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일구양설(一口兩舌) 마술피리

'욕망으로부터의 자유' 저자
  • 등록 2022-01-21 오전 5:00:00

    수정 2022-01-21 오전 5:00:00

[신세철 경제칼럼니스트]조선 후기 당쟁사화가 거듭되는 난장판 시대에 위선과 궤변의 폐해를 묘사한 “말로서 말 많으니 말 말을까 하노라”는 구전시조는 오늘날 풍경을 묘사했다는 느낌이 든다. 임기응변에 능한 저명인사들이 말과 행동을 그때그때 바꿔가며 자랑과 변명, 아부와 욕설을 늘어놓으니 옳고 그름을 가늠하기 어렵다. 덮어놓고 박수치는 패거리와 막무가내 욕하는 무리 사이에서 제 자신도 모르게 한입으로 두말하기 쉽다. 한 입에 혀가 두 개 붙어서 때와 장소, 사람에 따라 말을 바꾼다는 일구양설(一口兩舌)은 듣는 이들을 피곤하게 하면서 결국 스스로 함정을 파는 짓이다. 세상살이 어떠한 원칙도 도덕성도 없이 말만 번드레한 데 어찌 감히 미래를 약속할 수 있겠는가?

정의와 불의, 선과 악, 미와 추, 존경과 경멸의 개념이 사람에 따라 수시로 뒤바뀌다보니 말이 참과 거짓을 구분하기 보다는 오히려 혼동하게 만드는 마술피리가 되어가고 있지 않은가? 자신이 한 말은 자신이 책임지려 들지 않고 상황에 따라 궤변을 늘어놓다보면 표리부동한 인간이 되어 결국에는 설자리가 없어지게 된다. 사람들의 비위를 그때마다 맞추려들면 급기야 모든 사람들을 배신하는 꼴이 될 수밖에 없다. 지도층의 일탈행위는 그 해악이 사회곳곳으로 번지므로 엄중하게 대처해야 하는데 어찌된 셈인지 수시로 말을 바꾸고 헛소리를 해도 흐지부지 넘어가버리는 사회가 되었다. 그러다보니 유력인사, 저명인사들을 존경하기는커녕 오히려 우습게 여기는 막장사회가 진행되고 있다는 느낌까지 든다.

귀담아 들을 소리를 찾아내기 쉽지 않은 말의 홍수로 말미암아 머릿속이 혼란스러울 때가 상당하다. 허황된 소리가 허공을 맴돌다보니 판단력을 무뎌지게 만들어 무엇이 옳고 그른지 혼동하게 만들기도 한다. 쉬운 예로 ‘증거보전과 증거인멸’의 차이를 같은 빛깔로 색칠하려는 모양새는 사람들을 색맹으로 여기는 것일까? 아니면 눈뜬 봉사로 보는 겔까? 물론 입에 발린 말을 진실인지 아닌지를 분별하는 일은 듣는 어리석은(?) 시민들에게도 의무와 책임이 크다.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고, 말하는 사람은 알지 못한다(知者不言言者不知. 노자, 도덕경 56장)며 함부로 아는 척하지 말라 하였다. 얼토당토하지 않은 논리로 세상을 조롱하려드는 인사들에 대한 경종이었다.

세상이 혼란스러울수록 말 재주 가득한 인사들이 세상을 호령하는 듯하지만, 조금 멀리 보면 말이 씨가 되어 언젠가는 그 자신을 옭아매는 굴레로 변하기 마련이다. 제 아무리 말재간이 뛰어나더라도 진실을 아주 감추거나 끝까지 이기지 못하기 때문이렷다. 서로 속고 속이는 약육강식 전국시대 말기에 한비자는 “교모 하더라도 속임수는 어눌한 진실함을 당하지 못한다.(巧詐不如拙誠, 교사불여졸성)”고 하였다. 더구나 오늘날처럼 정보의 전파가 빠르고 결국에는 진실이 죄다 알려질 수밖에 없는 시대에는 세상을 어지럽히려드는 혹세무민에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어이하여 깨닫지 못할까? 지도층 인사들일수록 남의 책임은 서릿발처럼 엄하게 다루고 제 잘못은 봄바람에 살그머니 날려버리려는 망국풍조 때문 아닐까?

부끄러운 행실과 더러운 이름은 절대 남에게 전가하지 말고, 작더라도 허물은 자신에게 돌려야 빛과 덕을 쌓을 수 있다.(辱行汚名 不宜全推, 引些歸己 可以韜光陽德. 채근담 제1부)고 하였다. 능수능란한 말재주보다는 더듬더라도 말을 꾸미지 않으려는 친구를 사귀라는 뜻이 아니겠는가? 한마디 말이 천금보다 무겁다는 ‘남아일언중천금’은 자화자찬, 호언장담하지 않고 해야 할 말은 하되, 일단 한 말은 어떤 일이 있어도 지켜야 비로소 사람다운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뜻일 터이다. 일구양설이 판치는 이 얼떨떨한 시대에 성경 한 구절을 되새겨 본다. “너희는 말할 때에 ‘예’할 것은 ‘예’하고, ‘아니요’할 것은 ‘아니요.’라고만 하여라. 그 이상은 악에서 나오는 것이다”(마태복음 5장 37) 악이 쌓이면 어떻게 될지 아무도 미리 알 수 없는 일이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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