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부

오현주

기자

e갤러리

  • 때론 나무숲처럼 방어벽 쌓고 때론 물방울처럼 튀어 흩어져 [e갤러리]
    전지현 ‘보이지 않는 세계’(2024 사진=갤러리이즈)[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잠시 머뭇거릴 수밖에. 길게 죽 뻗은 기둥이 줄지어 눈앞을 가로막고 있으니 말이다. 얇은 틈조차 내지 않고 서로 밀착한 채다. 어디 울창한 나무숲이라도 되려나. 하지만 이조차 추측일 뿐, 그림 어느 부분에서도 확실한 사인은 없다. 게다가 이렇게까지 다 꺼내놓고선 말이다. ‘보이지 않는 세계’(Invisible World·2024)란다. 도대체 저 안에 어떤 세계를 또 숨겨놨길래. 다소 섣부르지만 굳이 답을 찾는다면 ‘내면’이다. 작가 전지현(67)이 빽빽하게 채운 화면 저 안쪽에 담아둔 게 말이다. 살아 꿈틀대는 진짜 사는 모습이 품은 ‘속살’이란 거다. 때론 거친 나무숲에 첩첩이 방어벽을 쌓기도 하고, 때론 물방울처럼 튀어올라 공기 중에 무심히 흩어지기도 하면서. 작가는 예순이 넘어 정규과정(홍익대 미술대학원)에서 회화를 공부하고 뒤늦게 자신만의 붓길을 낸 늦깎이 화가다. 슬쩍슬쩍 형체가 배어나오기도 하지만, 주로 선과 색의 여운을 붙들어두는 추상화면을 꾸려왔다. 세상과의 소통에서 얻은 감성·서정 등이 바탕이라는 ‘보이지 않는 세계’를 연작으로 말이다. 그 속 깊은 내면은 감히 형상으로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여기는 거다. 강하지만 격하진 않는 특유의 색감 역시 ‘내면으로 가는 길’을 단단히 다지고 있다. 29일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동 갤러리이즈서 여는 ‘전지현 개인전’에서 볼 수 있다. 캔버스에 아크릴. 60.6×60.6㎝. 갤러리이즈 제공.
    오현주 기자 2024.07.24
    전지현 ‘보이지 않는 세계’(2024 사진=갤러리이즈)[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잠시 머뭇거릴 수밖에. 길게 죽 뻗은 기둥이 줄지어 눈앞을 가로막고 있으니 말이다. 얇은 틈조차 내지 않고 서로 밀착한 채다. 어디 울창한 나무숲이라도 되려나. 하지만 이조차 추측일 뿐, 그림 어느 부분에서도 확실한 사인은 없다. 게다가 이렇게까지 다 꺼내놓고선 말이다. ‘보이지 않는 세계’(Invisible World·2024)란다. 도대체 저 안에 어떤 세계를 또 숨겨놨길래. 다소 섣부르지만 굳이 답을 찾는다면 ‘내면’이다. 작가 전지현(67)이 빽빽하게 채운 화면 저 안쪽에 담아둔 게 말이다. 살아 꿈틀대는 진짜 사는 모습이 품은 ‘속살’이란 거다. 때론 거친 나무숲에 첩첩이 방어벽을 쌓기도 하고, 때론 물방울처럼 튀어올라 공기 중에 무심히 흩어지기도 하면서. 작가는 예순이 넘어 정규과정(홍익대 미술대학원)에서 회화를 공부하고 뒤늦게 자신만의 붓길을 낸 늦깎이 화가다. 슬쩍슬쩍 형체가 배어나오기도 하지만, 주로 선과 색의 여운을 붙들어두는 추상화면을 꾸려왔다. 세상과의 소통에서 얻은 감성·서정 등이 바탕이라는 ‘보이지 않는 세계’를 연작으로 말이다. 그 속 깊은 내면은 감히 형상으로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여기는 거다. 강하지만 격하진 않는 특유의 색감 역시 ‘내면으로 가는 길’을 단단히 다지고 있다. 29일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동 갤러리이즈서 여는 ‘전지현 개인전’에서 볼 수 있다. 캔버스에 아크릴. 60.6×60.6㎝. 갤러리이즈 제공.
  • "구두통, 내게 넘겨줘"…붓까지 묵직했던 그 시절 [e갤러리]
    김남배 ‘구두닦이’(1958 사진=미광화랑)[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작은 집 모양 나무통과 나무의자를 둘러메고 온종일 길거리를 쏘다녀야 하는 일. 어쩌다 구두 신은 신사와 눈이라도 마주치면 운이 좋다고 했다. 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니다가 기어이 나무의자에 앉히고 나무통에 발을 얹게 했으니까. 구두닦이, 이런 밥벌이가 있었더랬다. 아무리 추억으로 포장해도 짠한 광경이었다. 책가방 대신 구두통을 메야 했던 소년들의 일이었으니까. 공치는 날이 수두룩해도 엄연히 직업이었다. 코 묻은 돈이 쪼개져 학비로 가든 가사로 가든 ‘식구 살리는 일’에 쓰였으니까. 작가 김남배(1908∼1980)도 같은 마음이었을까. 묵직한 ‘장비’에 어깨가 내려앉은 소년의 등을 바라봤으니 말이다. 그 소년의 짐을 넘겨받으려 한 다른 소년의 눈빛에선 붓까지 묵직해졌을 거다. 한국전쟁 직후 흔한 풍경이던 구두닦이 소년들을 ‘흔치 않은 풍경’으로 가둬낸 ‘구두닦이’(1958)가 말이다. 1930년대 말 부산지역에서 ‘춘광회’를 창립한 작가는 서성찬·양달석·우신출 등과 활발히 활동했다. 일제강점기 조선미술전람회를 비롯해 공모전을 휩쓸 만큼 유화에 능했으나 한창 때 수묵화에 빠져들면서 동서양 양쪽으로 붓길을 냈던 미술가로 꼽힌다. 31일까지 부산 수영구 광남로172번길 미광화랑서 여는 ‘꽃피는 부산항 11회전’에서 볼 수 있다. 2000년대 초부터 잊혀가는 부산·경남지역 근대미술가를 찾고 재조명해온 기획전에 이번에는 ‘춘광회’ 멤버 등 작가 27인이 이름을 올렸다. 합판에 오일. 45.5×60.5㎝. 미광화랑 제공.
    오현주 기자 2024.05.30
    김남배 ‘구두닦이’(1958 사진=미광화랑)[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작은 집 모양 나무통과 나무의자를 둘러메고 온종일 길거리를 쏘다녀야 하는 일. 어쩌다 구두 신은 신사와 눈이라도 마주치면 운이 좋다고 했다. 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니다가 기어이 나무의자에 앉히고 나무통에 발을 얹게 했으니까. 구두닦이, 이런 밥벌이가 있었더랬다. 아무리 추억으로 포장해도 짠한 광경이었다. 책가방 대신 구두통을 메야 했던 소년들의 일이었으니까. 공치는 날이 수두룩해도 엄연히 직업이었다. 코 묻은 돈이 쪼개져 학비로 가든 가사로 가든 ‘식구 살리는 일’에 쓰였으니까. 작가 김남배(1908∼1980)도 같은 마음이었을까. 묵직한 ‘장비’에 어깨가 내려앉은 소년의 등을 바라봤으니 말이다. 그 소년의 짐을 넘겨받으려 한 다른 소년의 눈빛에선 붓까지 묵직해졌을 거다. 한국전쟁 직후 흔한 풍경이던 구두닦이 소년들을 ‘흔치 않은 풍경’으로 가둬낸 ‘구두닦이’(1958)가 말이다. 1930년대 말 부산지역에서 ‘춘광회’를 창립한 작가는 서성찬·양달석·우신출 등과 활발히 활동했다. 일제강점기 조선미술전람회를 비롯해 공모전을 휩쓸 만큼 유화에 능했으나 한창 때 수묵화에 빠져들면서 동서양 양쪽으로 붓길을 냈던 미술가로 꼽힌다. 31일까지 부산 수영구 광남로172번길 미광화랑서 여는 ‘꽃피는 부산항 11회전’에서 볼 수 있다. 2000년대 초부터 잊혀가는 부산·경남지역 근대미술가를 찾고 재조명해온 기획전에 이번에는 ‘춘광회’ 멤버 등 작가 27인이 이름을 올렸다. 합판에 오일. 45.5×60.5㎝. 미광화랑 제공.
  • 몸으로 살고자 했던 이들의 '지난한 초상' [e갤러리]
    이석우 ‘물장수’(1969 사진=미광화랑)[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청초 이석우(1928∼1987). 충북 청원에서 난 뒤 서울대 미대 동양학과 1기생으로 입학했다. 서울에서 유학한 충청도 사람인 화백이 결국 ‘부산화단’에서 한국화의 명맥을 지켜냈던 결정적 이유는 한국전쟁이다. 전쟁이 끝난 이후 경남 통영을 거쳐 부산에 자리를 잡았고, 동아대에서 후학을 기르며 작품활동을 했다. 근대미술에서 도드라진 화백의 자리는 ‘결이 다른 작품’이 만들고 있다. 당시라 해도 동양화나 한국화라면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로다’를 추구하는 고고한 정신세계가 지배할 때가 아닌가. ‘음소거’ 아래 멈춰 세운 세상풍경 말이다. 그런데 웬걸. 화백이 그어내는 붓끝은 소란스러웠다. 몸으로 사는 이들이 내는 삶의 소리가 요란했으니까. 리어카에 좌판을 편 여인들, 돌처럼 무거운 수레를 끄는 사내들, 물질하고, 소몰이하고, 눈보라를 헤치며 장에 나가고. 그러다 잠깐 나무 밑 쪽잠을 자는 휴식에서도 거친 숨소리가 들렸으니까. ‘물장수’(1969)는 화백이 기록한 그 시절 ‘살고자 했던 이들’의 지난한 초상이다. 31일까지 부산 수영구 광남로172번길 미광화랑서 여는 ‘꽃피는 부산항 11회전’에서 볼 수 있다. 서양화가 중심인 전시에 ‘귀한’ 한국화로 걸렸다. 2000년대 초부터 잊혀가는 부산·경남지역 근대미술가를 찾고 재조명해온 기획전에 이번에는 작가 27인(서양화가 24인, 한국화가 3인)이 이름을 올렸다. 종이에 수묵담채. 59.5×55.5㎝. 미광화랑 제공.
    오현주 기자 2024.05.30
    이석우 ‘물장수’(1969 사진=미광화랑)[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청초 이석우(1928∼1987). 충북 청원에서 난 뒤 서울대 미대 동양학과 1기생으로 입학했다. 서울에서 유학한 충청도 사람인 화백이 결국 ‘부산화단’에서 한국화의 명맥을 지켜냈던 결정적 이유는 한국전쟁이다. 전쟁이 끝난 이후 경남 통영을 거쳐 부산에 자리를 잡았고, 동아대에서 후학을 기르며 작품활동을 했다. 근대미술에서 도드라진 화백의 자리는 ‘결이 다른 작품’이 만들고 있다. 당시라 해도 동양화나 한국화라면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로다’를 추구하는 고고한 정신세계가 지배할 때가 아닌가. ‘음소거’ 아래 멈춰 세운 세상풍경 말이다. 그런데 웬걸. 화백이 그어내는 붓끝은 소란스러웠다. 몸으로 사는 이들이 내는 삶의 소리가 요란했으니까. 리어카에 좌판을 편 여인들, 돌처럼 무거운 수레를 끄는 사내들, 물질하고, 소몰이하고, 눈보라를 헤치며 장에 나가고. 그러다 잠깐 나무 밑 쪽잠을 자는 휴식에서도 거친 숨소리가 들렸으니까. ‘물장수’(1969)는 화백이 기록한 그 시절 ‘살고자 했던 이들’의 지난한 초상이다. 31일까지 부산 수영구 광남로172번길 미광화랑서 여는 ‘꽃피는 부산항 11회전’에서 볼 수 있다. 서양화가 중심인 전시에 ‘귀한’ 한국화로 걸렸다. 2000년대 초부터 잊혀가는 부산·경남지역 근대미술가를 찾고 재조명해온 기획전에 이번에는 작가 27인(서양화가 24인, 한국화가 3인)이 이름을 올렸다. 종이에 수묵담채. 59.5×55.5㎝. 미광화랑 제공.
  • 차고 각 잡힌 '빛'…60여년 반딧불이를 좇다 [e갤러리]
    우제길 ‘빛 2010-6B’(Light 2010-6B·2010), 캔버스에 오일, 259.0×181.8㎝(사진=전남도립미술관)[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작가 우제길(82)은 ‘빛’(Light)이다. 60여년 간 이어온 화업이 빛에 대한 갈망과 변주였단 얘기다. 자연에서 발견한 빛이란 요소를 시각화해 꺼내놓는 일이었다. 일본 교토에서 태어나 유학 중이던 부모와 귀국하기 전까지 살던 유년기 동네 냇가의 반딧불이가 그 원천이라고 했다. 평생 반딧불이를, 아니 빛을 좇는 작업을 해왔던 거다. 이후 전남 광주를 기반으로 공부하고 교직생활을 하며 작가생활까지 해왔는데, 1960년대 후반 호남지역 추상미술의 거점이던 ‘에포크’(Epoque)는 작가에게도 실험적 작업을 위한 거점이었던 모양이다. 1972년 ‘전라남도 미술전람회’에서 추상화가로는 처음으로 우수상을 받은 ‘리듬(Rhythm) 72-3H’(1972)는 그 출발이었다고 할까. 1976년 한국미술대상전 특별상, 1995년 제1회 광주비엔날레 인기상, 2019년 제18회 문신미술상 등으로 각종 상을 휩쓸며 작품성에 대중성까지 지켜냈다. 우제길 ‘리듬 72-3H’(Rhythm 72-3H·1972), 캔버스에 오일, 145.5×145.5㎝(사진=전남도립미술관)작품세계에서 가장 독특한 점이라면 무형의 빛을 다듬어낸 방식. 흔히 ‘따뜻하다’로 퉁치고 가는 그 빛이 차고 건조하고 딱딱하며 각이 잡힌 기하학적 형태였던 거다. ‘빛 2010-6B’(Light 2010-6B·2010)는 그 세계를 한눈에 관통하는 대표작이라고 할까. 젯소로 밑칠한 캔버스에 마스킹테이프로 형태를 잡은 뒤 그 위에 붓칠을 해 ‘빛나는’ 형체를 뽑아내는 방식. 물감이 마르면 덧바르기를 반복해 쌓고 쌓은 도형들이 깊은 입체감으로 ‘빛의 단층’을 만들어낸다. 빛을 입은 색의 변천은 시대별 포인트라 할 터. 1970년대 흑백톤 무채색 위에 1980년대에는 군청색이 오르고, 1990년대에는 초록·빨강·갈색이 첨가됐다. 2000년대부턴 원색의 퍼레이드인데, 작품명을 ‘빛’ 하나로 쓰기 시작한 것도 이즈음이다. 5월 12일까지 전남 광양시 광양읍 순광로 전남도립미술관서 여는 초대전 ‘빛 사이 색’에서 볼 수 있다. 1960년대 초기작부터 2024년 신작까지 100여점을 연대기순으로 걸고 회고전을 대신한다. 우제길 ‘빛 2024-12A’(Light 2024-12A·2024), 캔버스에 오일, 100.3×100.3㎝(사진=전남도립미술관)
    오현주 기자 2024.04.18
    우제길 ‘빛 2010-6B’(Light 2010-6B·2010), 캔버스에 오일, 259.0×181.8㎝(사진=전남도립미술관)[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작가 우제길(82)은 ‘빛’(Light)이다. 60여년 간 이어온 화업이 빛에 대한 갈망과 변주였단 얘기다. 자연에서 발견한 빛이란 요소를 시각화해 꺼내놓는 일이었다. 일본 교토에서 태어나 유학 중이던 부모와 귀국하기 전까지 살던 유년기 동네 냇가의 반딧불이가 그 원천이라고 했다. 평생 반딧불이를, 아니 빛을 좇는 작업을 해왔던 거다. 이후 전남 광주를 기반으로 공부하고 교직생활을 하며 작가생활까지 해왔는데, 1960년대 후반 호남지역 추상미술의 거점이던 ‘에포크’(Epoque)는 작가에게도 실험적 작업을 위한 거점이었던 모양이다. 1972년 ‘전라남도 미술전람회’에서 추상화가로는 처음으로 우수상을 받은 ‘리듬(Rhythm) 72-3H’(1972)는 그 출발이었다고 할까. 1976년 한국미술대상전 특별상, 1995년 제1회 광주비엔날레 인기상, 2019년 제18회 문신미술상 등으로 각종 상을 휩쓸며 작품성에 대중성까지 지켜냈다. 우제길 ‘리듬 72-3H’(Rhythm 72-3H·1972), 캔버스에 오일, 145.5×145.5㎝(사진=전남도립미술관)작품세계에서 가장 독특한 점이라면 무형의 빛을 다듬어낸 방식. 흔히 ‘따뜻하다’로 퉁치고 가는 그 빛이 차고 건조하고 딱딱하며 각이 잡힌 기하학적 형태였던 거다. ‘빛 2010-6B’(Light 2010-6B·2010)는 그 세계를 한눈에 관통하는 대표작이라고 할까. 젯소로 밑칠한 캔버스에 마스킹테이프로 형태를 잡은 뒤 그 위에 붓칠을 해 ‘빛나는’ 형체를 뽑아내는 방식. 물감이 마르면 덧바르기를 반복해 쌓고 쌓은 도형들이 깊은 입체감으로 ‘빛의 단층’을 만들어낸다. 빛을 입은 색의 변천은 시대별 포인트라 할 터. 1970년대 흑백톤 무채색 위에 1980년대에는 군청색이 오르고, 1990년대에는 초록·빨강·갈색이 첨가됐다. 2000년대부턴 원색의 퍼레이드인데, 작품명을 ‘빛’ 하나로 쓰기 시작한 것도 이즈음이다. 5월 12일까지 전남 광양시 광양읍 순광로 전남도립미술관서 여는 초대전 ‘빛 사이 색’에서 볼 수 있다. 1960년대 초기작부터 2024년 신작까지 100여점을 연대기순으로 걸고 회고전을 대신한다. 우제길 ‘빛 2024-12A’(Light 2024-12A·2024), 캔버스에 오일, 100.3×100.3㎝(사진=전남도립미술관)
  • 어디에도 없지만 이미 다 들어찬…'종이집' 서정 [e갤러리]
    이종한 ‘어디에도 없는’(Nowhere-2408·2024), 한지·염료, 93×72㎝(사진=갤러리작)[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비탈길을 타고 오른 크고 작은 집들이 마을을 이뤘다. 그윽하고 조용한 풍경. 저마다 순한 색을 뽐내고 있지만 이미 해가 퇴근한 뒤인가 보다. 창문과 골목길에 은은한 조명빛이 새어나오고 있으니. 무조건 따뜻해 보이는 이 동네 전경은 한지를 붙여 한 채 한 채 집을 짓듯 만들었단다. 작가 이종한(61)에겐 ‘집 철학’이 있다. “가정을 담은 집만큼은 그 자체로 선물이고 행복”이라고. “우리 삶을 더 고상하고 더 위대하게 쌓는 건 소유가 아니라 존재를 질적으로 돌보는 일”이라고. 하나하나 공들여 빚어낸, 그러니까 물에 푼 한지를 염료와 섞은 뒤 손으로 조물조물해 지은 ‘종이집’은 작가에겐 바로 ‘존재를 질적으로 돌보는 일’인 거다. 그렇게 세상에서 다시 찾을 수 없는 ‘어디에도 없는’(Nowhere-2408·2024) 집들이 저마다 문패를 내걸었다. 역시 어디에도 없지만 이미 다 들어찬, 집과 집 사이 추억은 작품의 묘미다. 작가의 어린 시절 추억을 품은 “만화방, 미용실, 솜틀집, 교회와 구멍가게”, 또 몹시도 그리운 옛 친구들이 총총히 숨어 있다. 20일까지 서울 서초구 매헌로 갤러리작서 김정수·김명곤·임근우와 여는 4인 기획전 ‘축복의 근원’(The Origin of Blessing)에서 볼 수 있다. 개관 17주년을 맞은 갤러리의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란 취지와 줄곧 함께해온 작가들의 신작 30여점을 걸었다. 이종한 ‘어디에도 없는’(Nowhere-2324·2023), 한지·염료, 76×183㎝(사진=갤러리작)
    오현주 기자 2024.04.12
    이종한 ‘어디에도 없는’(Nowhere-2408·2024), 한지·염료, 93×72㎝(사진=갤러리작)[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비탈길을 타고 오른 크고 작은 집들이 마을을 이뤘다. 그윽하고 조용한 풍경. 저마다 순한 색을 뽐내고 있지만 이미 해가 퇴근한 뒤인가 보다. 창문과 골목길에 은은한 조명빛이 새어나오고 있으니. 무조건 따뜻해 보이는 이 동네 전경은 한지를 붙여 한 채 한 채 집을 짓듯 만들었단다. 작가 이종한(61)에겐 ‘집 철학’이 있다. “가정을 담은 집만큼은 그 자체로 선물이고 행복”이라고. “우리 삶을 더 고상하고 더 위대하게 쌓는 건 소유가 아니라 존재를 질적으로 돌보는 일”이라고. 하나하나 공들여 빚어낸, 그러니까 물에 푼 한지를 염료와 섞은 뒤 손으로 조물조물해 지은 ‘종이집’은 작가에겐 바로 ‘존재를 질적으로 돌보는 일’인 거다. 그렇게 세상에서 다시 찾을 수 없는 ‘어디에도 없는’(Nowhere-2408·2024) 집들이 저마다 문패를 내걸었다. 역시 어디에도 없지만 이미 다 들어찬, 집과 집 사이 추억은 작품의 묘미다. 작가의 어린 시절 추억을 품은 “만화방, 미용실, 솜틀집, 교회와 구멍가게”, 또 몹시도 그리운 옛 친구들이 총총히 숨어 있다. 20일까지 서울 서초구 매헌로 갤러리작서 김정수·김명곤·임근우와 여는 4인 기획전 ‘축복의 근원’(The Origin of Blessing)에서 볼 수 있다. 개관 17주년을 맞은 갤러리의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란 취지와 줄곧 함께해온 작가들의 신작 30여점을 걸었다. 이종한 ‘어디에도 없는’(Nowhere-2324·2023), 한지·염료, 76×183㎝(사진=갤러리작)
  • '감정' 실린 그림…"겸재의 인왕산 좇아" [e갤러리]
    최진욱 ‘인왕산 그리기’(2024), 캔버스에 아크릴, 145.5×227.3㎝(사진=아트사이드갤러리)[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나지막한 한옥지붕을 징검다리 삼아 시선을 통통 튕겨내다 보면, 저만치 구름 아래 닿게 된다. ‘인왕산’이다. 똑같은 시간, 똑같은 자리에서 내다보던 전경이어도 말이다. 매일 같지만 매일 다른 법. 그 일상이 문득 특별하게 움직인 찰나가 바로 예술이 될 테다. 작가 최진욱(68)이 40년 화업에서 놓지 않은 그거다. 평생 올곧게 그어낸 작가의 붓길은 ‘감성적 리얼리즘’으로 통한다. 대상을 현실적으로 옮겨놓되 서정적 공감력을 흩뿌리는 건데. 한마디로 ‘감정이 실린 그림’이라고 할까. 마땅히 작가의 작업은 마음 둘 곳을 찾는 일부터다. 그 마음이 이후 붓을 움직일 절대조건이니까. 이를 두고 작가는 “단순히 재현을 벗어나 눈앞에 있는 사물을 눈으로 만지고 볼로 비빌 수 있다면 그것이 리얼리즘”이라고 단언했더랬다. ‘인왕산 그리기’(Painting the Mt. Inwangsan·2024)가 그랬나 보다. “겸재를 따라 인왕산을 그려본다는 흥분된 기분”이 강한 모티프였던 셈. 작업실을 아예 저 역사가 스민 풍광 앞으로 옮겨 완성했단다. 바로 개인전을 열 갤러리 3층 테라스에서 바라본 전경이었던 거다. 아마 시간에는 좀 쫓겼나 본데, “그림이 망해가는데도 흥분은 사라지지 않더라”고 했다. “통조리처럼 변하지 않는” 감성적 리얼리즘이 작용했던 거다. 4월 13일까지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6길 아트사이드갤러리서 여는 개인전 ‘창신동의 달’에서 볼 수 있다. 700호 1점, 150호 2점, 120호 3점을 비롯해 감성이 뚝뚝 떨어지는 회화작품 18점을 걸었다. 최진욱 ‘렌트 5’(Rent 5·2022), 캔버스에 아크릴, 145.5×227.3㎝(사진=아트사이드갤러리)최진욱 ‘꿈을 꾸나요?’(Are You Dreaming·2023), 캔버스에 오일, 72.7×100㎝(사진=아트사이드갤러리)최진욱 ‘창신동의 달 6’(The Moon in Changsindong 6·2024), 캔버스에 아크릴, 193.9×130.3㎝(사진=아트사이드갤러리)
    오현주 기자 2024.04.08
    최진욱 ‘인왕산 그리기’(2024), 캔버스에 아크릴, 145.5×227.3㎝(사진=아트사이드갤러리)[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나지막한 한옥지붕을 징검다리 삼아 시선을 통통 튕겨내다 보면, 저만치 구름 아래 닿게 된다. ‘인왕산’이다. 똑같은 시간, 똑같은 자리에서 내다보던 전경이어도 말이다. 매일 같지만 매일 다른 법. 그 일상이 문득 특별하게 움직인 찰나가 바로 예술이 될 테다. 작가 최진욱(68)이 40년 화업에서 놓지 않은 그거다. 평생 올곧게 그어낸 작가의 붓길은 ‘감성적 리얼리즘’으로 통한다. 대상을 현실적으로 옮겨놓되 서정적 공감력을 흩뿌리는 건데. 한마디로 ‘감정이 실린 그림’이라고 할까. 마땅히 작가의 작업은 마음 둘 곳을 찾는 일부터다. 그 마음이 이후 붓을 움직일 절대조건이니까. 이를 두고 작가는 “단순히 재현을 벗어나 눈앞에 있는 사물을 눈으로 만지고 볼로 비빌 수 있다면 그것이 리얼리즘”이라고 단언했더랬다. ‘인왕산 그리기’(Painting the Mt. Inwangsan·2024)가 그랬나 보다. “겸재를 따라 인왕산을 그려본다는 흥분된 기분”이 강한 모티프였던 셈. 작업실을 아예 저 역사가 스민 풍광 앞으로 옮겨 완성했단다. 바로 개인전을 열 갤러리 3층 테라스에서 바라본 전경이었던 거다. 아마 시간에는 좀 쫓겼나 본데, “그림이 망해가는데도 흥분은 사라지지 않더라”고 했다. “통조리처럼 변하지 않는” 감성적 리얼리즘이 작용했던 거다. 4월 13일까지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6길 아트사이드갤러리서 여는 개인전 ‘창신동의 달’에서 볼 수 있다. 700호 1점, 150호 2점, 120호 3점을 비롯해 감성이 뚝뚝 떨어지는 회화작품 18점을 걸었다. 최진욱 ‘렌트 5’(Rent 5·2022), 캔버스에 아크릴, 145.5×227.3㎝(사진=아트사이드갤러리)최진욱 ‘꿈을 꾸나요?’(Are You Dreaming·2023), 캔버스에 오일, 72.7×100㎝(사진=아트사이드갤러리)최진욱 ‘창신동의 달 6’(The Moon in Changsindong 6·2024), 캔버스에 아크릴, 193.9×130.3㎝(사진=아트사이드갤러리)
  • 숨은 '파랑새' 찾기…상상을 부르는 '애정' [e갤러리]
    황예랑 ‘실내에서 나무와 새를 기르는 방법’(2024 사진=페이지룸8)[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손길이 많이 간듯, 잘 다듬은 화초가 돋보이는 화분이 나란히 놓인 테이블. 슬쩍 보이는 창문이 아니어도 집밖이 아닌 집안의 공간처럼 보인다. 붉은 열매와 하얀꽃, 뾰족한 초록잎 분재가 적절하게 어우러져 있다. 그런데 단순히 정물화적 구상은 아닌가 보다. 슬쩍 들여다본 작품명이 ‘실내에서 나무와 새를 기르는 방법’(2024)이니까. 예쁘고 참한 전경을 옮겨다 놓은 그 이상의 의도가 숨어 있는 듯하단 얘기다. 작가 황예랑(31)은 ‘작은 존재’에 관심이 많다. 작가 자신의 시공간에 잠시 머무는 생물에 대한 애정인데. 꽃과 나무, 새와 나비 등 살아 움직이는 것은 물론이고, 일상의 사물에까지 생명력을 심어 화면으로 불러내는 거다. 때론 정밀한 묘사로 한눈에 들어오게, 때론 거친 묘사로 상상을 동원하게 하는 작업에 더 독특한 것은 ‘햐얀’이 가진 상징성을 뿌려두는 거다. 흰먹과 백묵을 재료로 즐겨쓰는 것 외에 순수·무결 등의 의미를 슬쩍 흘려둔단다. 역시 ‘하얀’천이 도드라진 작품에서, 그렇다면 작품명이 암시한 ‘새’는 과연 어디에 있나. 하얀천 아래, 흘려보지 않아야 비로소 눈에 들어오는 철제 새장 그 안쪽이다. 좌우로 한 마리씩, 작은 발과 긴 꼬리로 존재를 알리고 있다. 4월 4일까지 서울 종로구 북촌로11길 페이지룸8서 여는 개인전 ‘숨을 참는 버릇’에서 볼 수 있다. 한국화 21점, 조각 3점 등 24점을 꺼내놨다. 한지에 먹·백묵·동양화물감. 72.7×90.9㎝. 페이지룸8 제공. 황예랑 ‘숨을 참는 버릇’(2024·19.5×25㎝), 한지에 먹·백묵·동양화물감(사진=페이지룸8)
    오현주 기자 2024.03.18
    황예랑 ‘실내에서 나무와 새를 기르는 방법’(2024 사진=페이지룸8)[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손길이 많이 간듯, 잘 다듬은 화초가 돋보이는 화분이 나란히 놓인 테이블. 슬쩍 보이는 창문이 아니어도 집밖이 아닌 집안의 공간처럼 보인다. 붉은 열매와 하얀꽃, 뾰족한 초록잎 분재가 적절하게 어우러져 있다. 그런데 단순히 정물화적 구상은 아닌가 보다. 슬쩍 들여다본 작품명이 ‘실내에서 나무와 새를 기르는 방법’(2024)이니까. 예쁘고 참한 전경을 옮겨다 놓은 그 이상의 의도가 숨어 있는 듯하단 얘기다. 작가 황예랑(31)은 ‘작은 존재’에 관심이 많다. 작가 자신의 시공간에 잠시 머무는 생물에 대한 애정인데. 꽃과 나무, 새와 나비 등 살아 움직이는 것은 물론이고, 일상의 사물에까지 생명력을 심어 화면으로 불러내는 거다. 때론 정밀한 묘사로 한눈에 들어오게, 때론 거친 묘사로 상상을 동원하게 하는 작업에 더 독특한 것은 ‘햐얀’이 가진 상징성을 뿌려두는 거다. 흰먹과 백묵을 재료로 즐겨쓰는 것 외에 순수·무결 등의 의미를 슬쩍 흘려둔단다. 역시 ‘하얀’천이 도드라진 작품에서, 그렇다면 작품명이 암시한 ‘새’는 과연 어디에 있나. 하얀천 아래, 흘려보지 않아야 비로소 눈에 들어오는 철제 새장 그 안쪽이다. 좌우로 한 마리씩, 작은 발과 긴 꼬리로 존재를 알리고 있다. 4월 4일까지 서울 종로구 북촌로11길 페이지룸8서 여는 개인전 ‘숨을 참는 버릇’에서 볼 수 있다. 한국화 21점, 조각 3점 등 24점을 꺼내놨다. 한지에 먹·백묵·동양화물감. 72.7×90.9㎝. 페이지룸8 제공. 황예랑 ‘숨을 참는 버릇’(2024·19.5×25㎝), 한지에 먹·백묵·동양화물감(사진=페이지룸8)
  • 홀로 무게를 견디는 듯…구상이라는 '추상' [e갤러리]
    조부경 ‘무제’(2023), 캔버스에 아크릴, 100×80.3㎝(사진=미광화랑)[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비정형의 대비. 여기서 ‘비정형’의 의미는 둘 이상이다. 일정한 틀을 벗어난 도형, 기대치를 벗어난 색, 평면인지 입체인지 헷갈리는 구성 등등. 한마디로 ‘이게 뭔가’란 질문에 ‘그게 뭐다’란 답을 꺼낼 수 없는 그거다. 아예 접근방법이 다르단 얘기다. 형식만 보자. 굳이 추상으로 몰고 가면 ‘기하학적 추상’ 혹은 ‘색면추상’쯤 될까. 하지만 이 역시 별 의미가 없어 보인다. 구체적인 형상에서 끌어낸 형태를 치밀하게 표현했다니. 작가 조부경(60)은 그렇게 ‘입방체의 건축물’을 그린다. 좀더 할애하면 ‘빛을 받고 있는 건축물의 단면들’이다. ‘무제’(2023)는 집 마당에서 바라본 계단·난간·기둥 등을 수없이 ‘대비’한 연작 중 한 점이다. 이런 작업을 두고 작가는 “유년기부터 생활한 공간에서 응시의 시간과 행복한 존재감을 느낀 순간에 대한 이야기”라고 했다. 물론 말처럼 단순치는 않다. 방황도 할 만큼 한 작가의 지난 시간을 안다면 말이다. 그림이 막혀 나이 마흔에 훌쩍 떠난 유학을 1년 만에 접었다. 돌아와선 갤러리를 차렸는데 남들 그림 보며 공부는 했다지만 그 길도 아니었던 터. 결국 다시 붓을 들고 10여년이란다. 서너 가지가 전부처럼 보이지만 50∼70회씩 칠하고 닦아 얻어낸 색 화면. 홀로 무게를 견디는 듯한 작품들이 작가를 닮았다. 18일까지 부산 수영구 광남로172번길 미광화랑서 여는 개인전 ‘집 빛 기억’(Dwelling Light Memory)에서 볼 수 있다. 조부경 ‘무제’(2023), 캔버스에 아크릴, 112.1×162.2㎝(사진=미광화랑)
    오현주 기자 2024.01.12
    조부경 ‘무제’(2023), 캔버스에 아크릴, 100×80.3㎝(사진=미광화랑)[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비정형의 대비. 여기서 ‘비정형’의 의미는 둘 이상이다. 일정한 틀을 벗어난 도형, 기대치를 벗어난 색, 평면인지 입체인지 헷갈리는 구성 등등. 한마디로 ‘이게 뭔가’란 질문에 ‘그게 뭐다’란 답을 꺼낼 수 없는 그거다. 아예 접근방법이 다르단 얘기다. 형식만 보자. 굳이 추상으로 몰고 가면 ‘기하학적 추상’ 혹은 ‘색면추상’쯤 될까. 하지만 이 역시 별 의미가 없어 보인다. 구체적인 형상에서 끌어낸 형태를 치밀하게 표현했다니. 작가 조부경(60)은 그렇게 ‘입방체의 건축물’을 그린다. 좀더 할애하면 ‘빛을 받고 있는 건축물의 단면들’이다. ‘무제’(2023)는 집 마당에서 바라본 계단·난간·기둥 등을 수없이 ‘대비’한 연작 중 한 점이다. 이런 작업을 두고 작가는 “유년기부터 생활한 공간에서 응시의 시간과 행복한 존재감을 느낀 순간에 대한 이야기”라고 했다. 물론 말처럼 단순치는 않다. 방황도 할 만큼 한 작가의 지난 시간을 안다면 말이다. 그림이 막혀 나이 마흔에 훌쩍 떠난 유학을 1년 만에 접었다. 돌아와선 갤러리를 차렸는데 남들 그림 보며 공부는 했다지만 그 길도 아니었던 터. 결국 다시 붓을 들고 10여년이란다. 서너 가지가 전부처럼 보이지만 50∼70회씩 칠하고 닦아 얻어낸 색 화면. 홀로 무게를 견디는 듯한 작품들이 작가를 닮았다. 18일까지 부산 수영구 광남로172번길 미광화랑서 여는 개인전 ‘집 빛 기억’(Dwelling Light Memory)에서 볼 수 있다. 조부경 ‘무제’(2023), 캔버스에 아크릴, 112.1×162.2㎝(사진=미광화랑)
  • '절규' 대신 '절교'…뭉크 밀어낸 태권브이 [e갤러리]
    성태진 ‘절교’(2023), 양각 나무패널에 아크릴·잉크, 170×110㎝(사진=이길이구갤러리)[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달려라 달려 로보트야~ 날아라 날아 태권브이~.” 자동연상으로 흥얼거리던 ‘로봇 태권브이’는 적어도 이 화면엔 없다. “정의로 뭉친 주먹, 용감하고 씩씩한 우리의 친구”와는 거리가 한참은 멀다. 헐렁한 두 줄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동네를 어슬렁대는 소심하고 좀스러운 동네 청년만 있다. 꼬마들이 타고 놀던 목마에 올라타길 즐기는 그이가 이번에는 명화 속 인물 코스프레로 여럿을 웃긴다. 에르바르트 뭉크의 ‘절규’(1893)를 패러디한 ‘절교’(2023)로 말이다. 작가 성태진(51)의 세상풍경은 ‘인간 태권브이’로부터 시작한다. 어느 동네청년의 스토리인 양 모두의 관심에서 밀려난 청년백수, 돈과 힘을 잃은 서민 등 현대인의 무기력과 비애에 대한 얘기를 풀어왔다. 소재만큼이나 방식도 특이하다. 나무판에 양각으로 도상을 새기고 겹겹이 색을 칠해 완성하는데, 그림 상황을 읽을 수 있는 나무판 문구가 백미다. 인간 태권브이의 인간적이고 현실적인 고뇌를 절절하게 묻혀낸 노래가사가 대부분. “나이는 먹을 만큼 먹었는데 아직도 세상을 모르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걱정은 있지만 나만의 세상 속에서 꿈을 찾아가는 모습”이라고 했다. 13일까지 서울 강남구 강남대로158길 이길이구갤러리서 여는 개인전 ‘내 모든 날과 그때’에서 볼 수 있다. 회화·설치작품 50여점을 내놨다.성태진 ‘이 세상 위엔 내가 있고’(2022), 양각 나무패널에 아크릴·잉크, 100×100㎝(사진= 이길이구갤러리)
    오현주 기자 2024.01.11
    성태진 ‘절교’(2023), 양각 나무패널에 아크릴·잉크, 170×110㎝(사진=이길이구갤러리)[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달려라 달려 로보트야~ 날아라 날아 태권브이~.” 자동연상으로 흥얼거리던 ‘로봇 태권브이’는 적어도 이 화면엔 없다. “정의로 뭉친 주먹, 용감하고 씩씩한 우리의 친구”와는 거리가 한참은 멀다. 헐렁한 두 줄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동네를 어슬렁대는 소심하고 좀스러운 동네 청년만 있다. 꼬마들이 타고 놀던 목마에 올라타길 즐기는 그이가 이번에는 명화 속 인물 코스프레로 여럿을 웃긴다. 에르바르트 뭉크의 ‘절규’(1893)를 패러디한 ‘절교’(2023)로 말이다. 작가 성태진(51)의 세상풍경은 ‘인간 태권브이’로부터 시작한다. 어느 동네청년의 스토리인 양 모두의 관심에서 밀려난 청년백수, 돈과 힘을 잃은 서민 등 현대인의 무기력과 비애에 대한 얘기를 풀어왔다. 소재만큼이나 방식도 특이하다. 나무판에 양각으로 도상을 새기고 겹겹이 색을 칠해 완성하는데, 그림 상황을 읽을 수 있는 나무판 문구가 백미다. 인간 태권브이의 인간적이고 현실적인 고뇌를 절절하게 묻혀낸 노래가사가 대부분. “나이는 먹을 만큼 먹었는데 아직도 세상을 모르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걱정은 있지만 나만의 세상 속에서 꿈을 찾아가는 모습”이라고 했다. 13일까지 서울 강남구 강남대로158길 이길이구갤러리서 여는 개인전 ‘내 모든 날과 그때’에서 볼 수 있다. 회화·설치작품 50여점을 내놨다.성태진 ‘이 세상 위엔 내가 있고’(2022), 양각 나무패널에 아크릴·잉크, 100×100㎝(사진= 이길이구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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