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정책부

최정희

기자

BOK워치

  • '생산성' 높이는 구조개혁…한은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나[BOK워치]
    한국은행 전경(사진=한은)[이데일리 최정희 기자] 한국은행은 고령화 사회에 대비해 ‘돌봄서비스 임금’을 낮추자는 파격 제안을 했다. 유례 없는 저출산·고령화로 잠재성장률이 하락하는 상황에선 기존 체계를 뒤흔드는 ‘구조개혁’ 없이는 더 나은 미래를 기대하기 어려운 지경에 왔을 지도 모른다. 한은이 통화정책 외에 구조개혁을 통한 생산성 높이기에 목소리를 내는 것은 잠재성장률을 올리는 데 도움을 줘 통화정책 운용의 폭을 높이는 데 긍정적일 수 있다. 그러나 아쉬운 점은 있다. 한은이 고금리 환경에서 생산성을 높이는 방법은 없을 지에 대한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에 이은 고금리 정책 등 경제를 뒤흔들 만한 사건들이 연속됐음에도 ‘클렌징 이팩트(Cleansing effect·불경기에 효율이 부족한 기업이 퇴출돼 시장 체질이 개선되는 현상)’는 없었다. 생산성을 높이는 방법에는 고생산성 부문을 키우는 것도 있지만 저생산성 부문을 시장에서 퇴출하는 부문도 크다. 하지만 이는 논의 대상에서 배제돼 있다.출처: 한국은행◇ ‘코로나’에 고금리까지 닥쳤지만…자영업자 늘고 폐업률 줄어위기가 발생하면 효율이 떨어지거나 생산성이 낮은 자영업자·노동자 및 한계기업이 시장에서 퇴출되면서 전체 구성의 변화로 ‘클렌징 이팩트’가 생겼다. 위기는 고통스럽지만 생산성을 높이기도 했다. 공부를 못하는 학생들이 전학을 갈 경우 반 평균 성적이 올라가는 효과와 유사하다. 그러나 팬데믹 위기에선 이러한 ‘클렌징 이팩트’가 없었다. 서영경 한은 금융통화위원회 위원은 5일 한은-한국개발연구원(KDI) 노동시장 세미나에서 한은 분석을 인용해 “팬데믹 이후 위기의 청산효과(클렌징 이팩트)가 없었다”고 발표했다.한은 분석에 따르면 연간 자영업자 수는 외환위기 당시인 1998~2000년까지 3년간, 카드 사태가 있었던 2003년, 금융위기였던 2009~2011년 급격히 감소했다. 그러나 코로나19였던 2020~2022년에는 감소하긴 했으나 감소폭이 크지 않았다. 위기 전과 비교해 위기 때 자영업자가 가장 크게 감소한 규모를 분석해보면 외환위기때는 28만4000명(1998년)이 감소했고, 카드사태 당시엔 14만6000명(2003년), 금융위기 때는 36만3000명(2010년)이 줄었다. 그러나 팬데믹 때는 9300명(2021년) 감소하는 데 그쳤다. 이마저도 2022년 회복되기 시작해 2023년 자영업자 수는 568만9000명으로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560만5000명)보다 많아졌다. 정선영 한은 거시분석팀 차장은 “우리나라, 유럽 등은 코로나19 충격이 왔을 때 정부에서 고용 유지 정책을 하면서 클렌징 이팩트가 덜 해진 부분들이 있는 반면 미국은 고용시장 탈락 후 실업수당을 주는 방식으로 고용정책을 펴면서 클렌징 이팩트가 커졌다”고 설명했다. 미국에선 인공지능(AI) 등의 발전과 맞물려 산업 구조조정까지 이뤄지면서 총노동시간 대비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팬데믹 이전(2011~2019년) 연평균 0.5%에서 팬데믹 이후(2020~2023년)엔 1.4% 증가로 세 배 가까이 뛰었다. 반면 우리나라는 같은 기간 2.4%에서 1.5%로 하락했다.금융위기 때도 ‘고용 유지 정책’을 폈는데 이번 위기때 유독 클렌징 이팩트가 적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세통계연도에 따르면 폐업자 수는 2019년 92만명에 달했으나 2022년 86만명으로 줄어들고 있다. 폐업률도 같은 기간 11.5%에서 9.0%로 줄었다. 정 차장은 “폐업을 하고 싶어도 폐업 비용 때문에 못하는 경우가 많은 데다 ‘고용 유지’에 정책 초점이 맞춰지기 때문에 폐업률이 올라가는 상황은 아니다”고 말했다. 코로나 위기때는 폐업할 때보다 사업체 유지시 받는 혜택이 컸던 반면 금융위기 때는 폐업 자영업자에 대한 지원책이 더 컸다.출처: 국세청◇ 고금리 ‘내수침체’에도 클렌징 이팩트는 없어 지난 4년간 코로나19 위기가 닥쳤고 뒤를 이어 물가를 잡기 위한 ‘고금리’ 행진이 이어졌다. 통상 위기때는 금리가 낮아지고 재정 퍼붓기가 이어졌으나 이번 위기때는 실물경제 위기가 완연하게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고물가에 대응해 통화와 재정정책이 모두 ‘긴축’적으로 변했다는 점이 다른 위기때와 달랐다.그러나 고금리로 인한 내수침체에도 클렌징 이팩트는 가시화되지 않았다. 시장금리 상승은 ‘돈의 비용’이 올라가는 것이기 때문에 돈이 좀 더 효율적인 곳으로 이동하게 돼 있음에도 한계기업은 퇴출되지 않고 있다. 한은에 따르면 3년 연속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못 내는 ‘한계기업’은 전체 외부감사 대상 기업 대비 15.5%(2022년)에 달했고 이들의 대출금은 금융기관 전체 차입금의 17.5%로 높았다. 팬데믹 이전 14% 안팎에서 급증한 것이다. 재정, 통화정책이 긴축되더라도 정책이 저생산성 부문인 ‘취약계층’에 집중된 영향이다. 취약계층을 지원하더라도 이들이 생산성이 높은 곳으로 이동하게끔 도와주는 방식이 돼야 했는데 이런 부분은 고려되지 못했다. 한은이 운영하는 ‘금융중개지원대출’도 마찬가지였다. 올해 초 감사원 감사 결과 기술형 창업 기업에 지원되는 금중대는 지원 의도와 거리가 먼 편의점, 피자 음식점, 음악학원, 변호사업, 동물병원, 주차장업 등에 지원되고 있었다. 이에 더해 한은은 올해부터 ‘지방 중소기업’ 지원을 위한 ‘금중대’를 도입했다. 한계기업 구조조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지방 중소기업 지원은 한은이 강조하는 ‘생산성’을 높이는 방향과는 전혀 다른 일일 수 있다.한은이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구조개혁의 필요성에 목소리를 내는 것은 환영하지만 한은의 금리, 대출 등 각종 정책들이 생산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지에 대해서도 고민이 필요하다. 한 금통위원은 1월 금통위 의사록에서 “불황은 고통스럽지만 경쟁력을 상실한 부문을 정리하고 자원을 보다 생산적인 곳에 쓰이게 하는 소위 클렌징 이팩트도 기대할 수 있다”고 밝혔다. 우리는 ‘불황’을 어떻게 보내고 있는가.
    최정희 기자 2024.03.12
    한국은행 전경(사진=한은)[이데일리 최정희 기자] 한국은행은 고령화 사회에 대비해 ‘돌봄서비스 임금’을 낮추자는 파격 제안을 했다. 유례 없는 저출산·고령화로 잠재성장률이 하락하는 상황에선 기존 체계를 뒤흔드는 ‘구조개혁’ 없이는 더 나은 미래를 기대하기 어려운 지경에 왔을 지도 모른다. 한은이 통화정책 외에 구조개혁을 통한 생산성 높이기에 목소리를 내는 것은 잠재성장률을 올리는 데 도움을 줘 통화정책 운용의 폭을 높이는 데 긍정적일 수 있다. 그러나 아쉬운 점은 있다. 한은이 고금리 환경에서 생산성을 높이는 방법은 없을 지에 대한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에 이은 고금리 정책 등 경제를 뒤흔들 만한 사건들이 연속됐음에도 ‘클렌징 이팩트(Cleansing effect·불경기에 효율이 부족한 기업이 퇴출돼 시장 체질이 개선되는 현상)’는 없었다. 생산성을 높이는 방법에는 고생산성 부문을 키우는 것도 있지만 저생산성 부문을 시장에서 퇴출하는 부문도 크다. 하지만 이는 논의 대상에서 배제돼 있다.출처: 한국은행◇ ‘코로나’에 고금리까지 닥쳤지만…자영업자 늘고 폐업률 줄어위기가 발생하면 효율이 떨어지거나 생산성이 낮은 자영업자·노동자 및 한계기업이 시장에서 퇴출되면서 전체 구성의 변화로 ‘클렌징 이팩트’가 생겼다. 위기는 고통스럽지만 생산성을 높이기도 했다. 공부를 못하는 학생들이 전학을 갈 경우 반 평균 성적이 올라가는 효과와 유사하다. 그러나 팬데믹 위기에선 이러한 ‘클렌징 이팩트’가 없었다. 서영경 한은 금융통화위원회 위원은 5일 한은-한국개발연구원(KDI) 노동시장 세미나에서 한은 분석을 인용해 “팬데믹 이후 위기의 청산효과(클렌징 이팩트)가 없었다”고 발표했다.한은 분석에 따르면 연간 자영업자 수는 외환위기 당시인 1998~2000년까지 3년간, 카드 사태가 있었던 2003년, 금융위기였던 2009~2011년 급격히 감소했다. 그러나 코로나19였던 2020~2022년에는 감소하긴 했으나 감소폭이 크지 않았다. 위기 전과 비교해 위기 때 자영업자가 가장 크게 감소한 규모를 분석해보면 외환위기때는 28만4000명(1998년)이 감소했고, 카드사태 당시엔 14만6000명(2003년), 금융위기 때는 36만3000명(2010년)이 줄었다. 그러나 팬데믹 때는 9300명(2021년) 감소하는 데 그쳤다. 이마저도 2022년 회복되기 시작해 2023년 자영업자 수는 568만9000명으로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560만5000명)보다 많아졌다. 정선영 한은 거시분석팀 차장은 “우리나라, 유럽 등은 코로나19 충격이 왔을 때 정부에서 고용 유지 정책을 하면서 클렌징 이팩트가 덜 해진 부분들이 있는 반면 미국은 고용시장 탈락 후 실업수당을 주는 방식으로 고용정책을 펴면서 클렌징 이팩트가 커졌다”고 설명했다. 미국에선 인공지능(AI) 등의 발전과 맞물려 산업 구조조정까지 이뤄지면서 총노동시간 대비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팬데믹 이전(2011~2019년) 연평균 0.5%에서 팬데믹 이후(2020~2023년)엔 1.4% 증가로 세 배 가까이 뛰었다. 반면 우리나라는 같은 기간 2.4%에서 1.5%로 하락했다.금융위기 때도 ‘고용 유지 정책’을 폈는데 이번 위기때 유독 클렌징 이팩트가 적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세통계연도에 따르면 폐업자 수는 2019년 92만명에 달했으나 2022년 86만명으로 줄어들고 있다. 폐업률도 같은 기간 11.5%에서 9.0%로 줄었다. 정 차장은 “폐업을 하고 싶어도 폐업 비용 때문에 못하는 경우가 많은 데다 ‘고용 유지’에 정책 초점이 맞춰지기 때문에 폐업률이 올라가는 상황은 아니다”고 말했다. 코로나 위기때는 폐업할 때보다 사업체 유지시 받는 혜택이 컸던 반면 금융위기 때는 폐업 자영업자에 대한 지원책이 더 컸다.출처: 국세청◇ 고금리 ‘내수침체’에도 클렌징 이팩트는 없어 지난 4년간 코로나19 위기가 닥쳤고 뒤를 이어 물가를 잡기 위한 ‘고금리’ 행진이 이어졌다. 통상 위기때는 금리가 낮아지고 재정 퍼붓기가 이어졌으나 이번 위기때는 실물경제 위기가 완연하게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고물가에 대응해 통화와 재정정책이 모두 ‘긴축’적으로 변했다는 점이 다른 위기때와 달랐다.그러나 고금리로 인한 내수침체에도 클렌징 이팩트는 가시화되지 않았다. 시장금리 상승은 ‘돈의 비용’이 올라가는 것이기 때문에 돈이 좀 더 효율적인 곳으로 이동하게 돼 있음에도 한계기업은 퇴출되지 않고 있다. 한은에 따르면 3년 연속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못 내는 ‘한계기업’은 전체 외부감사 대상 기업 대비 15.5%(2022년)에 달했고 이들의 대출금은 금융기관 전체 차입금의 17.5%로 높았다. 팬데믹 이전 14% 안팎에서 급증한 것이다. 재정, 통화정책이 긴축되더라도 정책이 저생산성 부문인 ‘취약계층’에 집중된 영향이다. 취약계층을 지원하더라도 이들이 생산성이 높은 곳으로 이동하게끔 도와주는 방식이 돼야 했는데 이런 부분은 고려되지 못했다. 한은이 운영하는 ‘금융중개지원대출’도 마찬가지였다. 올해 초 감사원 감사 결과 기술형 창업 기업에 지원되는 금중대는 지원 의도와 거리가 먼 편의점, 피자 음식점, 음악학원, 변호사업, 동물병원, 주차장업 등에 지원되고 있었다. 이에 더해 한은은 올해부터 ‘지방 중소기업’ 지원을 위한 ‘금중대’를 도입했다. 한계기업 구조조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지방 중소기업 지원은 한은이 강조하는 ‘생산성’을 높이는 방향과는 전혀 다른 일일 수 있다.한은이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구조개혁의 필요성에 목소리를 내는 것은 환영하지만 한은의 금리, 대출 등 각종 정책들이 생산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지에 대해서도 고민이 필요하다. 한 금통위원은 1월 금통위 의사록에서 “불황은 고통스럽지만 경쟁력을 상실한 부문을 정리하고 자원을 보다 생산적인 곳에 쓰이게 하는 소위 클렌징 이팩트도 기대할 수 있다”고 밝혔다. 우리는 ‘불황’을 어떻게 보내고 있는가.
  • 7월 피벗설 '솔솔'…금통위 합의 없는 '6개월 시계'[BOK워치]
    [이데일리 하상렬 기자] “현실적으로 6개월 이상이 될 것으로 보지만, 덜 될 수도 있다.”(2023년 11월 금통위)“오늘 시점으로 제 사견으로는 6개월 정도는 금리 인하를 예측하긴 쉽지 않은 상황이다.”(2024년 1월 금통위)“개인적으로 상반기 내 금리 인하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는 의견을 유지한다. 그 이후는 5월 수정경제전망 때 숫자를 보고 판단할 수 있을 것 같다.”(2024년 2월 금통위)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 통화정책방향 결정문에 작년 11월부터 등장한 ‘물가상승률이 목표수준으로 수렴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 때까지 통화긴축 기조를 충분히 장기간 지속할 것’이라는 표현에 대한 이창용 한은 총재의 해석이다. ‘충분히 장기간’이라는 표현이 어느 정도 기간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금통위 기자회견 질문에서 비롯된 이 총재의 답변은 ‘6개월 포워드가이던스’로 굳어지고 있다.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22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통화정책방향을 설명하고 있다.(사진=한국은행 제공)◇5월 인하 신호 주고…7월 인하?시장은 5월부터 피벗(통화정책 전환) 신호를 준 뒤, 7월 금리를 인하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5월 금통위에서 금리 인하를 주장하는 소수의견이 처음으로 등장하고, 7월부터 금리를 내린다는 것이다. 이 총재는 재차 개인적인 의견임을 밝혔지만, 시장은 바뀐 표현에 주목했다. 시점을 기존 ‘6개월 정도’에서 ‘상반기’로 명시하면서 하반기부터는 금리 인하가 단행될 수 있다는 여지를 줬다는 해석이다.이번 금통위에서 금통위원 6명 중 1명이 향후 3개월 시계에서 금리 인하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는 점도 ‘7월 피벗설’을 뒷받침했다. 이 총재 기자회견에 따르면 한 금통위원은 현 기준금리(연 3.5%)보다 낮은 수준으로 금리를 인하할 가능성도 열어둬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소비가 당초 전망보다 부진해 물가상승 압력이 약화될 것이고, 내수 부진도 사전에 대비해야 하기 때문에 조기 금리 인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판단이다.한은은 이번 수정경제전망에서 올해 연간 민간소비 증가율을 1.6%로 제시, 작년 11월 전망치(1.9%)에서 0.3%포인트 하향조정했다. 건설투자도 마이너스(-) 1.8%에서 -2.6%로 0.8%포인트 하향했다.문제는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인하 시점이 늦춰지는 상황에서 연준에 독립적으로 한은이 금리를 내릴 수 있는 지다. 미국의 ‘1월 물가 쇼크’ 이후 연준의 금리 인하 시점에 대한 시장 기대는 기존 3월에서 6월 이후로 후퇴하고 있다. 이 총재는 전날 기자회견에서 “미국보다 먼저 금리를 내릴 수 있냐고 하면 답은 못하겠다”면서도 “과거 경험을 보면 미국이 피벗을 할 경우 각국이 차별화된 통화정책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진다”고 말했다. 이달 초 한국경영자총협회 포럼에 참석해 “미국·유럽 등 주요국들이 (금리를) 빨리 내린다고 해서 저희가 빨리 내릴 것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고 언급한 것과는 미묘하게 다르다.연준의 피벗이 유력하다면 각국 통화정책의 차별성이 커진다는 것은 결국 국내 성장과 물가, 금융환경 등 국내 여건이 대외 요인보다 더 중요해진다는 의미다. 한은의 이번 경제전망처럼 소비를 중심으로 내수 부진이 심화하고, 물가상승률이 목표 수준(2%)으로 도달한다는 확신이 형성되면 연준 정책과 관계없이 통화정책 전환이 가능한 셈이다. 연준의 피벗 시점 지연이 반드시 한은의 금리 인하 시기를 늦추는 요인은 아니라는 것. 이같은 맥락에서 이 총재는 5월 경제전망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일각에선 5월 경제전망 때 경제성장률과 물가상승률 모두 하향조정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그렇게 된다면 7월 금리 인하 근거는 더욱 탄탄해진다. 한은은 올해 성장률과 물가상승률을 각각 2.1%, 2.6%로 제시하며 3개월 전 전망을 유지했다. 한은은 수출 호조가 내수 부진을 만회한다고 분석하고 있다. 다만 세계 교역성장률이 0.2%포인트 하향 조정된 점은 수출 호조가 예상보다 뚜렷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의구심이 나오는 부분이다. 물가는 불확실성이 줄었다고 평가됐다. 특히 올해 연간 근원물가 상승률 전망치를 2.2%로 기존 전망(2.3%)보다 하향했다. 이 총재는 “근원물가를 기준으로 하면 올해 말 목표치인 2%에 수렴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22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에서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사진=한국은행 제공)◇금통위 합의 없는 6개월 포워드가이던스중앙은행은 시장참가자들과의 의사소통을 끊임없이 고민한다. 여러 방법 중 대표적인 것이 포워드가이던스다. 포워드가이던스는 통화정책방향을 선제로 제시함으로써 시장 변동성을 줄이는 목적을 가진다. 이 총재는 ‘조건부 포워드가이던스’를 택했다. 현 시점 경제전망을 전제로 금리 수준을 전망한다는 것이다. ‘이창용 체제’ 금통위는 2022년 11월부터 금통위 합의를 거쳐 금통위원 개개인의 포워드가이던스를 제시했다. 금통위원들의 3개월 후 금리 수준에 대한 판단을 공개하는 방식이다.포워드가이던스는 단점도 있다. 자칫 답을 정해놓고 경제전망을 하는 꼴이 될 수도 있고, 포워드가이던스와 다르게 통화정책이 운용된다면 중앙은행의 신뢰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포워드가이던스는 시장과 중앙은행 사이 신뢰가 바탕이 돼야 한다. 중앙은행이 신뢰를 잃으면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없다. 이번 ‘6개월 포워드가이던스’는 금통위 합의가 없었다. 이 총재가 금통위 논의 안건으로 올렸지만, 금통위원들의 반대가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총재는 전날 기자회견에서 포워드가이던스 확장 논의를 묻는 질의에 “금통위원들과 상의하고 있다”며 “내부적으로 테스트를 해봐야 하므로 연내 시행은 어려울 것”이라고 답했다.호주중앙은행(RBA)은 과거 잘못된 포워드가이던스로 시장 신뢰를 잃은 바 있다. 필립 로우 전 호주중앙은행 총재는 2021년 11월 인플레이션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하면서 각국 중앙은행들이 기준금리 인상을 시작할 때, “2024년까지 현 금리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로우 전 총재는 2022년 5월부터 15개월간 기준금리를 400bp(1bp=0.01%포인트)나 올렸다. 시장 신뢰를 잃은 로우 전 총재는 30년 만에 처음으로 연임에 실패한 총재로 남았다.
    하상렬 기자 2024.02.25
    [이데일리 하상렬 기자] “현실적으로 6개월 이상이 될 것으로 보지만, 덜 될 수도 있다.”(2023년 11월 금통위)“오늘 시점으로 제 사견으로는 6개월 정도는 금리 인하를 예측하긴 쉽지 않은 상황이다.”(2024년 1월 금통위)“개인적으로 상반기 내 금리 인하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는 의견을 유지한다. 그 이후는 5월 수정경제전망 때 숫자를 보고 판단할 수 있을 것 같다.”(2024년 2월 금통위)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 통화정책방향 결정문에 작년 11월부터 등장한 ‘물가상승률이 목표수준으로 수렴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 때까지 통화긴축 기조를 충분히 장기간 지속할 것’이라는 표현에 대한 이창용 한은 총재의 해석이다. ‘충분히 장기간’이라는 표현이 어느 정도 기간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금통위 기자회견 질문에서 비롯된 이 총재의 답변은 ‘6개월 포워드가이던스’로 굳어지고 있다.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22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통화정책방향을 설명하고 있다.(사진=한국은행 제공)◇5월 인하 신호 주고…7월 인하?시장은 5월부터 피벗(통화정책 전환) 신호를 준 뒤, 7월 금리를 인하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5월 금통위에서 금리 인하를 주장하는 소수의견이 처음으로 등장하고, 7월부터 금리를 내린다는 것이다. 이 총재는 재차 개인적인 의견임을 밝혔지만, 시장은 바뀐 표현에 주목했다. 시점을 기존 ‘6개월 정도’에서 ‘상반기’로 명시하면서 하반기부터는 금리 인하가 단행될 수 있다는 여지를 줬다는 해석이다.이번 금통위에서 금통위원 6명 중 1명이 향후 3개월 시계에서 금리 인하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는 점도 ‘7월 피벗설’을 뒷받침했다. 이 총재 기자회견에 따르면 한 금통위원은 현 기준금리(연 3.5%)보다 낮은 수준으로 금리를 인하할 가능성도 열어둬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소비가 당초 전망보다 부진해 물가상승 압력이 약화될 것이고, 내수 부진도 사전에 대비해야 하기 때문에 조기 금리 인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판단이다.한은은 이번 수정경제전망에서 올해 연간 민간소비 증가율을 1.6%로 제시, 작년 11월 전망치(1.9%)에서 0.3%포인트 하향조정했다. 건설투자도 마이너스(-) 1.8%에서 -2.6%로 0.8%포인트 하향했다.문제는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인하 시점이 늦춰지는 상황에서 연준에 독립적으로 한은이 금리를 내릴 수 있는 지다. 미국의 ‘1월 물가 쇼크’ 이후 연준의 금리 인하 시점에 대한 시장 기대는 기존 3월에서 6월 이후로 후퇴하고 있다. 이 총재는 전날 기자회견에서 “미국보다 먼저 금리를 내릴 수 있냐고 하면 답은 못하겠다”면서도 “과거 경험을 보면 미국이 피벗을 할 경우 각국이 차별화된 통화정책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진다”고 말했다. 이달 초 한국경영자총협회 포럼에 참석해 “미국·유럽 등 주요국들이 (금리를) 빨리 내린다고 해서 저희가 빨리 내릴 것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고 언급한 것과는 미묘하게 다르다.연준의 피벗이 유력하다면 각국 통화정책의 차별성이 커진다는 것은 결국 국내 성장과 물가, 금융환경 등 국내 여건이 대외 요인보다 더 중요해진다는 의미다. 한은의 이번 경제전망처럼 소비를 중심으로 내수 부진이 심화하고, 물가상승률이 목표 수준(2%)으로 도달한다는 확신이 형성되면 연준 정책과 관계없이 통화정책 전환이 가능한 셈이다. 연준의 피벗 시점 지연이 반드시 한은의 금리 인하 시기를 늦추는 요인은 아니라는 것. 이같은 맥락에서 이 총재는 5월 경제전망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일각에선 5월 경제전망 때 경제성장률과 물가상승률 모두 하향조정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그렇게 된다면 7월 금리 인하 근거는 더욱 탄탄해진다. 한은은 올해 성장률과 물가상승률을 각각 2.1%, 2.6%로 제시하며 3개월 전 전망을 유지했다. 한은은 수출 호조가 내수 부진을 만회한다고 분석하고 있다. 다만 세계 교역성장률이 0.2%포인트 하향 조정된 점은 수출 호조가 예상보다 뚜렷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의구심이 나오는 부분이다. 물가는 불확실성이 줄었다고 평가됐다. 특히 올해 연간 근원물가 상승률 전망치를 2.2%로 기존 전망(2.3%)보다 하향했다. 이 총재는 “근원물가를 기준으로 하면 올해 말 목표치인 2%에 수렴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22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에서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사진=한국은행 제공)◇금통위 합의 없는 6개월 포워드가이던스중앙은행은 시장참가자들과의 의사소통을 끊임없이 고민한다. 여러 방법 중 대표적인 것이 포워드가이던스다. 포워드가이던스는 통화정책방향을 선제로 제시함으로써 시장 변동성을 줄이는 목적을 가진다. 이 총재는 ‘조건부 포워드가이던스’를 택했다. 현 시점 경제전망을 전제로 금리 수준을 전망한다는 것이다. ‘이창용 체제’ 금통위는 2022년 11월부터 금통위 합의를 거쳐 금통위원 개개인의 포워드가이던스를 제시했다. 금통위원들의 3개월 후 금리 수준에 대한 판단을 공개하는 방식이다.포워드가이던스는 단점도 있다. 자칫 답을 정해놓고 경제전망을 하는 꼴이 될 수도 있고, 포워드가이던스와 다르게 통화정책이 운용된다면 중앙은행의 신뢰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포워드가이던스는 시장과 중앙은행 사이 신뢰가 바탕이 돼야 한다. 중앙은행이 신뢰를 잃으면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없다. 이번 ‘6개월 포워드가이던스’는 금통위 합의가 없었다. 이 총재가 금통위 논의 안건으로 올렸지만, 금통위원들의 반대가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총재는 전날 기자회견에서 포워드가이던스 확장 논의를 묻는 질의에 “금통위원들과 상의하고 있다”며 “내부적으로 테스트를 해봐야 하므로 연내 시행은 어려울 것”이라고 답했다.호주중앙은행(RBA)은 과거 잘못된 포워드가이던스로 시장 신뢰를 잃은 바 있다. 필립 로우 전 호주중앙은행 총재는 2021년 11월 인플레이션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하면서 각국 중앙은행들이 기준금리 인상을 시작할 때, “2024년까지 현 금리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로우 전 총재는 2022년 5월부터 15개월간 기준금리를 400bp(1bp=0.01%포인트)나 올렸다. 시장 신뢰를 잃은 로우 전 총재는 30년 만에 처음으로 연임에 실패한 총재로 남았다.
  • 답이 정해진 기준금리, 설명이 필요한 물가[BOK워치]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달 30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올해 마지막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에서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출처: 한국은행)[이데일리 최정희 기자] “통화긴축 기조를 충분히 장기간 지속할 것이다.”지난 달 30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통화정책방향 의결문을 통해 이 같이 밝혔다. 올해 마지막 금통위의 주된 메시지는 ‘최소한 내년 상반기까지는 금리 동결’이다. 금리 인하 뿐 아니라 추가 금리 인상의 문도 닫혔음을 시사한다. 한은이 ‘충분히 장기간’ 금리 동결을 통해 물가를 안정시키려면 전제 조건이 있다. 물가상승률이 둔화되는 흐름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석 달간 물가상승폭이 확대됐고 기대인플레이션율이 상승세로 전환된데다 한은은 올해 뿐 아니라 내년 물가상승률도 0.2%포인트 상향 조정했다. 기조적 물가라 불리는 ‘근원물가(식료품 및 에너지 제외)’ 상승률도 올해, 내년 모두 상향 조정했다. 내수 부진, 부동산 파이낸싱프로젝트(PF) 불안 등에 금리 동결이라는 ‘답’은 정해진 것처럼 보인다. 금리 동결이 공감대를 얻기 위해선 지금의 물가는 설명이 필요해보인다. 출처: 한국은행◇ 이창용의 ‘일시적’은 파월의 ‘일시적’과 어떻게 다른가이창용 한은 총재는 10월 물가상승률이 전년동월비 3.8%로 치솟으며 석 달 연속 물가가 상승 확대된 상황을 ‘일시적’이라고 평가했다. 이 총재는 금통위 기자회견에서 물가전망을 상향 조정했음에도 금리를 동결한 이유에 대해 “물가 전망치가 0.1~0.2%포인트 상향 조정됐지만 상향 조정된 이유의 대부분이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전 국제유가가 많이 올랐고 여름 날씨에 농산물 가격이 올라 물가 경로가 점프했기 때문”이라며 “이는 일시적 현상”이라고 말했다. 한은은 11월부터는 10월 대비 ‘상당폭’ 물가가 떨어질 것이라고 예측했다.이 총재는 “(현재의 물가는) 저희들이 예측했던 것보다 한 달 정도 (둔화가) 늦어진 것”이라며 “과학자가 아닌데 그 한 달 정도 미뤄진 것은 어쩔 수 없는 거고 큰 기조상의 변화가 없다고 생각해서 금리를 유지하고 긴축 수준을 더 길게 가져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작년 물가가 급등했던 기저효과에 7월 물가상승률이 2.3%까지 떨어졌고 그 뒤로 기저효과가 사라지면서 8~9월 물가가 다시 오를 수 있다고 봤지만 8월, 9월에 각각 3.4%, 3.7%까지 오르면서 그 수준은 예상치를 웃돌았다. 특히 한은은 10월에는 물가가 다시 하향 안정될 것이라고 봤지만 예상을 벗어나 3.8%로 올라섰는데 11월 이후엔 다시 하향되면서 ‘한 달 정도’ 예측을 벗어난 것일 뿐이라는 설명이다. 물가상승폭이 한은 예상보다 높아졌으니 올해 물가 전망치는 3.6%, 근원물가도 3.5%로 석 달 전보다 0.1%포인트씩 높아졌다.그러나 이 총재가 말한 물가상승세가 ‘일시적’이라는 것은 한은이 예측도 통제도 어려운 유가·농산물 가격 등 공급 측면의 물가 상승 압력을 말한다. 운이 좋아 공급 측면의 물가가 하향되면 다행이고 아니면 예상치 못한 충격에 의해 다시 오를 위험도 감수해야 하는 영역이다.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은 재작년말 추세적인 물가 상승 흐름을 ‘일시적(transitory)’이라고 오판했다가 추후 금리를 부랴부랴 올리며 실수를 만회해야 했지만 그나마 금리 인상이라는 정책 수단이 있었다. 그러나 한은은 현 상황에서 공급 측면의 물가 상승 압력에 대응할 수단이 마땅치 않다는 측면에서 물가 대응력이 약할 수밖에 없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달 30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올해 마지막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에서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출처: 한국은행)◇ ‘장기간 고금리 고통주면서도 물가는 왜 못 떨어뜨리나’한은의 물가 전망에는 단순히 ‘일시적’으로 설명이 안 되는 영역도 있다. 올 연말 물가 수준 상승으로 내년 물가도 일부 끌어 올려진 측면이 있다고 하지만 그것만으론 내년 물가의 상향 조정을 설명하기 어렵다. 한은은 내년 물가 전망치를 2.6%, 근원물가를 2.3%로 석 달 전보다 0.2%포인트씩 높였다. 특히 내년 상반기 물가 전망치는 2.5%에서 3.0%로 0.5%포인트나 뛰었고 하반기는 2.3%로 같았다. 근원물가는 내년 상반기 2.6%, 하반기 2.1%로 석 달 전(2.2%, 2.0%) 대비 0.4%포인트, 0.1%포인트 상향 조정됐다. 특히 올해 근원물가 전망치는 작년 11월 2.9%에서 올 2월 3.0%, 5월 3.3%, 8월 3.4%, 11월 3.5%로 네 차례 연속 상향조정돼왔다. 근원상품 물가상승률은 올해 내내 4% 안팎에서 큰 변화가 없다. 한은은 근원물가의 더딘 둔화세에 대해 ‘누적된 비용상승 압력’을 꼽고 있다. 한은은 경제전망 보고서, 인디고북을 통해 “유가·환율·농산물가격 상승, 공공요금 인상 등을 계기로 최근 주류, 여행·숙박 등 일부 품목에서 가격 상승 움직임이 나타났다”며 “팬데믹·전쟁 등으로 비용압력이 누증되었던 데다 올해 중반 이후 추가적인 공급충격이 크게 나타나면서 당초 예상보다 파급영향이 오래 지속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요인들은 내년 상반기 물가전망치가 0.4~0.5%포인트로 비교적 큰 폭으로 오른 이유가 된다. 이 영역에서 한은의 역할은 없을까. 이 총재는 사실상 금리를 통한 역할은 없다고 답했다. 이 총재는 추가 금리 인상을 통해 물가를 잡으면 긴축 기조를 장기간이나 유지할 필요가 없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유가 상승으로 물가가 더 올라서 금리를 더 올려야 된다면 금리는 올라가지만 물가는 덜 떨어질 것”이라며 “금리를 올리더라도 (긴축 기조가) 더 빨리 끝나는 상황은 아니다”고 설명했다.출처: 한국은행이는 ‘비용 전가’를 공급 측면의 영역으로 해석, 한은이 금리를 올려 수요를 위축시킨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다. 한은은 ‘비용 전가’가 우려된다면서도 내수 부진으로 물가가 둔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한은은 내년 민간소비 증가율이 1.9%로 석 달 전(2.2%)보다 하향 조정했다. 물건을 사줄 수 있는 수요가 줄어든다는 얘기인데 기업들은 왜 가격을 올려도 물건이 팔릴 것이라고 믿을까. 한은 전망에 따르면 민간소비는 올해 하반기 0.7%로 성장세가 낮아졌다가 내년 상반기 1.5%, 하반기 2.2%로 높아진다. 민간소비 증가율이 낮은 올 하반기에도 가격 전가가 활발한데 이보다 소비 증가율이 높아지는 내년에는 어떨까. 특히 전기·가스요금이 오른다면 가격 전가가 더 활발해질 수 있다. 실제로 한은은 전기·가스요금 인상폭 억제, 유류세 인하 등 정부의 물가안정책 정상화되면서 또 다시 물가 상승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정부의 어설픈 개입이 고물가를 장기화할 위험이 있다는 얘기지만 한은은 이를 물가 변수로 받아들일 뿐 이에 대한 정책 제언은 없다.우리나라보다 물가상승률이 훨씬 높았던 미국, 유로존이 2~3%대의 물가상승률로 떨어지는 동안 우리나라는 왜 아직도 3%후반대인가에 대해 한은은 뭐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근원물가 상승률은 우리나라가 더 낮다고 위로할 수 있지만 한은은 근원물가 전망치를 계속 높이고 있다. 무엇보다 국민들은 소비자물가와 근원물가를 구분하지 않는다. 왜 국민들이 고금리 고통을 장기간 견디면서도 다른 나라보다 더 높은 물가상승세를 겪어야 하는지에 대해 한은과 금통위는 책임있게 설명할 필요가 있다.
    최정희 기자 2023.12.04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달 30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올해 마지막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에서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출처: 한국은행)[이데일리 최정희 기자] “통화긴축 기조를 충분히 장기간 지속할 것이다.”지난 달 30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통화정책방향 의결문을 통해 이 같이 밝혔다. 올해 마지막 금통위의 주된 메시지는 ‘최소한 내년 상반기까지는 금리 동결’이다. 금리 인하 뿐 아니라 추가 금리 인상의 문도 닫혔음을 시사한다. 한은이 ‘충분히 장기간’ 금리 동결을 통해 물가를 안정시키려면 전제 조건이 있다. 물가상승률이 둔화되는 흐름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석 달간 물가상승폭이 확대됐고 기대인플레이션율이 상승세로 전환된데다 한은은 올해 뿐 아니라 내년 물가상승률도 0.2%포인트 상향 조정했다. 기조적 물가라 불리는 ‘근원물가(식료품 및 에너지 제외)’ 상승률도 올해, 내년 모두 상향 조정했다. 내수 부진, 부동산 파이낸싱프로젝트(PF) 불안 등에 금리 동결이라는 ‘답’은 정해진 것처럼 보인다. 금리 동결이 공감대를 얻기 위해선 지금의 물가는 설명이 필요해보인다. 출처: 한국은행◇ 이창용의 ‘일시적’은 파월의 ‘일시적’과 어떻게 다른가이창용 한은 총재는 10월 물가상승률이 전년동월비 3.8%로 치솟으며 석 달 연속 물가가 상승 확대된 상황을 ‘일시적’이라고 평가했다. 이 총재는 금통위 기자회견에서 물가전망을 상향 조정했음에도 금리를 동결한 이유에 대해 “물가 전망치가 0.1~0.2%포인트 상향 조정됐지만 상향 조정된 이유의 대부분이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전 국제유가가 많이 올랐고 여름 날씨에 농산물 가격이 올라 물가 경로가 점프했기 때문”이라며 “이는 일시적 현상”이라고 말했다. 한은은 11월부터는 10월 대비 ‘상당폭’ 물가가 떨어질 것이라고 예측했다.이 총재는 “(현재의 물가는) 저희들이 예측했던 것보다 한 달 정도 (둔화가) 늦어진 것”이라며 “과학자가 아닌데 그 한 달 정도 미뤄진 것은 어쩔 수 없는 거고 큰 기조상의 변화가 없다고 생각해서 금리를 유지하고 긴축 수준을 더 길게 가져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작년 물가가 급등했던 기저효과에 7월 물가상승률이 2.3%까지 떨어졌고 그 뒤로 기저효과가 사라지면서 8~9월 물가가 다시 오를 수 있다고 봤지만 8월, 9월에 각각 3.4%, 3.7%까지 오르면서 그 수준은 예상치를 웃돌았다. 특히 한은은 10월에는 물가가 다시 하향 안정될 것이라고 봤지만 예상을 벗어나 3.8%로 올라섰는데 11월 이후엔 다시 하향되면서 ‘한 달 정도’ 예측을 벗어난 것일 뿐이라는 설명이다. 물가상승폭이 한은 예상보다 높아졌으니 올해 물가 전망치는 3.6%, 근원물가도 3.5%로 석 달 전보다 0.1%포인트씩 높아졌다.그러나 이 총재가 말한 물가상승세가 ‘일시적’이라는 것은 한은이 예측도 통제도 어려운 유가·농산물 가격 등 공급 측면의 물가 상승 압력을 말한다. 운이 좋아 공급 측면의 물가가 하향되면 다행이고 아니면 예상치 못한 충격에 의해 다시 오를 위험도 감수해야 하는 영역이다.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은 재작년말 추세적인 물가 상승 흐름을 ‘일시적(transitory)’이라고 오판했다가 추후 금리를 부랴부랴 올리며 실수를 만회해야 했지만 그나마 금리 인상이라는 정책 수단이 있었다. 그러나 한은은 현 상황에서 공급 측면의 물가 상승 압력에 대응할 수단이 마땅치 않다는 측면에서 물가 대응력이 약할 수밖에 없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달 30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올해 마지막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에서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출처: 한국은행)◇ ‘장기간 고금리 고통주면서도 물가는 왜 못 떨어뜨리나’한은의 물가 전망에는 단순히 ‘일시적’으로 설명이 안 되는 영역도 있다. 올 연말 물가 수준 상승으로 내년 물가도 일부 끌어 올려진 측면이 있다고 하지만 그것만으론 내년 물가의 상향 조정을 설명하기 어렵다. 한은은 내년 물가 전망치를 2.6%, 근원물가를 2.3%로 석 달 전보다 0.2%포인트씩 높였다. 특히 내년 상반기 물가 전망치는 2.5%에서 3.0%로 0.5%포인트나 뛰었고 하반기는 2.3%로 같았다. 근원물가는 내년 상반기 2.6%, 하반기 2.1%로 석 달 전(2.2%, 2.0%) 대비 0.4%포인트, 0.1%포인트 상향 조정됐다. 특히 올해 근원물가 전망치는 작년 11월 2.9%에서 올 2월 3.0%, 5월 3.3%, 8월 3.4%, 11월 3.5%로 네 차례 연속 상향조정돼왔다. 근원상품 물가상승률은 올해 내내 4% 안팎에서 큰 변화가 없다. 한은은 근원물가의 더딘 둔화세에 대해 ‘누적된 비용상승 압력’을 꼽고 있다. 한은은 경제전망 보고서, 인디고북을 통해 “유가·환율·농산물가격 상승, 공공요금 인상 등을 계기로 최근 주류, 여행·숙박 등 일부 품목에서 가격 상승 움직임이 나타났다”며 “팬데믹·전쟁 등으로 비용압력이 누증되었던 데다 올해 중반 이후 추가적인 공급충격이 크게 나타나면서 당초 예상보다 파급영향이 오래 지속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요인들은 내년 상반기 물가전망치가 0.4~0.5%포인트로 비교적 큰 폭으로 오른 이유가 된다. 이 영역에서 한은의 역할은 없을까. 이 총재는 사실상 금리를 통한 역할은 없다고 답했다. 이 총재는 추가 금리 인상을 통해 물가를 잡으면 긴축 기조를 장기간이나 유지할 필요가 없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유가 상승으로 물가가 더 올라서 금리를 더 올려야 된다면 금리는 올라가지만 물가는 덜 떨어질 것”이라며 “금리를 올리더라도 (긴축 기조가) 더 빨리 끝나는 상황은 아니다”고 설명했다.출처: 한국은행이는 ‘비용 전가’를 공급 측면의 영역으로 해석, 한은이 금리를 올려 수요를 위축시킨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다. 한은은 ‘비용 전가’가 우려된다면서도 내수 부진으로 물가가 둔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한은은 내년 민간소비 증가율이 1.9%로 석 달 전(2.2%)보다 하향 조정했다. 물건을 사줄 수 있는 수요가 줄어든다는 얘기인데 기업들은 왜 가격을 올려도 물건이 팔릴 것이라고 믿을까. 한은 전망에 따르면 민간소비는 올해 하반기 0.7%로 성장세가 낮아졌다가 내년 상반기 1.5%, 하반기 2.2%로 높아진다. 민간소비 증가율이 낮은 올 하반기에도 가격 전가가 활발한데 이보다 소비 증가율이 높아지는 내년에는 어떨까. 특히 전기·가스요금이 오른다면 가격 전가가 더 활발해질 수 있다. 실제로 한은은 전기·가스요금 인상폭 억제, 유류세 인하 등 정부의 물가안정책 정상화되면서 또 다시 물가 상승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정부의 어설픈 개입이 고물가를 장기화할 위험이 있다는 얘기지만 한은은 이를 물가 변수로 받아들일 뿐 이에 대한 정책 제언은 없다.우리나라보다 물가상승률이 훨씬 높았던 미국, 유로존이 2~3%대의 물가상승률로 떨어지는 동안 우리나라는 왜 아직도 3%후반대인가에 대해 한은은 뭐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근원물가 상승률은 우리나라가 더 낮다고 위로할 수 있지만 한은은 근원물가 전망치를 계속 높이고 있다. 무엇보다 국민들은 소비자물가와 근원물가를 구분하지 않는다. 왜 국민들이 고금리 고통을 장기간 견디면서도 다른 나라보다 더 높은 물가상승세를 겪어야 하는지에 대해 한은과 금통위는 책임있게 설명할 필요가 있다.
  • 교과서 안 먹히는 뉴노멀…깊어지는 이창용 고민[BOK워치]
    [이데일리 하상렬 기자]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최근 통화정책에 있어 큰 고민에 빠진 듯하다. 글로벌 장기시장금리 벤치마크 역할을 하는 미국 10년물 국채금리가 16년여 만에 5%를 돌파하는 등 상승세가 이어지면서 고금리 장기화라는 ‘뉴노멀’(새로운 기준) 시대가 열리는 듯한 양상을 띄고 있기 때문이다.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19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에 입장하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최근 미국 경제는 작년 3월 이후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역대급 고강도 긴축을 했음에도 예상 밖의 견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고금리를 감당할 수 있는 여건이 된다는 셈이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정책금리가 높음에도 미국 경제가 견조한 것은 ‘중립금리’가 올랐기 때문일 수 있다”고 진단했다. 중립금리는 경기를 부양하지도 위축하지도 않는 수준의 금리를 의미한다. 중립금리 상향은 고금리 장기화 기조의 바탕이 된다.미국 중장기 국채금리 상승세는 시장에서도 고금리 장기화에 무게를 두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시장에선 금리 인상에 대한 경제 회복력, 재정적자 위험 등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고 말했다. 미국의 경제전문가들은 대부분 연방정부의 재정적자를 금리 상승의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재정적자는 단기간에 해결될 문제가 아니기에 고금리 장기화에 힘을 더한다. 우리나라 상황은 사뭇 다르다. 인구 고령화·저출산 등 구조적인 요인으로 중립금리와 잠재성장률이 모두 하향 조정되는 추세에 있기 때문이다. 중립금리가 미국과 반대로 하향 조정된다면, 한은 입장에선 기준금리 인하 등 운신의 제약이 따를 수 있다. 가령 우리 경제가 나빠져 금리를 낮춰야 함에도 미국이 고금리를 지속하는 탓에 금리를 독자적으로 내릴 수 없는 상황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이 총재는 이같은 고민을 외신 인터뷰를 통해 털어놨다. 그는 지난 11일(현지시간) 모로코 마케라시에서 진행된 미 CNBC 인터뷰에서 “고금리 장기화가 전 세계적으로 새로운 체제가 되고 있지만 한국은 저출산·고령화로 인해 장기 침체 요인이 상당히 높다”며 “고금리 장기화라는 글로벌 요인이 고령화에 따른 중립금리 하향을 얼마나 상쇄할지 지켜봐야 한다”고 지적했다.특히 이 총재의 고민이 깊어지는 부분은 국고채 장기물 금리가 미국채 금리와 동조하는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지난 12일(현지시간) 모로코 마라케시에서 열린 국제금융협회(IIF) 대담에서 “교과서에선 변동환율제를 채택하면 독립적인 통화정책이 가능하다고 하는데 국내 금융상황이 미 국채 금리 등에 더 많이 동조화되고 있다”고 우려했다.이 총재가 말한 ‘교과서’는 거시경제학에서 나오는 ‘트릴레마’(trilemma) 명제다. 세 가지(자본의 완전 이동·외환 안정성·통화정책 독립성) 정책 목표 간에 상충관계가 있어 이를 동시에 달성할 수 없고, 두 가지만 고를 수 있다는 이론이다. 우리나라는 1998년 자유변동환율제도를 도입하면서 통화정책 독립성과 자본시장 완전 이동을 정책 목표로 삼았다. 그러나 25년이 지난 현재 통화정책 독립성이라는 정책 목표도 달성되고 있지 않은 것이다.이 총재의 고민은 국내에서도 계속됐다. 그는 지난 19일 통화정책방향 기자간담회에서 “국제통화기금(IMF), 국제결제은행(BIS)과 얘기하고 세계 석학이라는 사람한테 물었는데 다들 ‘좋은 질문이다’라고만 하고 답을 모르는 것 같았다”며 “선진국 중립금리가 올라가고 우리나라가 내려가면 독립적으로 금리를 내릴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영향을 받아 어떤 변화가 있을지 공부하고 있지만 답이 안 보인다”고 답답한 마음을 드러냈다. 지난 27일 국회 종합 국정감사에선 “미국의 금리상승 기조가 일시적인 것인지, 장기적인 것인지 파악해야 한다”며 “장기적이라면 우리에게 참 많은 정책 딜레마를 준다”고 했다.최근 금융통화위원회에선 우리나라 잠재성장률에 대한 깊은 논의가 나오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잠재성장률에 대해 담론 수준의 연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세부 항목별로 성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샅샅이 따져보자는 취지다.제롬 파월 미 연준 의장.(사진=AFP)이 총재는 미국의 고금리 장기화가 일시적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뒀다. 고금리 장기화 기조가 일시적이라면 관리를 하는 수준에 머물 것이란 게 그의 설명이다. 이에 따라 다음달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의 파월 의장 발언이 주목받는 분위기다. 한은 통화정책국은 지난 30일 블로그를 통해 “시장의 관심은 지난 9월 회의에서 제시한 고금리 장기화, 즉 2024년말에도 5%대 정책금리를 유지할 것이란 전망이 이번 회의에서 변화할지에 쏠리고 있다”고 했다.
    하상렬 기자 2023.11.01
    [이데일리 하상렬 기자]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최근 통화정책에 있어 큰 고민에 빠진 듯하다. 글로벌 장기시장금리 벤치마크 역할을 하는 미국 10년물 국채금리가 16년여 만에 5%를 돌파하는 등 상승세가 이어지면서 고금리 장기화라는 ‘뉴노멀’(새로운 기준) 시대가 열리는 듯한 양상을 띄고 있기 때문이다.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19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에 입장하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최근 미국 경제는 작년 3월 이후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역대급 고강도 긴축을 했음에도 예상 밖의 견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고금리를 감당할 수 있는 여건이 된다는 셈이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정책금리가 높음에도 미국 경제가 견조한 것은 ‘중립금리’가 올랐기 때문일 수 있다”고 진단했다. 중립금리는 경기를 부양하지도 위축하지도 않는 수준의 금리를 의미한다. 중립금리 상향은 고금리 장기화 기조의 바탕이 된다.미국 중장기 국채금리 상승세는 시장에서도 고금리 장기화에 무게를 두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시장에선 금리 인상에 대한 경제 회복력, 재정적자 위험 등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고 말했다. 미국의 경제전문가들은 대부분 연방정부의 재정적자를 금리 상승의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재정적자는 단기간에 해결될 문제가 아니기에 고금리 장기화에 힘을 더한다. 우리나라 상황은 사뭇 다르다. 인구 고령화·저출산 등 구조적인 요인으로 중립금리와 잠재성장률이 모두 하향 조정되는 추세에 있기 때문이다. 중립금리가 미국과 반대로 하향 조정된다면, 한은 입장에선 기준금리 인하 등 운신의 제약이 따를 수 있다. 가령 우리 경제가 나빠져 금리를 낮춰야 함에도 미국이 고금리를 지속하는 탓에 금리를 독자적으로 내릴 수 없는 상황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이 총재는 이같은 고민을 외신 인터뷰를 통해 털어놨다. 그는 지난 11일(현지시간) 모로코 마케라시에서 진행된 미 CNBC 인터뷰에서 “고금리 장기화가 전 세계적으로 새로운 체제가 되고 있지만 한국은 저출산·고령화로 인해 장기 침체 요인이 상당히 높다”며 “고금리 장기화라는 글로벌 요인이 고령화에 따른 중립금리 하향을 얼마나 상쇄할지 지켜봐야 한다”고 지적했다.특히 이 총재의 고민이 깊어지는 부분은 국고채 장기물 금리가 미국채 금리와 동조하는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지난 12일(현지시간) 모로코 마라케시에서 열린 국제금융협회(IIF) 대담에서 “교과서에선 변동환율제를 채택하면 독립적인 통화정책이 가능하다고 하는데 국내 금융상황이 미 국채 금리 등에 더 많이 동조화되고 있다”고 우려했다.이 총재가 말한 ‘교과서’는 거시경제학에서 나오는 ‘트릴레마’(trilemma) 명제다. 세 가지(자본의 완전 이동·외환 안정성·통화정책 독립성) 정책 목표 간에 상충관계가 있어 이를 동시에 달성할 수 없고, 두 가지만 고를 수 있다는 이론이다. 우리나라는 1998년 자유변동환율제도를 도입하면서 통화정책 독립성과 자본시장 완전 이동을 정책 목표로 삼았다. 그러나 25년이 지난 현재 통화정책 독립성이라는 정책 목표도 달성되고 있지 않은 것이다.이 총재의 고민은 국내에서도 계속됐다. 그는 지난 19일 통화정책방향 기자간담회에서 “국제통화기금(IMF), 국제결제은행(BIS)과 얘기하고 세계 석학이라는 사람한테 물었는데 다들 ‘좋은 질문이다’라고만 하고 답을 모르는 것 같았다”며 “선진국 중립금리가 올라가고 우리나라가 내려가면 독립적으로 금리를 내릴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영향을 받아 어떤 변화가 있을지 공부하고 있지만 답이 안 보인다”고 답답한 마음을 드러냈다. 지난 27일 국회 종합 국정감사에선 “미국의 금리상승 기조가 일시적인 것인지, 장기적인 것인지 파악해야 한다”며 “장기적이라면 우리에게 참 많은 정책 딜레마를 준다”고 했다.최근 금융통화위원회에선 우리나라 잠재성장률에 대한 깊은 논의가 나오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잠재성장률에 대해 담론 수준의 연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세부 항목별로 성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샅샅이 따져보자는 취지다.제롬 파월 미 연준 의장.(사진=AFP)이 총재는 미국의 고금리 장기화가 일시적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뒀다. 고금리 장기화 기조가 일시적이라면 관리를 하는 수준에 머물 것이란 게 그의 설명이다. 이에 따라 다음달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의 파월 의장 발언이 주목받는 분위기다. 한은 통화정책국은 지난 30일 블로그를 통해 “시장의 관심은 지난 9월 회의에서 제시한 고금리 장기화, 즉 2024년말에도 5%대 정책금리를 유지할 것이란 전망이 이번 회의에서 변화할지에 쏠리고 있다”고 했다.
  • 중앙은행, 트라우마와의 싸움[BOK워치]
    [이데일리 최정희 기자] 작년에는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으로 일제히 정책금리를 인상했다. 올해는 금리 인상도 끝물에 접어들었다. 우리나라는 올해 1월을 끝으로 금리 인상을 멈췄고 미국은 9월에 금리를 올리냐, 마느냐를 놓고 논쟁 중이다. 반면 작년 완화적 통화정책을 폈던 일본은 수익률곡선제어(YCC)를 서서히 조정하며 정책 전환 신호를 보내고 있다. 금리 인상기를 종료하는 나라든, 일본처럼 장기간 완화정책에서 변화를 시도하는 나라든 정책 전환기에는 각국 중앙은행들의 트라우마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특히 이번처럼 수십 년 만의 인플레이션으로 기록에 남을 만한 대대적인 금리 인상이 있었던 시기라면 중앙은행들은 정책 전환에 신중할 수 밖에 없다. 아니나 다를까, 물가는 덜 잡은 것 같은데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나라, 중국 경기는 크게 휘청이고 있어 중앙은행으로선 머릿속이 복잡해지고 있다.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사진=AFP)◇ 美, 1970년대 ‘물가 잡은 줄 알고 금리 내려’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1970년대 두 차례의 오일쇼크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던 트라우마가 있다. 1973년 10월 1차 오일쇼크에 대응하기 위해 정책금리를 1972년 3% 수준에서 1974년 13% 수준으로 높였으나 경기 침체 우려가 번지자 금리를 1977년까지 4% 수준으로 내렸다. 그러다 1978년 2차 오일쇼크가 오자 다시 금리를 올리기 시작했지만 통화정책의 파급 시차를 고려하면 온탕과 냉탕을 반복했던 셈이다. 세계적인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이 연준을 ‘샤워실의 바보’라고 칭한 것도 이때였다. 샤워실에 뜨거운 물이 빨리 나오도록 수도꼭지를 온수 방향으로 급하게 돌렸다가 너무 뜨겁자 다시 냉수 쪽으로 방향을 트는 등 섣부른 조치가 불러온 부작용에 대한 지탄이다. 당시 프리드먼은 인플레이션을 만든 것은 국제유가 급등이 아니라 통화량의 팽창이라고 지적했다. 이 사태를 극복하기 위해 1980년 등장한 폴 볼커 연준 의장은 1981년 금리를 20% 넘게 올려야 했다. 그 결과 미 경제는 1982년 마이너스(-) 4%의 성장세를 기록했다.연준은 이번에도 ‘뒷북 금리 인상’이라는 오명을 남겼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2021년 후반까지도 인플레이션이 ‘일시적(temporary)’이라고 평가해 금리 인상을 작년 3월에서야 시작했다. 저물가 시대에 대비해 2020년 도입했던 평균물가목표제(AIT)가 연준의 금리 인상 시작점을 늦추는 계기가 됐다. 기대와 달리 코로나19를 기점으로 고물가 시대가 도래해 AIT 도입 자체가 잘못됐다는 평가까지 나왔다. 24일(현지시간) 잭슨홀 회의에선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중립금리 추정치 상향을 발표할 것이라는 월스트리트저널(WSJ) 보도가 나왔다. 1970년대 금리를 인상하다가 인하했던 ‘스탑앤고(Stop and go)’ 함정에 이어 뒷북 금리 인상까지 고려하면 연준은 금리 인하로 쉽게 정책을 전환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연준이 1년 4개월간 금리를 5.25%포인트나 올렸음에도 고용시장 역시 호조세를 보이고 있다.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BOJ) 총재(사진=AFP)◇ 日, 긴축했다가 디플레 극복 실패했던 경험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BOJ) 총재가 4월 취임한 이후 BOJ의 통화정책이 긴축적으로 바뀔 것이라는 기대가 높았으나 이러한 기대가 점점 얕아지고 있다. BOJ는 작년 12월 수익률곡선제어(YCC)의 기준선이 되는 10년물 금리를 ±0.25%에서 ±0.5%로 조정했고 7월에는 10년물 금리 상한을 1%로 올렸다. 그럼에도 BOJ는 이는 긴축이 아니라 완화적 통화정책을 지속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BOJ가 통화정책 전환에 신중한 이유는 정책을 긴축으로 전환했다가 실패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BOJ는 2000년 8월 제로금리에서 탈피해 금리를 소폭 올렸는데 닷컴버블이 터졌다. 2006년 3월에는 양적완화를 중단했는데 그 뒤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했다. BOJ가 긴축에 나서려고만 하면 전 세계적으로 버블이 붕괴되고 금융위기가 터지는 터라 다시 금리를 제로 수준으로 내리는 일을 반복해야 했다.한국은행은 최근 보고서에서 “BOJ는 과거 통화정책을 긴축으로 전환한 이후 디플레이션 탈출에 실패한 경험 등을 바탕으로 정책 기조 전환에 신중한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고 밝혔다.일본은 1980년 이후 장기간 디플레이션(물가 하락세)을 겪은 만큼 작년과 올해 물가상승률이 2%를 넘더라도 정책 전환에 신중한 모습이다. 실제로 BOJ는 내년과 내후년 물가 전망치를 각각 1.9%, 1.6%로 내다보고 있다. 임금 상승이 물가 상승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이 나타나기 전까지 BOJ의 긴축 전환은 쉽지 않아 보인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사진=공동취재단)◇ 韓, 대외 불안에 취약…환율 변동에 민감우리나라는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자본 유출을 겪으며 원·달러 환율이 급등했던 경험이 있다. 그로 인해 환율 변동성은 한은이 예의주시해야 하는 최대 변수로 여겨진다. 대다수 전문가들은 한은이 추가로 금리를 인상한다면 그것은 원·달러 환율 급등 때문일 것이라고 평가한다. 역으로 환율만 안정된다면 금리를 더 이상 올릴 가능성은 낮다는 평가다. 우리나라는 소규모 개방 경제, 수출 제조업 국가답게 대외 변수에 취약하고 환율 변동성도 큰 편이다. 더구나 최근처럼 최대 수출국인 중국 경기가 불안해지고 미국은 상대적으로 경기가 양호해 위안화가 약세를 보이고 달러화가 오르는 상황에선 환율이 급등하기 좋은 환경이다. 21일 원·달러 환율은 1342.6원에 거래를 마쳐 작년 11월 23일(1351.8원) 이후 9개월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환율 급등은 한미 금리 역전폭이 2%포인트나 되는 상황에서 한은의 금리 인하 전환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 되고 있다. 환율이 급등하면 80달러대의 국제유가와 맞물려 수입물가 상승세가 높아지고 이는 물가 부담으로 이어진다. 이에 경기 하방리스크가 커지고 있음에도 한은의 금리 인하 시점이 지연될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리고 있다 이데일리가 24일 금융통화위원회를 앞두고 국내 증권사 애널리스트와 경제연구소 연구원 1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6명이 내년 2분기께야 금리 인하가 가능할 것이라고 답했다. 연내 금리 인하는 3명에 불과했다. 5월까지만 해도 연내 금리 인하가 절반 가량이었으나 금리 인하 시점이 지연될 것이라고 본 것이다.
    최정희 기자 2023.08.22
    [이데일리 최정희 기자] 작년에는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으로 일제히 정책금리를 인상했다. 올해는 금리 인상도 끝물에 접어들었다. 우리나라는 올해 1월을 끝으로 금리 인상을 멈췄고 미국은 9월에 금리를 올리냐, 마느냐를 놓고 논쟁 중이다. 반면 작년 완화적 통화정책을 폈던 일본은 수익률곡선제어(YCC)를 서서히 조정하며 정책 전환 신호를 보내고 있다. 금리 인상기를 종료하는 나라든, 일본처럼 장기간 완화정책에서 변화를 시도하는 나라든 정책 전환기에는 각국 중앙은행들의 트라우마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특히 이번처럼 수십 년 만의 인플레이션으로 기록에 남을 만한 대대적인 금리 인상이 있었던 시기라면 중앙은행들은 정책 전환에 신중할 수 밖에 없다. 아니나 다를까, 물가는 덜 잡은 것 같은데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나라, 중국 경기는 크게 휘청이고 있어 중앙은행으로선 머릿속이 복잡해지고 있다.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사진=AFP)◇ 美, 1970년대 ‘물가 잡은 줄 알고 금리 내려’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1970년대 두 차례의 오일쇼크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던 트라우마가 있다. 1973년 10월 1차 오일쇼크에 대응하기 위해 정책금리를 1972년 3% 수준에서 1974년 13% 수준으로 높였으나 경기 침체 우려가 번지자 금리를 1977년까지 4% 수준으로 내렸다. 그러다 1978년 2차 오일쇼크가 오자 다시 금리를 올리기 시작했지만 통화정책의 파급 시차를 고려하면 온탕과 냉탕을 반복했던 셈이다. 세계적인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이 연준을 ‘샤워실의 바보’라고 칭한 것도 이때였다. 샤워실에 뜨거운 물이 빨리 나오도록 수도꼭지를 온수 방향으로 급하게 돌렸다가 너무 뜨겁자 다시 냉수 쪽으로 방향을 트는 등 섣부른 조치가 불러온 부작용에 대한 지탄이다. 당시 프리드먼은 인플레이션을 만든 것은 국제유가 급등이 아니라 통화량의 팽창이라고 지적했다. 이 사태를 극복하기 위해 1980년 등장한 폴 볼커 연준 의장은 1981년 금리를 20% 넘게 올려야 했다. 그 결과 미 경제는 1982년 마이너스(-) 4%의 성장세를 기록했다.연준은 이번에도 ‘뒷북 금리 인상’이라는 오명을 남겼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2021년 후반까지도 인플레이션이 ‘일시적(temporary)’이라고 평가해 금리 인상을 작년 3월에서야 시작했다. 저물가 시대에 대비해 2020년 도입했던 평균물가목표제(AIT)가 연준의 금리 인상 시작점을 늦추는 계기가 됐다. 기대와 달리 코로나19를 기점으로 고물가 시대가 도래해 AIT 도입 자체가 잘못됐다는 평가까지 나왔다. 24일(현지시간) 잭슨홀 회의에선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중립금리 추정치 상향을 발표할 것이라는 월스트리트저널(WSJ) 보도가 나왔다. 1970년대 금리를 인상하다가 인하했던 ‘스탑앤고(Stop and go)’ 함정에 이어 뒷북 금리 인상까지 고려하면 연준은 금리 인하로 쉽게 정책을 전환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연준이 1년 4개월간 금리를 5.25%포인트나 올렸음에도 고용시장 역시 호조세를 보이고 있다.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BOJ) 총재(사진=AFP)◇ 日, 긴축했다가 디플레 극복 실패했던 경험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BOJ) 총재가 4월 취임한 이후 BOJ의 통화정책이 긴축적으로 바뀔 것이라는 기대가 높았으나 이러한 기대가 점점 얕아지고 있다. BOJ는 작년 12월 수익률곡선제어(YCC)의 기준선이 되는 10년물 금리를 ±0.25%에서 ±0.5%로 조정했고 7월에는 10년물 금리 상한을 1%로 올렸다. 그럼에도 BOJ는 이는 긴축이 아니라 완화적 통화정책을 지속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BOJ가 통화정책 전환에 신중한 이유는 정책을 긴축으로 전환했다가 실패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BOJ는 2000년 8월 제로금리에서 탈피해 금리를 소폭 올렸는데 닷컴버블이 터졌다. 2006년 3월에는 양적완화를 중단했는데 그 뒤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했다. BOJ가 긴축에 나서려고만 하면 전 세계적으로 버블이 붕괴되고 금융위기가 터지는 터라 다시 금리를 제로 수준으로 내리는 일을 반복해야 했다.한국은행은 최근 보고서에서 “BOJ는 과거 통화정책을 긴축으로 전환한 이후 디플레이션 탈출에 실패한 경험 등을 바탕으로 정책 기조 전환에 신중한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고 밝혔다.일본은 1980년 이후 장기간 디플레이션(물가 하락세)을 겪은 만큼 작년과 올해 물가상승률이 2%를 넘더라도 정책 전환에 신중한 모습이다. 실제로 BOJ는 내년과 내후년 물가 전망치를 각각 1.9%, 1.6%로 내다보고 있다. 임금 상승이 물가 상승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이 나타나기 전까지 BOJ의 긴축 전환은 쉽지 않아 보인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사진=공동취재단)◇ 韓, 대외 불안에 취약…환율 변동에 민감우리나라는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자본 유출을 겪으며 원·달러 환율이 급등했던 경험이 있다. 그로 인해 환율 변동성은 한은이 예의주시해야 하는 최대 변수로 여겨진다. 대다수 전문가들은 한은이 추가로 금리를 인상한다면 그것은 원·달러 환율 급등 때문일 것이라고 평가한다. 역으로 환율만 안정된다면 금리를 더 이상 올릴 가능성은 낮다는 평가다. 우리나라는 소규모 개방 경제, 수출 제조업 국가답게 대외 변수에 취약하고 환율 변동성도 큰 편이다. 더구나 최근처럼 최대 수출국인 중국 경기가 불안해지고 미국은 상대적으로 경기가 양호해 위안화가 약세를 보이고 달러화가 오르는 상황에선 환율이 급등하기 좋은 환경이다. 21일 원·달러 환율은 1342.6원에 거래를 마쳐 작년 11월 23일(1351.8원) 이후 9개월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환율 급등은 한미 금리 역전폭이 2%포인트나 되는 상황에서 한은의 금리 인하 전환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 되고 있다. 환율이 급등하면 80달러대의 국제유가와 맞물려 수입물가 상승세가 높아지고 이는 물가 부담으로 이어진다. 이에 경기 하방리스크가 커지고 있음에도 한은의 금리 인하 시점이 지연될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리고 있다 이데일리가 24일 금융통화위원회를 앞두고 국내 증권사 애널리스트와 경제연구소 연구원 1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6명이 내년 2분기께야 금리 인하가 가능할 것이라고 답했다. 연내 금리 인하는 3명에 불과했다. 5월까지만 해도 연내 금리 인하가 절반 가량이었으나 금리 인하 시점이 지연될 것이라고 본 것이다.
  • 어느 금통위원의 '물가안정' 고민[BOK워치]
    [이데일리 최정희 기자] “한국은행은 물가안정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 지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가. 우리가 추구하는 물가안정은 무엇인가. 무엇 때문에 물가안정을 추구해야 하는가. 금융안정은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70대 경제 원로이자 금융통화위원 4년차인 조윤제 위원은 6월초 이창용 한은 총재를 포함한 한은 임직원을 대상으로 ‘대전환 시대, 한국 경제의 과거, 현재, 미래’를 주제로 강연을 했다. 이 자리에서 한은의 역할에 대해 묻는 질문에 이 같이 답했다.조윤제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위원이 지난 6월초 한은 임직원을 대상으로 ‘대전환 시대, 한국 경제의 과거, 현재, 미래’를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출처: 한은)1950년 한국은행법이 제정되고 1997년 물가안정목표제가 시행되고 새로 지어진 한은 본관에는 ‘물가안정’이라는 네 글자가 크게 박혀 있다. 2011년에는 한은법 목적 조항에 ‘금융안정’이 추가됐다. 물가안정목표제를 기준으로 따져봐도 한은은 27년의 세월 동안 물가안정을 위해 존재해왔는데 ‘물가안정이 무엇인가, 한은이 물가안정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스스로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가’라고 말하는 조 위원의 발언은 뼈 아프다. 조 위원은 “(한은의 역할을 이해하기 위해) 브레인스토밍을 세 번 했다. 대차대조표를 갖고서도 해봤는데 아직 여전히 충분한 토의가 일어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날 조 위원은 ‘한국식’ 물가안정과 이에 맞는 대응 방안에 대해 본인의 생각을 털어놨다. 그는 직원들을 향해 “부담드렸습니까?”라며 답변을 마무리했다.◇ 유가·정부 관리에 좌우되는 물가…한은 역할은우리나라 물가 구조를 살펴보면 국제유가 등 국제 환경에 의해 크게 좌우될 뿐만 아니라 유독 다른 나라 대비 정부 관리물가의 비중이 높은 편이다.원유 등 원자재 수입국 특성상 유가가 안정되면 물가가 안정된다. 유가 등 원자재 가격이 오르면 수입 물가가 상승하고 이는 생산자 물가, 소비자 물가로 전해지며 물가 불안이 초래된다. 2008년, 2011년 국제유가 급등기 때 나타났던 현상이고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공급망까지 망가지면서 작년에 이어 올해까지도 고물가 시대가 이어지고 있다. 무상보육, 무상급식, 통신료 등이 정부가 가격 결정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하는 ‘관리물가’로 분류된다. 관리물가는 전체 물가지수 내 458개 품목 중 40개 품목이고 이들의 가중치는 약 20%로 높은 편이다. 두 가지 큰 요인 속에 한은이 물가안정목표제 ‘2%’를 맞추기 위해 정책적으로 할 수 있는 영역이 얼마나 될까에 대한 고민이 있다. 한은이 2016년 물가목표제를 2%로 변경한 이후 코로나19로 인한 공급망 불안과 국제유가 폭등이 나타나기까지 물가상승률은 1%대 이하였다. 한은은 물가 목표는 ‘중장기’적으로 달성하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기간을 어떻게 설정하더라도 2%를 맞춘 적은 없었다. 2017년~2019년 물가가 0~1%대로 낮아도 기준금리가 인상되기도 했다. 물가목표제에 맞게 통화정책이 운영돼야 한다고 생각한 금통위원들은 ‘동결’이나 ‘인하’쪽으로 표를 던지기도 했다. 출처: 한국은행한은은 ‘소비자 물가상승률’을 목표치 기준 지표로 삼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금통위원들이 더 고려하는 물가는 ‘근원물가’다. 이는 금통위 의사록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한 금통위원은 5월 금통위 의사록에서 “소비자 물가 오름세는 당분간 기저효과로 뚜렷한 둔화 흐름을 보일 것으로 예상되지만 물가 흐름 추세를 보여주는 근원물가의 하락세가 예상보다 더디다”며 “상당기간 긴축 기조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근원물가는 통상 수요에 의해 좌우돼 한은이 금리를 조정해 다스릴 수 있는 부분이 많다고 여겨지고 있지만 의사록에 따르면 근원물가가 소비, 내수보다 공급 요인에 의해 상당한 영향을 받고 있다고 보는 금통위원도 있다. 이 위원은 근원물가 상승에 한은이 통화정책 부담을 크게 느끼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석유가격 떼고, 정부 관리물가 빼고, 이제는 근원물가까지 공급 영향을 더 크게 받는다면 한은이 추구하는 물가안정은 도대체 무엇인가, 할 수 있는 영역이 있는가에 대해 더 큰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특히 2021년 8월을 시작으로 1년 반 동안 역사상 가장 빠른 금리 인상을 시도했음에도 한은이 금리를 통해 가장 잘 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여겨지던 ‘근원물가’가 빠르게 둔화되지 않고 있으니 이런 의문은 더 커진다. ◇ 수단은 기준금리인데…금리보다 더 힘센 한전채조 위원은 우리나라 통화정책의 유효성 확보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조 위원은 “통화정책을 하는 데 기준금리가 가장 중요하다”며 “기준금리를 갖고 물가안정을 하는데 있어 중앙은행으로서 유효성을 확보하려고 하는 게 미션이고 맨데이트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환경이 녹록치 않다는 평가다. 2011년 금융안정이 한은법에 추가됐지만 한은은 금융기관에 대한 감독과 통화정책이 분리돼 있는 중앙은행이다. 한은은 독립적으로 개별 금융기관을 감독할 수 없다. 그러나 금융기관에 유동성 사고가 터졌을 경우에는 ‘최종대부자’로서 유동성을 공급해야 한다. 이제는 증권 등 비은행 금융기관의 규모가 커지면서 이들에 대해서도 유동성을 공급해야 한다. 조 위원은 “감독과 통화정책이 분리된 중앙은행에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라고 되물었다. 또 다른 특징도 있다. 조 위원은 “우리나라는 준재정 뿐 아니라 LH공사, 수자원공사, 주택금융공사 등, 이들이 발행하는 (공공)기관채가 시중금리에 미치는 영향이 막대하지 않냐”며 “통화정책 유효성을 확보하기 위해선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과 협의해야 하고,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국토부 등과 공공기관채, 국고채 발행에 대해 협의해야 한다. 그래야 한은의 통화정책 유효성이 확보되지 않겠냐”고 말했다. 이는 작년 9월말 강원도 레고랜드 관련 부도 사태 당시 안전자산 선호심리가 강해지며 은행채, 한국전력채 등이 시장 자금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였던 때를 떠올리게 한다. 한은이 기준금리를 수 차례 올리면서도 단기자금을 제대로 쪼이지 못했는데 한전채 등이 한꺼번에 자금을 빨아들이면서 과도할 정도의 ‘긴축’ 상태를 만들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뒤 한은은 오히려 금리 인상기임에도 단기 유동성을 풀어서 대응해야 했다.조 위원의 발언들은 우리나라 통화정책 운용이 우리나라 특성에 맞게 정립돼야 하고 이에 대한 연구가 더 이뤄져야 함을 의미한다. 우리나라만의 물가 구조를 이해하고 그 속에서 한은이 할 수 있는 물가안정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기준금리를 조정하더라도 금리 결정이 효과적으로 작동하고 있는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이는 단순히 미국의 연구 방식을 따라해서는 얻을 수 없는 값이다. 이는 어느 한 금통위원의 고민이 아니라 사실 한은과 금통위원 모두의 몫이다.
    최정희 기자 2023.07.26
    [이데일리 최정희 기자] “한국은행은 물가안정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 지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가. 우리가 추구하는 물가안정은 무엇인가. 무엇 때문에 물가안정을 추구해야 하는가. 금융안정은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70대 경제 원로이자 금융통화위원 4년차인 조윤제 위원은 6월초 이창용 한은 총재를 포함한 한은 임직원을 대상으로 ‘대전환 시대, 한국 경제의 과거, 현재, 미래’를 주제로 강연을 했다. 이 자리에서 한은의 역할에 대해 묻는 질문에 이 같이 답했다.조윤제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위원이 지난 6월초 한은 임직원을 대상으로 ‘대전환 시대, 한국 경제의 과거, 현재, 미래’를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출처: 한은)1950년 한국은행법이 제정되고 1997년 물가안정목표제가 시행되고 새로 지어진 한은 본관에는 ‘물가안정’이라는 네 글자가 크게 박혀 있다. 2011년에는 한은법 목적 조항에 ‘금융안정’이 추가됐다. 물가안정목표제를 기준으로 따져봐도 한은은 27년의 세월 동안 물가안정을 위해 존재해왔는데 ‘물가안정이 무엇인가, 한은이 물가안정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스스로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가’라고 말하는 조 위원의 발언은 뼈 아프다. 조 위원은 “(한은의 역할을 이해하기 위해) 브레인스토밍을 세 번 했다. 대차대조표를 갖고서도 해봤는데 아직 여전히 충분한 토의가 일어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날 조 위원은 ‘한국식’ 물가안정과 이에 맞는 대응 방안에 대해 본인의 생각을 털어놨다. 그는 직원들을 향해 “부담드렸습니까?”라며 답변을 마무리했다.◇ 유가·정부 관리에 좌우되는 물가…한은 역할은우리나라 물가 구조를 살펴보면 국제유가 등 국제 환경에 의해 크게 좌우될 뿐만 아니라 유독 다른 나라 대비 정부 관리물가의 비중이 높은 편이다.원유 등 원자재 수입국 특성상 유가가 안정되면 물가가 안정된다. 유가 등 원자재 가격이 오르면 수입 물가가 상승하고 이는 생산자 물가, 소비자 물가로 전해지며 물가 불안이 초래된다. 2008년, 2011년 국제유가 급등기 때 나타났던 현상이고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공급망까지 망가지면서 작년에 이어 올해까지도 고물가 시대가 이어지고 있다. 무상보육, 무상급식, 통신료 등이 정부가 가격 결정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하는 ‘관리물가’로 분류된다. 관리물가는 전체 물가지수 내 458개 품목 중 40개 품목이고 이들의 가중치는 약 20%로 높은 편이다. 두 가지 큰 요인 속에 한은이 물가안정목표제 ‘2%’를 맞추기 위해 정책적으로 할 수 있는 영역이 얼마나 될까에 대한 고민이 있다. 한은이 2016년 물가목표제를 2%로 변경한 이후 코로나19로 인한 공급망 불안과 국제유가 폭등이 나타나기까지 물가상승률은 1%대 이하였다. 한은은 물가 목표는 ‘중장기’적으로 달성하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기간을 어떻게 설정하더라도 2%를 맞춘 적은 없었다. 2017년~2019년 물가가 0~1%대로 낮아도 기준금리가 인상되기도 했다. 물가목표제에 맞게 통화정책이 운영돼야 한다고 생각한 금통위원들은 ‘동결’이나 ‘인하’쪽으로 표를 던지기도 했다. 출처: 한국은행한은은 ‘소비자 물가상승률’을 목표치 기준 지표로 삼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금통위원들이 더 고려하는 물가는 ‘근원물가’다. 이는 금통위 의사록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한 금통위원은 5월 금통위 의사록에서 “소비자 물가 오름세는 당분간 기저효과로 뚜렷한 둔화 흐름을 보일 것으로 예상되지만 물가 흐름 추세를 보여주는 근원물가의 하락세가 예상보다 더디다”며 “상당기간 긴축 기조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근원물가는 통상 수요에 의해 좌우돼 한은이 금리를 조정해 다스릴 수 있는 부분이 많다고 여겨지고 있지만 의사록에 따르면 근원물가가 소비, 내수보다 공급 요인에 의해 상당한 영향을 받고 있다고 보는 금통위원도 있다. 이 위원은 근원물가 상승에 한은이 통화정책 부담을 크게 느끼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석유가격 떼고, 정부 관리물가 빼고, 이제는 근원물가까지 공급 영향을 더 크게 받는다면 한은이 추구하는 물가안정은 도대체 무엇인가, 할 수 있는 영역이 있는가에 대해 더 큰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특히 2021년 8월을 시작으로 1년 반 동안 역사상 가장 빠른 금리 인상을 시도했음에도 한은이 금리를 통해 가장 잘 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여겨지던 ‘근원물가’가 빠르게 둔화되지 않고 있으니 이런 의문은 더 커진다. ◇ 수단은 기준금리인데…금리보다 더 힘센 한전채조 위원은 우리나라 통화정책의 유효성 확보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조 위원은 “통화정책을 하는 데 기준금리가 가장 중요하다”며 “기준금리를 갖고 물가안정을 하는데 있어 중앙은행으로서 유효성을 확보하려고 하는 게 미션이고 맨데이트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환경이 녹록치 않다는 평가다. 2011년 금융안정이 한은법에 추가됐지만 한은은 금융기관에 대한 감독과 통화정책이 분리돼 있는 중앙은행이다. 한은은 독립적으로 개별 금융기관을 감독할 수 없다. 그러나 금융기관에 유동성 사고가 터졌을 경우에는 ‘최종대부자’로서 유동성을 공급해야 한다. 이제는 증권 등 비은행 금융기관의 규모가 커지면서 이들에 대해서도 유동성을 공급해야 한다. 조 위원은 “감독과 통화정책이 분리된 중앙은행에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라고 되물었다. 또 다른 특징도 있다. 조 위원은 “우리나라는 준재정 뿐 아니라 LH공사, 수자원공사, 주택금융공사 등, 이들이 발행하는 (공공)기관채가 시중금리에 미치는 영향이 막대하지 않냐”며 “통화정책 유효성을 확보하기 위해선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과 협의해야 하고,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국토부 등과 공공기관채, 국고채 발행에 대해 협의해야 한다. 그래야 한은의 통화정책 유효성이 확보되지 않겠냐”고 말했다. 이는 작년 9월말 강원도 레고랜드 관련 부도 사태 당시 안전자산 선호심리가 강해지며 은행채, 한국전력채 등이 시장 자금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였던 때를 떠올리게 한다. 한은이 기준금리를 수 차례 올리면서도 단기자금을 제대로 쪼이지 못했는데 한전채 등이 한꺼번에 자금을 빨아들이면서 과도할 정도의 ‘긴축’ 상태를 만들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뒤 한은은 오히려 금리 인상기임에도 단기 유동성을 풀어서 대응해야 했다.조 위원의 발언들은 우리나라 통화정책 운용이 우리나라 특성에 맞게 정립돼야 하고 이에 대한 연구가 더 이뤄져야 함을 의미한다. 우리나라만의 물가 구조를 이해하고 그 속에서 한은이 할 수 있는 물가안정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기준금리를 조정하더라도 금리 결정이 효과적으로 작동하고 있는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이는 단순히 미국의 연구 방식을 따라해서는 얻을 수 없는 값이다. 이는 어느 한 금통위원의 고민이 아니라 사실 한은과 금통위원 모두의 몫이다.
  • 통화정책 '울타리' 벗어난 이창용의 광폭 행보[BOK워치]
    [이데일리 최정희 기자]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작년 4월 취임 이후 1년여간 역사상 가장 빠른 속도로 금리를 올렸다. 물가와 환율 안정을 위해 직진한 시간이었다. 금리를 올릴 만큼 올린 이 총재는 이제 통화정책을 넘어 거시 경제 전반으로 눈을 돌리며 광폭 행보에 나서고 있다.노동시장의 구조 변화, 기후 변화 등 거대 담론에 대해서도 한은이 주도적으로 공론화에 나서는 것이 대표적이다. 일각에선 정부의 부동산, 교육 정책에 대해 말을 아끼지 않았던 박승 전 총재가 떠오른다는 말도 나온다. 이 총재의 오지랖(?)에 때 아닌 그의 부총리 영전설까지 등장했을 정도다. 다만 취임사 등 그의 과거 발언을 되짚어보면 이같은 이 총재의 행보는 이미 예견된 일이라는 평가도 나온다.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2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한국은행 창립 제73주년 기념사를 낭독하고 있다.(출처: 한은)◇ 한은, 거시 담론을 건드리다 이 총재는 취임 후 줄곧 우리나라가 장기적으로 보면 ‘구조적 저성장’ 기조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고 밝혀왔다. 그러나 ‘구조적 저성장’은 단기간의 경기 진폭을 낮추는 금리로는 해결할 수 없는 과제다. 그렇다면 금리 바깥의 영역에서 한은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이 총재의 답변은 명확하다. 그는 취임사에서 “우리 경제가 당면한 중장기적 도전을 생각해 봤을 때 우리 책임이 통화정책의 테두리에만 머무를 수 없다”며 “물가안정, 금융안정 기본 책무를 충실히 수행하면서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정책 수립에 기여하고 민간 부문의 의사결정에 도움을 주는 ‘지적인 리더(intellectual leader)’가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은은 신축 본관으로 이사한 뒤, 각종 세미나를 통해 관련 행보를 강화하고 있다. 지난 4월 25일엔 ‘2023년 노동시장 세미나’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이 총재는 “국내외 노동시장의 변화가 일시적인지, 구조적인지 여부가 불확실하다”며 “급속한 고령화에 따른 노동시장의 구조 변화에 대해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최근 우리나라는 여성과 고령층의 노동 공급이 증가하면서 취업자 수가 호조세를 보이고 있지만, 고령화가 진행될수록 노동 공급의 감소 우려는 크다. 이런 부분이 한은의 제1목표인 물가안정에 미치는 영향이 어떤지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이 총재는 지난 20일에는 2050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와 함께 ‘제1회 녹색금융 국제 컨퍼런스’를 개최했다. 탄소배출이 많은 제조업 위주의 산업 구조를 가진 우리나라의 특성상 탄소중립 과제는 기업의 수익성·재무건정성을 악화시키는 악재인 동시에 새로운 금융 리스크로 부각될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이 총재는 이틀 뒤인 12일 창립 기념사를 통해선 “비은행 금융기관에 대한 감독원이 없다는 이유로 이 문제를 방치해선 안 된다”며, 감독기관과의 정책 공조와 제도 개선 필요성을 강조했다. 실제로 한은은 유사시 비은행에 대한 즉각적인 유동성 공급이 이뤄질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을 추진하고 있다. 한은 안팎에서는 이같은 이 총재의 광폭 행보를 두고 물가안정과 금융안정이라는 한은의 책무와 크게 동 떨어지지 않고 있다고 보고 있다. 구조적으로 고착화해가는 저성장을 타파하기 위한 노력은 정부, 한은을 구분짓지 않기 때문이다. ◇ 악마는 ‘현실 정책’, 디테일에 있다관건은 총재가 바뀐 후에도 한은이 이같은 역할을 지속적으로 수행할 수 있을지 여부다. 이 총재 개인의 퍼포먼스에 그친다면, 지난 1년여간 한은의 ‘시끄러운 변화’에 큰 의미를 두기 힘들다. 한은이 정부의 정치색과 무관하게 어젠다를 계속 던질 수 있을지도 관건이다. 예컨대 소득·자산 양극화 문제의 경우 보수 정권이 들어선 뒤 흐지부지 있지만, 이 역시 ‘구조적 저성장’을 고착화시키는 배경이 되고 있다. 이 총재도 취임사에서 “지나친 양극화는 성장잠재력을 훼손시킬 것이기에 이에 대한 해결이 필요하다”고 밝힌 바 있다. 이 총재는 구조개혁 등 거대 담론에 대해서 목소리를 키워가고 있지만, 성장-물가-금융안정간 상충 관계가 심화하는 상황에서 당장 눈앞에 놓인 현실 과제들에 대해선 명확한 답을 내놓지 못하는 모습이다. 정치권을 중심으로 올 하반기에는 세수 부족으로 인한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이 불가피하다는 관측이 많다. 추경이 세수 부족분을 보충하는 수준이라면 큰 문제가 없지만, 내년 4월 총선을 의식해 경기 부양까지 고려한 대규모 편성이 이뤄진다면 물가 안정을 최우선 목표로 하는 한은은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까. 한은은 금리 인상기에 대출금리 인하 정책을 내세웠던 금융당국을 향해서도 정책 엇박자가 아니라고 항변했었다.주택 가격은 하락세를 멈추고 거래가 늘어나면서 가계대출이 증가하는 상황인 반면, 지방에서는 미분양 주택이 쌓이고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부실 우려가 여전하다. 이런 상황에서 한은은 주택 하방 위험이 높은지, 상방 위험이 높은지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고 있다. 그렇다보니 어떻게 대비하는 것이 좋을 지에 대해서도 분명하지 않다. 부동산 시장은 금융안정은 물론, 물가안정과도 상관관계가 높은 데도 말이다.작년 가계대출의 구조를 개선하겠다며 추진한 안심전환대출이 올해 특례보금자리로 통합되면서 일부에선 가계대출을 늘리는 요인이 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그런데도 한은은 해당 정책을 담당하는 주택금융공사의 2대 주주로서 별 반응을 내놓고 있지 않다. 가계대출 증가는 한은의 금융안정을 해치는 요인으로 꼽힌다.대한민국의 씽크탱크를 표방하는 ‘한은호(號)’의 수장인 이 총재의 광폭 행보는 박수를 보낼 일이다. 하지만 그 행보가 ‘선택적’이라면 한은의 영역 확대에도 제약이 생길 수밖에 없다. 현실 정책에서도 이 총재 말대로 ‘계급장 떼고 할 말은 하는’ 한은이 되길 바란다.
    최정희 기자 2023.06.27
    [이데일리 최정희 기자]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작년 4월 취임 이후 1년여간 역사상 가장 빠른 속도로 금리를 올렸다. 물가와 환율 안정을 위해 직진한 시간이었다. 금리를 올릴 만큼 올린 이 총재는 이제 통화정책을 넘어 거시 경제 전반으로 눈을 돌리며 광폭 행보에 나서고 있다.노동시장의 구조 변화, 기후 변화 등 거대 담론에 대해서도 한은이 주도적으로 공론화에 나서는 것이 대표적이다. 일각에선 정부의 부동산, 교육 정책에 대해 말을 아끼지 않았던 박승 전 총재가 떠오른다는 말도 나온다. 이 총재의 오지랖(?)에 때 아닌 그의 부총리 영전설까지 등장했을 정도다. 다만 취임사 등 그의 과거 발언을 되짚어보면 이같은 이 총재의 행보는 이미 예견된 일이라는 평가도 나온다.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2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한국은행 창립 제73주년 기념사를 낭독하고 있다.(출처: 한은)◇ 한은, 거시 담론을 건드리다 이 총재는 취임 후 줄곧 우리나라가 장기적으로 보면 ‘구조적 저성장’ 기조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고 밝혀왔다. 그러나 ‘구조적 저성장’은 단기간의 경기 진폭을 낮추는 금리로는 해결할 수 없는 과제다. 그렇다면 금리 바깥의 영역에서 한은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이 총재의 답변은 명확하다. 그는 취임사에서 “우리 경제가 당면한 중장기적 도전을 생각해 봤을 때 우리 책임이 통화정책의 테두리에만 머무를 수 없다”며 “물가안정, 금융안정 기본 책무를 충실히 수행하면서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정책 수립에 기여하고 민간 부문의 의사결정에 도움을 주는 ‘지적인 리더(intellectual leader)’가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은은 신축 본관으로 이사한 뒤, 각종 세미나를 통해 관련 행보를 강화하고 있다. 지난 4월 25일엔 ‘2023년 노동시장 세미나’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이 총재는 “국내외 노동시장의 변화가 일시적인지, 구조적인지 여부가 불확실하다”며 “급속한 고령화에 따른 노동시장의 구조 변화에 대해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최근 우리나라는 여성과 고령층의 노동 공급이 증가하면서 취업자 수가 호조세를 보이고 있지만, 고령화가 진행될수록 노동 공급의 감소 우려는 크다. 이런 부분이 한은의 제1목표인 물가안정에 미치는 영향이 어떤지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이 총재는 지난 20일에는 2050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와 함께 ‘제1회 녹색금융 국제 컨퍼런스’를 개최했다. 탄소배출이 많은 제조업 위주의 산업 구조를 가진 우리나라의 특성상 탄소중립 과제는 기업의 수익성·재무건정성을 악화시키는 악재인 동시에 새로운 금융 리스크로 부각될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이 총재는 이틀 뒤인 12일 창립 기념사를 통해선 “비은행 금융기관에 대한 감독원이 없다는 이유로 이 문제를 방치해선 안 된다”며, 감독기관과의 정책 공조와 제도 개선 필요성을 강조했다. 실제로 한은은 유사시 비은행에 대한 즉각적인 유동성 공급이 이뤄질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을 추진하고 있다. 한은 안팎에서는 이같은 이 총재의 광폭 행보를 두고 물가안정과 금융안정이라는 한은의 책무와 크게 동 떨어지지 않고 있다고 보고 있다. 구조적으로 고착화해가는 저성장을 타파하기 위한 노력은 정부, 한은을 구분짓지 않기 때문이다. ◇ 악마는 ‘현실 정책’, 디테일에 있다관건은 총재가 바뀐 후에도 한은이 이같은 역할을 지속적으로 수행할 수 있을지 여부다. 이 총재 개인의 퍼포먼스에 그친다면, 지난 1년여간 한은의 ‘시끄러운 변화’에 큰 의미를 두기 힘들다. 한은이 정부의 정치색과 무관하게 어젠다를 계속 던질 수 있을지도 관건이다. 예컨대 소득·자산 양극화 문제의 경우 보수 정권이 들어선 뒤 흐지부지 있지만, 이 역시 ‘구조적 저성장’을 고착화시키는 배경이 되고 있다. 이 총재도 취임사에서 “지나친 양극화는 성장잠재력을 훼손시킬 것이기에 이에 대한 해결이 필요하다”고 밝힌 바 있다. 이 총재는 구조개혁 등 거대 담론에 대해서 목소리를 키워가고 있지만, 성장-물가-금융안정간 상충 관계가 심화하는 상황에서 당장 눈앞에 놓인 현실 과제들에 대해선 명확한 답을 내놓지 못하는 모습이다. 정치권을 중심으로 올 하반기에는 세수 부족으로 인한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이 불가피하다는 관측이 많다. 추경이 세수 부족분을 보충하는 수준이라면 큰 문제가 없지만, 내년 4월 총선을 의식해 경기 부양까지 고려한 대규모 편성이 이뤄진다면 물가 안정을 최우선 목표로 하는 한은은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까. 한은은 금리 인상기에 대출금리 인하 정책을 내세웠던 금융당국을 향해서도 정책 엇박자가 아니라고 항변했었다.주택 가격은 하락세를 멈추고 거래가 늘어나면서 가계대출이 증가하는 상황인 반면, 지방에서는 미분양 주택이 쌓이고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부실 우려가 여전하다. 이런 상황에서 한은은 주택 하방 위험이 높은지, 상방 위험이 높은지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고 있다. 그렇다보니 어떻게 대비하는 것이 좋을 지에 대해서도 분명하지 않다. 부동산 시장은 금융안정은 물론, 물가안정과도 상관관계가 높은 데도 말이다.작년 가계대출의 구조를 개선하겠다며 추진한 안심전환대출이 올해 특례보금자리로 통합되면서 일부에선 가계대출을 늘리는 요인이 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그런데도 한은은 해당 정책을 담당하는 주택금융공사의 2대 주주로서 별 반응을 내놓고 있지 않다. 가계대출 증가는 한은의 금융안정을 해치는 요인으로 꼽힌다.대한민국의 씽크탱크를 표방하는 ‘한은호(號)’의 수장인 이 총재의 광폭 행보는 박수를 보낼 일이다. 하지만 그 행보가 ‘선택적’이라면 한은의 영역 확대에도 제약이 생길 수밖에 없다. 현실 정책에서도 이 총재 말대로 ‘계급장 떼고 할 말은 하는’ 한은이 되길 바란다.
  • "MZ 마음 잡아라" 줄줄이 맞춤 이벤트…인재 유출 문제는 계속[BOK워치]
    [이데일리 하상렬 기자] 저연차 직원의 잦은 퇴사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한은이 최근 본관 재입주 이후 MZ세대(밀레니얼+Z세대) 직원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세대를 아우르는 ‘오픈하우스’ 행사가 성황리에 막을 내리는가 하면, 직원들 간 유대감을 키우는 연수 프로그램도 호평을 받고 있다.한국은행 신축 통합별관 외관 모습.(사진=공동취재단)◇대학 축제·MT 같은 이벤트 잇따라…겸직 장려도한은은 지난 12일 본부 재입주를 기념해 오픈하우스 행사를 개최했다. 금요일 오후 한은은 ‘일터’가 아닌, ‘대학 축제’를 방불케 했다. ‘복고풍’ 콘셉트의 행사장엔 한은 임직원들이 대거 몰렸고, 이들은 큼지막하게 들리는 음악 속에서 풍성한 볼거리, 먹을거리를 마음껏 즐겼다. 직원들의 호응이 가장 컸던 것은 스티커 사진을 찍는 ‘인생네컷’ 코너로 이창용 한은 총재가 직접 참여하기도 했다.한은은 이번달 2020~2022년 사이 입행한 직원들을 대상으로 ‘BOK 1박2일’ 프로그램도 진행했다. 대학 MT처럼 입행 동기 직원들이 팀을 꾸려 동료의 고향으로 1박2일 동안 봉사 겸 여행을 가는 콘셉트로, 코로나 유행 시기에 입행해 기존 대면 신입 연수를 거치지 않은 직원들에게 유대감을 키우는 등 교류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취지다. 현재 지원한 5개팀 중 1개팀이 프로그램을 마쳤고, 나머지 4개팀도 일정을 소화할 예정이다.최근 직원들의 대외활동 장려 차원에서 겸직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는 내부 행동강령 개정도 있었다. 기존엔 영리 목적 외에 한해 총재 승인을 통해 겸직이 가능했지만, 개정 이후엔 직무 연관성이나 업무수행 지장 여부 등을 따져 총재 또는 준법관리인의 승인 아래 가능하게끔 바꿨다. 내부 정보를 이용하거나 과도한 수익을 내지 않는 한, 경제 관련 유튜버도 될 수 있는 것이다.또한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가족과 체육문화활동을 한 사진을 인증하면 10만원 상당의 문화상품권을 지급하는 행사가 열리기도 했다.◇‘에이스’ 퇴사…임금 개선은 제자리 걸음조직 내 활력을 강화하기 위한 행보를 보이고 있는 한은에 최근 한 직원의 이직 소식은 뼈아프다. 통화정책국 팀장이 ‘연봉 4억원’이라는 파격적인 대우로 블룸버그 이코노미스트로 자리를 옮긴 것이다. 한은 내부에서 손꼽히는 ‘엘리트’로 평가받았다는 점에서 그의 퇴사는 더욱 시선을 끌었다. 지난 2월엔 한국경제학술상을 수상한 조사국 팀장이 대학 교수로 자리를 옮기기도 했다.한은이 인재 이탈 문제를 겪는 이유는 임금 경쟁력에서 상대적으로 취약하다는 점이 가장 크다. 한은의 초봉은 약 5000만원, 평균연봉은 약 1억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결코 낮지 않지만, 다른 금융권이나 유관기관과 비교했을 때 연봉 격차를 느낀다고 임직원들은 토로한다.이창용 총재는 작년 4월 취임 당시 임직원의 처우 개선을 약속한 바 있다. 그는 취임사에서 “개개인의 동기 부여와 조직의 성과를 위해서는 일에 대한 사명감이나 보람 못지않게 인사·조직 운영이나 급여 등에 있어서의 만족도도 중요함을 잘 알고 있다”며 “예산이나 제도 등 여러 제약으로 인해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겠지만 하나둘씩 근무 여건을 개선하고 사기를 진작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자”고 밝혔다.임금 개선을 위해 가장 중요하게 꼽히는 것은 한은 임직원들의 급여성 지출이 기획재정부 장관의 사전 승인을 받게 돼 있는 현행 ‘한은법’이다. 한은 임직원들은 한은법 때문에 급여 인상률이 낮다고 밝혀왔다. 실제로 한은의 임금 인상률은 2018년 1.6%, 2019년 0.8%, 2020년 2.7%, 2021년 0.7%, 2022년 1.2%로 대부분 1% 안팎에 그친 것으로 알려졌다.다만 이 총재는 제3자 사전 승인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그는 지난 2월 국회 업무보고에서 “독립성을 중심으로 보면 급여성 경비를 기재부로부터 사전 승인받는 것은 국제 기준에 맞지 않다”면서도 “나라마다 제도가 다르다. 한은이 준공공기관으로서 급여성 지출에 대한 책임성을 본다면 (얘기가) 달라진다”고 말했다.한은 임직원 1002명은 지난달 총재 1주년을 맞이해 노조가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이 총재 취임 후 급여수준은 적정 수준으로 회복됐는지’라는 물음에 93%가 ‘그렇지 않다’고 답변했다. 해당 설문을 바탕으로 노조는 임직원 임금을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결정하도록 하는 법 개정을 재차 요구했다.
    하상렬 기자 2023.05.31
    [이데일리 하상렬 기자] 저연차 직원의 잦은 퇴사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한은이 최근 본관 재입주 이후 MZ세대(밀레니얼+Z세대) 직원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세대를 아우르는 ‘오픈하우스’ 행사가 성황리에 막을 내리는가 하면, 직원들 간 유대감을 키우는 연수 프로그램도 호평을 받고 있다.한국은행 신축 통합별관 외관 모습.(사진=공동취재단)◇대학 축제·MT 같은 이벤트 잇따라…겸직 장려도한은은 지난 12일 본부 재입주를 기념해 오픈하우스 행사를 개최했다. 금요일 오후 한은은 ‘일터’가 아닌, ‘대학 축제’를 방불케 했다. ‘복고풍’ 콘셉트의 행사장엔 한은 임직원들이 대거 몰렸고, 이들은 큼지막하게 들리는 음악 속에서 풍성한 볼거리, 먹을거리를 마음껏 즐겼다. 직원들의 호응이 가장 컸던 것은 스티커 사진을 찍는 ‘인생네컷’ 코너로 이창용 한은 총재가 직접 참여하기도 했다.한은은 이번달 2020~2022년 사이 입행한 직원들을 대상으로 ‘BOK 1박2일’ 프로그램도 진행했다. 대학 MT처럼 입행 동기 직원들이 팀을 꾸려 동료의 고향으로 1박2일 동안 봉사 겸 여행을 가는 콘셉트로, 코로나 유행 시기에 입행해 기존 대면 신입 연수를 거치지 않은 직원들에게 유대감을 키우는 등 교류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취지다. 현재 지원한 5개팀 중 1개팀이 프로그램을 마쳤고, 나머지 4개팀도 일정을 소화할 예정이다.최근 직원들의 대외활동 장려 차원에서 겸직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는 내부 행동강령 개정도 있었다. 기존엔 영리 목적 외에 한해 총재 승인을 통해 겸직이 가능했지만, 개정 이후엔 직무 연관성이나 업무수행 지장 여부 등을 따져 총재 또는 준법관리인의 승인 아래 가능하게끔 바꿨다. 내부 정보를 이용하거나 과도한 수익을 내지 않는 한, 경제 관련 유튜버도 될 수 있는 것이다.또한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가족과 체육문화활동을 한 사진을 인증하면 10만원 상당의 문화상품권을 지급하는 행사가 열리기도 했다.◇‘에이스’ 퇴사…임금 개선은 제자리 걸음조직 내 활력을 강화하기 위한 행보를 보이고 있는 한은에 최근 한 직원의 이직 소식은 뼈아프다. 통화정책국 팀장이 ‘연봉 4억원’이라는 파격적인 대우로 블룸버그 이코노미스트로 자리를 옮긴 것이다. 한은 내부에서 손꼽히는 ‘엘리트’로 평가받았다는 점에서 그의 퇴사는 더욱 시선을 끌었다. 지난 2월엔 한국경제학술상을 수상한 조사국 팀장이 대학 교수로 자리를 옮기기도 했다.한은이 인재 이탈 문제를 겪는 이유는 임금 경쟁력에서 상대적으로 취약하다는 점이 가장 크다. 한은의 초봉은 약 5000만원, 평균연봉은 약 1억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결코 낮지 않지만, 다른 금융권이나 유관기관과 비교했을 때 연봉 격차를 느낀다고 임직원들은 토로한다.이창용 총재는 작년 4월 취임 당시 임직원의 처우 개선을 약속한 바 있다. 그는 취임사에서 “개개인의 동기 부여와 조직의 성과를 위해서는 일에 대한 사명감이나 보람 못지않게 인사·조직 운영이나 급여 등에 있어서의 만족도도 중요함을 잘 알고 있다”며 “예산이나 제도 등 여러 제약으로 인해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겠지만 하나둘씩 근무 여건을 개선하고 사기를 진작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자”고 밝혔다.임금 개선을 위해 가장 중요하게 꼽히는 것은 한은 임직원들의 급여성 지출이 기획재정부 장관의 사전 승인을 받게 돼 있는 현행 ‘한은법’이다. 한은 임직원들은 한은법 때문에 급여 인상률이 낮다고 밝혀왔다. 실제로 한은의 임금 인상률은 2018년 1.6%, 2019년 0.8%, 2020년 2.7%, 2021년 0.7%, 2022년 1.2%로 대부분 1% 안팎에 그친 것으로 알려졌다.다만 이 총재는 제3자 사전 승인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그는 지난 2월 국회 업무보고에서 “독립성을 중심으로 보면 급여성 경비를 기재부로부터 사전 승인받는 것은 국제 기준에 맞지 않다”면서도 “나라마다 제도가 다르다. 한은이 준공공기관으로서 급여성 지출에 대한 책임성을 본다면 (얘기가) 달라진다”고 말했다.한은 임직원 1002명은 지난달 총재 1주년을 맞이해 노조가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이 총재 취임 후 급여수준은 적정 수준으로 회복됐는지’라는 물음에 93%가 ‘그렇지 않다’고 답변했다. 해당 설문을 바탕으로 노조는 임직원 임금을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결정하도록 하는 법 개정을 재차 요구했다.
  • 1970년대는 '스탑앤고'…지금은 '스턱' 중앙은행[BOK워치]
    [이데일리 최정희 기자] “자동차를 운전하는데 안개가 가득해요. 그럴 때 어떻게 하겠냐. 차를 세우고 안개가 사라질 때까지 본 다음에 갈지 말지 봐야 하지 않겠냐.”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2월 기준금리를 동결, 1년 반간 이어졌던 금리 인상기를 마무리하며 이같이 말했다. 그런데 안개가 아니라면 어떨까. 차가 앞뒤로 빽빽하게 서 있어서 전진도, 후진도 못하는 상황이라면 말이다. 전 세계 공통적으로 근원물가가 떨어지지 않고 있는데 금리를 큰 폭으로 빠르게 올려버린 탓에 금융불안은 고조되고 있다. 앞에는 금융안정이, 뒤에는 물가안정이 딱 버티고 있어 두 마리 토끼한테 둘러싸인 상황이라면 중앙은행 혼자 힘으로 이들을 물리칠 수 있을까. 물가안정 목표제가 없었던 1970년대엔 물가를 잡겠다고 금리를 올렸다가 경기가 조금 나빠지니 금리를 다시 인하하는 ‘스탑앤고(Stop and go)’의 함정이 문제였다면 지금의 중앙은행은 물가안정과 금융안정 사이에서 ‘스턱(Stuck)’, 갇혀 버릴 가능성이 높아졌다.출처: 통계청◇ 금리 올렸는데 근원물가 안 떨어진다 한은은 2021년 8월, 주요국 대비 먼저 금리 인상을 시작했다. 1년반간 올렸던 금리 인상 효과는 올 상반기 가장 효과가 클 것으로 예측되고 있지만 어찌된 일인지 근원물가는 별로 떨어지지 않고 있다. 소비자 전년동월비 상승률은 작년 7월 6.3%에서 올 3월 4.2%로 떨어졌지만 식료품 및 에너지 제외 근원물가는 같은 기간 3.9%에서 4.0%로 변했다. 작년 11월 4.3%보다는 낮아진 것이지만 드라마틱한 변화는 없었다. 외려 한은은 올해 근원물가 상승률 전망치를 3.0%에서 상향 조정키로 했다. 이 총재는 근원물가 둔화세가 느린 이유에 대해 “소비자 물가는 에너지 가격 하락에 따른 기저효과가 많이 반영돼 떨어지는 반면 근원물가는 작년에 못 올렸던 전기·가스요금 인상분이 2차 파급으로 반영되는 데다 거리두기가 끝난 후 소비가 약간 회복, 서비스 물가 둔화 속도가 느리다”고 밝혔다. 금리를 한은 역사상 가장 빠른 속도로 올렸으나 수요측 힘이 여전히 세다는 방증이다. 공공요금 인상 등 원가 부담이 커졌다고 해도 수요가 죽었다면 소비자 가격에 전가할 가능성은 낮다.높은 근원물가는 전 세계 공통 현상이다. 미국 물가상승률은 작년 7월 9%를 넘었다가 올 3월 5%로 낮아졌으나 근원물가는 작년 10월 6.6%에서 3월 5.6% 수준으로 소폭 둔화하는 데 그쳤다. 향후 1년 기대인플레이션율은 4%중후반대로 반등했다. 금리 인상을 멈춘 캐나다와 호주의 근원물가는 3월 각각 4.7%, 6.9%에 달한다.우리나라보다 더 먼저 금리를 올렸던 칠레, 브라질, 콜롬비아 등 라틴아메리카 역시 근원물가가 떨어지지 않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라틴아메리카의 근원물가는 작년 8월이나 올 2월 5%초중반대로 큰 변화가 없었다. 이에 IMF는 전 세계 물가상승률을 올해 7%로 상향 조정하고 2024년에도 4.9%로 높였다. 2025년까지도 물가가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 물가안정까지 인내심 갖자 vs 물가와 싸우지 마라 주요국들이 작년 내내 ‘물가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다 같이 금리 인상에 나섰음에도 근원물가의 높은 흐름이 고착화될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에 상반되는 두 가지 해법이 등장했다. 첫 번째는 중앙은행이 ‘인내심’을 갖고 금리 인상이 물가를 안정시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실바나 텐레이로 영란은행 통화정책위원은 14일(현지시간) 미 워싱턴에서 열린 IMF 고위급 패널 토론에 참석해 “통화정책이 전달되기 위해선 긴 시차가 있고 대부분의 통화정책이 작년 하반기에 발생해 우리는 아직 초반에 있다”며 “금융불안은 일부분의 문제이고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고 밝혔다. 한은 관계자는 “1970년대 오일쇼크 때도 물가가 하락할 때 한번에 쭉 하락하기보다 오르고 내림을 반복했다. 대부분 전쟁이 동반될 때 이러한 흐름을 보이는데 당시엔 중동전쟁이, 지금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각종 지정학적 리스크가 있다”며 “지금은 물가안정 목표제가 있기 때문에 이를 반드시 지켜야 한다. 신뢰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반면 세계적인 석학인 올리비에 블랑샤르 메사추세츠공과대학 교수 겸 피터슨연구소 선임연구원은 IMF 토론에서 “지금의 인플레는 (공급 충격에 의한) 1차 효과이지, 2차 효과는 거의 없었다”며 “그들(인플레이션)과 열심히 싸우려고 하지 말자. (공급) 충격이 사라지면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고 밝혔다.출처: 주요국 중앙은행◇ ‘갇혀버렸다’…정책 여력 바닥난 한은중앙은행이 금리를 큰 폭으로 인상한 것은 물가 상승이 공급망 불안, 유가 급등 등 공급 충격에 의한 것에서 출발했을지라도 2차 파급 효과를 차단, 물가 상승 확산을 막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여전히 중국 리오프닝, 산유국들의 감산에 유가 상승 불안은 여전하고 금리 인상에도 경기 충격은 외려 예상보다 덜한 상황이다. 그렇다고 절대 금리 수준이 낮은 것은 아니다. 한은 기준금리는 연 3.5%로 경기를 갉아먹는 ‘긴축’ 수준에 와 있다. 다만 1월 3.5%로 금리를 인상한 이후 91일물 양도성 예금증서(CD), 국고채 금리 등 장단기 금리 구분 없이 기준금리를 하회하는 일이 잦아졌고 금융당국 압박에 은행 예금·대출 금리는 더 빨리 떨어지고 있다. 금통위원들이 물가를 잡기 위해서 기준금리를 굳이 3.5%로 올려야 한다고 결정했지만 3.5%로서의 영향이 실제 발휘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이는 금리를 더 올려서 해결되는 문제는 아니다.비은행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등 우리나라의 가장 약한 고리는 시장금리 하락 등 유동성을 먹으며 버티고 있다. 금융불안을 고려해 시장의 기대대로 금리를 내렸다가는 ‘물가목표제’가 폐기처분될 우려도 있다. 또 다른 한은 관계자는 “시장에선 물가상승률이 2%대로 내려가면 금리를 인하할 수 있다고 보지만 물가가 2%대가 되면 목표치에서 균형을 이루는 수준인데 왜 금리를 조정하겠냐”며 “최소한 물가가 2% 밑으로 떨어지고 금리를 내리지 않을 경우 경기가 망가진다고 하면 그때 서야 인하가 가능한 상황”이라고 말했다.한은은 사실상 정책 여력이 바닥나고 있다. 금리 인상으로 전진을 하려면 비은행 PF 구조조정 등을 통해 부실 위험을 제거해야 하고, 금리 인하를 하려면 유가 등 원자재 가격을 자극할 지정학적 불안 등 공급 충격을 제거해야 한다. 이는 한은의 몫이 아니다. 다른 중앙은행들도 비슷한 고민이다. ‘갇힌 중앙은행’은 스스로를 구할 수 없다.
    최정희 기자 2023.04.18
    [이데일리 최정희 기자] “자동차를 운전하는데 안개가 가득해요. 그럴 때 어떻게 하겠냐. 차를 세우고 안개가 사라질 때까지 본 다음에 갈지 말지 봐야 하지 않겠냐.”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2월 기준금리를 동결, 1년 반간 이어졌던 금리 인상기를 마무리하며 이같이 말했다. 그런데 안개가 아니라면 어떨까. 차가 앞뒤로 빽빽하게 서 있어서 전진도, 후진도 못하는 상황이라면 말이다. 전 세계 공통적으로 근원물가가 떨어지지 않고 있는데 금리를 큰 폭으로 빠르게 올려버린 탓에 금융불안은 고조되고 있다. 앞에는 금융안정이, 뒤에는 물가안정이 딱 버티고 있어 두 마리 토끼한테 둘러싸인 상황이라면 중앙은행 혼자 힘으로 이들을 물리칠 수 있을까. 물가안정 목표제가 없었던 1970년대엔 물가를 잡겠다고 금리를 올렸다가 경기가 조금 나빠지니 금리를 다시 인하하는 ‘스탑앤고(Stop and go)’의 함정이 문제였다면 지금의 중앙은행은 물가안정과 금융안정 사이에서 ‘스턱(Stuck)’, 갇혀 버릴 가능성이 높아졌다.출처: 통계청◇ 금리 올렸는데 근원물가 안 떨어진다 한은은 2021년 8월, 주요국 대비 먼저 금리 인상을 시작했다. 1년반간 올렸던 금리 인상 효과는 올 상반기 가장 효과가 클 것으로 예측되고 있지만 어찌된 일인지 근원물가는 별로 떨어지지 않고 있다. 소비자 전년동월비 상승률은 작년 7월 6.3%에서 올 3월 4.2%로 떨어졌지만 식료품 및 에너지 제외 근원물가는 같은 기간 3.9%에서 4.0%로 변했다. 작년 11월 4.3%보다는 낮아진 것이지만 드라마틱한 변화는 없었다. 외려 한은은 올해 근원물가 상승률 전망치를 3.0%에서 상향 조정키로 했다. 이 총재는 근원물가 둔화세가 느린 이유에 대해 “소비자 물가는 에너지 가격 하락에 따른 기저효과가 많이 반영돼 떨어지는 반면 근원물가는 작년에 못 올렸던 전기·가스요금 인상분이 2차 파급으로 반영되는 데다 거리두기가 끝난 후 소비가 약간 회복, 서비스 물가 둔화 속도가 느리다”고 밝혔다. 금리를 한은 역사상 가장 빠른 속도로 올렸으나 수요측 힘이 여전히 세다는 방증이다. 공공요금 인상 등 원가 부담이 커졌다고 해도 수요가 죽었다면 소비자 가격에 전가할 가능성은 낮다.높은 근원물가는 전 세계 공통 현상이다. 미국 물가상승률은 작년 7월 9%를 넘었다가 올 3월 5%로 낮아졌으나 근원물가는 작년 10월 6.6%에서 3월 5.6% 수준으로 소폭 둔화하는 데 그쳤다. 향후 1년 기대인플레이션율은 4%중후반대로 반등했다. 금리 인상을 멈춘 캐나다와 호주의 근원물가는 3월 각각 4.7%, 6.9%에 달한다.우리나라보다 더 먼저 금리를 올렸던 칠레, 브라질, 콜롬비아 등 라틴아메리카 역시 근원물가가 떨어지지 않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라틴아메리카의 근원물가는 작년 8월이나 올 2월 5%초중반대로 큰 변화가 없었다. 이에 IMF는 전 세계 물가상승률을 올해 7%로 상향 조정하고 2024년에도 4.9%로 높였다. 2025년까지도 물가가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 물가안정까지 인내심 갖자 vs 물가와 싸우지 마라 주요국들이 작년 내내 ‘물가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다 같이 금리 인상에 나섰음에도 근원물가의 높은 흐름이 고착화될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에 상반되는 두 가지 해법이 등장했다. 첫 번째는 중앙은행이 ‘인내심’을 갖고 금리 인상이 물가를 안정시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실바나 텐레이로 영란은행 통화정책위원은 14일(현지시간) 미 워싱턴에서 열린 IMF 고위급 패널 토론에 참석해 “통화정책이 전달되기 위해선 긴 시차가 있고 대부분의 통화정책이 작년 하반기에 발생해 우리는 아직 초반에 있다”며 “금융불안은 일부분의 문제이고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고 밝혔다. 한은 관계자는 “1970년대 오일쇼크 때도 물가가 하락할 때 한번에 쭉 하락하기보다 오르고 내림을 반복했다. 대부분 전쟁이 동반될 때 이러한 흐름을 보이는데 당시엔 중동전쟁이, 지금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각종 지정학적 리스크가 있다”며 “지금은 물가안정 목표제가 있기 때문에 이를 반드시 지켜야 한다. 신뢰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반면 세계적인 석학인 올리비에 블랑샤르 메사추세츠공과대학 교수 겸 피터슨연구소 선임연구원은 IMF 토론에서 “지금의 인플레는 (공급 충격에 의한) 1차 효과이지, 2차 효과는 거의 없었다”며 “그들(인플레이션)과 열심히 싸우려고 하지 말자. (공급) 충격이 사라지면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고 밝혔다.출처: 주요국 중앙은행◇ ‘갇혀버렸다’…정책 여력 바닥난 한은중앙은행이 금리를 큰 폭으로 인상한 것은 물가 상승이 공급망 불안, 유가 급등 등 공급 충격에 의한 것에서 출발했을지라도 2차 파급 효과를 차단, 물가 상승 확산을 막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여전히 중국 리오프닝, 산유국들의 감산에 유가 상승 불안은 여전하고 금리 인상에도 경기 충격은 외려 예상보다 덜한 상황이다. 그렇다고 절대 금리 수준이 낮은 것은 아니다. 한은 기준금리는 연 3.5%로 경기를 갉아먹는 ‘긴축’ 수준에 와 있다. 다만 1월 3.5%로 금리를 인상한 이후 91일물 양도성 예금증서(CD), 국고채 금리 등 장단기 금리 구분 없이 기준금리를 하회하는 일이 잦아졌고 금융당국 압박에 은행 예금·대출 금리는 더 빨리 떨어지고 있다. 금통위원들이 물가를 잡기 위해서 기준금리를 굳이 3.5%로 올려야 한다고 결정했지만 3.5%로서의 영향이 실제 발휘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이는 금리를 더 올려서 해결되는 문제는 아니다.비은행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등 우리나라의 가장 약한 고리는 시장금리 하락 등 유동성을 먹으며 버티고 있다. 금융불안을 고려해 시장의 기대대로 금리를 내렸다가는 ‘물가목표제’가 폐기처분될 우려도 있다. 또 다른 한은 관계자는 “시장에선 물가상승률이 2%대로 내려가면 금리를 인하할 수 있다고 보지만 물가가 2%대가 되면 목표치에서 균형을 이루는 수준인데 왜 금리를 조정하겠냐”며 “최소한 물가가 2% 밑으로 떨어지고 금리를 내리지 않을 경우 경기가 망가진다고 하면 그때 서야 인하가 가능한 상황”이라고 말했다.한은은 사실상 정책 여력이 바닥나고 있다. 금리 인상으로 전진을 하려면 비은행 PF 구조조정 등을 통해 부실 위험을 제거해야 하고, 금리 인하를 하려면 유가 등 원자재 가격을 자극할 지정학적 불안 등 공급 충격을 제거해야 한다. 이는 한은의 몫이 아니다. 다른 중앙은행들도 비슷한 고민이다. ‘갇힌 중앙은행’은 스스로를 구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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