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생활부

김영환

기자

그해 오늘

  • 도토리 줍다 ‘개구리 소년’ 유골 발견…유족 “재수사하라”[그해 오늘]
    [이데일리 강소영 기자] 2002년 9월 26일, 대구 달서구 와룡산 중턱에서 도토리를 줍던 한 시민에 의해 아이들의 유골이 발견됐다. 이 유골은 미제 사건으로 남은 ‘개구리 소년들’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사진=SNS 캡처)‘개구리 소년 사건’으로 불리는 미제 사건은 다섯 명의 학생이 함께 실종된 사건으로, 도롱뇽 알을 주우러 간다고 했던 이들이 개구리를 잡으러 간다고 알려져 ‘개구리 소년 사건’으로 불리게 됐다. 5명의 아이들이 같은 날 동시에 실종된 이 사건은 여러 방송이 나서 심층적으로 다루면서 전국민적인 관심을 받게 됐지만 범인에 대한 흔적은 여전히 찾을 수 없었다. 당시 경찰과 군인 등 35만 명의 인원이 투입되는 등 대대적인 수사를 펼쳤지만 뚜렷한 성과 없이 미제 사건으로 묻히는 듯했다. 그러나 산 중턱에서 묻히지 않은 아이들의 유골의 발견되면서 경찰의 초동 수사 미흡 등에 대한 지적이 일었다.개구리 소년 사건과 관련해 경찰이 비난을 받은 이유 중 하나는 아이들의 유골을 발굴했을 당시 유골을 분석할 법의학자의 도움 없이 성급히 작업을 진행해 현장을 훼손하는 등 중요한 정보를 놓쳤다는 지적이 일었기 때문이다.경찰은 유골들이 한데 엉켜 있었고 현장에 구덩이의 흔적이 없던 점으로 미루어 보아 아이들이 추운 날씨에 길을 잃고 헤매다 체온이 떨어져 숨졌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유골 감식을 맡은 경북대 법의학팀은 두개골 손상 흔적 등을 근거로 아이들이 타살됐다고 밝혔다. 당시 중요한 증언도 나왔으나 경찰이 이를 묵살한 정황도 밝혀졌다.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캡처)사건 당일인 1991년 3월 26일 서구 중리동에 있던 가축 도살장 인근 버스 정류장에서 아이들이 버스를 타는 걸 목격했다는 제보와 함께 당시 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A군의 결정적인 증언도 있었다. A군에 따르면 와룡산 바로 밑 군인 아파트에서 살고 있던 A군은 이날 다른 무리의 동네 형들과 함께 도롱뇽알을 찾으러 와룡산 계곡에 갔다가 형들과 떨어져 혼자 와룡산 중턱에 있는 무덤가 근처까지 올라갔고 그때 “산 위쪽에서 10초 간격으로 날카롭고 다급한 비명소리를 들었다”고 밝혔다. A군은 성인이 된 후 “두 번 다시 듣고 싶지 않은 끔찍한 소리였다”고 밝히기도 했다. 유족들은 경찰의 초동 수사 미흡과 부실 수사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지난 3월 27일 대구 달서구 와룡산 선원공원 개구리 소년 추모 및 어린이안전 기원비 앞에서 열린 개구리소년 32주기 추도식에서 유족 대표 고(故) 우철원군 아버지인 우종우씨는 추모사를 통해 경찰의 부실 수사 의혹을 언급하며 “‘예리한 흉기에 의한 타살로 추정된다’는 전문가의 판단도 있었다. 반드시 정부나 국회 차원의 개구리소년 사건 진상규명위원회 설치를 통해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이날 참석한 나주봉 전국 미아·실종 가족찾기 시민의 모임(이하 전미찾모) 회장은 “경찰이 계속해서 무언가를 감추려고 하고 있다. 전(前) 경북대 법의학과 채종민 교수와 미국에 보냈던 사인규명 의뢰서 원본 파일을 정보공개 청구했지만, 계속해서 거부하고 있다”며 “숨기는 것이 없다면 모든 것을 공개적으로 밝히고 원점으로 돌아가 재수사 해야한다”고 주장했다.2006년 공소시효가 만료된 이 사건은 2019년부터 대구경찰청 장기미제사건 수사팀이 재수사를 시작해 들여다보고 있으나 녹록치 않은 상황이다. 이미 시간이 오래 지났기에 용의자를 특정할 단서가 없을 뿐 아니라 제보에 의존해 수사를 진행할 수밖에 없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으로, 아직도 사인은 미궁에 빠진 채 미제로 남아 있다.
    강소영 기자 2023.09.26
    [이데일리 강소영 기자] 2002년 9월 26일, 대구 달서구 와룡산 중턱에서 도토리를 줍던 한 시민에 의해 아이들의 유골이 발견됐다. 이 유골은 미제 사건으로 남은 ‘개구리 소년들’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사진=SNS 캡처)‘개구리 소년 사건’으로 불리는 미제 사건은 다섯 명의 학생이 함께 실종된 사건으로, 도롱뇽 알을 주우러 간다고 했던 이들이 개구리를 잡으러 간다고 알려져 ‘개구리 소년 사건’으로 불리게 됐다. 5명의 아이들이 같은 날 동시에 실종된 이 사건은 여러 방송이 나서 심층적으로 다루면서 전국민적인 관심을 받게 됐지만 범인에 대한 흔적은 여전히 찾을 수 없었다. 당시 경찰과 군인 등 35만 명의 인원이 투입되는 등 대대적인 수사를 펼쳤지만 뚜렷한 성과 없이 미제 사건으로 묻히는 듯했다. 그러나 산 중턱에서 묻히지 않은 아이들의 유골의 발견되면서 경찰의 초동 수사 미흡 등에 대한 지적이 일었다.개구리 소년 사건과 관련해 경찰이 비난을 받은 이유 중 하나는 아이들의 유골을 발굴했을 당시 유골을 분석할 법의학자의 도움 없이 성급히 작업을 진행해 현장을 훼손하는 등 중요한 정보를 놓쳤다는 지적이 일었기 때문이다.경찰은 유골들이 한데 엉켜 있었고 현장에 구덩이의 흔적이 없던 점으로 미루어 보아 아이들이 추운 날씨에 길을 잃고 헤매다 체온이 떨어져 숨졌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유골 감식을 맡은 경북대 법의학팀은 두개골 손상 흔적 등을 근거로 아이들이 타살됐다고 밝혔다. 당시 중요한 증언도 나왔으나 경찰이 이를 묵살한 정황도 밝혀졌다.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캡처)사건 당일인 1991년 3월 26일 서구 중리동에 있던 가축 도살장 인근 버스 정류장에서 아이들이 버스를 타는 걸 목격했다는 제보와 함께 당시 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A군의 결정적인 증언도 있었다. A군에 따르면 와룡산 바로 밑 군인 아파트에서 살고 있던 A군은 이날 다른 무리의 동네 형들과 함께 도롱뇽알을 찾으러 와룡산 계곡에 갔다가 형들과 떨어져 혼자 와룡산 중턱에 있는 무덤가 근처까지 올라갔고 그때 “산 위쪽에서 10초 간격으로 날카롭고 다급한 비명소리를 들었다”고 밝혔다. A군은 성인이 된 후 “두 번 다시 듣고 싶지 않은 끔찍한 소리였다”고 밝히기도 했다. 유족들은 경찰의 초동 수사 미흡과 부실 수사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지난 3월 27일 대구 달서구 와룡산 선원공원 개구리 소년 추모 및 어린이안전 기원비 앞에서 열린 개구리소년 32주기 추도식에서 유족 대표 고(故) 우철원군 아버지인 우종우씨는 추모사를 통해 경찰의 부실 수사 의혹을 언급하며 “‘예리한 흉기에 의한 타살로 추정된다’는 전문가의 판단도 있었다. 반드시 정부나 국회 차원의 개구리소년 사건 진상규명위원회 설치를 통해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이날 참석한 나주봉 전국 미아·실종 가족찾기 시민의 모임(이하 전미찾모) 회장은 “경찰이 계속해서 무언가를 감추려고 하고 있다. 전(前) 경북대 법의학과 채종민 교수와 미국에 보냈던 사인규명 의뢰서 원본 파일을 정보공개 청구했지만, 계속해서 거부하고 있다”며 “숨기는 것이 없다면 모든 것을 공개적으로 밝히고 원점으로 돌아가 재수사 해야한다”고 주장했다.2006년 공소시효가 만료된 이 사건은 2019년부터 대구경찰청 장기미제사건 수사팀이 재수사를 시작해 들여다보고 있으나 녹록치 않은 상황이다. 이미 시간이 오래 지났기에 용의자를 특정할 단서가 없을 뿐 아니라 제보에 의존해 수사를 진행할 수밖에 없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으로, 아직도 사인은 미궁에 빠진 채 미제로 남아 있다.
  • 필리핀서 암살자 고용…한국인 살해한 40대[그해 오늘]
    [이데일리 김민정 기자] 2017년 9월 25일, ‘필리핀 한국인 관광객 청부살인 사건’의 한국인 의뢰인이 4년에 걸친 경찰의 끈질긴 수사 끝에 구속됐다.서울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필리핀 청부 살인업자에게 돈을 주고 사업가 허모(당시 63세) 씨를 살해하도록 한 혐의(살인교사)로 신모(40) 씨를 구속했다.(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빚 때문에”…필리핀 청부업자에 살해 의뢰신씨와 허씨의 인연은 2012년 9월께 시작됐다. 신씨는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된 허씨에게 필리핀 수빅의 카지노 에이전시 사업비 명목으로 5억원을 빌렸지만 도박으로 탕진했다. 신씨는 필리핀에서 도박자들에게 환전을 해주고 수수료를 챙기는 업무를 주로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이후 신씨는 빚을 갚지 못하게 되자 허씨를 살해하기로 결심하고 2014년 2월 10일 필리핀 청부업자인 A씨에게 강도로 위장해 허씨를 죽여달라고 청부했다. 대가로는 30만 페소(한화 약 750만원)를 제시했다.신씨의 부탁을 받은 A씨는 암살자 B씨와 오토바이 운전사 C씨를 고용했고, 같은 달 18일 신씨는 살인을 위해 허씨를 필리핀으로 초청해 저녁 식사를 대접하는 등 환심을 샀다.같은 날 오후 7시 45분(이하 현지시간) 허씨는 필리핀 앙헬레스의 한 호텔 인근 도로에서 일행 3명과 함께 있다가 오토바이를 탄 괴한에게 총격을 받고 숨졌다.(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결백 주장한 피의자..끈질긴 수사에 결국 범행 자백수사 초기 허씨 일행으로부터 신씨가 허씨에게 거액의 빚을 진 점 등을 확인한 경찰은 신씨가 살인을 청부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수사를 벌였다. 그러나 현지 경찰이 A씨 일당을 검거하지 못하고 결정적인 증거도 나오지 않아 애를 먹었다.경찰은 국제범죄수사대 소속 경찰관을 4차례 현지로 보내 경찰조사를 벌였고, 필리핀 한인 사건 전담 경찰관인 ‘코리아데스크’도 현지 한인사회를 대상으로 지속적인 탐문조사를 했다.이 과정에서 확보한 신씨의 통역사 겸 운전기사인 필리핀인 E씨와 총기대여업자 F씨의 진술을 받아냈다. 특히 운전기사 E씨의 자백은 신씨의 범행을 밝히는데 결정적인 단서가 됐다.경찰은 이들의 진술을 바탕으로 4000쪽이 넘는 수사 서류를 원점에서 재검토해 신씨가 청부살인 대기금을 전달한 시점에 원화를 페소로 환전한 내역, A씨 일당에게 보낸 허씨 사진 등 신씨를 압박할 증거를 보강했다.신씨는 9차례 조사를 받으면서 결백을 주장했지만, 경찰이 E씨와 F씨의 진술서와 환전내역 등 증거를 제시하자 그제야 범행을 자백했다.(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영구 미제로 남을 뻔..엄한 처벌 불가피”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김태업 부장판사)는 2018년 9월 6일 신씨에게 징역 24년을 선고했다. 또 살인 사건과 별도로 기소된 신씨의 사기 혐의에 대해서는 징역 6개월이 추가됐다.경찰에 따르면 신씨 사건은 해외 청부살인 사건에서 현지인 정범이 검거되지 않았음에도 한국인 교사범이 처벌되는 첫 사례다.신씨와 변호인은 재판 과정에서도 “수사 단계에서 심리적 압박을 받아 허위 진술을 했고, 조력자들의 진술 등은 배경에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증거로 인정할 수 없다”며 혐의를 부인했지만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재판부는 “채무를 변제하지 못하자 치밀한 계획하게 여러 차례 시도를 거쳐 결국 피해자를 살해하도록 교사했고 범행을 감추려 강도로 위장해 달라고 부탁하는 등 주도면밀한 모습을 보였다”며 “피해자가 권총에 6발을 맞고 숨지는 등 수법도 잔인했다”고 지적했다.이어 “우리 공권력이 미치지 못하는 필리핀에서 필리핀 사람에 의해 범행이 실행돼 영구 미제로 남을 가능성이 컸고, 사건 이후 4년간 유족에게 어떤 사과나 보상도 하지 않았다”며 “엄한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다만 피해자와의 금전거래를 하면서 연 30%부터 월 20%에 이르는 고리의 채무를 부담한 것이 하나의 원인이 됐다는 점 등을 참작했다고 덧붙였다.
    김민정 기자 2023.09.25
    [이데일리 김민정 기자] 2017년 9월 25일, ‘필리핀 한국인 관광객 청부살인 사건’의 한국인 의뢰인이 4년에 걸친 경찰의 끈질긴 수사 끝에 구속됐다.서울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필리핀 청부 살인업자에게 돈을 주고 사업가 허모(당시 63세) 씨를 살해하도록 한 혐의(살인교사)로 신모(40) 씨를 구속했다.(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빚 때문에”…필리핀 청부업자에 살해 의뢰신씨와 허씨의 인연은 2012년 9월께 시작됐다. 신씨는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된 허씨에게 필리핀 수빅의 카지노 에이전시 사업비 명목으로 5억원을 빌렸지만 도박으로 탕진했다. 신씨는 필리핀에서 도박자들에게 환전을 해주고 수수료를 챙기는 업무를 주로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이후 신씨는 빚을 갚지 못하게 되자 허씨를 살해하기로 결심하고 2014년 2월 10일 필리핀 청부업자인 A씨에게 강도로 위장해 허씨를 죽여달라고 청부했다. 대가로는 30만 페소(한화 약 750만원)를 제시했다.신씨의 부탁을 받은 A씨는 암살자 B씨와 오토바이 운전사 C씨를 고용했고, 같은 달 18일 신씨는 살인을 위해 허씨를 필리핀으로 초청해 저녁 식사를 대접하는 등 환심을 샀다.같은 날 오후 7시 45분(이하 현지시간) 허씨는 필리핀 앙헬레스의 한 호텔 인근 도로에서 일행 3명과 함께 있다가 오토바이를 탄 괴한에게 총격을 받고 숨졌다.(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결백 주장한 피의자..끈질긴 수사에 결국 범행 자백수사 초기 허씨 일행으로부터 신씨가 허씨에게 거액의 빚을 진 점 등을 확인한 경찰은 신씨가 살인을 청부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수사를 벌였다. 그러나 현지 경찰이 A씨 일당을 검거하지 못하고 결정적인 증거도 나오지 않아 애를 먹었다.경찰은 국제범죄수사대 소속 경찰관을 4차례 현지로 보내 경찰조사를 벌였고, 필리핀 한인 사건 전담 경찰관인 ‘코리아데스크’도 현지 한인사회를 대상으로 지속적인 탐문조사를 했다.이 과정에서 확보한 신씨의 통역사 겸 운전기사인 필리핀인 E씨와 총기대여업자 F씨의 진술을 받아냈다. 특히 운전기사 E씨의 자백은 신씨의 범행을 밝히는데 결정적인 단서가 됐다.경찰은 이들의 진술을 바탕으로 4000쪽이 넘는 수사 서류를 원점에서 재검토해 신씨가 청부살인 대기금을 전달한 시점에 원화를 페소로 환전한 내역, A씨 일당에게 보낸 허씨 사진 등 신씨를 압박할 증거를 보강했다.신씨는 9차례 조사를 받으면서 결백을 주장했지만, 경찰이 E씨와 F씨의 진술서와 환전내역 등 증거를 제시하자 그제야 범행을 자백했다.(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영구 미제로 남을 뻔..엄한 처벌 불가피”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김태업 부장판사)는 2018년 9월 6일 신씨에게 징역 24년을 선고했다. 또 살인 사건과 별도로 기소된 신씨의 사기 혐의에 대해서는 징역 6개월이 추가됐다.경찰에 따르면 신씨 사건은 해외 청부살인 사건에서 현지인 정범이 검거되지 않았음에도 한국인 교사범이 처벌되는 첫 사례다.신씨와 변호인은 재판 과정에서도 “수사 단계에서 심리적 압박을 받아 허위 진술을 했고, 조력자들의 진술 등은 배경에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증거로 인정할 수 없다”며 혐의를 부인했지만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재판부는 “채무를 변제하지 못하자 치밀한 계획하게 여러 차례 시도를 거쳐 결국 피해자를 살해하도록 교사했고 범행을 감추려 강도로 위장해 달라고 부탁하는 등 주도면밀한 모습을 보였다”며 “피해자가 권총에 6발을 맞고 숨지는 등 수법도 잔인했다”고 지적했다.이어 “우리 공권력이 미치지 못하는 필리핀에서 필리핀 사람에 의해 범행이 실행돼 영구 미제로 남을 가능성이 컸고, 사건 이후 4년간 유족에게 어떤 사과나 보상도 하지 않았다”며 “엄한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다만 피해자와의 금전거래를 하면서 연 30%부터 월 20%에 이르는 고리의 채무를 부담한 것이 하나의 원인이 됐다는 점 등을 참작했다고 덧붙였다.
  • "진지한 반성이 없다"...'집단 성폭행' 정준영·최종훈은 지금 [그해 오늘]
    [이데일리 박지혜 기자] 3년 전 오늘, 2020년 9월 24일 술에 취한 여성들을 집단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가수 정준영과 최종훈에게 각각 징역 5년, 징역 2년 6개월이 확정됐다.이들과 함께 재판에 남겨진 유명 가수의 오빠 권모 씨도 원심 판결대로 징역 4년, 또 다른 피고인 2명도 각각 징역 4년과 징역 8월에 집행유예를 확정받았다.이들은 2016년 1월 강원도 홍천과 3월 대구에서 술에 취한 여성을 집단 성폭행한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됐다.지난 2019년 3월 12일 당시 단체 카카오톡 채팅방을 통해 불법 촬영한 성관계 동영상을 유포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가수 정준영이 해외일정을 중단하고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 (사진=뉴시스)정준영은 2015년 연예인들이 참여한 단체 카카오톡 채팅방(단톡방)에서 여성들과 성관계한 사실을 언급하며 몰래 촬영한 영상을 전송하는 등 11차례 불법 촬영물을 유포한 혐의도 받았다.이들은 재판 과정에서 일부 성폭행 혐의에 대해 “합의 하에 이뤄진 성관계”라고 주장했다.그러나 1심은 “피고인들의 나이가 많지 않지만, 호기심으로 장난을 쳤다고 하기에는 범행이 너무 중대하고 심각해 엄중 처벌이 불가피하다”며 정준영에게 징역 6년, 최종훈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다.정준영 측은 성폭행 혐의를 뒷받침한 단톡방의 대화 내용이 위법하게 수집돼 증거능력이 없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재판부는 “카톡 대화 내용은 진실의 발견을 위해 필수 자료”라면서 “공익의 필요성도 상당하며 (피고인들이) 명성과 재력에 버금가는 사회적 책임을 부담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지적했다.카톡 대화 내용은 제보자의 법률대리인에 의해 공개됐다. 제보자 측은 정준영이 휴대전화 복원 요청을 했던 모바일 회사 직원으로 추정되는 인물로부터 카톡 대화 내용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지난해 1월 12일 더팩트가 유튜브 채널에 공개한 출소 후 최종훈 근황 (사진=더팩트 유튜브 영상 캡쳐)2심 역시 1심과 마찬가지로 두 사람의 혐의를 모두 인정했다.다만 정준영 징역 5년으로 일부 감형을 받았고 최종훈은 뒤늦게 피해자와 합의했지만 ‘진지한 반성’이 없다며 실형을 선고받았다.정준영은 감형받기 위해 피해자와 합의를 시도했지만, 결국 용서받지 못했다.2심 재판부는 정준영이 특수준강간 혐의는 부인하지만, 행위 자체를 진지하게 반성한다는 취지의 반성문을 낸 점 등을 고려했다며 원심형보다 1년을 감형했다.최종훈은 피해자와 합의해 집행유예를 기대하는 분위기였지만 재판부는 그가 혐의를 부인하며 진지한 반성을 하지 않고 있다면서 2년 6개월을 선고했다.두 사람은 항소심에서 감형됐음에도 상고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항소심 형량을 그대로 확정하며 1년 반 동안 이뤄진 재판에 종지부를 찍었다.지난 2019년 3월 21일 구금된 정준영은 오는 2025년 10월 1일 출소할 예정이다.최종훈은 지난 2021년 11월 8일 만기 출소했다. 출소했더라도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80시간을 이수해야 하며, 3년간 취업 제한이 된다. 출소 후 신앙생활 중인 근황이 전해지기도 했다.
    박지혜 기자 2023.09.24
    [이데일리 박지혜 기자] 3년 전 오늘, 2020년 9월 24일 술에 취한 여성들을 집단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가수 정준영과 최종훈에게 각각 징역 5년, 징역 2년 6개월이 확정됐다.이들과 함께 재판에 남겨진 유명 가수의 오빠 권모 씨도 원심 판결대로 징역 4년, 또 다른 피고인 2명도 각각 징역 4년과 징역 8월에 집행유예를 확정받았다.이들은 2016년 1월 강원도 홍천과 3월 대구에서 술에 취한 여성을 집단 성폭행한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됐다.지난 2019년 3월 12일 당시 단체 카카오톡 채팅방을 통해 불법 촬영한 성관계 동영상을 유포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가수 정준영이 해외일정을 중단하고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 (사진=뉴시스)정준영은 2015년 연예인들이 참여한 단체 카카오톡 채팅방(단톡방)에서 여성들과 성관계한 사실을 언급하며 몰래 촬영한 영상을 전송하는 등 11차례 불법 촬영물을 유포한 혐의도 받았다.이들은 재판 과정에서 일부 성폭행 혐의에 대해 “합의 하에 이뤄진 성관계”라고 주장했다.그러나 1심은 “피고인들의 나이가 많지 않지만, 호기심으로 장난을 쳤다고 하기에는 범행이 너무 중대하고 심각해 엄중 처벌이 불가피하다”며 정준영에게 징역 6년, 최종훈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다.정준영 측은 성폭행 혐의를 뒷받침한 단톡방의 대화 내용이 위법하게 수집돼 증거능력이 없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재판부는 “카톡 대화 내용은 진실의 발견을 위해 필수 자료”라면서 “공익의 필요성도 상당하며 (피고인들이) 명성과 재력에 버금가는 사회적 책임을 부담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지적했다.카톡 대화 내용은 제보자의 법률대리인에 의해 공개됐다. 제보자 측은 정준영이 휴대전화 복원 요청을 했던 모바일 회사 직원으로 추정되는 인물로부터 카톡 대화 내용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지난해 1월 12일 더팩트가 유튜브 채널에 공개한 출소 후 최종훈 근황 (사진=더팩트 유튜브 영상 캡쳐)2심 역시 1심과 마찬가지로 두 사람의 혐의를 모두 인정했다.다만 정준영 징역 5년으로 일부 감형을 받았고 최종훈은 뒤늦게 피해자와 합의했지만 ‘진지한 반성’이 없다며 실형을 선고받았다.정준영은 감형받기 위해 피해자와 합의를 시도했지만, 결국 용서받지 못했다.2심 재판부는 정준영이 특수준강간 혐의는 부인하지만, 행위 자체를 진지하게 반성한다는 취지의 반성문을 낸 점 등을 고려했다며 원심형보다 1년을 감형했다.최종훈은 피해자와 합의해 집행유예를 기대하는 분위기였지만 재판부는 그가 혐의를 부인하며 진지한 반성을 하지 않고 있다면서 2년 6개월을 선고했다.두 사람은 항소심에서 감형됐음에도 상고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항소심 형량을 그대로 확정하며 1년 반 동안 이뤄진 재판에 종지부를 찍었다.지난 2019년 3월 21일 구금된 정준영은 오는 2025년 10월 1일 출소할 예정이다.최종훈은 지난 2021년 11월 8일 만기 출소했다. 출소했더라도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80시간을 이수해야 하며, 3년간 취업 제한이 된다. 출소 후 신앙생활 중인 근황이 전해지기도 했다.
  • 키워준 친할머니 60회 찔렀다…10대 형제는 왜[그해 오늘]
    [이데일리 이준혁 기자] 2021년 9월 23일. 검찰은 당시 각각 18세, 16세던 A군과 B군 형제를 재판에 넘겼다. 친할머니를 잔혹하게 살해한 혐의였다. 형 A군은 존속살해죄 및 존속살해미수죄, 동생 B군은 존속살해방조죄로 각각 구속 기소됐다.친할머니를 살해한 혐의를 받는 10대 형제가 2021년 8월 31일 오후 대구지방법원 서부지원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를 마친 뒤 법정을 나서고 있다. 왼쪽부터 A군(당시 18세)과 동생 B군(당시 16세). (사진=뉴스1)이들 형제는 부모가 이혼하면서 각각 9세, 7세던 2012년부터 조부모와 함께 생활해 왔다. 할머니(당시 77세)와 할아버지(당시 94세) 모두 신체장애 판정을 받은 만큼 몸이 성치 않은 상태였다. 특히 할아버지가 나이가 많고 몸이 더 불편해서 할머니가 주로 형제들을 보살폈다.조부모는 매달 185만원의 기초생활수급비를 받으면서 부모를 대신해 형제를 자식처럼 키웠다. 하지만 형제는 ‘잔소리를 듣기 싫다’는 이유로 할머니를 살해했고, 할아버지도 살인하려 했다.8월 29일 할머니로부터 들은 “왜 너희가 급식카드를 가지고 편의점에서 먹을 것도 사오지 않느냐” “성인이 되면 집에서 나가라” 등의 잔소리가 살해를 결심하는 계기가 됐다. A군은 이날 저녁 B군에게 “할머니를 죽이자”는 메시지를 보냈다.범행은 익일 새벽에 시작됐다. A군은 주방에서 흉기를 가져와 할머니의 얼굴과 머리, 어깨, 팔 등을 흉기로 60회가량 찔렀다. 심장과 폐 부위가 관통된 할머니는 이후 현장에 도착한 구급대원에 의해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끝내 사망했다.A군은 범행 후 할아버지에게 “할머니 곧 갈(죽을) 것 같은데 할아버지도 같이 갈래? 이제 따라가셔야지”라는 등의 패륜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할머니 병원에 좀 보내자”고 애원하자 추가 범행을 하려 했으나, B군이 말려 범행은 미수로 그쳤다.형제는 할아버지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당초 경찰은 A군과 함께 B군도 존속살해죄 혐의로 긴급체포했다. 구속영장 신청 시에도 이들 형제의 휴대전화 디지털포렌식 등 수사를 통해 동생에 대한 존속살해죄 공동정범 입증을 자신했다.그러나 검찰은 B군의 행위 일체가 범행에 직접 가담하진 않았다고 판단했다. B군은 A군이 할머니를 살해할 당시 “칼로 찌를 때 소리가 시끄럽게 나니 창문을 닫아라”라는 말을 듣고 이를 실행에 옮기는 등 범행을 돕기만 했다고 봤다.2021년 8월 30일 경찰 관계자들이 사건이 발생한 주택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사진=뉴스1)검찰은 결심 공판에서 A군에게 무기징역을 구형하고 30년간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 부착, 5년간 보호관찰 명령을 구형했다. B군에게는 징역 12년에 단기 6년형을 재판부에 요청했다.특히 검찰은 A군에 대해 “형을 집행하지 않는 우리나라 법 제도를 이용해 감옥 생활을 반복하기로 했다고 진술했다”며 “이번 사건으로 인해 웹툰을 보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고 하는 등 생명에 대해 경시하는 태도를 보였다”고 지적했다.1심 재판부는 “피고가 행한 범행은 용서받지 못할 정도로 무겁다”면서도 “피고인이 자신의 범행과 잘못을 자각하고 있고, 불우한 환경 속에서도 학교생활을 해온 점을 고려하면 교화의 여지가 있다”면서 A군에게 장기 12년에 단기 7년을 선고했다. B군은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검찰과 A군은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B군은 1심 판결을 받아들였다. 검찰은 2심에서도 A군에게 무기징역, B군에게 장기 12년에 단기 6년을 구형했다.그러나 2심 재판부는 양측 항소를 모두 기각하고 원심을 유지했다.2심 재판부는 “범행의 패륜성에 비춰보면 죄질이 매우 나쁘지만 두 형제가 범행 이후 자백한 점, 초범이고 나이가 어린 점, 형의 경우 과잉행동장애 진단을 받은 점 등을 고려했을 때 원심이 선고한 형량이 가볍지 않다”고 검사 항소 기각 이유를 밝혔다. 이후 양측 모두 상고하지 않아 형이 확정됐다.
    이준혁 기자 2023.09.23
    [이데일리 이준혁 기자] 2021년 9월 23일. 검찰은 당시 각각 18세, 16세던 A군과 B군 형제를 재판에 넘겼다. 친할머니를 잔혹하게 살해한 혐의였다. 형 A군은 존속살해죄 및 존속살해미수죄, 동생 B군은 존속살해방조죄로 각각 구속 기소됐다.친할머니를 살해한 혐의를 받는 10대 형제가 2021년 8월 31일 오후 대구지방법원 서부지원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를 마친 뒤 법정을 나서고 있다. 왼쪽부터 A군(당시 18세)과 동생 B군(당시 16세). (사진=뉴스1)이들 형제는 부모가 이혼하면서 각각 9세, 7세던 2012년부터 조부모와 함께 생활해 왔다. 할머니(당시 77세)와 할아버지(당시 94세) 모두 신체장애 판정을 받은 만큼 몸이 성치 않은 상태였다. 특히 할아버지가 나이가 많고 몸이 더 불편해서 할머니가 주로 형제들을 보살폈다.조부모는 매달 185만원의 기초생활수급비를 받으면서 부모를 대신해 형제를 자식처럼 키웠다. 하지만 형제는 ‘잔소리를 듣기 싫다’는 이유로 할머니를 살해했고, 할아버지도 살인하려 했다.8월 29일 할머니로부터 들은 “왜 너희가 급식카드를 가지고 편의점에서 먹을 것도 사오지 않느냐” “성인이 되면 집에서 나가라” 등의 잔소리가 살해를 결심하는 계기가 됐다. A군은 이날 저녁 B군에게 “할머니를 죽이자”는 메시지를 보냈다.범행은 익일 새벽에 시작됐다. A군은 주방에서 흉기를 가져와 할머니의 얼굴과 머리, 어깨, 팔 등을 흉기로 60회가량 찔렀다. 심장과 폐 부위가 관통된 할머니는 이후 현장에 도착한 구급대원에 의해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끝내 사망했다.A군은 범행 후 할아버지에게 “할머니 곧 갈(죽을) 것 같은데 할아버지도 같이 갈래? 이제 따라가셔야지”라는 등의 패륜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할머니 병원에 좀 보내자”고 애원하자 추가 범행을 하려 했으나, B군이 말려 범행은 미수로 그쳤다.형제는 할아버지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당초 경찰은 A군과 함께 B군도 존속살해죄 혐의로 긴급체포했다. 구속영장 신청 시에도 이들 형제의 휴대전화 디지털포렌식 등 수사를 통해 동생에 대한 존속살해죄 공동정범 입증을 자신했다.그러나 검찰은 B군의 행위 일체가 범행에 직접 가담하진 않았다고 판단했다. B군은 A군이 할머니를 살해할 당시 “칼로 찌를 때 소리가 시끄럽게 나니 창문을 닫아라”라는 말을 듣고 이를 실행에 옮기는 등 범행을 돕기만 했다고 봤다.2021년 8월 30일 경찰 관계자들이 사건이 발생한 주택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사진=뉴스1)검찰은 결심 공판에서 A군에게 무기징역을 구형하고 30년간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 부착, 5년간 보호관찰 명령을 구형했다. B군에게는 징역 12년에 단기 6년형을 재판부에 요청했다.특히 검찰은 A군에 대해 “형을 집행하지 않는 우리나라 법 제도를 이용해 감옥 생활을 반복하기로 했다고 진술했다”며 “이번 사건으로 인해 웹툰을 보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고 하는 등 생명에 대해 경시하는 태도를 보였다”고 지적했다.1심 재판부는 “피고가 행한 범행은 용서받지 못할 정도로 무겁다”면서도 “피고인이 자신의 범행과 잘못을 자각하고 있고, 불우한 환경 속에서도 학교생활을 해온 점을 고려하면 교화의 여지가 있다”면서 A군에게 장기 12년에 단기 7년을 선고했다. B군은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검찰과 A군은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B군은 1심 판결을 받아들였다. 검찰은 2심에서도 A군에게 무기징역, B군에게 장기 12년에 단기 6년을 구형했다.그러나 2심 재판부는 양측 항소를 모두 기각하고 원심을 유지했다.2심 재판부는 “범행의 패륜성에 비춰보면 죄질이 매우 나쁘지만 두 형제가 범행 이후 자백한 점, 초범이고 나이가 어린 점, 형의 경우 과잉행동장애 진단을 받은 점 등을 고려했을 때 원심이 선고한 형량이 가볍지 않다”고 검사 항소 기각 이유를 밝혔다. 이후 양측 모두 상고하지 않아 형이 확정됐다.
  • “다 타버렸다” 의류 상가에서 번진 최악의 불…애끓는 탄식[그해 오늘]
    [이데일리 이로원 기자] 지금으로부터 4년 전 오늘 새벽 0시 38분, 서울 중구 신당동 소재 제일평화시장에서 원인 미상의 화재가 발생했다. 지하 1층, 지상 7층 건물을 삼킨 화마는 최초 화재 발생 23시간 만인 23일 밤 11시 21분쯤 진화됐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200여 곳의 좌판식 점포가 있던 3층이 모두 전소하는 등 716억 원의 재산피해를 냈다.2019년 9월 22일 오전 서울 중구 신당동 제일평화시장에 화재가 나 연기가 하늘을 뒤덮고 있다. (사진=뉴스1)이날 제일평화시장 건물에서 발생한 화재는 스프링클러가 없는데다 창문이 밀폐돼 있어 피해가 커진 것으로 밝혀졌다.소방당국은 “화재가 시작된 3층은 스프링클러가 설치되어 있지 않고, 창문이 금속 패널로 밀폐돼 있어 열기가 건물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해 화재 초기에 피해가 컸다”고 밝혔다.1979년 처음 문을 연 제일평화시장은 당초 지상 3층,지하 1층으로 지어졌으나 2014년 4개 층을 증축하고 건물 외벽을 금속 패널로 덮었다. 스프링클러는 새로 지어진 4층부터 7층까지만 설치됐다.연기는 사고 현장 부근인 동대문 일대는 물론 바람을 타고 용산구 남영동 등 서울 도심 곳곳까지 퍼졌다. 특히 의류 상가 특성상 불에 잘 타는 옷가지와 원단이 건물 내부에 쌓여 있고, 내부 구조가 복잡해 소방당국은 진압에 어려움을 겪었다.이와 관련 중부소방서 장춘근 검사 1팀장은 “의류는 불이 붙으면 종이처럼 타서 재가 되는 것이 아니라 먼저 불에 탄 위쪽이 경화돼 딱딱해지고 불이 아래로 들어간다”며 “물을 뿌려도 경화된 바깥쪽에서 막힌 채 안쪽으로 침투되지 않아 화재 진화가 상당히 어려웠다”고 설명했다.장 팀장은 “의류 유통시장은 햇빛에 상품이 상할 수 있어 창문을 만들지 않는다”며 “이 때문에 진입하기 어렵고, 열과 연기가 건물 안에 체류해 화점을 찾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물건이 통로까지 진열된 경우도 있다”며 “통로가 좁아서 화재 시 다수 인원이 원활하게 대피하기 곤란한 구조”라고 설명했다.상가의 모든 상인들은 화재로 인해 일터로 돌아가지 못한 채, 제일평화시장 인근 DDP 옥외 공개 공지에 천막을 치고 임시영업을 이어갔다. 상가 입주민들은 “이제 가을 시즌이라 원피스 등 고가의 의류들이 많다. 단가가 높은 옷들이라 손해가 막심하다”며 눈물을 보였다.중구는 피해상인들을 돕기 위해 재해구호성금 모금함을 개설하기도 했다. 서양호 구청장은 “제일평화 시장 상인들이 화재 피해를 극복하고 영업이 정상화 될 때까지 전폭적인 지원을 하겠다”고 말했다.이후 제일평화시장은 2020년 3월 31일까지 복원공사를 진행했으며, 그해 4월 27일에 리뉴얼하여 재개장했다. 리뉴얼공사는 구분소유자들이 단합하여 자발적으로 조성한 화재공사비 기금을 출자해 진행됐다. 최신식 환기시설, 소방시설, 스프링클러, CCTV 시스템을 구축했으며 상가 내부 전면 리모델링도 함께 진행했다.
    이로원 기자 2023.09.22
    [이데일리 이로원 기자] 지금으로부터 4년 전 오늘 새벽 0시 38분, 서울 중구 신당동 소재 제일평화시장에서 원인 미상의 화재가 발생했다. 지하 1층, 지상 7층 건물을 삼킨 화마는 최초 화재 발생 23시간 만인 23일 밤 11시 21분쯤 진화됐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200여 곳의 좌판식 점포가 있던 3층이 모두 전소하는 등 716억 원의 재산피해를 냈다.2019년 9월 22일 오전 서울 중구 신당동 제일평화시장에 화재가 나 연기가 하늘을 뒤덮고 있다. (사진=뉴스1)이날 제일평화시장 건물에서 발생한 화재는 스프링클러가 없는데다 창문이 밀폐돼 있어 피해가 커진 것으로 밝혀졌다.소방당국은 “화재가 시작된 3층은 스프링클러가 설치되어 있지 않고, 창문이 금속 패널로 밀폐돼 있어 열기가 건물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해 화재 초기에 피해가 컸다”고 밝혔다.1979년 처음 문을 연 제일평화시장은 당초 지상 3층,지하 1층으로 지어졌으나 2014년 4개 층을 증축하고 건물 외벽을 금속 패널로 덮었다. 스프링클러는 새로 지어진 4층부터 7층까지만 설치됐다.연기는 사고 현장 부근인 동대문 일대는 물론 바람을 타고 용산구 남영동 등 서울 도심 곳곳까지 퍼졌다. 특히 의류 상가 특성상 불에 잘 타는 옷가지와 원단이 건물 내부에 쌓여 있고, 내부 구조가 복잡해 소방당국은 진압에 어려움을 겪었다.이와 관련 중부소방서 장춘근 검사 1팀장은 “의류는 불이 붙으면 종이처럼 타서 재가 되는 것이 아니라 먼저 불에 탄 위쪽이 경화돼 딱딱해지고 불이 아래로 들어간다”며 “물을 뿌려도 경화된 바깥쪽에서 막힌 채 안쪽으로 침투되지 않아 화재 진화가 상당히 어려웠다”고 설명했다.장 팀장은 “의류 유통시장은 햇빛에 상품이 상할 수 있어 창문을 만들지 않는다”며 “이 때문에 진입하기 어렵고, 열과 연기가 건물 안에 체류해 화점을 찾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물건이 통로까지 진열된 경우도 있다”며 “통로가 좁아서 화재 시 다수 인원이 원활하게 대피하기 곤란한 구조”라고 설명했다.상가의 모든 상인들은 화재로 인해 일터로 돌아가지 못한 채, 제일평화시장 인근 DDP 옥외 공개 공지에 천막을 치고 임시영업을 이어갔다. 상가 입주민들은 “이제 가을 시즌이라 원피스 등 고가의 의류들이 많다. 단가가 높은 옷들이라 손해가 막심하다”며 눈물을 보였다.중구는 피해상인들을 돕기 위해 재해구호성금 모금함을 개설하기도 했다. 서양호 구청장은 “제일평화 시장 상인들이 화재 피해를 극복하고 영업이 정상화 될 때까지 전폭적인 지원을 하겠다”고 말했다.이후 제일평화시장은 2020년 3월 31일까지 복원공사를 진행했으며, 그해 4월 27일에 리뉴얼하여 재개장했다. 리뉴얼공사는 구분소유자들이 단합하여 자발적으로 조성한 화재공사비 기금을 출자해 진행됐다. 최신식 환기시설, 소방시설, 스프링클러, CCTV 시스템을 구축했으며 상가 내부 전면 리모델링도 함께 진행했다.
  • 직장동료 살해·시신 유기한 40대…2심도 징역 18년 [그해 오늘]
    [이데일리 이재은 기자] 2018년 9월 21일 대전고등법원은 살인, 사체유기 혐의로 구속기소된 40대 남성의 항소를 기각하고 징역 18년을 선고한 원심을 받아들이겠다고 밝혔다. 이 남성은 살인의 고의가 없었고 심신미약 상태였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직장 동료를 잔인하게 살해한 40대 A씨에게 중형이 유지된 날이었다. 2018년 3월 21일 오전 1시 20분께 A씨가 자신의 흰색 차량으로 B씨의 시신을 옮기는 모습이 담긴 CCTV. (사진=대전지방경찰청)◇화해 권유한 직장동료에 격분…몸싸움 벌여사건은 2018년 3월 20일 대전시 중구에서 발생했다. A씨는 전날 오후 6시부터 직장 동료이던 피해자 B씨를 만나 식당에서 술을 마셨고 두 사람은 A씨의 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러던 중 B씨의 언급으로 또 다른 직장동료인 C씨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됐다. A씨는 평소 업무에 간섭하거나 면박을 준 C씨에게 악감정을 품고 있었다. 그는 C씨가 자신 때문에 차장 승진이 누락돼 일부러 무시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A씨는 B씨의 부서로 이동한 뒤에도 스트레스를 받자 같은 달 15일 사직서를 낸 상태였다. B씨는 A씨에게 “어차피 그만두는데 당신은 요리사 모임에서 C씨를 만날 것 아니냐. 나중에 다시 만나면 창피할 수 있다. 그만 화해하라”고 권유했다. 이에 A씨는 “후회할지언정 화해는 못 한다. C씨가 내게 찾아와 사과하면 손가락을 자르든지 할복하든지 해야 한다”고 답했다. 두 사람은 이 같은 대화를 반복했고 A씨는 B씨가 ‘화해하라’는 식으로 말한 것에 화가 나 몸싸움을 시작했다. ◇경찰수사 시작되자 시신 매장 결심이튿날인 20일 새벽 B씨는 A씨와의 다툼으로 얼굴이 부었고 “이거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물었다. 이에 A씨는 격분하며 3㎏에 달하는 둔기를 들고 B씨의 얼굴과 머리를 수차례 내리쳤다. 이 과정에서 B씨의 신체 일부를 밟기도 했다. A씨의 범행으로 B씨는 머리와 목 부위가 골절됐고 현장에서 숨졌다. 경찰은 같은 날 “B씨가 출근하지 않는다”는 실종신고를 접수하고 그의 직장동료 등을 상대로 탐문 수사를 벌였다. A씨는 직장에 경찰관들이 찾아와 B씨의 행방에 대해 묻자 시신을 매장하기로 작정했다. 그는 이날 구매한 삽과 톱을 비롯해 B씨의 시신 등을 챙겨 차량에 올라탔다. 사람이 다니지 않을 때를 확인하는 등 치밀한 움직임이었다. 21일 새벽 A씨는 차량을 몰고 대전 서구의 한 야산에 도착해 구덩이를 판 뒤 B씨의 시신을 몰래 묻었다.경찰은 A씨가 탐문수사 이틀 뒤 잠적한 것을 수상히 여겨 행적을 뒤쫓았고 이날 오후 5시 30분께 그를 긴급체포했다. 또 암매장된 B씨의 시신도 찾아냈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B씨를 살해하고 시신을 암매장한 것은 인정하면서도 범행 동기는 “술에 취해 기억나지 않는다”고 진술했다. 그는 곧 구속됐고 B씨를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2018년 3월 오후 11시 38분께 A씨와 B씨가 함께 집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찍힌 CCTV. (사진=대전지방경찰청)◇法 “피해자 사망 가능성 충분히 인식”A씨 측은 법정에서 “살인이 아닌 상해·폭행의 고의만 있었을 뿐”이라며 “범행 당시 피해자를 C씨로 착각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A씨가 손상 시 치명적인 목과 머리를 둔기로 내리쳤다며 B씨가 사망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충분히 인식했다고 판단했다. 또 A씨가 범행 전후 상황과 경위 등을 대체로 기억하고 진술했다며 심신미약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후 A씨와 검찰 측은 항소했고 2심 재판부는 이를 모두 기각했다. A씨 측은 B씨를 살해할 고의가 없었고 사건 당시 급성알코올독성으로 단기기억상실이 발생해 심신상실 및 심신미약 상태였다고 변론했다. 이에 대해 2심 재판부는 원심과 비슷한 판단을 내렸다. A씨 측이 주장하는 ‘블랙아웃’ 상태는 사후적인 기억장애이기에 범행 당시 사물 변별 능력을 상실했는지에 대해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취지다. 2심은 “피고인이 유가족의 심경보다는 자신이 키우던 반려동물의 안위를 우선시하는 태도를 보였고 허위 사실을 말해 수사에 혼선을 초래했다”며 “도피용 자금까지 마련한 것으로 보이므로 양형에 영향을 미칠 정도의 자수 의사가 있었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이후 대법원이 A씨의 상고를 기각하며 징역 18년이 확정됐다.
    이재은 기자 2023.09.21
    [이데일리 이재은 기자] 2018년 9월 21일 대전고등법원은 살인, 사체유기 혐의로 구속기소된 40대 남성의 항소를 기각하고 징역 18년을 선고한 원심을 받아들이겠다고 밝혔다. 이 남성은 살인의 고의가 없었고 심신미약 상태였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직장 동료를 잔인하게 살해한 40대 A씨에게 중형이 유지된 날이었다. 2018년 3월 21일 오전 1시 20분께 A씨가 자신의 흰색 차량으로 B씨의 시신을 옮기는 모습이 담긴 CCTV. (사진=대전지방경찰청)◇화해 권유한 직장동료에 격분…몸싸움 벌여사건은 2018년 3월 20일 대전시 중구에서 발생했다. A씨는 전날 오후 6시부터 직장 동료이던 피해자 B씨를 만나 식당에서 술을 마셨고 두 사람은 A씨의 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러던 중 B씨의 언급으로 또 다른 직장동료인 C씨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됐다. A씨는 평소 업무에 간섭하거나 면박을 준 C씨에게 악감정을 품고 있었다. 그는 C씨가 자신 때문에 차장 승진이 누락돼 일부러 무시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A씨는 B씨의 부서로 이동한 뒤에도 스트레스를 받자 같은 달 15일 사직서를 낸 상태였다. B씨는 A씨에게 “어차피 그만두는데 당신은 요리사 모임에서 C씨를 만날 것 아니냐. 나중에 다시 만나면 창피할 수 있다. 그만 화해하라”고 권유했다. 이에 A씨는 “후회할지언정 화해는 못 한다. C씨가 내게 찾아와 사과하면 손가락을 자르든지 할복하든지 해야 한다”고 답했다. 두 사람은 이 같은 대화를 반복했고 A씨는 B씨가 ‘화해하라’는 식으로 말한 것에 화가 나 몸싸움을 시작했다. ◇경찰수사 시작되자 시신 매장 결심이튿날인 20일 새벽 B씨는 A씨와의 다툼으로 얼굴이 부었고 “이거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물었다. 이에 A씨는 격분하며 3㎏에 달하는 둔기를 들고 B씨의 얼굴과 머리를 수차례 내리쳤다. 이 과정에서 B씨의 신체 일부를 밟기도 했다. A씨의 범행으로 B씨는 머리와 목 부위가 골절됐고 현장에서 숨졌다. 경찰은 같은 날 “B씨가 출근하지 않는다”는 실종신고를 접수하고 그의 직장동료 등을 상대로 탐문 수사를 벌였다. A씨는 직장에 경찰관들이 찾아와 B씨의 행방에 대해 묻자 시신을 매장하기로 작정했다. 그는 이날 구매한 삽과 톱을 비롯해 B씨의 시신 등을 챙겨 차량에 올라탔다. 사람이 다니지 않을 때를 확인하는 등 치밀한 움직임이었다. 21일 새벽 A씨는 차량을 몰고 대전 서구의 한 야산에 도착해 구덩이를 판 뒤 B씨의 시신을 몰래 묻었다.경찰은 A씨가 탐문수사 이틀 뒤 잠적한 것을 수상히 여겨 행적을 뒤쫓았고 이날 오후 5시 30분께 그를 긴급체포했다. 또 암매장된 B씨의 시신도 찾아냈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B씨를 살해하고 시신을 암매장한 것은 인정하면서도 범행 동기는 “술에 취해 기억나지 않는다”고 진술했다. 그는 곧 구속됐고 B씨를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2018년 3월 오후 11시 38분께 A씨와 B씨가 함께 집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찍힌 CCTV. (사진=대전지방경찰청)◇法 “피해자 사망 가능성 충분히 인식”A씨 측은 법정에서 “살인이 아닌 상해·폭행의 고의만 있었을 뿐”이라며 “범행 당시 피해자를 C씨로 착각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A씨가 손상 시 치명적인 목과 머리를 둔기로 내리쳤다며 B씨가 사망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충분히 인식했다고 판단했다. 또 A씨가 범행 전후 상황과 경위 등을 대체로 기억하고 진술했다며 심신미약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후 A씨와 검찰 측은 항소했고 2심 재판부는 이를 모두 기각했다. A씨 측은 B씨를 살해할 고의가 없었고 사건 당시 급성알코올독성으로 단기기억상실이 발생해 심신상실 및 심신미약 상태였다고 변론했다. 이에 대해 2심 재판부는 원심과 비슷한 판단을 내렸다. A씨 측이 주장하는 ‘블랙아웃’ 상태는 사후적인 기억장애이기에 범행 당시 사물 변별 능력을 상실했는지에 대해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취지다. 2심은 “피고인이 유가족의 심경보다는 자신이 키우던 반려동물의 안위를 우선시하는 태도를 보였고 허위 사실을 말해 수사에 혼선을 초래했다”며 “도피용 자금까지 마련한 것으로 보이므로 양형에 영향을 미칠 정도의 자수 의사가 있었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이후 대법원이 A씨의 상고를 기각하며 징역 18년이 확정됐다.
  • K팝 전설의 시작 ‘강남스타일’ 기네스북 등재 [그해 오늘]
    [이데일리 김혜선 기자] “오, 오, 오빤 강남스타일”(사진=싸이 유튜브 ‘GANGNAM STYLE(강남스타일) M/V’ 캡처)2012년 9월 20일(영국 현지시간).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공개된 지 약 두 달 만에 기네스북에 올랐다. 기네스 월드 레코드(GWR)가 인증하는 유튜브 최다 추천(좋아요·like)에 선정된 것이다.2012년 7월 15일 공개된 ‘강남스타일’은 중독성 강한 음색에 코믹한 ‘말 춤’ 안무, 재미있는 뮤직비디오 삼박자가 갖춰지며 전세계를 사로잡았다. 유튜브에서 공개된 지 열흘 만에 1억뷰를 돌파했고, 한 달 만에 미 CNN등 외신에서도 주목하는 ‘핫’한 노래가 됐다. 공개 두 달이 되자 GWR은 ‘강남스타일’의 뮤직비디오가 약 230만명의 네티즌에게 ‘좋아요’를 받아 세계 신기록을 세웠다고 공지했다.싸이는 ‘강남스타일’로 ‘최다 조회 동영상’, ‘조회수 10억건을 기록한 첫 동영상’, ‘최대 규모 말춤’등 3개의 기네스북 기록 타이틀을 더 챙겼고, 후속곡으로 2013년 4월 발표한 ‘젠틀맨’도 ‘24시간 동안 가장 많이 본 온라인 동영상’으로 인정됐다.미국 유명 TV쇼에서도 앞다퉈 싸이를 게스트로 초대했다. NBC의 ‘투데이쇼’, ‘SNL’, ‘엘렌 드제너러스 쇼’ 등 간판 프로그램에 연일 출연했고 급기야 미국 최고의 팝 디바인 마돈나의 공연에도 초청돼 뉴욕의 매디슨 스퀘어 가든 합동공연을 펼치기도 했다. 당시 마돈나는 싸이를 처음 보자마자 “무대 위에선 (나를) 어디든 만져도 돼”라고 했다고 한다.이후에도 ‘강남스타일’ 인기는 오랫동안 지속됐다. 유튜브 조회수는 2012년 11월 24일 8억뷰를 돌파하며 당시 최고의 인기를 끌던 팝스타 저스틴 비버의 곡 ‘Baby’를 눌렀다. 그 해 12월에는 유튜브 최초로 조회수 10억회를 돌파하고, 2014년 5월 20억 뷰, 2017년 11월과 지난해 3월에는 각각 30억 뷰와 40억 뷰를 넘어섰다. 20일 현재 ‘강남스타일’의 누적 조회수는 48억뷰다.현재는 방탄소년단(BTS), 블랙핑크 등 내로라하는 K팝 가수들이 빌보드 차트에 여러 번 오르내리지만, 당시만 해도 K팝 가수에게 미 빌보드 핫100은 ‘마의 장벽’으로 여겨졌다. 이전에도 원더걸스 등 K팝 가수가 빌보드 핫100 순위에 진입했지만, ‘강남스타일’은 핫 100 2위로 7주간 머무르는 대기록을 남겼다. 한국어 가요가 빌보드 핫100 순위에 오른 것도 최초다.이렇게 ‘강남스타일’은 미국 가요 시장에 K팝을 알리는 마중물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이후 ‘강남스타일’이 쓴 K팝 역사는 이후 2020년 BTS의 영어 싱글 ‘다이너마이트(Dynamite)’가 핫 100 1위에 오르며 다시 써졌다.
    김혜선 기자 2023.09.20
    [이데일리 김혜선 기자] “오, 오, 오빤 강남스타일”(사진=싸이 유튜브 ‘GANGNAM STYLE(강남스타일) M/V’ 캡처)2012년 9월 20일(영국 현지시간).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공개된 지 약 두 달 만에 기네스북에 올랐다. 기네스 월드 레코드(GWR)가 인증하는 유튜브 최다 추천(좋아요·like)에 선정된 것이다.2012년 7월 15일 공개된 ‘강남스타일’은 중독성 강한 음색에 코믹한 ‘말 춤’ 안무, 재미있는 뮤직비디오 삼박자가 갖춰지며 전세계를 사로잡았다. 유튜브에서 공개된 지 열흘 만에 1억뷰를 돌파했고, 한 달 만에 미 CNN등 외신에서도 주목하는 ‘핫’한 노래가 됐다. 공개 두 달이 되자 GWR은 ‘강남스타일’의 뮤직비디오가 약 230만명의 네티즌에게 ‘좋아요’를 받아 세계 신기록을 세웠다고 공지했다.싸이는 ‘강남스타일’로 ‘최다 조회 동영상’, ‘조회수 10억건을 기록한 첫 동영상’, ‘최대 규모 말춤’등 3개의 기네스북 기록 타이틀을 더 챙겼고, 후속곡으로 2013년 4월 발표한 ‘젠틀맨’도 ‘24시간 동안 가장 많이 본 온라인 동영상’으로 인정됐다.미국 유명 TV쇼에서도 앞다퉈 싸이를 게스트로 초대했다. NBC의 ‘투데이쇼’, ‘SNL’, ‘엘렌 드제너러스 쇼’ 등 간판 프로그램에 연일 출연했고 급기야 미국 최고의 팝 디바인 마돈나의 공연에도 초청돼 뉴욕의 매디슨 스퀘어 가든 합동공연을 펼치기도 했다. 당시 마돈나는 싸이를 처음 보자마자 “무대 위에선 (나를) 어디든 만져도 돼”라고 했다고 한다.이후에도 ‘강남스타일’ 인기는 오랫동안 지속됐다. 유튜브 조회수는 2012년 11월 24일 8억뷰를 돌파하며 당시 최고의 인기를 끌던 팝스타 저스틴 비버의 곡 ‘Baby’를 눌렀다. 그 해 12월에는 유튜브 최초로 조회수 10억회를 돌파하고, 2014년 5월 20억 뷰, 2017년 11월과 지난해 3월에는 각각 30억 뷰와 40억 뷰를 넘어섰다. 20일 현재 ‘강남스타일’의 누적 조회수는 48억뷰다.현재는 방탄소년단(BTS), 블랙핑크 등 내로라하는 K팝 가수들이 빌보드 차트에 여러 번 오르내리지만, 당시만 해도 K팝 가수에게 미 빌보드 핫100은 ‘마의 장벽’으로 여겨졌다. 이전에도 원더걸스 등 K팝 가수가 빌보드 핫100 순위에 진입했지만, ‘강남스타일’은 핫 100 2위로 7주간 머무르는 대기록을 남겼다. 한국어 가요가 빌보드 핫100 순위에 오른 것도 최초다.이렇게 ‘강남스타일’은 미국 가요 시장에 K팝을 알리는 마중물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이후 ‘강남스타일’이 쓴 K팝 역사는 이후 2020년 BTS의 영어 싱글 ‘다이너마이트(Dynamite)’가 핫 100 1위에 오르며 다시 써졌다.
  • 겉보기엔 평온한 가정집…‘살인 공장’ 만든 지존파 [그해 오늘]
    [이데일리 홍수현 기자] 1994년 9월 19일, 대한민국 범죄사에서 가장 엽기적인 기록으로 남겨진 ‘지존파’ 일당들이 경찰에 체포됐다. 지존파 (사진=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이야기’ 캡처)이들은 오로지 “가진 자들을 모조리 죽여 버리겠다”는 목적 하나로 뭉쳤다. 두목 김기환(당시 25세)를 필두로 강동은(23세), 김현양(23세), 강문섭(21세), 문상록(24세), 백병옥(20세), 송봉은(17세) 등 7명은 1993년 7월부터 1994년 9월까지 5명을 연쇄 살인했다.우발적인 범행이 아니었다. 조직원들은 1년 동안 막노동 등으로 돈을 모아 김기환의 어머니가 살던 전라남도 영광의 집을 ‘살인 공장’으로 리모델링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분홍색 외벽에 민트색 담장으로 둘러싸인 평온한 가정집이었지만 지하에는 창살 감옥과 사체를 은닉하기 위한 사체 소각시설까지 갖췄다.이 과정에서 첫 살인이 발생했다. 1993년 7월, 조직원들이 퇴근 후 홀로 걸어가던 은행원 최미자를 집단으로 성폭행하고 살해했다. 김기환은 “사람 죽이는 시범을 보여 준다”며 피해자의 목을 졸라 직접 살해했다. 또 증거를 인멸하는 방법을 가르치고 조직원들이 교대로 구덩이를 파도록 지시해 시신을 암매장했다. ‘살인 연습’을 한 것이다. 이러한 행위에 죄책감을 느껴 조직에서 탈주를 시도한 최연소 조직원 송봉우가 두 번째 타깃이 됐다. 김기환은 송봉우를 ‘용서해 주겠다’며 구슬린 후 ‘단합대회 하러 가자’며 야산으로 유인해 조직원들과 무참히 때려 죽였다. 1994년 9월, 본격적인 범행에 나선 이들은 범행 대상을 부유층으로 지정하기 위해 모 백화점 고액 거래자 명단을 구입하는 치밀함도 보였다. 또 벤츠나 그랜저 등 고급 승용차를 몰고 다니는 사람을 목표로 삼았다. 8일 새벽, 지존파는 악사 이모씨와 이선영양(27·가명)이 타고 있던 그랜저를 가로막았다. 그랜저를 타긴 했지만 이들이 돈이 없다는 걸 확인한 후 이모 씨는 무참히 살해했다. 이양도 살해하려 했으나 “살려만 주면 뭐든지 하겠다”는 애원에 지하감옥에 가뒀다. 13일 오후, 경기 성남 남서울공원 묘지 근처에서 그랜저 승용차를 발견하고 차의 주인인 중소기업 사장 소씨 부부를 납치했다. 소씨에게 몸값 1억을 요구했고 이중 8000만원을 건네받았으나 소씨 역시 살해됐다. 앞서 살려둔 이양을 공범으로 만들기 위해 그가 직접 소씨에게 공기총을 쏘도록 강요했다. 소씨 아내 또한 살해했다. 지존파는 숨진 소씨 시신을 훼손했다. 김현양은 “담력을 키워야 한다”며 시신 일부를 먹는 만행을 저질렀다. 일당은 소씨 부부의 시신을 지하실에 만들어 놓은 소각장에 넣고 태워버렸다. 시체 타는 냄새와 연기를 위장하기 위해 마당에서 돼지고기를 구워 먹고 마을 사람들에게 나눠주기까지 했다. 지존파 (사진=MBC 캡처)김현양은 소씨를 협박하는 과정에서 무기로 갖고 있던 다이너마이트를 만지다 실수로 손과 발에 상처를 입었다. 이에 김현양은 평소 좋아하던 이양을 데리고 병원으로 향했다. 김현양은 자신이 치료받는 동안 휴대전화와 돈 50만원을 이양에게 맡겼다. 이양은 이 틈을 타 영광에서 대전, 대전에서 서울로 택시를 갈아 타며 필사적인 탈출을 감행했고 16일 새벽 서울 서초 경찰서에 이들의 범행을 신고했다. 이후 19일 일망타진 된 것이다. 1994년 10월 31일 지존파 일당 전원은 강도살인, 사체유기, 사체손괴, 인육섭취, 범죄단체 조직 및 가입죄, 특수강간 등 혐의로 사형이 선고됐다. 단 가담 이틀 만에 체포된 이경숙은 사형에서 제외됐다. 이경숙은 부두목 강동은이 식사 준비와 잡일 등을 시킬 여성 조직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체포 이틀 전 자신의 애인을 데려온 것이었다.이들에 대한 사형집행은 1995년 11월 2일 이뤄졌다.
    홍수현 기자 2023.09.19
    [이데일리 홍수현 기자] 1994년 9월 19일, 대한민국 범죄사에서 가장 엽기적인 기록으로 남겨진 ‘지존파’ 일당들이 경찰에 체포됐다. 지존파 (사진=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이야기’ 캡처)이들은 오로지 “가진 자들을 모조리 죽여 버리겠다”는 목적 하나로 뭉쳤다. 두목 김기환(당시 25세)를 필두로 강동은(23세), 김현양(23세), 강문섭(21세), 문상록(24세), 백병옥(20세), 송봉은(17세) 등 7명은 1993년 7월부터 1994년 9월까지 5명을 연쇄 살인했다.우발적인 범행이 아니었다. 조직원들은 1년 동안 막노동 등으로 돈을 모아 김기환의 어머니가 살던 전라남도 영광의 집을 ‘살인 공장’으로 리모델링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분홍색 외벽에 민트색 담장으로 둘러싸인 평온한 가정집이었지만 지하에는 창살 감옥과 사체를 은닉하기 위한 사체 소각시설까지 갖췄다.이 과정에서 첫 살인이 발생했다. 1993년 7월, 조직원들이 퇴근 후 홀로 걸어가던 은행원 최미자를 집단으로 성폭행하고 살해했다. 김기환은 “사람 죽이는 시범을 보여 준다”며 피해자의 목을 졸라 직접 살해했다. 또 증거를 인멸하는 방법을 가르치고 조직원들이 교대로 구덩이를 파도록 지시해 시신을 암매장했다. ‘살인 연습’을 한 것이다. 이러한 행위에 죄책감을 느껴 조직에서 탈주를 시도한 최연소 조직원 송봉우가 두 번째 타깃이 됐다. 김기환은 송봉우를 ‘용서해 주겠다’며 구슬린 후 ‘단합대회 하러 가자’며 야산으로 유인해 조직원들과 무참히 때려 죽였다. 1994년 9월, 본격적인 범행에 나선 이들은 범행 대상을 부유층으로 지정하기 위해 모 백화점 고액 거래자 명단을 구입하는 치밀함도 보였다. 또 벤츠나 그랜저 등 고급 승용차를 몰고 다니는 사람을 목표로 삼았다. 8일 새벽, 지존파는 악사 이모씨와 이선영양(27·가명)이 타고 있던 그랜저를 가로막았다. 그랜저를 타긴 했지만 이들이 돈이 없다는 걸 확인한 후 이모 씨는 무참히 살해했다. 이양도 살해하려 했으나 “살려만 주면 뭐든지 하겠다”는 애원에 지하감옥에 가뒀다. 13일 오후, 경기 성남 남서울공원 묘지 근처에서 그랜저 승용차를 발견하고 차의 주인인 중소기업 사장 소씨 부부를 납치했다. 소씨에게 몸값 1억을 요구했고 이중 8000만원을 건네받았으나 소씨 역시 살해됐다. 앞서 살려둔 이양을 공범으로 만들기 위해 그가 직접 소씨에게 공기총을 쏘도록 강요했다. 소씨 아내 또한 살해했다. 지존파는 숨진 소씨 시신을 훼손했다. 김현양은 “담력을 키워야 한다”며 시신 일부를 먹는 만행을 저질렀다. 일당은 소씨 부부의 시신을 지하실에 만들어 놓은 소각장에 넣고 태워버렸다. 시체 타는 냄새와 연기를 위장하기 위해 마당에서 돼지고기를 구워 먹고 마을 사람들에게 나눠주기까지 했다. 지존파 (사진=MBC 캡처)김현양은 소씨를 협박하는 과정에서 무기로 갖고 있던 다이너마이트를 만지다 실수로 손과 발에 상처를 입었다. 이에 김현양은 평소 좋아하던 이양을 데리고 병원으로 향했다. 김현양은 자신이 치료받는 동안 휴대전화와 돈 50만원을 이양에게 맡겼다. 이양은 이 틈을 타 영광에서 대전, 대전에서 서울로 택시를 갈아 타며 필사적인 탈출을 감행했고 16일 새벽 서울 서초 경찰서에 이들의 범행을 신고했다. 이후 19일 일망타진 된 것이다. 1994년 10월 31일 지존파 일당 전원은 강도살인, 사체유기, 사체손괴, 인육섭취, 범죄단체 조직 및 가입죄, 특수강간 등 혐의로 사형이 선고됐다. 단 가담 이틀 만에 체포된 이경숙은 사형에서 제외됐다. 이경숙은 부두목 강동은이 식사 준비와 잡일 등을 시킬 여성 조직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체포 이틀 전 자신의 애인을 데려온 것이었다.이들에 대한 사형집행은 1995년 11월 2일 이뤄졌다.
  • “DNA 일치” 33년 만에 ‘화성 연쇄살인사건’ 진범이 밝혀지다 [그해 오늘]
    [이데일리 강소영 기자] “밥은 먹고 다니냐” 해당 대사로 유명한 ‘살인의 추억’은 화성 연쇄살인사건을 다룬 영화로 유명하다. 해당 대사는 여러 건의 범행에도 긴 시간 동안 잡히지 않은 범인을 향한 경고이자 메시지였다.(사진=영화 ‘살인의 추억’ 스틸컷)그렇게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국내 3대 미제 사건으로 남을 뻔했던 ‘화성 연쇄살인사건’은 2019년 9월 18일 DNA 대조를 통해 유력 용의자가 특정됐다. 그는 ‘청주 처제 성폭행 살인 사건’으로 부산교도소에서 25년째 복역 중인 무기수 이춘재(50대)였다. 경기남부지방경찰청에 따르면 이춘재를 특정하기 한 달 전쯤 화성 연쇄살인사건 피해자들이 남긴 증거물들을 다시 살펴보던 도중 한 피해자의 옷에 남아있던 제3의 유전자를 채취했다. 이춘재는 이 1차례 사건의 피해 여성의 속옷에서 검출된 DNA와 일치했다. 해당 피해자는 1990년 11월 15일 살해된 화성 사건 9차 사건의 피해자 13살 중학생이었다.또 다른 1차례 사건 피해자의 유류품 중에서도 이춘재와 일치하는 DNA가 나온 것으로 파악됐다.그는 용의자로 지목된 순간부터 경찰 및 프로파일러와 8차례 대면조사에도 계속 혐의를 부인해 왔으나 돌연 마음을 바꿔 그해 10월 1일 모든 혐의를 인정했다. 이춘재는 화성 사건 9건을 포함한 총 14건의 살해를 고백했다.이춘재는 화성이 아닌 결혼 후 청주에서 벌인 ‘처제 살인 사건’으로 복역 중이었다. 그는 1994년 1월 충북 청주시 흥덕구 자신의 집에 놀러 온 처제 이모 씨(당시 20세)에게 수면제를 탄 음료를 먹인 뒤 성폭행하고 망치 등으로 머리를 수차례 때려 숨지게 한 다음 유기한 혐의로 1심과 2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대법원은 하급심과 달리 “살인 범행을 사전에 계획한 것으로 볼 직접적인 증거가 없다”며 1995년 1월 사건을 고등법원으로 파기 환송했다. 이후 4개월 뒤 파기환송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됐고 그해 형이 확정됐다.결국 이춘재가 교도소에서 시간을 보낼 때 화성 연쇄살인사건의 공소 시효는 만료됐다.이춘재가 화성연쇄살인 범인으로 특정된 보도 화면. (사진=JTBC 화면 캡처)그런데 주목된 점은 이춘재의 살해 시그니처였다. 처제 살해 수법은 화성 연쇄살인 사건과 여러모로 닮아 있었다. 이춘재가 살해한 처제의 시신이 여성용 스타킹으로 묶여 싸여져 있었던 것. 화성 연쇄살인의 시그니처도 이 ‘매듭’에 있었다.1986년 화성 1차 사건부터 4차 사건까지 공통점은 피해자들의 시신이 모두 스타킹으로 결박되어 있었다는 것. 전문가는 방송을 통해 “스타킹으로 매듭을 했다는 것은 피해자가 자신과 오랜 시간 살아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담겨 있다”며 “시그니쳐는 범죄와는 관련이 없는데 계속해서 나타나는 것이다. 이 사건에서 스타킹으로 지은 매듭은 범인의 시그니처”라고 분석했다.또 다른 전문가도 “밧줄을 쓰면 금방 할 수 있는 일을 스타킹으로 했다. 이는 비효율적인 도구다. 그리고 이것은 사냥감을 놓쳐서는 안 되겠다는 의미에서 나온 행동으로 보인다”고 했다. 1987년 1월 10일 발생한 5차 사건에서 이춘재의 DNA가 드러났다. 피해자는 18세 고등학생으로 태안읍 황계리 논바닥에서 스타킹으로 결박돼 숨진 채 발견됐다. 이후 4개월 뒤 5월 2일 퇴근하는 남편에게 우산을 가져다주기 위해 집을 나선 30세 여성이 태안읍 진안리 야산에서 성폭행 당한 뒤 숨진 것으로 보이는 6차 피해자가 발견됐다.1988년 9월 7일 7차 사건이 일어났다. 52세 여성이 귀가하던 중 피습돼 팔탄면 한 농수로에서 옷가지로 양손이 결박돼 숨진 채 발견됐다. 이 이후 성폭행 현장을 가까스로 탈출한 피해 여성과 용의자를 태운 버스운전사 등의 진술을 바탕으로 범인을 24세부터 27세까지 키 165~170cm의 호리호리한 체격의 남성으로 특정됐다. 이는 사건을 수사하던 경찰이 1988년 작성해 배포한 몽타주였으며, 이춘재의 모습과 흡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7차 사건이 일어난 뒤 잠잠할 줄 알았으나 2년 2개월 뒤인 1990년 11월 15일 태안읍 병점 5리 야산에서 발견된 13세 중학생이 발견됐다. 피해자 역시 스타킹으로 결박된 상태였다. 9차 사건이었다. 여기서 경찰은 범인의 체액을 통해 DNA를 채취했고 B형이라고 분석했다. 5개월 뒤 1991년 4월 3일 69세 여성이 동탄면 야산에서 숨진 채 발견됐고, 이 사건을 마지막으로 화성 연쇄살인은 막을 내렸다.그러나 이춘재는 9건의 화성 사건 외에도 화성 3건과 청주 2건 살인 사건을 저질렀다고 자백했다. (사진=연합뉴스)이후 이춘재는 총 14건의 살인과 9건의 강간 혐의가 인정됐지만 공소 시효 만료로 ‘공소권 없음’ 처리됐다. 죄를 물을 수 없는 사건이었지만 33년 만에 ‘화성 연쇄살인인사건’에서 ‘이춘재 연쇄살인사건’으로 변경된 것이다. 지난 6월 15일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에 출연한 수원남부경찰서 강력계 이성준 형사는 이춘재를 직접 대면하며 느낀 느낌을 이렇게 밝혔다.“범행을 하는 장면을 묘사할 거 아닌가. 어떻게 피해자를 조우했고 어떻게 제압해서 어디로 끌고 가서 어떻게 범행을 하고, 이런 것들을 이제 영화에나 나올법한 얘기들을 덤덤하게 했다. 남 얘기하듯이. ‘인간세상에 악마가 있다면, 이춘재가 악마구나’ 그런 생각을 하게 됐다.”이춘재는 용의자로 특정된 후 이 형사와의 접견에서 이같은 말을 남기기도 했다고 한다. 그는 “처음 접견 왔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교도관에게 어디서 왔냐고 물으니 경기도에서 왔다고 하더라. 경기도라면 화성 사건 밖에 없으니, 그때부터 왜 왔는지 알았다. 언젠가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다”며 “몇 년 전 교도소에 있을 때 입안 점막에서 DNA를 채취해 갔다. 그때 곧 저를 잡으러 올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좀 늦게 오셨네요.”
    강소영 기자 2023.09.18
    [이데일리 강소영 기자] “밥은 먹고 다니냐” 해당 대사로 유명한 ‘살인의 추억’은 화성 연쇄살인사건을 다룬 영화로 유명하다. 해당 대사는 여러 건의 범행에도 긴 시간 동안 잡히지 않은 범인을 향한 경고이자 메시지였다.(사진=영화 ‘살인의 추억’ 스틸컷)그렇게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국내 3대 미제 사건으로 남을 뻔했던 ‘화성 연쇄살인사건’은 2019년 9월 18일 DNA 대조를 통해 유력 용의자가 특정됐다. 그는 ‘청주 처제 성폭행 살인 사건’으로 부산교도소에서 25년째 복역 중인 무기수 이춘재(50대)였다. 경기남부지방경찰청에 따르면 이춘재를 특정하기 한 달 전쯤 화성 연쇄살인사건 피해자들이 남긴 증거물들을 다시 살펴보던 도중 한 피해자의 옷에 남아있던 제3의 유전자를 채취했다. 이춘재는 이 1차례 사건의 피해 여성의 속옷에서 검출된 DNA와 일치했다. 해당 피해자는 1990년 11월 15일 살해된 화성 사건 9차 사건의 피해자 13살 중학생이었다.또 다른 1차례 사건 피해자의 유류품 중에서도 이춘재와 일치하는 DNA가 나온 것으로 파악됐다.그는 용의자로 지목된 순간부터 경찰 및 프로파일러와 8차례 대면조사에도 계속 혐의를 부인해 왔으나 돌연 마음을 바꿔 그해 10월 1일 모든 혐의를 인정했다. 이춘재는 화성 사건 9건을 포함한 총 14건의 살해를 고백했다.이춘재는 화성이 아닌 결혼 후 청주에서 벌인 ‘처제 살인 사건’으로 복역 중이었다. 그는 1994년 1월 충북 청주시 흥덕구 자신의 집에 놀러 온 처제 이모 씨(당시 20세)에게 수면제를 탄 음료를 먹인 뒤 성폭행하고 망치 등으로 머리를 수차례 때려 숨지게 한 다음 유기한 혐의로 1심과 2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대법원은 하급심과 달리 “살인 범행을 사전에 계획한 것으로 볼 직접적인 증거가 없다”며 1995년 1월 사건을 고등법원으로 파기 환송했다. 이후 4개월 뒤 파기환송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됐고 그해 형이 확정됐다.결국 이춘재가 교도소에서 시간을 보낼 때 화성 연쇄살인사건의 공소 시효는 만료됐다.이춘재가 화성연쇄살인 범인으로 특정된 보도 화면. (사진=JTBC 화면 캡처)그런데 주목된 점은 이춘재의 살해 시그니처였다. 처제 살해 수법은 화성 연쇄살인 사건과 여러모로 닮아 있었다. 이춘재가 살해한 처제의 시신이 여성용 스타킹으로 묶여 싸여져 있었던 것. 화성 연쇄살인의 시그니처도 이 ‘매듭’에 있었다.1986년 화성 1차 사건부터 4차 사건까지 공통점은 피해자들의 시신이 모두 스타킹으로 결박되어 있었다는 것. 전문가는 방송을 통해 “스타킹으로 매듭을 했다는 것은 피해자가 자신과 오랜 시간 살아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담겨 있다”며 “시그니쳐는 범죄와는 관련이 없는데 계속해서 나타나는 것이다. 이 사건에서 스타킹으로 지은 매듭은 범인의 시그니처”라고 분석했다.또 다른 전문가도 “밧줄을 쓰면 금방 할 수 있는 일을 스타킹으로 했다. 이는 비효율적인 도구다. 그리고 이것은 사냥감을 놓쳐서는 안 되겠다는 의미에서 나온 행동으로 보인다”고 했다. 1987년 1월 10일 발생한 5차 사건에서 이춘재의 DNA가 드러났다. 피해자는 18세 고등학생으로 태안읍 황계리 논바닥에서 스타킹으로 결박돼 숨진 채 발견됐다. 이후 4개월 뒤 5월 2일 퇴근하는 남편에게 우산을 가져다주기 위해 집을 나선 30세 여성이 태안읍 진안리 야산에서 성폭행 당한 뒤 숨진 것으로 보이는 6차 피해자가 발견됐다.1988년 9월 7일 7차 사건이 일어났다. 52세 여성이 귀가하던 중 피습돼 팔탄면 한 농수로에서 옷가지로 양손이 결박돼 숨진 채 발견됐다. 이 이후 성폭행 현장을 가까스로 탈출한 피해 여성과 용의자를 태운 버스운전사 등의 진술을 바탕으로 범인을 24세부터 27세까지 키 165~170cm의 호리호리한 체격의 남성으로 특정됐다. 이는 사건을 수사하던 경찰이 1988년 작성해 배포한 몽타주였으며, 이춘재의 모습과 흡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7차 사건이 일어난 뒤 잠잠할 줄 알았으나 2년 2개월 뒤인 1990년 11월 15일 태안읍 병점 5리 야산에서 발견된 13세 중학생이 발견됐다. 피해자 역시 스타킹으로 결박된 상태였다. 9차 사건이었다. 여기서 경찰은 범인의 체액을 통해 DNA를 채취했고 B형이라고 분석했다. 5개월 뒤 1991년 4월 3일 69세 여성이 동탄면 야산에서 숨진 채 발견됐고, 이 사건을 마지막으로 화성 연쇄살인은 막을 내렸다.그러나 이춘재는 9건의 화성 사건 외에도 화성 3건과 청주 2건 살인 사건을 저질렀다고 자백했다. (사진=연합뉴스)이후 이춘재는 총 14건의 살인과 9건의 강간 혐의가 인정됐지만 공소 시효 만료로 ‘공소권 없음’ 처리됐다. 죄를 물을 수 없는 사건이었지만 33년 만에 ‘화성 연쇄살인인사건’에서 ‘이춘재 연쇄살인사건’으로 변경된 것이다. 지난 6월 15일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에 출연한 수원남부경찰서 강력계 이성준 형사는 이춘재를 직접 대면하며 느낀 느낌을 이렇게 밝혔다.“범행을 하는 장면을 묘사할 거 아닌가. 어떻게 피해자를 조우했고 어떻게 제압해서 어디로 끌고 가서 어떻게 범행을 하고, 이런 것들을 이제 영화에나 나올법한 얘기들을 덤덤하게 했다. 남 얘기하듯이. ‘인간세상에 악마가 있다면, 이춘재가 악마구나’ 그런 생각을 하게 됐다.”이춘재는 용의자로 특정된 후 이 형사와의 접견에서 이같은 말을 남기기도 했다고 한다. 그는 “처음 접견 왔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교도관에게 어디서 왔냐고 물으니 경기도에서 왔다고 하더라. 경기도라면 화성 사건 밖에 없으니, 그때부터 왜 왔는지 알았다. 언젠가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다”며 “몇 년 전 교도소에 있을 때 입안 점막에서 DNA를 채취해 갔다. 그때 곧 저를 잡으러 올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좀 늦게 오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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