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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이데일리 김형욱 기자 조용석 기자] 정부와 집권 여당이 쌀 목표가격 인상을 최소화하고 밭 직불금을 쌀 직불금 수준으로 끌어올리기로 방침을 정했다. 대농·쌀 농가 중심의 현 직불제 체계를 뜯어고쳐 중소농과 밭 농가에 혜택을 더 줌으로써 20년째 공급 과잉 상태인 쌀의 수급을 조절하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쌀이 다른 밭작물보다 생산 편의성이 월등히 높은데다 쌀 목표가격 인상을 요구하는 야당과 농업계의 반발도 거센 만큼 실제 추진까지는 난항이 예상된다.
당정 “18~22년 쌀 목표가 19만6000원…현실 고려”
이개호 농림축산식품부 장관과 더불어민주당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의원은 8일 국회에서 당정협의를 열고 쌀 목표가격을 산지 80㎏ 기준 19만6000원으로 인상하고 밭 농가에 대한 지원을 늘리는 방식으로 쌀·밭 직불제 통합을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정부는 열악한 농가 소득을 보전한다는 취지에서 고정·변동 직접지불금(직불금)이란 이름의 지원금을 줘 왔다. 특히 전체 농가의 절반 이상(56%)을 차지하는 주식 쌀에 대해선 5년에 한 번 목표가격을 정해 시장 가격이 여기에 못 미칠 땐 부족액의 85%를 정부가 보전해주는 변동직불금을 줘 왔다. 현행법상 올 연말까지 2018~2022년산 쌀의 목표가격을 정해야 한다.
당정이 정한 쌀 목표가 19만6000원은 현재 18만8000원보다 약 4.3% 오른 금액이다. 농식품부가 지난달 30일 제출한 정부안 18만8192원에서 국회 내 법안 통과를 기다리고 있는 물가상승률 반영안을 미리 적용한 것이다. 그러나 농업계의 기대에는 크게 못 미친다.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은 24만원, 한국쌀전업농중앙연합회는 24만5000원을 요구하고 있다. 호남 기반 정당인 민주평화당도 이에 호응하듯 24만5000원을 당론으로 확정했다.
당정의 현실적 고민이 담긴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쌀은 국내 소비의 급격한 감소 탓에 2000년 이후 19년째 남아돌고 있다. 공급이 많다보니 늘 가격 하락 압박과 그에 따른 쌀 농가 붕괴 우려가 이어져 왔다. 공급 과잉을 막고자 매년 쌀을 사서 보관하는 정부의 재정 부담도 크다. 쌀값이 폭락한 지난해 쌀 관련 예산은 쌀 매입(7677억원)과 공공비축(2532억원)을 포함해 2조5000억원을 넘어서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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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쌀 변동직불제 역시 세계무역기구(WTO) 농업보조총액 상한에 따라 최대 1조4900억원으로 묶여 있다. 목표가격을 24만원까지 올린다고 해도 정부의 지원에는 한계가 있다. 실제 쌀값이 12만원대까지 폭락했던 지난해는 줘야 할 변동직불금 지원 한도액을 넘어 77억원을 지급하지 못했었다.
민주당 농해수위 간사인 박완주 의원은 쌀 목표가격 발표 후 “(쌀 직불금이 너무 높으면) 과잉생산 등 문제가 있고 정부의 지원에도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당정은 이 대신 2020년 시행을 목표로 직불제를 개편하기로 했다. 쌀 과잉 문제를 풀면서 전체 농가 소득은 보전한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밭 고정직불금을 쌀 수준까지 올리기로 했다. 현행 쌀 고정직불금은 1㏊(헥타르)당 100만원으로 밭은 50만원으로 두 배 차이가 난다. 당정은 이 과정에서 대농과 중소농 간 형평성과 친환경성도 함께 고려키로 했다.
실제 현재 쌀 직불금은 대농 중심, 쌀 중심이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지난해 전체 농가 중 쌀 농가의 비중은 56%였지만 전체 직불금의 81%를 받았다. 또 쌀 재배면적 상위 6.7%의 농가가 쌀 직불금의 38.3%를 받는 반면 72.3%의 중소농은 28.8%를 수령하는 데 그쳤다. 박 의원은 “모든 작물 재배 농가가 같은 금액을 받을 수 있도록 할 것”이라며 “이 과정에서 재배 규모가 아무리 작더라도 일정 금액을 지급하고 대농에는 역진적인 단가를 적용해 소득재분배 기능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야당·농업계 거센 반발…생산편의성 등 현장 변수도
이 계획이 성공하기까진 많은 산을 넘어야 한다. 당장 농가의 반발과 이를 업은 야당의 반대 속에서 국회 내 쌀 목표가격 변경안과 직불제 개편안을 통과시켜야 한다.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한농연)는 이미 오는 13일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본점 앞에서 5000명 규모 총궐기대회를 예고했다. 특히 정부가 이달 초 물가를 잡겠다고 비축 중인 쌀 5만t을 방출키로 한 데 대해 분노하고 있다. 한 공기(100g)에 원가 300원도 안 하는 쌀에 물가 상승의 책임을 오롯이 지웠다는 것이다. 쌀 목표가격 확정을 앞두고 의도적으로 쌀값을 내리려 한다는 의혹도 제기하고 있다.
정치권도 이에 호응하고 나섰다. 국회 농해수위원장인 황주홍 의원과 김종회 의원(이상 민주평화당)은 비축미 방출 계획 철회와 목표가격 24만5000원 확정을 요구하며 대 정부 비판 수위를 높이고 있다. 바른미래당과 자유한국당도 상황은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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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정의 계획대로 되더라도 쌀 과잉생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장담할 순 없다는 것도 문제다. 농가들이 쌀 생산을 고수하는 게 정부 지원 때문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벼농사가 가장 편하다. 2016년 기준 벼농사의 기계화율은 97.9%로 밭작물의 58.3%를 압도한다. 판매망도 안정적이다. 안그래도 고령화와 인력 부족 문제로 고심하는 농가에서 쌀 대신 다른 작물을 키워 판매하는 건 현실적으로 만만치 않다. 밭작물 재배 자동화율을 끌어올리고 안정적인 판로 마련을 병행하지 않는 한 쌀 과잉생산은 줄지 않고 농가의 어려움만 가중될 수 있는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쌀 이외 농가에 대한 지원을 쌀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동시에 밭 작물 재배 자동화 기술 개발과 판로 확보 노력도 계속 이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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