용의 원인 요소인 경직적 노동시장을 유연하게 바꿔나가야 하고, 근로시간 한도를 단축해 과잉노동을 억제해야 한다. 그런데 이번 근로시간 개편안은 근로시간 유연화에 너무 신경을 쓴 나머지 근로시간 단축이라는 중요한 한 축을 놓쳐 버렸다.

근로시간 개혁은 근로시간 유연화와 근로시간 단축을 하나의 패키지로 이뤄져야 한다. 현실의 필요에 맞게 근로시간은 유연화하되 근로시간은 확실하게 단축하는 방식으로 설계할 필요가 있다. 장기적으로는 법정 근로시간을 더 낮춰야 하고 당장에는 상대적으로 여력이 있는 대기업을 중심으로 근로시간 단축 노력이 이뤄져야 한다.

기업이 수십 년 동안 고수해 온 과소고용·과잉노동 관행을 바꾸게 하려면 그럴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한다. 노동시장 경직성 완화가 그것이다. 연공형 임금체계 개선 및 고용형태의 다양화를 통해 높은 정규직 장벽을 낮춰 기업의 고용 부담과 비용을 줄여줘야 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장벽을 낮추는 일은 한국경제 소득양극화의 핵심 원인을 없애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정규직 장벽을 낮추는 것은 꼭 필요한 노동개혁 과제다.

미래의 노동시장 모습은 지금보다 근로시간은 단축되고 양질의 일자리가 늘어나 있는 것이다. 임금근로 시장에서 양질의 일자리가 늘어나게 되면 비자발적 자영업 시장 유입 압력도 줄어든다. 노동시장의 또 하나의 큰 숙제인 자영업 과잉 해소에도 기여한다.

한국 노동시장이 안고 있는 문제들은 독립적 사안들이 아니라 서로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그래서 노동시장 개혁은 파편적인 대책이 아니라 종합세트가 돼야 성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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