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 역사를 바꾼 벤투의 '뚝심' 리더십

  • 등록 2022-12-07 오전 12:00:00

    수정 2022-12-07 오전 12:00:00

6일(한국시간) 카타르 도하 974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카타르 월드컵 16강전 대한민국과 브라질의 경기. 대표팀 파울루 벤투 감독이 경기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도하(카타르)=이데일리 스타in 이석무 기자] 파울루 벤투(53·포르투갈) 감독의 ‘뚝심’이 옳았다. 그가 고집스럽게 지켰던 원칙은 이번 한국 축구대표님의 가장 큰 무기이자 자산이었다. 결국 뚝심있게 4년여를 준비한 벤투는 한국 축구를 12년 만에 월드컵 원정 16강으로 이끌었다.

‘고집불통 감독’ 모든 선택과 결정은 내가 한다.

‘고집불통’. 벤투 감독을 가장 잘 표현하는 단어다. 그는 지독할 정도로 자신의 스타일을 고수했다. 언론·팬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든 신경 쓰지 않았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대로 밀어붙였다.

황인범(26·올림피아코스)과 이강인(21·마요르카)이 좋은 예다. 벤투 감독은 부임 당시 무명이던 황인범을 발탁했다. 국가대표 경험은커녕 K리그 2부리그에서 뛰고 있었다. 그나마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것이 눈에 띄는 경력이었다.

황인범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불안한 모습을 노출했고, 실수도 잦았다. ‘저 선수를 왜 쓰느냐’, ‘무슨 인맥이 있느냐’ 등 온갖 비난이 쏟아졌지만, 벤투 감독은 뚝심있게 황인범을 중용했다. 감독의 전폭적인 지지 속에 황인범은 무럭무럭 성장했다.

이후 황인범의 잠재력은 폭발했다. 미국 MLS와 러시아 리그를 거쳐 유럽 명문클럽인 올림피아코스에서 활약하기에 이르렀다. 벤투의 믿음이 없었다면 지금의 황인범도 없었다.

이강인 기용에서도 벤투 감독의 스타일은 잘 드러난다. 팬들과 언론은 ‘이강인을 계속 기용하라’고 요구했지만 벤투는 외면했다. 그는 선수를 위해 전술을 바꾸지 않았다. 대신 철저히 전술에 선수를 맞췄다. 자신의 원칙 안에 들어오지 못한 선수는 절대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가 보기에 이강인은 자신의 축구를 소화할 만한 활동량이나 압박 능력이 부족했다. 결국 이강인 스스로가 바뀌었다. 더 많이 뛰고, 더 적극적으로 수비에 가담했다. 체격이 작음에도 몸싸움을 피하지 않았다. 벤투 감독이 원하는 모습이었다. 이강인은 월드컵 최종명단에 포함됐고, 조별리그 3경기와 16강전에 모두 중용됐다.

1-4로 패해 8강 진출에 실패한 한국 대표팀의 파울루 벤투 감독이 백승호, 조규성 등 선수들을 격려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 ‘한국은 월드컵에서 왜 수비만 해?’ 고정관념 깼다


한국 국가대표팀 사령탑은 ‘독이 든 성배’였다. 1948년 런던 올림픽을 앞두고 축구 대표팀이 구성된 이후 무려 80번이나 감독이 바뀌었다. 1년에 한명 이상 감독을 바꾼 셈이다.

벤투 감독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도 그랬다. 그전까지 한국 축구 역사상 4년 넘게 대표팀을 이끈 감독은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벤투 감독은 ‘감독의 무덤’에서 살아남았다. 직전 월드컵 이후 팀을 맡아 4년을 버텨내고 다음 월드컵 본선까지 책임진 최초 감독이 됐다.

그는 한국 축구의 근본을 바꿔 놓았다. 이전까지 한국 축구는 기술보다 체력과 정신력을 강조했다. 수비에 치중하면서 롱패스를 이용해 역습하는 게 주된 전술이었다. 피지컬에서 앞선 아시아 무대에선 그런 축구가 통했다. 세계 무대에서는 어림도 없었다. 강팀과 만날 때마다 90분 내내 수세에 몰리고 대량실점을 하며 고전했다.

벤투는 달랐다. 선수들에게 물러서는 대신 부딪히라고 주문했다. 강한 몸싸움을 바탕으로 압박하도록 했다. 공격은 빠르고 간결한 패스 플레이를 강조했다. 최대한 미드필드를 장악하고 공의 점유율을 늘리는 전술을 구사했다. 선수들은 이를 위해 더 많이 뛰어야 했다. 좌우 풀백은 마치 공격수처럼 과감하게 앞으로 올라왔다. 지난 4년간 대표팀을 설명하는 한 단어, 바로 ‘빌드업 축구’였다.

각 포지션의 핵심 선수들도 자기 입맛에 맞췄다. 그리고 이들에게 자신의 축구 철학을 주입했다. 처음에는 혼란스러워했지만, 선수들은 점점 벤투 축구에 익숙해져 갔다. 벤투 감독 부임 후 줄곧 주장 완장을 찼던 손흥민(30·토트넘)은 브라질과 16강전을 마친 뒤 “감독님의 축구에 대해 한 번도 의심을 한 적이 없다”고 신뢰를 숨기지 않았다. 대표팀 주전 수비수인 김민재(26·나폴리)도 “일관성 있게 팀을 이끌기 때문에 매번 소집돼도 어제 함께 했던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할 정도였다.

우여곡절도 많았다. 빌드업 축구가 대표팀에 뿌리내리기 전까지 대표팀은 경기력 논란에 시달렸다. 같은 전술을 반복하고 매번 비슷한 베스트11을 고집하자 ‘전술이 단조롭고 플랜B가 없다’는 비판 여론이 나왔다. 2021년 3월 열린 한일전에서 0-3으로 패했을 때나 월드컵 개막을 불과 5개월 앞둔 지난 6월 브라질과 평가전에서 1-5로 졌을 때 경질론이 불거지기도 했다.

하지만 벤투 감독은 본무대인 월드컵을 통해 자신이 옳았음을 증명했다. 포르투갈, 우루과이, 가나 등 축구 강국과 맞서 밀리지 않는 경기를 펼쳤다. 우리가 4년간 준비해온 축구로 당당히 싸웠고 16강이라는 성과를 일궈냈다.

이제 한국 축구는 또 다른 도전에 직면했다. 이번 월드컵을 끝으로 벤투 감독과 작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벤투의 시스템과 지도 방식은 우리 축구에 중요한 자산으로 남았다. 그 자산을 더 연구하고 발전시키는 것이 한국 축구가 더 높은 단계로 도약하기 위해 풀어야 할 숙제다.

이데일리
추천 뉴스by Taboola

당신을 위한
맞춤 뉴스by Dable

소셜 댓글

많이 본 뉴스

바이오 투자 길라잡이 팜이데일리

왼쪽 오른쪽

스무살의 설레임 스냅타임

왼쪽 오른쪽

재미에 지식을 더하다 영상+

왼쪽 오른쪽

두근두근 핫포토

  • 홈런 신기록 달성
  • 꼼짝 마
  • 돌발 상황
  • 우승의 짜릿함
왼쪽 오른쪽

04517 서울시 중구 통일로 92 케이지타워 18F, 19F 이데일리

대표전화 02-3772-0114 I 이메일 webmaster@edaily.co.krI 사업자번호 107-81-75795

등록번호 서울 아 00090 I 등록일자 2005.10.25 I 회장 곽재선 I 발행·편집인 이익원

ⓒ 이데일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