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법이 쏘아올린 공…의료개혁 동력 삼아야

[전문가와 함께 쓰는 스페셜리포트]
김윤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과 교수
간호법 벼랑끝 대치에 국민 어리둥정
의료인간 업무범위 중복 ‘합리적 허용’
  • 등록 2023-05-25 오전 6:00:00

    수정 2023-05-25 오전 6:00:00

김윤 서울대 의대 교수
[김윤 서울대 의대 교수·의료관리학] 국민들은 어리둥절하다. 별다른 내용이 없는 간호법을 놓고 의료인들이 벼랑 끝 대치를 이어가고 있으니 말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간호법을 둘러싼 갈등의 진짜 원인은 간호법의 내용이 아니라 ‘간호법’이라는 이름을 가진 법이 제정된다는 것 자체에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의료행위를 독점해 온 의사들은 견고한 기득권의 아성에 균열에 생기지 않게 애초에 싹을 자르려 한다. 응급구조사를 포함한 다른 직종들은 간호사들이 앞으로 간호법을 고쳐서 자신들의 업무 영역을 침범할까 우려한다.

국민들은 간호법 갈등을 자신들과 의료인들 간의 밥그릇 싸움으로 치부해도 상관없는 것일까? 아니다. 간호법에는 별다른 내용이 없지만, 간호법 갈등으로 드러난 우리나라 의료체계의 고질병은 우리의 미래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10년 후엔 우리나라 인구 3명 중 1명에 달하는 1500만명이 노인이 된다. 거동이 불편해 병원에 다니기 어려운 노인을 위해 의사, 간호사, 물리치료사, 작업치료사의 방문진료가 없으면 노인은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지금도 요양원과 요양병원에 입원한 노인의 절반 이상은 적절한 돌봄과 방문진료가 있었다면 집에서 살 수 있는 노인들이다.

간호법을 둘러싸고 갈등의 골이 더욱 깊어진 채로 방치하면 거동이 불편한 노인은 방문진료를 제대로 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지금처럼 의사가 의료행위를 대부분 독점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의사는 부족해 왕진을 못받고, 받으려면 비싼 진료비를 내야 한다. 간호사와 물리치료사, 작업치료사가 모두 배타적으로 자기 업무 영역을 배타적으로 주장하면 간단한 물리치료를 위해서도 반드시 물리치료를 불러야 한다. 돈은 돈대로 들이고도 제대로 진료를 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병원도 마찬가지다. 의료인들이 자기 업무 영역을 배타적으로 고수하는 현재 방식이 계속되면 환자들이 제대로 된 의료를 받지 못하거나 의료비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치솟을 가능성이 높다. 우리나라 병원에는 의사 대신 수술을 보조하고 병동에서 환자를 돌보는 PA 간호사의 수가 1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미국과 여러 유럽 국가들은 의사가 하던 진료의 일부를 대신하는 PA 간호사와 같은 새로운 인력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미국은 이들 인력의 의사 업무의 약 15%를 대체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PA 간호사를 제도화하는 대신 의사를 늘려서 해결하면 의사를 2만명 더 늘려야 하고 PA 간호사와 의사 월급 차이로 인해 국민은 연간 약 5조원을 추가로 부담해야 한다. 미국 연구에 따르면 PA 간호사를 제도화하면 의료비를 줄일 수 있을 뿐 아니라 의료의 질도 좋아진다고 한다.

간호법이 쏘아올린 의료개혁의 작은 공을 살려야 한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이 집에서 방문진료를 받을 수 있고, 병원에서 환자들이 질 좋은 의료를 큰 부담 없이 받을 수 있도록 의료인의 업무 범위를 정하는 법과 제도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먼저 보건의료인력지원법을 고쳐 모든 의료인이 주도적으로 자기 직역의 업무 범위를 구체적으로 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자기 직역에만 유리한 결정을 하지 않도록 국민과 전문가 함께 위원회에 참여시키고, 상위에 업무 범위를 조정하는 위원회를 두면 된다.

국민이 더 좋은 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진료환경에 따라 의료인 간 업무 범위의 중복을 합리적으로 허용해야 한다. 간호사가 의사 처방이 없어도 간호사가 혈압·혈당 정도는 잴 수 있어야 한다. 응급구조사는 병원 밖에서 하는 업무를 응급실에서도 할 수 있어야 하고, 임상병리사는 감염관리에서 전문성을 법적으로 인정받아야 하고, 방사선사를 포함한 여러 의료인력이 자격을 갖추면 의료인은 초음파 검사도 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지금처럼 배타적으로 업무 영역을 나누는 방식은 의료인에게도 환자에게도 모두 손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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