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덕현의 끄덕끄덕]예능이 조명한 지역소멸, 정부가 응답할 차례

  • 등록 2022-11-17 오전 6:15:00

    수정 2022-11-17 오전 6:15:00

[정덕현 문화평론가] 예능 프로그램은 본래 지역과 동거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도 유튜브 짤방으로 돌아다니는 SBS <서세원의 좋은 세상 만들기>는 1998년부터 2000년까지 방영됐는데 시골 마을을 찾아 그곳에 사는 어르신들과 즉석에서 나누는 포복절도의 대화로 큰 인기를 끈 바 있다. 2007년 시작해 지금껏 방영되고 있는 KBS <1박2일>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다소 게임 예능화된 느낌이 없잖아 있지만, 그래도 공영방송이 갖고 있는 소외 지역에 대한 홍보와 배려가 항상 그 밑바탕에는 깔려 있다. SBS <패밀리가 떴다>는 지방의 외딴 집을 찾아가 마치 MT를 하는 듯한 콘셉트로 화제가 됐었고, 나영석 사단이 만들어온 <삼시세끼> 시리즈나 최근 유호진 PD가 만들어 인기를 끌었던 <어쩌다 사장> 역시 모두 지역을 배경으로 펼쳐진 예능 프로그램들이었다. 이들 프로그램들은 대부분 여행 콘셉트에 지역 특유의 정감을 더하는 방식으로 즐거움을 주는 예능 프로그램들이었지만, 거기에는 자연스럽게 갈수록 소외되고 고립되며 나아가 소멸 위기에 몰려 있는 지역의 현실들이 포착되곤 했다.

그래서일까. 최근 새로 시작한 KBS <세컨 하우스>는 요즘 도시인들의 로망으로 자리한 시골집 살기를 소재로 가져왔지만, 동시에 빈집이 많아지고 있는 지역이 마주한 현실이 보다 적나라하게 담겼다. 갑작스레 요양원으로 가게 돼 그 때 이후로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폐가는 물론이고, 한 때는 삼대가 단란하게 살았지만 떠나고 나서 온기가 사라진 을씨년스러운 폐가가 그것이다. 또 사람이 떠난 집에 말벌들이 여기저기 집을 짓고 있는 충격적인 광경이나, 빈집에 외지인들이 들어와 범죄에 악용하기도 하는 현실까지 <세컨 하우스>에 담겼다. 기존 예능들이 보여줬던 시골집이 막연한 판타지를 자극하는 공간이었다면, <세컨 하우스>는 거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가 소멸 위기를 맞아 점점 비어가는 지역의 현실이 더해졌다. 어찌 보면 도시인들의 세컨 하우스가 지역과 이뤄낼 수 있는 상생 지점을 모색한다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진가로 보인다.

이러한 시도는 2019년 MBN <자연스럽게>에서도 시도한 바 있다. <1박2일>을 연출한 경험이 있는 유일용 PD가 연출한 이 예능 프로그램은 전라남도 구례군 현천마을을 배경으로 연예인들이 그 곳의 빈집을 리모델링하며 그 시골에 정착해가는 과정을 담았다. 전인화, 김종민, 허재, 조병규 같은 이들이 집을 짓고 그 곳 이웃들과 함께 살아가는 푸근한 이야기로 시작했지만 뒤로 갈수록 재미를 찾기 위한 예능 색깔이 짙어지면서 생각만큼 시청자들의 관심을 받지는 못했다. 다만 당시에도 지역 소멸에 대한 위기감은 이미 있었고, 그래서 방송이 이를 예능 방식으로라도 담아내는 것에 대해 지역은 늘 환영하는 입장이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은 이러한 위기감이 어느 정도 해소됐을까?

앞서 언급한 <세컨 하우스> 같은 프로그램이 기획돼 방송되고 있다는 사실은 이 위기감이 그때보다 더 커지고 있다는 걸 말해준다. 실제로 전국에 방치된 빈집은 2022년 기준으로 공식 집계된 것만 139만 5256채에 이른다고 한다. 더 심각한 건 과거 ‘지방소멸’로 불리던 것이 이제 ‘지역소멸’로까지 번져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산업연구원의 발표자료에 의하면 전국 228개 시, 군, 구의 인구변화를 조사한 결과 소멸위기 지역은 총 59곳으로 나타났는데 이 지역에는 지방이 아닌 수도권, 부산, 울산 일부도 포함돼 있다는 것이다. 혹자는 출생률 저조가 그 이유가 아닐까 생각할 테지만, 연구원 자료에 의하면 ‘일자리에 따른 인구 유출’이 가장 큰 지역 소멸의 원인으로 지목됐다. 한 마디로 지역에서는 먹고 사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그 곳을 떠난다는 이야기다.

최근 유튜브를 통해 백종원은 지역 살리기의 일환으로 ‘님아, 그 시장을 가오’라는 프로그램을 하고 있다. <백종원의 골목식당>에서도 종영 직전에 제주도 금악마을을 배경으로 지역 살리기를 시도했던 그 경험을 살려, 이제 자신의 개인방송으로 이를 시도하려 하는 것이다. ‘님아, 그 시장을 가오’는 그래서 지역의 다소 쓸쓸해 보이는 시장이나 지역 소멸과 함께 언제 사라질지 알 수 없는 노포들을 찾아간다. 어딘가 지역 시장과 노포의 정이 가득 담긴 방송을 보다보면 이런 곳이 인구 유출로 인해 사라진다는 게 너무나 아깝고 안타깝게 느껴진다. 물론 시장 활성화나 그걸 위해 사람들이 찾아오는 맛집 몇 개를 만든다고 지역 소멸을 막을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방송이 전해주는 따듯함과 안타까움은 분명 지역에 대한 애정을 불러일으키기에 부족함이 없을 게다.

그런데 예능 프로그램들이 이토록 관심을 갖고 있고, 또 그 곳의 따듯한 정과 마음까지 힐링시키는 아름다운 자연 경관을 소개하고 있지만 현실은 어째서 갈수록 나빠지고만 있는 걸까. 방송은 확실히 지역이 도시보다 촬영 여건에 있어 훨씬 좋을 수밖에 없다. 도시는 뭘 하려고 해도 비용도 많이 들고, 또 인구가 너무 쏠려 있어 촬영 하는 것 자체가 힘들지만 지역은 제작비가 상대적으로 적게 들면서도 촬영 또한 용이하다. 게다가 소외된 지역을 조명한다는 공익적인 취지까지 얹어지기 마련이다. 도시에서 방송이 어떤 음식점을 소개하면 ‘홍보 방송’이라는 비판을 받지만, 시골 지역의 음식점을 알려주면 ‘지역 활성화’가 된다. 방송이 지역을 선호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하지만 이토록 방송도 대중들도 관심을 갖고 있는 지역 소멸 문제에 대해 정부는 어떤 청사진을 갖고 있는지가 궁금하다. 아니 여기에 대한 현실적인 대안은 있는지 모르겠다. 전국의 골목상권을 살리겠다고 나선 백종원이 이제 지역 경제 살리기에 나서는 이 광경은 그 자체로 의미 있는 행보이긴 하지만, 그래서 씁쓸함도 남는다. 이것이 백종원 같은 개인이 할 일인가. 지역 소멸을 막기 위한 보다 과감한 정책들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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