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부

오현주

기자

e갤러리

  • 여전히 타협하지 못한 세상 향한 미련 [e갤러리]
    정연희 ‘달콤한 인생’(노란·2023), 장지에 채색, 91×116.8㎝(사진=슈페리어갤러리)[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날에 솜사탕이라. 이것이 얼마나 위험한 조합인지 우린 안다. 물소리에도 녹아버리는 성질의 솜사탕은 자고로 햇빛이 쨍한 날과 어울리는 법이니까. 하지만 그런 어울림 따윈 이 꼬마에겐 문젯거리조차 되지 못한다. 노란 비옷, 그 색만큼이나 상큼한 노란 솜사탕에 이미 저돌적으로 덤벼든 상태니까. 그렇게 ‘달콤한 인생’(2023)을 맛보는 중이니까. 작가 정연희는 ‘예전 어느 한때’를 재기 넘치는 붓끝에 담아 화면에 옮겨낸다. 시간이 멈춘 듯한 그 어느 한때를 위해 등장시킨 인물이 있으니, ‘꼬마’다. 그러곤 누구의 시절이라고 해도 이상할 게 하나 없는 장면을 꼬마의 연기력에 힘입어 꺼내놓는데. 가끔은 꼬마에게 백설공주나 슈퍼맨 의상을 입혀 여전히 타협하지 못한 세상을 향한 미련을 슬쩍 내비치기도 하면서 말이다. 한지나 광목천 바닥에 채색하는 전통 한국화 기법에 더한, 자유로운 애니메이션 기법이 분위기를 생생하게 띄운다. 흔히 순진하고 순박하게 기억되는 시절들과 거리를 둔 점도 특이하다. 덕분에 이미 알 건 다 아는 ‘영악한 꼬마’의 활약상을 보는 재미가 톡톡하다. 8일까지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슈페리어갤러리서 여는 피도크와 여는 2인전 ‘갤러리에서 찾은 행복 레시피’에서 볼 수 있다. 자신만의 캐릭터로 모든 이들의 행복을 그리는 두 작가의 색다른 시선과 감정을 녹여냈다. 정연희 ‘그리고 사랑’(And Love·2023), 장지에 혼합채색, 91×116.8㎝(사진=슈페리어갤러리)피도크 ‘행복한 뺨-봄’(Happy Cheek Spring·2023), 한지에 오일컬러펜·크레용, 59×84㎝(사진=슈페리어갤러리)
    오현주 기자 2023.06.05
    정연희 ‘달콤한 인생’(노란·2023), 장지에 채색, 91×116.8㎝(사진=슈페리어갤러리)[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날에 솜사탕이라. 이것이 얼마나 위험한 조합인지 우린 안다. 물소리에도 녹아버리는 성질의 솜사탕은 자고로 햇빛이 쨍한 날과 어울리는 법이니까. 하지만 그런 어울림 따윈 이 꼬마에겐 문젯거리조차 되지 못한다. 노란 비옷, 그 색만큼이나 상큼한 노란 솜사탕에 이미 저돌적으로 덤벼든 상태니까. 그렇게 ‘달콤한 인생’(2023)을 맛보는 중이니까. 작가 정연희는 ‘예전 어느 한때’를 재기 넘치는 붓끝에 담아 화면에 옮겨낸다. 시간이 멈춘 듯한 그 어느 한때를 위해 등장시킨 인물이 있으니, ‘꼬마’다. 그러곤 누구의 시절이라고 해도 이상할 게 하나 없는 장면을 꼬마의 연기력에 힘입어 꺼내놓는데. 가끔은 꼬마에게 백설공주나 슈퍼맨 의상을 입혀 여전히 타협하지 못한 세상을 향한 미련을 슬쩍 내비치기도 하면서 말이다. 한지나 광목천 바닥에 채색하는 전통 한국화 기법에 더한, 자유로운 애니메이션 기법이 분위기를 생생하게 띄운다. 흔히 순진하고 순박하게 기억되는 시절들과 거리를 둔 점도 특이하다. 덕분에 이미 알 건 다 아는 ‘영악한 꼬마’의 활약상을 보는 재미가 톡톡하다. 8일까지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슈페리어갤러리서 여는 피도크와 여는 2인전 ‘갤러리에서 찾은 행복 레시피’에서 볼 수 있다. 자신만의 캐릭터로 모든 이들의 행복을 그리는 두 작가의 색다른 시선과 감정을 녹여냈다. 정연희 ‘그리고 사랑’(And Love·2023), 장지에 혼합채색, 91×116.8㎝(사진=슈페리어갤러리)피도크 ‘행복한 뺨-봄’(Happy Cheek Spring·2023), 한지에 오일컬러펜·크레용, 59×84㎝(사진=슈페리어갤러리)
  • 버터 발린 바게트빵의 진실…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로 [e갤러리]
    양화선 ‘방금 구운 빵’(Breaking Bread·2023), 캔버스에 아크릴·오일, 45.5×45.5㎝(사진=라흰갤러리)[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반을 갈라놓은 바게트. 숭숭 뚫린 구멍은 버터가 채우고 있는 건가. 설사 그렇다고 해도 말이다. 누가 저 속을 저토록 심오하게 들여다볼 생각을 하겠는가. 사실 빵이라서 놀라운 게 아니다. 작가 양화선이라서 신기한 노릇인 거다. 불과 얼마 전까지도 작가는 도시의 이모저모를 뜯어보는 작업을 했더랬다. 소프트웨어보단 하드웨어 쪽이었다. 부서진 건축자재를 산인지 바다인지 모를 공간에 쌓아놓기도 흩뿌리기도 하고, 도시재생·개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가림막을 유심히 뚫어보기도 했다. 사람은 빠진 건물 외관을 멀뚱히 바라보며, 마치 오고 가며 눈여겨봐 둔 신기한 광경처럼 화면에 옮겼더랬다. 때문에 골목 어딘가에 버려진 깨진 화분, 담벼락 위에서 무심하게 키만 키우는 화초조차 생명보단 ‘사회적 이슈’인 듯했다. 그렇게 쓸쓸하고 어두웠던 작가의 작업에 ‘홍조’가 생긴 듯하다고 할까. 색채와 형체 모두 외부에서 내부로, 그러니까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 쪽으로 큰 걸음을 뗀 모양이니. 예전 작업이 공적이고 집단적인 욕망처럼 보였다면, 최근 작업에선 사적이고 개인적인 욕망이 비치는 거다. ‘방금 구운 빵’(Breaking Bread·2023)은 그 큼직한 덩어리였다. 6일까지 서울 용산구 한강대로50길 라흰갤러리서 여는 개인전 ‘너무 짧은 낮’(Daytime is Way Too Short)에서 볼 수 있다. 양화선 ‘귀걸이’(Earrings·2023), 캔버스에 아크릴·오일, 45.5×45.5㎝(사진=라흰갤러리)양화선 ‘파인드 스터프에서’(From Find Stuff·2023), 캔버스에 오일, 53×45.5㎝(사진=라흰갤러리)
    오현주 기자 2023.06.05
    양화선 ‘방금 구운 빵’(Breaking Bread·2023), 캔버스에 아크릴·오일, 45.5×45.5㎝(사진=라흰갤러리)[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반을 갈라놓은 바게트. 숭숭 뚫린 구멍은 버터가 채우고 있는 건가. 설사 그렇다고 해도 말이다. 누가 저 속을 저토록 심오하게 들여다볼 생각을 하겠는가. 사실 빵이라서 놀라운 게 아니다. 작가 양화선이라서 신기한 노릇인 거다. 불과 얼마 전까지도 작가는 도시의 이모저모를 뜯어보는 작업을 했더랬다. 소프트웨어보단 하드웨어 쪽이었다. 부서진 건축자재를 산인지 바다인지 모를 공간에 쌓아놓기도 흩뿌리기도 하고, 도시재생·개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가림막을 유심히 뚫어보기도 했다. 사람은 빠진 건물 외관을 멀뚱히 바라보며, 마치 오고 가며 눈여겨봐 둔 신기한 광경처럼 화면에 옮겼더랬다. 때문에 골목 어딘가에 버려진 깨진 화분, 담벼락 위에서 무심하게 키만 키우는 화초조차 생명보단 ‘사회적 이슈’인 듯했다. 그렇게 쓸쓸하고 어두웠던 작가의 작업에 ‘홍조’가 생긴 듯하다고 할까. 색채와 형체 모두 외부에서 내부로, 그러니까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 쪽으로 큰 걸음을 뗀 모양이니. 예전 작업이 공적이고 집단적인 욕망처럼 보였다면, 최근 작업에선 사적이고 개인적인 욕망이 비치는 거다. ‘방금 구운 빵’(Breaking Bread·2023)은 그 큼직한 덩어리였다. 6일까지 서울 용산구 한강대로50길 라흰갤러리서 여는 개인전 ‘너무 짧은 낮’(Daytime is Way Too Short)에서 볼 수 있다. 양화선 ‘귀걸이’(Earrings·2023), 캔버스에 아크릴·오일, 45.5×45.5㎝(사진=라흰갤러리)양화선 ‘파인드 스터프에서’(From Find Stuff·2023), 캔버스에 오일, 53×45.5㎝(사진=라흰갤러리)
  • 심슨가족만 할 수 있는 연출…"폭력은 대물림 되는 거야!" [e갤러리]
    순이지 ‘폭력은 어디서 오고 어디로 가는가’(2021), 종이에 수채, 21.0×29.7㎝(잘라낸 여백 포함)(사진=도잉아트)[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야, 심슨가족이다!” 그래, 아는 얼굴은 어쨌든 반가운 법. 하지만 만약 그 아는 얼굴이 어떤 충격을 가해온다면 강도는 더 세게 마련이다. 바로 이 장면이 그 상황이 아닐까. 익살과 유머의 애니메이션 캐릭터 심슨가족. 미국 사회를 은근히, 아니 대놓고 비꼬는 데다 ‘사이코 막장 드라마’ 같은 이들 가족의 행태야 모르는 바 아니지만, 이건 너무 적나라하지 않은가. 할아버지는 아버지의 목을, 아버지는 아들의 목을 조르고 있으니. 딱히 대상이 마땅치 않은 아들은 강아지 목이라도 비틀고. 맞다. 이건 어디까지나 풍자고 비유일 뿐이다. 작가 순이지가 가장 적당한 인물로 가장 만만치 않은 문제를 건드린 거다. 작품 ‘폭력은 어디서 오고 어디로 가는가’(2021)는 ‘폭력은 대물림 된다’는 메시지의 일러스트레이션 버전이다. 작가는 화가라기보단 일러스트레이터로 활약해왔는데, 통통 튀는 유머감각으로 무겁고 심각한 사회문제를 밝고 경쾌하게 그려낸다. 덕분에 같은 사각틀일지라도 한결 자유롭고 또 강렬하다. 결론은 늘 활동명 ‘순이지’(Soon Easy)가 대신한다. ‘곧 편안해진다’란 뜻이다. 3일까지 서울 서초구 남부순환로325길 도잉아트서 신선우·전다화·장승근과 여는 4인 기획전 ‘블랙코미디’에서 볼 수 있다. 대도시 배경으로 피식 웃음 뒤에 묻어나는 씁쓸함을 포착한 작가들의 작품을 걸었다. 순이지 ‘슈가 캔디 마운틴’(Sugar Candy Mountain#7·2022), 종이패널에 수채, 116.8×91.0㎝(사진=도잉아트)
    오현주 기자 2023.06.02
    순이지 ‘폭력은 어디서 오고 어디로 가는가’(2021), 종이에 수채, 21.0×29.7㎝(잘라낸 여백 포함)(사진=도잉아트)[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야, 심슨가족이다!” 그래, 아는 얼굴은 어쨌든 반가운 법. 하지만 만약 그 아는 얼굴이 어떤 충격을 가해온다면 강도는 더 세게 마련이다. 바로 이 장면이 그 상황이 아닐까. 익살과 유머의 애니메이션 캐릭터 심슨가족. 미국 사회를 은근히, 아니 대놓고 비꼬는 데다 ‘사이코 막장 드라마’ 같은 이들 가족의 행태야 모르는 바 아니지만, 이건 너무 적나라하지 않은가. 할아버지는 아버지의 목을, 아버지는 아들의 목을 조르고 있으니. 딱히 대상이 마땅치 않은 아들은 강아지 목이라도 비틀고. 맞다. 이건 어디까지나 풍자고 비유일 뿐이다. 작가 순이지가 가장 적당한 인물로 가장 만만치 않은 문제를 건드린 거다. 작품 ‘폭력은 어디서 오고 어디로 가는가’(2021)는 ‘폭력은 대물림 된다’는 메시지의 일러스트레이션 버전이다. 작가는 화가라기보단 일러스트레이터로 활약해왔는데, 통통 튀는 유머감각으로 무겁고 심각한 사회문제를 밝고 경쾌하게 그려낸다. 덕분에 같은 사각틀일지라도 한결 자유롭고 또 강렬하다. 결론은 늘 활동명 ‘순이지’(Soon Easy)가 대신한다. ‘곧 편안해진다’란 뜻이다. 3일까지 서울 서초구 남부순환로325길 도잉아트서 신선우·전다화·장승근과 여는 4인 기획전 ‘블랙코미디’에서 볼 수 있다. 대도시 배경으로 피식 웃음 뒤에 묻어나는 씁쓸함을 포착한 작가들의 작품을 걸었다. 순이지 ‘슈가 캔디 마운틴’(Sugar Candy Mountain#7·2022), 종이패널에 수채, 116.8×91.0㎝(사진=도잉아트)
  • 나홀로 전시장에…아이가 마음을 뺏긴 작품은? [e갤러리]
    손미량 ‘전시장에 온 아이 8’(2023), 캔버스에 오일, 27×22㎝(사진=장은선갤러리)[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온통 붉은 방에 한 아이가 보인다. 당장 불안감이 밀고 올라온다. 평온하고 평탄하기만 한 ‘붉은색’은 그다지 많지 않은 터라. 하지만 아이의 동작을 따라 들여다본 방은 충분히 이해할 만한 ‘붉은’ 공간이다. 휴대폰 사진기를 들이밀고 열심히 촬영하는 아이의 진지함이 웬만한 어른과 다르지 않은, 이곳이 미술관 혹은 갤러리라면 말이다. 그렇다면 저 아이는 무엇에 저토록 마음을 뺏긴 걸까. 일상을 살며 은연중 드러내는 사람들의 심리를 표현하는 인물화를 그리는 작가 손미량(63)이 캔버스에 어린아이를 데려다 놨다. 그것도 장소를 특화한 ‘전시장에 온 아이 8’(2023)이다. 연작에서 작가의 붓은 가족으로부터 홀로 떨어져 나와 있는 아이를 오롯이 따라다닌다. 작품에서 아이는 “거의 혼자인 채로 등장해 현실로부터 먼 추억의 사진첩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 때문인지 작가는 또렷하고 선명한 묘사보단 흐릿하고 모호한 표현을 택하고 있다. 하지만 그 배경에 세운 아이는 어느 사진에서 오려온 듯 지극히 현실적이기만 하다. 바로 어제의 과거 한때가 오늘의 현실과 섞이는 자체를 차단한 작가의 의도다. 그렇게 세상 어디에도 없는 독특한 인물화가 완성됐다. 2일까지 서울 종로구 운니동 장은선갤러리서 연 개인전 ‘어린시절’에 누군가의 어린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 30여점을 걸었다. 손미량 ‘전시장에 온 아이’(2023), 캔버스에 오일, 53×45㎝(사진=장은선갤러리)
    오현주 기자 2023.06.02
    손미량 ‘전시장에 온 아이 8’(2023), 캔버스에 오일, 27×22㎝(사진=장은선갤러리)[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온통 붉은 방에 한 아이가 보인다. 당장 불안감이 밀고 올라온다. 평온하고 평탄하기만 한 ‘붉은색’은 그다지 많지 않은 터라. 하지만 아이의 동작을 따라 들여다본 방은 충분히 이해할 만한 ‘붉은’ 공간이다. 휴대폰 사진기를 들이밀고 열심히 촬영하는 아이의 진지함이 웬만한 어른과 다르지 않은, 이곳이 미술관 혹은 갤러리라면 말이다. 그렇다면 저 아이는 무엇에 저토록 마음을 뺏긴 걸까. 일상을 살며 은연중 드러내는 사람들의 심리를 표현하는 인물화를 그리는 작가 손미량(63)이 캔버스에 어린아이를 데려다 놨다. 그것도 장소를 특화한 ‘전시장에 온 아이 8’(2023)이다. 연작에서 작가의 붓은 가족으로부터 홀로 떨어져 나와 있는 아이를 오롯이 따라다닌다. 작품에서 아이는 “거의 혼자인 채로 등장해 현실로부터 먼 추억의 사진첩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 때문인지 작가는 또렷하고 선명한 묘사보단 흐릿하고 모호한 표현을 택하고 있다. 하지만 그 배경에 세운 아이는 어느 사진에서 오려온 듯 지극히 현실적이기만 하다. 바로 어제의 과거 한때가 오늘의 현실과 섞이는 자체를 차단한 작가의 의도다. 그렇게 세상 어디에도 없는 독특한 인물화가 완성됐다. 2일까지 서울 종로구 운니동 장은선갤러리서 연 개인전 ‘어린시절’에 누군가의 어린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 30여점을 걸었다. 손미량 ‘전시장에 온 아이’(2023), 캔버스에 오일, 53×45㎝(사진=장은선갤러리)
  • 배배 꼬지 않고 치장하지 않고…녹슬지 않는 소박함 [e갤러리]
    가브리엘 그래슬 ‘예예’ (Yee Yee·2022), 캔버스에 아크릴·스프레이·글리터, 162.2×130.3㎝(사진=갤러리조은)[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얼핏 보면 앵앵거리는 곤충인가 싶다. 간결한 형태, 강한 색채가 만든 두툼한 몸체에서 뻗어나온 집게 혹은 다리가 도합 여섯 개처럼 보이니까. 하지만 100호 규모 캔버스에 큼지막하게 박아둔 독특한 형상의 실체를 꿰뚫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빨간 말에 올라탄 검은 사람이란 게 이내 보이니까. 화면 안에도 써넣은 작품명 ‘예예’(Yee Yee·2022)는 틀림없이 그 검은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일 터. 마치 어린아이의 붓으로 완성한 듯한 그림은 작가 가브리엘 그래슬(67)의 녹슬지 않은 ‘소박함’에서 나왔다. 스위스에서 태어나 스페인에서 활동해온 작가는 대단할 것 없는 일상을 특유의 직관적인 조형언어로 표현한다. 거창한 화가의 눈으로 치장하거나 배배 꼬지 않고 “내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것, 내가 보는 것”을 그린다는데. 바로 여기에 여전히 길들이지 않은, 어린시절부터 쌓아낸 ‘소박한 경험’이 작용하는 거다. 속도감 있는 자연스러운 표현은 그때그때의 빠르고 즉흥적인 드로잉에서 출발한단다. “작업할 때 어떤 의도나 생각을 가지지 않는다”는 작가는 작업이 끝난 작품은 벽에 걸어두고 더이상 들여다보지 않는다는 독특한 성향도 소개했다. 어떤 결과를 찾으려는 작업이 아닐뿐더러 “일단 작업을 시작하면 작품은 내 손을 떠나 스스로 생을 가진다”고 믿어서란다. 20일까지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55가길 갤러리조은서 국내 작가 백윤조와 여는 2인전 ‘블라블라’(Blah Blah)에서 볼 수 있다. 다르지만 신기하게 닮은 두 작가의 신작 30여점을 걸었다. 가브리엘 그래슬 ‘N.T.’(2022), 캔버스에 아크릴·스프레이·글리터, 100×120㎝(사진=갤러리조은)가브리엘 그래슬 ‘H의 버킨백’(Birkin by H·2023), 캔버스에 아크릴·스프레이·글리터, 60×80㎝(사진=갤러리조은)
    오현주 기자 2023.05.16
    가브리엘 그래슬 ‘예예’ (Yee Yee·2022), 캔버스에 아크릴·스프레이·글리터, 162.2×130.3㎝(사진=갤러리조은)[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얼핏 보면 앵앵거리는 곤충인가 싶다. 간결한 형태, 강한 색채가 만든 두툼한 몸체에서 뻗어나온 집게 혹은 다리가 도합 여섯 개처럼 보이니까. 하지만 100호 규모 캔버스에 큼지막하게 박아둔 독특한 형상의 실체를 꿰뚫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빨간 말에 올라탄 검은 사람이란 게 이내 보이니까. 화면 안에도 써넣은 작품명 ‘예예’(Yee Yee·2022)는 틀림없이 그 검은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일 터. 마치 어린아이의 붓으로 완성한 듯한 그림은 작가 가브리엘 그래슬(67)의 녹슬지 않은 ‘소박함’에서 나왔다. 스위스에서 태어나 스페인에서 활동해온 작가는 대단할 것 없는 일상을 특유의 직관적인 조형언어로 표현한다. 거창한 화가의 눈으로 치장하거나 배배 꼬지 않고 “내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것, 내가 보는 것”을 그린다는데. 바로 여기에 여전히 길들이지 않은, 어린시절부터 쌓아낸 ‘소박한 경험’이 작용하는 거다. 속도감 있는 자연스러운 표현은 그때그때의 빠르고 즉흥적인 드로잉에서 출발한단다. “작업할 때 어떤 의도나 생각을 가지지 않는다”는 작가는 작업이 끝난 작품은 벽에 걸어두고 더이상 들여다보지 않는다는 독특한 성향도 소개했다. 어떤 결과를 찾으려는 작업이 아닐뿐더러 “일단 작업을 시작하면 작품은 내 손을 떠나 스스로 생을 가진다”고 믿어서란다. 20일까지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55가길 갤러리조은서 국내 작가 백윤조와 여는 2인전 ‘블라블라’(Blah Blah)에서 볼 수 있다. 다르지만 신기하게 닮은 두 작가의 신작 30여점을 걸었다. 가브리엘 그래슬 ‘N.T.’(2022), 캔버스에 아크릴·스프레이·글리터, 100×120㎝(사진=갤러리조은)가브리엘 그래슬 ‘H의 버킨백’(Birkin by H·2023), 캔버스에 아크릴·스프레이·글리터, 60×80㎝(사진=갤러리조은)
  • 인생이란 누군가의 '무임승차'를 돕는 일, 아니 그리는 일 [e갤러리]
    백윤조 ‘무임승차’(2023), 캔버스에 오일, 162.2×130.3㎝(사진=갤러리조은)[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이 남자, 마음이 급하다. 성큼성큼 뛰고 있다. 저토록 급한 사정이란 게 도대체 뭐길래, 큰키만큼 어마어마한 두 발로 지축을 울리고 있는가. 작가 백윤조(43)는 별것 아닌 일상을 사는 인물들의 인생을 맛깔나게 꾸며내는 재주가 있다. 쓴 듯 만 듯한 색감도, 보일 듯 말 듯한 표정도 독특하지만, 가장 도드라진 특징이라면 ‘율동감’일 거다. 점잖게 포즈를 잡고 선 인물을 찾아보기 어렵단 얘기다. 뛰고 있지 않으면 걷고, 많이 양보를 해도 ‘자전거로 달린다’. ‘그냥’인 경우도 없다. 이들이 뛰고 걷는 데는 이유가 있단 얘긴데, 대개 인물의 손에 그 이유가 들려 있다. 공, 글러브, 병, 강아지 등등. 그중 ‘무임승차’(Free Riders·2023)에는 작고 어리고 까만 동물이 등장한다. 키 크고 발이 큰 저 남자는 지금 정체를 알 수 없는 어떤 생명체를 돈 한 푼 받지 않고 이동시키는 임무를 수행 중인 거다. ‘두들 기법’이라 부르는 독특한 작업이 마치 아이의 것인 듯한 그림을 뽑아냈다. 그렇게 낙서처럼 시작한 종이 드로잉을 한 화면에 밀집시키다가 ‘걷는 형상’을 빼냈단다. 덕분에 작가도 작품 속 인물들처럼 ‘멈추지 않는’ 중이다. 긍정의 에너지를 쉼 없이 뿜어낸다고 할까. 20일까지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55가길 갤러리조은서 스위스작가 가브리엘 그래슬과 여는 2인전 ‘블라블라’(Blah Blah)에서 볼 수 있다. 다르지만 신기하게 닮은 두 작가의 신작 30여점을 걸었다. 백윤조 ‘여름 휴가’(Summer Vacation·2023), 캔버스에 오일, 162.2×130.3㎝(사진=갤러리조은)백윤조 ‘픽업’(Pick Up·2023), 캔버스에 오일, 133×124㎝(사진=갤러리조은)
    오현주 기자 2023.05.16
    백윤조 ‘무임승차’(2023), 캔버스에 오일, 162.2×130.3㎝(사진=갤러리조은)[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이 남자, 마음이 급하다. 성큼성큼 뛰고 있다. 저토록 급한 사정이란 게 도대체 뭐길래, 큰키만큼 어마어마한 두 발로 지축을 울리고 있는가. 작가 백윤조(43)는 별것 아닌 일상을 사는 인물들의 인생을 맛깔나게 꾸며내는 재주가 있다. 쓴 듯 만 듯한 색감도, 보일 듯 말 듯한 표정도 독특하지만, 가장 도드라진 특징이라면 ‘율동감’일 거다. 점잖게 포즈를 잡고 선 인물을 찾아보기 어렵단 얘기다. 뛰고 있지 않으면 걷고, 많이 양보를 해도 ‘자전거로 달린다’. ‘그냥’인 경우도 없다. 이들이 뛰고 걷는 데는 이유가 있단 얘긴데, 대개 인물의 손에 그 이유가 들려 있다. 공, 글러브, 병, 강아지 등등. 그중 ‘무임승차’(Free Riders·2023)에는 작고 어리고 까만 동물이 등장한다. 키 크고 발이 큰 저 남자는 지금 정체를 알 수 없는 어떤 생명체를 돈 한 푼 받지 않고 이동시키는 임무를 수행 중인 거다. ‘두들 기법’이라 부르는 독특한 작업이 마치 아이의 것인 듯한 그림을 뽑아냈다. 그렇게 낙서처럼 시작한 종이 드로잉을 한 화면에 밀집시키다가 ‘걷는 형상’을 빼냈단다. 덕분에 작가도 작품 속 인물들처럼 ‘멈추지 않는’ 중이다. 긍정의 에너지를 쉼 없이 뿜어낸다고 할까. 20일까지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55가길 갤러리조은서 스위스작가 가브리엘 그래슬과 여는 2인전 ‘블라블라’(Blah Blah)에서 볼 수 있다. 다르지만 신기하게 닮은 두 작가의 신작 30여점을 걸었다. 백윤조 ‘여름 휴가’(Summer Vacation·2023), 캔버스에 오일, 162.2×130.3㎝(사진=갤러리조은)백윤조 ‘픽업’(Pick Up·2023), 캔버스에 오일, 133×124㎝(사진=갤러리조은)
  • 화려한 레드카펫에 왜 바짝 말라가는 꽃이어야 했는가 [e갤러리]
    오흥배 ‘인상’(2023 ), 캔버스에 아크릴, 91.0×91.0㎝(사진=리나갤러리)[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왜 하필 바짝 말라가는 꽃인가. 그것도 슬쩍 흘리는 상징이 아니라 사실적인 표현으로. 레드카펫 같은 조형물 위에 꽂힌 노란 프리지어가 제 한철을 다 보내고 고개까지 떨군 걸 보고 있자니 말이다. 작가 오흥배(43)는 시들어가는 꽃, 다 타버린 초, 찬바람에 쓰러진 잡초 등, 무상한 일상의 존재에 주목한다. 그저 주목하는 정도가 아니라 극사실적 기법으로 세세하게 묘사하는데. 사실 프리지어의 ‘인상’(Impression·2023)보다 더 적나라한 작품도 있었다. 유리병에서 죽어가는 꽃을, 공기 중에 말라가는 머리와 물속에서 썩어가는 뿌리까지, 그 현상을 직시한 뒤 관조하듯 무심하게 그려냈더랬다. 시작은 ‘일상의 관찰’이란다. “너무 흔해 지나치거나 어쩌다 한두 번 필요할 때만 찾게 되는 대상을 통해 일상의 ‘인상’을 사실적인 표현방식으로 전달한다”고. 그렇게 세상의 눈을 모으는 게 목적인가. 더도 덜도 말고 작품을 보는 동안만이라도 오롯이 그들에게 집중케 하려는. 결국 사람들의 대상에 대한 인상을 뒤흔들겠단 시도일 거다. 생기 잃은 꽃도 어떤 날은 생생한 꽃보다 아름답게 보일 수 있는, 그런 ‘인상의 변화’를 의도했다고 할까. 17일까지 서울 강남구 논현로142길 리나갤러리서 여는 10인 작가 기획전 ‘2023 스텝 업: 모멘텀’(2023 Step Up: Momentum)에서 볼 수 있다. 오흥배 ‘인상’(Impression·2023), 캔버스에 아크릴, 116×62㎝(사진=리나갤러리)
    오현주 기자 2023.05.14
    오흥배 ‘인상’(2023 ), 캔버스에 아크릴, 91.0×91.0㎝(사진=리나갤러리)[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왜 하필 바짝 말라가는 꽃인가. 그것도 슬쩍 흘리는 상징이 아니라 사실적인 표현으로. 레드카펫 같은 조형물 위에 꽂힌 노란 프리지어가 제 한철을 다 보내고 고개까지 떨군 걸 보고 있자니 말이다. 작가 오흥배(43)는 시들어가는 꽃, 다 타버린 초, 찬바람에 쓰러진 잡초 등, 무상한 일상의 존재에 주목한다. 그저 주목하는 정도가 아니라 극사실적 기법으로 세세하게 묘사하는데. 사실 프리지어의 ‘인상’(Impression·2023)보다 더 적나라한 작품도 있었다. 유리병에서 죽어가는 꽃을, 공기 중에 말라가는 머리와 물속에서 썩어가는 뿌리까지, 그 현상을 직시한 뒤 관조하듯 무심하게 그려냈더랬다. 시작은 ‘일상의 관찰’이란다. “너무 흔해 지나치거나 어쩌다 한두 번 필요할 때만 찾게 되는 대상을 통해 일상의 ‘인상’을 사실적인 표현방식으로 전달한다”고. 그렇게 세상의 눈을 모으는 게 목적인가. 더도 덜도 말고 작품을 보는 동안만이라도 오롯이 그들에게 집중케 하려는. 결국 사람들의 대상에 대한 인상을 뒤흔들겠단 시도일 거다. 생기 잃은 꽃도 어떤 날은 생생한 꽃보다 아름답게 보일 수 있는, 그런 ‘인상의 변화’를 의도했다고 할까. 17일까지 서울 강남구 논현로142길 리나갤러리서 여는 10인 작가 기획전 ‘2023 스텝 업: 모멘텀’(2023 Step Up: Momentum)에서 볼 수 있다. 오흥배 ‘인상’(Impression·2023), 캔버스에 아크릴, 116×62㎝(사진=리나갤러리)
  • 미인도의 완성은 '자수'…신윤복도 감탄할 '나비의 꿈' [e갤러리]
    송광연 ‘나비의 꿈’(Butterfly’s Dream·2022), 캔버스에 아크릴, 각각 162.2×97㎝(사진=리나갤러리)[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참으로 대단한 상상력이 아닌가. 조선 후기 풍속화가 혜원 신윤복의 ‘미인도’(비단에 채색·114×45.5㎝·보물·간송미술관 소장)를 이렇게 변주하다니. 좁은 소매와 짧은 가슴의 삼회장저고리, 속옷을 여러 겹 껴입어 배추처럼 부풀린 옥색치마, 그 아래로 슬쩍 보이는 하얀 버선발. 이 정도로는 부족했던 건가. 여인의 치마폭에 어디선가 날아든 나비 한 마리가 수를 놓고 있는 중이니까. 자신의 날개만큼이나 화려하게 말이다. 작가 송광연은 캔버스에 ‘자수’로 그림을 그린다. 독특한 점은 이 정교한 자수의 흔적이 실을 꿴 바늘이 아닌 물감 묻힌 붓으로 만들어냈다는 것. 얇은 평붓에 아크릴물감 등을 묻힌 뒤 캔버스에 톡톡 찍고, 마르면 또 톡톡 찍고. 그렇게 자수와 같은 질감을 표현했다는데. 게다가 그 엄중한 역할을 ‘나비’의 업적으로 돌리는 중이다. 덕분에 작품에 늘 등장하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수를 놓는 과정을 내보이는 나비, 다른 하나는 수가 놓이는 결과를 흘려내는 꽃 ‘모란’이다. 그런데 왜 완결이 아닌 미완인가. 답은 ‘나비’에 있다. 작가에게 나비는 “내일 완성될 꿈을 위해 인생의 수를 채워가는 우리”라서란다. 예부터 행복을 상징해온 모란을 피우는 데는, 한땀 한땀 채우는 부단함 외에 달리 방법이 없다는 뜻인 거다. 찬란한 ‘나비의 꿈’(Butterfly’s Dream·2022)을 마침내 보게 되는 날까지 말이다. 17일까지 서울 강남구 논현로142길 리나갤러리서 여는 10인 작가 기획전 ‘2023 스텝 업: 모멘텀’(2023 Step Up: Momentum)에서 볼 수 있다. 송광연 ‘나비의 꿈’(Butterfly’s Dream·2022), 캔버스에 아크릴, 72.7×72.7㎝(사진=리나갤러리)
    오현주 기자 2023.05.12
    송광연 ‘나비의 꿈’(Butterfly’s Dream·2022), 캔버스에 아크릴, 각각 162.2×97㎝(사진=리나갤러리)[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참으로 대단한 상상력이 아닌가. 조선 후기 풍속화가 혜원 신윤복의 ‘미인도’(비단에 채색·114×45.5㎝·보물·간송미술관 소장)를 이렇게 변주하다니. 좁은 소매와 짧은 가슴의 삼회장저고리, 속옷을 여러 겹 껴입어 배추처럼 부풀린 옥색치마, 그 아래로 슬쩍 보이는 하얀 버선발. 이 정도로는 부족했던 건가. 여인의 치마폭에 어디선가 날아든 나비 한 마리가 수를 놓고 있는 중이니까. 자신의 날개만큼이나 화려하게 말이다. 작가 송광연은 캔버스에 ‘자수’로 그림을 그린다. 독특한 점은 이 정교한 자수의 흔적이 실을 꿴 바늘이 아닌 물감 묻힌 붓으로 만들어냈다는 것. 얇은 평붓에 아크릴물감 등을 묻힌 뒤 캔버스에 톡톡 찍고, 마르면 또 톡톡 찍고. 그렇게 자수와 같은 질감을 표현했다는데. 게다가 그 엄중한 역할을 ‘나비’의 업적으로 돌리는 중이다. 덕분에 작품에 늘 등장하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수를 놓는 과정을 내보이는 나비, 다른 하나는 수가 놓이는 결과를 흘려내는 꽃 ‘모란’이다. 그런데 왜 완결이 아닌 미완인가. 답은 ‘나비’에 있다. 작가에게 나비는 “내일 완성될 꿈을 위해 인생의 수를 채워가는 우리”라서란다. 예부터 행복을 상징해온 모란을 피우는 데는, 한땀 한땀 채우는 부단함 외에 달리 방법이 없다는 뜻인 거다. 찬란한 ‘나비의 꿈’(Butterfly’s Dream·2022)을 마침내 보게 되는 날까지 말이다. 17일까지 서울 강남구 논현로142길 리나갤러리서 여는 10인 작가 기획전 ‘2023 스텝 업: 모멘텀’(2023 Step Up: Momentum)에서 볼 수 있다. 송광연 ‘나비의 꿈’(Butterfly’s Dream·2022), 캔버스에 아크릴, 72.7×72.7㎝(사진=리나갤러리)
  • [e갤러리] 용감하게 짜내고 과감하게 휘둘러…이이정은 '거기 202217'
    이이정은 ‘거기 202217’(2022 사진=갤러리진선)[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그림이 슬픈 건가. 닭똥 같은 물감이 뚝뚝 떨어지고 있으니. 흐르다가 멈추고 엉키고 다시 흐르고. 울음으로 따지자면 통곡 수준이 아닌가. 그런데 말이다. 시각을 좀 멀리 두면 정반대의 장면이다. 이처럼 유쾌한 난장이 또 없는 거다. 물감이 ‘댄스의 본능’으로 요동치고 있으니. 새봄의 생명력이라고 할까. 흩날리는 꽃잎도 잡아야 하고, 삐져나오는 새싹도 보듬어야 하고, 탄력이 생긴 물길도 내줘야 하고. 어느 하나 얌전히 멈춰 서 있는 게 없다. 작가 이이정은(46)이 캔버스에 두툼하게 담아두는 게 바로 그거다. “저마다 자유로이 살아 있는 모든 것.” 구름을 움직이는 하늘, 무심하게 사라지는 무지개, 자연을 통째 움직이는 바람까지, 직접 접하고 ‘이거다!’ 했던 ‘경험의 자연’을 용감하게 짜낸 물감과 과감하게 휘두른 붓질로 꺼내놓는 거다. 계기가 있단다. ‘버린 세상’이던 폐광촌이 자연의 끈질긴 소생력에 힘입어 결국 치유되는 것을 목격하면서란다. 그 강한 생명력을 작가 나름대로 극대화한 것이 입체에 가까운 독특한 붓터치였던 거다. 이성으로 따져보면 추상이지만 감성으로 따져보면 구상이다. ‘거기 202217’(2022)처럼 안 읽히는 구석이 없단 얘기다. 14일까지 서울 종로구 삼청로 갤러리진선서 유정현·노현우와 여는 3인 기획전 ‘꾸밈없어 더 마땅한’(Nature Itself)에서 볼 수 있다. 작가마다 달리 경험한 자연의 에너지를 장기와 개성으로 풀어낸 작품들을 걸었다. 캔버스에 오일. 145.5×112.1㎝. 갤러리진선 제공. 유정현 ‘이어지지 않는’(Discontinuous15·2023), 캔버스에 아크릴, 116.8×91㎝(사진=갤러리진선)노현우 ‘No.125 PM0913 12° 25.AUG.2019(2023), 캔버스에 오일, 145×55㎝(사진=갤러리진선)
    오현주 기자 2023.05.12
    이이정은 ‘거기 202217’(2022 사진=갤러리진선)[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그림이 슬픈 건가. 닭똥 같은 물감이 뚝뚝 떨어지고 있으니. 흐르다가 멈추고 엉키고 다시 흐르고. 울음으로 따지자면 통곡 수준이 아닌가. 그런데 말이다. 시각을 좀 멀리 두면 정반대의 장면이다. 이처럼 유쾌한 난장이 또 없는 거다. 물감이 ‘댄스의 본능’으로 요동치고 있으니. 새봄의 생명력이라고 할까. 흩날리는 꽃잎도 잡아야 하고, 삐져나오는 새싹도 보듬어야 하고, 탄력이 생긴 물길도 내줘야 하고. 어느 하나 얌전히 멈춰 서 있는 게 없다. 작가 이이정은(46)이 캔버스에 두툼하게 담아두는 게 바로 그거다. “저마다 자유로이 살아 있는 모든 것.” 구름을 움직이는 하늘, 무심하게 사라지는 무지개, 자연을 통째 움직이는 바람까지, 직접 접하고 ‘이거다!’ 했던 ‘경험의 자연’을 용감하게 짜낸 물감과 과감하게 휘두른 붓질로 꺼내놓는 거다. 계기가 있단다. ‘버린 세상’이던 폐광촌이 자연의 끈질긴 소생력에 힘입어 결국 치유되는 것을 목격하면서란다. 그 강한 생명력을 작가 나름대로 극대화한 것이 입체에 가까운 독특한 붓터치였던 거다. 이성으로 따져보면 추상이지만 감성으로 따져보면 구상이다. ‘거기 202217’(2022)처럼 안 읽히는 구석이 없단 얘기다. 14일까지 서울 종로구 삼청로 갤러리진선서 유정현·노현우와 여는 3인 기획전 ‘꾸밈없어 더 마땅한’(Nature Itself)에서 볼 수 있다. 작가마다 달리 경험한 자연의 에너지를 장기와 개성으로 풀어낸 작품들을 걸었다. 캔버스에 오일. 145.5×112.1㎝. 갤러리진선 제공. 유정현 ‘이어지지 않는’(Discontinuous15·2023), 캔버스에 아크릴, 116.8×91㎝(사진=갤러리진선)노현우 ‘No.125 PM0913 12° 25.AUG.2019(2023), 캔버스에 오일, 145×55㎝(사진=갤러리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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