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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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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백원만” 100원 동전의 첫 등장[그해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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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죽어도 어쩔 수 없다"…피아니스트의 前남편 납치 사주[그해 오늘]
    "죽어도 어쩔 수 없다"…피아니스트의 前남편 납치 사주
    한광범 기자 2022.12.02
    [이데일리 한광범 기자] 2014년 12월 2일. 수원지방법원에서 강도살인 일당 3명에게 중형이 선고됐다. 이들은 여성 이모씨(당시 41세)의 의뢰를 받아 이씨 전 남편 채모씨(사망 당시 40세)를 납치해 살해한 혐의를 받았다.당시 오케스트라 예술감독으로 활동하던 피아니스트 이씨는 도대체 왜 공연예술가였던 전 남편에 대한 납치를 사주했던 걸까?공연예술가 남편에 대한 납치·강도 등을 사주한 혐의로 대법원에서 징역 13년형이 확정된 피아니스트 이모씨.사건의 시작은 잘못된 결혼이었다. 과거 외국에서 결혼해 초등학생 자녀까지 뒀던 이씨는 이를 숨긴 채 한 살 어린 채씨에게 접근해 2010년 10월 결혼식을 올렸다. 채씨가 유복한 집안에서 자라 경제력이 있다는 것을 알고 끈질긴 구애를 보낸 결과였다. 채씨는 결혼 선물로 서울 서초동에 자신의 명의로 프랜차이즈 카페를 차려줄 만큼 이씨를 진심으로 다했다. 하지만 외국에 있는 자녀 양육비로 매달 수백만원을 송금해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않았던 이씨는 결혼 직후부터 이 카페 자금에 몰래 손을 대기 시작했다.결혼생활은 결국 불과 4개월 만에 파탄났다. 이씨는 결혼 초기부터 집에 들어오지 않는 일이 잦아졌다. 그 기간 동안 이씨는 다른 남자들과 만나 외도를 하며 임신·낙태까지 했다. 낙태 후에는 채씨의 아이를 유산했다고 거짓말을 했다. 채씨가 다른 남성이 함께 있는 이씨 모습을 발견하며 감춰졌던 이씨의 이중생활 실체가 드러났다. 이씨와 함께 있던 내연 남성은 따지는 채씨에게 오히려 “내가 남편인데 당신이야말로 누구냐”고 화를 냈다. 실제 해당 남성은 집안에 이씨를 결혼할 사람이라고 소개까지 한 상태였다. 그렇게 채씨는 뒤늦게 이씨가 수많은 남자를 만나며 복잡한 사생활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은밀한 사생활 발각되자…위해 가하기로 결심이씨와의 결혼생활을 정리하기로 한 채씨는 결혼 전력 등을 속였던 것 등을 포함해 이씨에게 거짓말, 외도, 자금유용 등에 대한 피해 보상을 지속적으로 요구했다. 결국 이씨는 2012년 12월 채씨에게‘사실혼 부당파기 위자료 지급 확인서’를 써줬다. 매달 70만원씩 총 7000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하겠다는 내용이었다.이씨는 위자료로 경제적 어려움이 가중되는 한편, 자신의 사생활이 채씨에 의해 음악계에 알려질까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채씨가 2013년 9월 이씨 가족들에게 “왜 결혼할 때 이씨 과거에 대해 알리지 않았냐”고 따진 것을 알게 됐고, 자신의 사생활이 가족들에게 알려질까 두려워 이씨에게 위해를 가하기로 마음먹었다. 피아니스트 이모씨가 난잡한 사생활이 들통나 남편 채모씨에게 써준 위자료 지급합의서. (사진=JTBC 갈무리)그는 같은 해 11월 초 인터넷 검색을 통해 알게 된 심부름센터 직원 A씨를 만났다. 이씨는 A씨에게 “사실혼 배우자였던 채씨에게 겁을 주고 내가 손해 본 만큼 재산을 빼앗아 그걸 심부름 보수로 충당하라”고 제안했다. 구체적으로 “퍽치기를 하거나 미성년자와 성관계를 갖게 한 후 강간으로 고소하는 등으로 채씨를 혼내줄 방법이 있느냐”며 “사람을 때리려면 사람을 가둬야 되지 않는냐”며 구체적 방법까지 제안했다.A씨는 며칠 후 이씨에게 전화해 “단순 퍽치기는 1000만원, 납치까지 하면 1500만원”이라고 구체적인 액수를 제시한 후, 승낙을 받았다. 경제적 어려움이 있던 이씨는 이 비용마저도 채씨에게서 빼앗도록 했다. 이를 위해 A씨에게 채씨 재산내역을 구체적으로 알려줬다. A씨가 “착수금을 스스로 충당한 후 피해자로부터 돈을 빼앗아 갖겠다”고 제의하자 이씨는 “빼앗은 돈은 다 가져도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실명 만들어달라”·“죽어도 어쩔 수 없다”이씨는 이후 A씨를 만난 자리에서 “채씨를 실명하게 해줄 수 있느냐”고 문의했다. A씨는 여기에 “그 정도로 다치게 하려면 죽이는 상황까지 발생할 수 있다”고 답했다. A씨가 수차례 “채씨를 죽일 수도 있다”고 밝혔고, 이씨는 “그런 상황은 원하지 않지만 그렇게 되면 어쩔 수 없다”고 사실상 이를 용인했다.이를 계기로 범행은 더 구체화됐다. 이씨는 범행 준비 비용에 쓰라며 A씨에게 200만원가량을 지급했고 A씨는 범행에 동참할 공범들과 범행 도구들을 준비했다. 이 과정에서 A씨가 구체적 살인계획까지 마련하자, 겁에 질린 A씨 일당 중 일부는 범행 가담을 회피하려 잠적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씨는 오히려 A씨 일당이 채씨를 쉽게 유인·납치할 수 있도록 구체적 범행 시나리오까지 제공했다. A씨 일당은 시나리오에 따라 2014년 1월 4일 채씨를 유인해 자신들의 차량에 태우는 데 성공했다. 채씨가 차량에 탑승한 직후 A씨 등은 흉기를 꺼내 보이며 “여자한테 잘못한 것 있지요?”라고 말한 후 결박했다. 이들은 미리 물색해 놓은 경북 안동의 한 빈집으로 가기 위해 채씨를 태운채 고속도로로 이동했다. 그리고 용인휴게소에서 정차한 사이, 채씨가 “살려달라”고 소리를 지르며 차 밖으로 탈출했다. A씨 일당은 곧바로 채씨를 차량에 다시 강제로 태우려 했고, 이 과정에서 채씨의 외침을 들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채씨가 차량에 타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저항하자 차량 안에 있던 A씨는 흉기를 꺼내 채씨 하체를 수차례 찔렀다. 흉기에 찔린 채씨는 차량에 강제로 태워졌고 A씨 일당은 차량을 다시 출발시켰다. 다량의 피를 흘리는 채씨가 차에서 살려달라고 호소했지만 A씨 일당은 이를 무시했다. 시민들의 신고를 받고 경찰이 곧바로 A씨 일당이 탄 차량 추적에 나섰고 이들은 30여분 만에 강원도 원주 고속도로에서 검거됐다. 경찰이 A씨 일당을 검거했을 당시 채씨는 이미 과다출혈로 사망한 상태였다. 공연감독 채모씨를 살해한 A씨 일당이 2014년 1월 9일 용인휴게소에서 진행된 현장검증에서 범행을 재현하고 있다. (사진=뉴스1)수사에 착수한 경찰은 A씨 일당으로부터 “이씨 사주를 받았다”는 진술을 확보해 곧바로 이씨를 강도살인 공범으로 체포했다. 하지만 이씨는 “A씨에게 제가 의뢰한 것을 숨기고 그저 ‘여자를 괴롭히지 말라’고 겁만 주라고 했다”며 “강도 범행을 공모하지도 않았고 사망을 전혀 예상하지도 못했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A씨 일당을 강도살인 혐의로 기소하는 한편, 이씨에 대해선 살인 공모가 인정되지 않는다며 강도살인이 아닌 강도치사 혐의만을 적용해 재판에 넘겼다. ◇아내 “죽일줄 몰랐다”→공범 “모두 알렸다”이씨는 법정에서도 수사기관에서와 같이 혐의를 부인했다. 그는 “사람을 죽여달라고 심부름센터에 의뢰를 했겠나. 200만원으로 사람을 죽인다는 건 말이 안 된다. 겁을 주는 게 최대한이라 생각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공범인 A씨가 법정에서 “이씨에게 세세한 얘기까지 다 했다. 이씨가 납치를 주장했고 구체적 납치 계획까지 알려줬다. 연장을 챙기는 얘기까지 이씨에게 전했다”고 증언하며 이씨 주장을 직접 반박했다.1심은 “이씨가 피해자에게 원한을 품고 심부름센터에 연락해 강하게 폭행·협박하고 금품을 강취해 달라는 의뢰를 한 후 치밀하게 범행을 계획했고, 결국 피해자는 A씨 일당에게 무참히 살해됐다”며 이씨의 강도치사 혐의를 유죄로 인정해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강도살인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겐 징역 25년, 범행에 동참한 일당 2명에겐 각각 징역 13년과 10년을 선고했다.이씨는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그는 “강도 범행을 공모하지 않았고 채씨 사망도 전혀 예견할 수 없었다”고 재차 주장했다. 하지만 2심은 “객관적으로 범행이 인정되는 상황에서도 이를 극구 부인하며 죄를 뉘우치지 않고 오히려 책임을 피해자 탓으로 돌리고 있다”며 “”피해자 사망에 가장 근원적 책임을 져야 할 이씨에 대한 1심 형이 너무 가볍다“며 징역 13년으로 형을 올렸다. A씨 등의 항소는 모두 기각했다.특히 2심은 이씨에 대해 강도살인이 아닌 강도치사를 적용해 기소한 검찰의 판단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2심은 ”여러 의심스러운 정황에도 불구하고 피해자 죽음을 용인했다고 확신할 수 없다는 이유로 공범들과 달리 강도치사죄로 기소됐다“고 지적한 것. 이씨와 A씨가 모두 상고했지만 대법원에서 기각돼 형은 그대로 확정됐다.
  • 친절하던 두 아이의 아빠…13년 전 연쇄살인마였다[그해 오늘]
    친절하던 두 아이의 아빠…13년 전 연쇄살인마였다
    한광범 기자 2022.12.01
    [이데일리 한광범 기자] 2017년 11월 21일 늦은 밤. 대구의 한 길거리에서 20대 여성 A씨가 강도상해 범행을 당했다. 귀가 중이던 A씨는 모르는 휴대전화를 보고 길을 걷던 중 모르는 한 거구의 남성이 휘두른 둔기에 머리를 기습적으로 가격 당했다.여성은 자신의 가방 등을 훔쳐가려던 남성에게 필사적으로 저항했고, 범인은 둔기로 A씨 머리를 수십 차례 내리쳤다. 멀리서 범행 현장을 목격한 행인이 뛰어 달려오자 범인은 도주했다. 중상을 당한 A씨 곧바로 병원에 실려가 겨우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경찰은 즉각 수사에 나섰다. 범행 현장 인근의 CCTV 속에는 범행 전 범행대상을 물색하던 범인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경찰은 CCTV 속에서 범인이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확인하고 현장에서 담배꽁초를 수거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분석을 의뢰했다.CCTV 영상을 토대로 경찰은 같은 달 28일 범인을 검거했다. 대구에 사는 당시 48세 남성 이모씨였다. 아내와 중고교생인 두 자녀를 두고 있던 평범해 보이는 남성이었다. 경찰에 붙잡힌 이씨는 초기 조사에선 “기억나지 않는다”며 잡아뗐다. 추가 조사에서 경찰이 범행 장면이 담긴 CCTV 영상을 제시한 후에야 범행을 자백했다.◇강도상해로 검거 후 13년전 살인범행 드러나강도상해 범인 검거로 끝날 것 같았던 사건은 그 직후 국과수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DNA 분석 결과가 통보되며 양상이 달라졌다. 국과수는 이씨 DNA가 2004년 6월 대구에서 발생한 노래방 여주인 살인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범인의 DNA와 일치한다는 결과를 통보했다. 13년 넘게 미제로 남았던 대구 노래방 여주인 살인사건 현장에선 범인의 피부조직 일부와 범인이 버린 담배꽁초가 발견된 상황이었다. 경찰 수사팀엔 피살된 노래방 여주인의 아들이 형사로 근무하고 있었다. 경찰은 유족인 해당 형사를 일단 수사팀에서 빼는 한편, 미제사건팀 등으로 인원을 보강해 수사팀을 대폭 확대했다. 이씨도 DNA 증거 앞에 결국 여주인 B씨 살해 사실을 자백했다. 경찰은 12월 1일 13년 전 미제사건 범인 검거 소식을 발표했다.조사 결과 이씨는 2004년 6월 자신이 운영하던 술집에서 멀지 않은 노래방에서 여주인을 강간하려다 살인했다. 그는 이미 기절한 피해자가 신고할 수 있다는 우려만으로 피해자를 잔혹하게 살해했다. 살해 후에는 피해자 시신을 엽기적으로 훼손하기까지 했다. 현장에서 범인의 것으로 추정되는 DNA가 발견됐지만 지문이 전혀 발견되지 않으며 장기 미제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이씨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던 경찰은 2009년 발생한 또 다른 미제 살인사건과 이씨 범행수법이 비슷하다는 것을 확인했다. 2009년 2월 대구 수성구에서 한 노래방 업주 C씨가 숨진 채로 발견됐는데, C씨 역시 B씨와 비슷한 수법으로 잔혹하게 살해됐다. 범행수법의 유사성을 근거로 경찰은 이씨에게 범행에 대해 추궁했다. 하지만 이씨는 범행을 부인했다. 그는 경찰 조사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자해를 하기도 했다. 자해로 부상을 입은 이씨에게 경찰은 “다 털고 가자”고 설득했고, 이씨는 결국 C씨 살해 사실도 자백했다.대구 노래방 여주인 연쇄살인범 이모씨를 수사한 경찰 수사팀엔 첫번째 살인 피해자의 아들이 형사로 근무하고 있었다. 13년 전 피살된 모친의 살인범을 형사가 된 아들이 자기 손으로 붙잡았다.(사진=연합뉴스)조사 결과 과거 노래방을 운영한 경험이 있던 노래방 업주 모임에서 본 적이 있던 C씨를 이듬해 2월 찾아가 강간을 시도하다 잔혹하게 살해했다. 이씨는 두 번째 살인 사건 현장엔 첫번째 범행과 달리 지문 등 어떠한 범행 흔적도 남기지 않는 치밀함을 보였다.◇가족들 “그럴 사람 아니다…믿을 수 없다”두 건의 끔찍한 연쇄 살인 범죄를 저질렀지만 가족들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은 이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살인마 실체를 숨기고 ‘평범한 가장’이라는 가면을 철저히 썼기에 가족들 모두 속아 넘어갔다. 경찰에 체포됐을 당시 가족들은 ‘이씨가 그럴 사람이 아니다’며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이씨 아내는 경찰 조사에서 “싸움도 할 줄 모르고,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칠 사람도 아니다. 평소에 여자들을 특히 더 조심히 대한다”며 “범행을 저질렀다는 걸 믿을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이씨 친동생 역시 “이씨가 내성적이고 조용한 성격으로 평소 말수가 거의 없다. 감정 표현도 없이 많이 참고 억누르는 성격”이라고 밝혔다.하지만 수사 당시 진행한 정신분석 결과에서 이씨는 ‘여성이 친근감 있게 남자를 대하는 것은 성적 접촉을 허용하는 것’ 등 강간에 대한 그릇된 성의식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경찰은 이씨 차량에선 콘돔과 전기충격기 등 성범죄 등에 사용할 법한 물건들이 다수 발견됐다. 사이코패스로 판명되진 않았지만 이씨는 피해자들이 받은 피해에 대해 철저히 무관하고 큰 죄책감조차 갖고 있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실제 피해자 시신을 훼손한 후 일부를 가지고 가거나, 살인 범행 직후 자신의 가게로 가 범행 당시 입은 옷을 그대로 입고 장사를 하기도 했다.유복한 가정에서 자랐던 이씨는 어린 시절부터 변태적 성향을 보였다. 20대이던 1996년 3월 길거리에서 여성을 납치해 성폭행을 시도하다 붙잡혀 법원에서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은 전과도 있었다.◇검찰 “사형 선고해달라”→법원, 무기징역 선고강간치상 전과를 숨기고 1999년 7월 결혼을 해 가정을 꾸리고 이듬해 자녀까지 출산했다. 그리고 첫 번째 살인 범행 직후인 2005년엔 둘째 자녀까지 낳으며 보통의 아버지 모습을 하며 생활을 했고, 2009년 또다시 범행을 저질렀다. 하지만 용의 선상에조차 오르지 않고 수사망을 피하며 거리를 수년간 활보했다.검찰은 강간살인 등의 혐의로 A씨를 재판에 넘겼다. 검찰은 “피해자들을 물욕과 성욕 대상으로 삼아 잔인하고 극악한 범행을 연쇄적으로 저질렀다. 반성은커녕 범행을 은폐·축소하려 하고 있어 일말의 교화 가능성을 찾아볼 수 없다”며 사형을 구형했다.1심은 “잔혹한 범행으로 처참하게 살해당한 피해자들이 죽는 순간까지 극심한 고통을 겪었을 것으로 보이고 가족을 잃은 유족들은 평생 치유하기 어려운 고통 속에서 살고 있다”며 “범죄에 상응하는 응분의 형벌에 처해야 한다”며 무기징역을 선고했다.검찰의 사형 선고 구형에 대해선 “사형 선택을 고려할 여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면서도 “생명을 박탈하기보다는 사회로부터 영원히 격리된 상태에서 잘못을 진정으로 참회하게 하는 것이 타당하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이씨는 1심 판결에 대해 “형량이 과도하다”며 항소했다. 하지만 2심도 “1심이 선고한 무기징역형은 이씨의 죄책에 상응하는 적정한 형벌인 것으로 보인다”며 항소를 기각했다. 이씨가 상고를 포기함에 따라 형은 그대로 확정됐다.
  • “엄마 백원만” 100원 동전의 첫 등장[그해 오늘]
    “엄마 백원만” 100원 동전의 첫 등장
    김영환 기자 2022.11.30
    [이데일리 김영환 기자] 1962년 박정희 정권은 기습적인 긴급통화조치를 단행했다. 화폐단위를 ‘환’화에서 ‘원’화로 바꾸면서 1953년 이전의 ‘원’화가 부활했다. 단 1953년 이전의 ‘원’화는 지금처럼 한글이 없었고 한자로만 표기됐다.1970년 발행된 100원 주화(위)와 1983년 발행된 100원 주화(사진=한국은행)1960년대 들어 고도성장을 한 한국경제는 70년대 들어 고액 화폐의 필요성이 커지면서 100원이 기존의 지폐에서 동전으로 바뀌게 됐다. 1970년 11월30일, 한국에서 처음으로 100원짜리 동전이 탄생한 날이다.100원은 백동으로 만들어지는데 소재는 구리 75%, 니켈 25%의 합금이다. 지름은 24mm, 두께는 1.75mm, 무게는 5.42g으로 동전의 테두리에는 위조를 방지하기 위한 톱니가 새겨져 있는데 100원의 경우 톱니 개수는 110개다.동전의 앞 면에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주조돼 있고 100원을 뜻하는 ‘백원’이라는 글이 쓰여있다. 동전 중 유일하게 인물이 들어가 있다. 뒷면에는 100원을 뜻하는 아라비아 숫자 ‘100’과 제조 연도, ‘한국은행’이라는 단어가 적혀 있다.100원 동전은 1983년 1월15일 한차례 문양을 변경한다. 동전별로 모양이 상이한 것을 가장 마지막에 만들어진 500원짜리와 유사하게 디자인해 통일하기 위한 조치였다. 일종의 ‘패밀리룩’인 셈이다.한국에서 2종류의 100원짜리가 통용되는 배경이다. 100원의 디자인만 바뀌였을 뿐, 합금의 비율이나 무게, 크기 등은 그대로 유지했다. 현재도 500원과 10원짜리를 제외한 동전의 디자인은 83년 1월15일 발표된 것이다.지난 2020년에는 100원짜리 도안이 다시금 변경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됐다. 100원에 디자인된 이순신 장군의 그림을 그린 월전 장우성 화백이 친일인명사전에 기재되면서다. 문화재청이 이순신 표준영정을 해제하면 100원 주화 도안도 변경될 공산이 크다.도안 변경이 확정되면 수집가들에게 있어 100원의 가치가 달라진다. 조폐공사는 매년 현행주화세트(민트)를 판매하는데, 동전 도안이 바뀌면 당해 민트는 마지막 현용주화를 담은 세트가 된다. 한정판 민트세트를 구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같은 논리로 100원짜리의 발행 년도에 따라 가치가 나뉜다. 최초 발행 년도인 1970년과 가장 발행량이 적은 1981년, 국제통화기금(IMF) 시대를 맞았던 1998년 100원 주화들이 희귀성을 인정받고 있다. 1970년에는 150만개, 1981년에는 10만개, 1998년에는 500만8000개만이 발행됐다. 가장 발행량이 많았던 2003년 5억8500만개가 쏟아져나왔으니 1981년 동전이 얼마나 희귀한지 가늠할 수 있다. 참고로 1976년에는 100원짜리가 아예 발행되지 않았다.최근 들어 신용카드 및 각종 포인트 등의 등장으로 지폐는 물론, 동전이 화폐로서의 지위를 잃고 있다. 발행량도 급감하는 상황이다. 지난 2021년 100원 주화는 단 10만개만 발행됐고, 2022년에도 40만개 발행에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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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작가 꿈을 이룬 재벌총수 박용만[오너의 취향]
    사진작가 꿈을 이룬 재벌총수 박용만
    한광범 기자 2022.11.30
    [이데일리 한광범 기자] 사진기자를 꿈꾼 재벌가 자제고등학교 시절 언뜻 어울리지 않는 이런 꿈을 꿨던 이가 있다. 두산그룹 회장을 역임한 박용만(67) 벨스트리트파트너스 회장의 이야기다.박용만 전 두산그룹 회장. (사진=라이카코리아)박 회장은 재계에서 유명한 사진 마니아다. 고교 시절부터 사진에 관심을 보인 박 회장은 부친인 박두병 두산그룹 초대 회장의 반대로 사진기자의 꿈은 포기했지만 기업인이 된 후에도 사진에 대한 열정만은 잊지 않았다. 두산 입사 후에도 사진작가로의 전직을 고심했을 정도다. 박 회장은 여전히 서가에 사진집이 가득 차있고, 즐겨 보는 책도 사진집일 정도로 사진에 대한 열정이 가득하다. 기업인으로 바쁜 생활 속에서도 그는 틈틈이 사진을 찍었다. 평소에도 사진기를 들고 다니며 거리 풍경, 주변 사람 등 일상을 사진으로 남긴다. 사진작가 박용만은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실력자로 평가받는다. 오래전부터 운영해온 인스타그램 계정은 사진작가 박용만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온라인 전시장에 가깝다.박 회장이 찍은 사진은 유명 가수의 앨범에 실리기도 했다. 가수 양희은은 1998년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의 앨범을 발매할 당시 박 회장에게 허락을 받고, 미리 본 적 있던 박 회장의 작품 사진을 앨범 재킷에 사용했다. 박용만 회장의 촬영 사진을 앨범 표지로 사용한 양희은 ‘1991’ 앨범.박 회장이 지난해 초 발간한 산문집 ‘그늘까지도 인생이니까’의 표지에도 독일 고급 카메라인 라이카를 들고 있는 모습을 담았다. 작가 소개란 중에도 “소통하는 대기업 CEO로 잘 알려져있지만 쉬는 날엔 혼자 골목골목 사진을 찍으러 다니는 것을 좋아한다”고 적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2013년 7월 박 회장이 회장으로 추대된 이후부터 사진공모전을 개최하고 있다. 경제활동을 하는 상공인들의 삶을 사진을 통해 담아낸다는 점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박 회장에게 사진은 이처럼 단순히 취미활동에 그치지 않고 세상과의 소통 수단이다. 박 회장은 오래전부터 ‘소통하는 재벌’로 주목받았다. 소통보다는 ‘은둔’이 더 잘 어울리는 보통의 재벌가와 달리 박 회장은 언론이나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적극적인 소통을 해왔다. 소셜미디어에 자신의 소소한 일상을 공개하거나, 사내 메신저 등을 통해 그룹 직원은 물론 일반 시민과 직접 소통하기도 했다. 2010년엔 한 방송에 직접 출연해 자신의 집을 공개하며 재벌 회장의 생생한 일상을 보여주는 파격 행보에 나서기도 했다. 두산그룹 회장을 맡을 당시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박 회장은 올해 초 자신과 자녀들이 보유하고 있던 두산 지분 전량을 매각하고 두산과 완전히 결별했다. 결별을 결정한 후 박 회장은 지난 3월 배우 류준열, 포토저널리스트 신웅재, 20세기 초현실주의 사진 거장 랄프 깁슨, 미국계 한국인인 ‘앰부쉬’ 패션 디자이너 윤 안, 버추얼 아티스트 웨이드와 함께 ‘오! 라이카(O! Leica) 2022’에 작품을 전시했다. 오랜 꿈이었던 ‘사진작가’ 박용만이 현실화 된 것이다.‘오! 라이카2022’에 전시된 박용만 회장 작품. (사진=라이카코리아)
  • 느리게 구르는 구자열의 자전거[오너의 취향]
    느리게 구르는 구자열의 자전거
    전재욱 기자 2022.11.23
    [이데일리 전재욱 기자] 기업인 구자열(한국무역협회장·LS의장)의 자전거 페달은 빠르게 굴러 왔다. 쉬지 않고, 곧게 갔고, 그래서 앞에 있었다. 자전거께나 탄다는 ‘말벅지’도 그의 등을 보고 달리기가 일쑤다. ‘몬주익의 마라톤 영웅’ 황영조 선수의 이른바 ‘항복 선언’은 유명한 일화다. 신체 능력이라면 세계 으뜸가는 황 씨였지만 2010년께 구 회장을 따라 라이딩을 나섰다가 결국 두 손을 들었다고 한다.구자열 한국무역협회장 겸 LS의장(앞줄 오른쪽 헬멧을 든 이)이 지난 9월 지인과 라이딩을 떠나기 앞서 환히 웃고 있다. 맨 왼쪽 가수 김창완씨를 비롯한 일행도 싱글벙글이다. 앞줄 가운데 뒷모습은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 미국대사.(사진=대한자전거연맹)“자전거 타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자기부터 수십 년을 자전거로 출퇴근했다. 서울 강남구 논현동 자택에서 경기 안양시 LS타워까지 어림잡아 하루 왕복 50km 이상이다. 날이 궂지 않으면 이걸 매일 했다. 맘잡고 달리면 서울에서 부산을 하루 만에 가는데, 평균 속력이 시간당 30km 안팎이다. 아마추어(20km대) 수준을 초월한 경지다. 2002년 독일 ‘트랜스알프스 산악자전거대회’에 참가해 7박8일 동안 650km를 완주한 것은 의지만으로 된 게 아니다.대한자전거연맹 회장 자리는 2009년부터 의지만으로 맡고 있다. 저변이 척박한 자전거 종목에서 구자열은 키다리 아저씨다. 경륜법의 흠을 고쳐 자전거 인재 육성에 물꼬를 틀도록 역할을 한 것이 컸다. BMX와 MTB 불모지 한국이었지만, 이제 국제대회에서 메달 소식이 들려온다.이런 그에게 자전거는 기업이었다. “자전거는 페달을 밟지 않으면 넘어진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목표를 잡고 전진해야 한다.” 경영 철학이었다. 구자열이 달리면 회사가 따라왔다. 그래서 빨리 갔고, 앞서 갔다. 지난 1월 LS 회장 자리에서 물러나기까지, 올해 칠순의 라이더는 이렇게 앞만 보고 달려왔다.구자열 한국무역협회장 겸 LS의장이 지난 9월 일행과 유니폼을 입고 떠난 라이딩에서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뒷줄 오른쪽 네 번째 흰 팔토시를 한 구 회장이 브이(V)자를 그리고 있다. 뒷줄 왼쪽 여섯 번째는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 미국대사.(사진=대한자전거연맹)자유인이 되고서 주법(走法)이 바뀌었다. 차종 로드바이크의 재질을 크롬에서 크로몰리로 바꾼 것이 시작이다. 쉽게 말하면 속도를 줄이고, 승차감을 끌어올린 것이다. 스포츠카에서 클래식 세단으로의 환승이랄까. 자연히 호흡도 달라졌다. 어지간하면 브레이크를 잡고, 풍경을 눈에 담고자 쉬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결승선을 향해 전력으로 페달을 밟던 이전의 그에게서는 보지 못했던 모습이다.“오늘은 유니폼 입으셨네요?”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고 가장 큰 변화는 복장이다. 라이딩은 혼자 하는 운동이지만, 같이 하는 운동이기도 하다. 무리는 유니폼을 입고서 한몸이 된다. 유니폼은 룰이다. 한창때 구자열이 유니폼 입기를 피한 건 이런 이유에서다. 촌음을 다투는 일정을 소화하려면, 자기가 계획해서 운동하는 것이 편했다. 얼마든지 갈 수 있지만, 언제든지 그만 가는 경우도 불가피했다. 유니폼을 입고 이렇게 행동하면 룰을 깨야 하고, 이로써 나머지 일행의 호흡이 뒤틀린다. 이걸 경계하려고 유니폼을 꺼렸다. 몸이 가벼워지고서 이런 부담을 덜었다.자전거인 구자열의 종아리.(사진=대한자전거연맹)지난 9월 라이딩은 자유인 구자열의 모습이 여실히 드러난 여정이었다. 지인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 미국대사(2008~2011년)가 방한하자 오랜 친구 가수 김창완씨 등과 함께 만든 자리였다. 그날 일행은 같은 옷을 맞춰 입었다. 정처는 정해뒀지만, 무엇하랴. 목적지보다 중요한 것은 도착지였다. 강변 카페에 들러 수 시간 수다를 떨었고, 오가며 마주하는 생면부지와 구김 없이 인사했다. 주변에서는 그에게 “여유롭게 피는 들풀의 향이 난다”고 했다.페달을 천천히 밟으니 뜻을 함께하는 이들이 늘고, 주변이 또렷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돌이켜보면 자전거는 빨리 가는 데 필요한 수단이 아니었다. 자전거 그 자체였다. 느리게 가도 뭐라고 할 이 하나 없는데, 우리는 빨리 가려고 무던히 애가 단다.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기까지는 잘 몰랐던 것들이다. 어떤 스님의 말마따나 ‘멈추면 보이는 것들’이었다. 구자열의 페달은 느릿하게 굴러간다.
  • ‘音의 경영학’…예술의전당 종신회원 ‘1호’ 김승연[오너의 취향]
    ‘音의 경영학’…예술의전당 종신회원 ‘1호’ 김승연
    김영환 기자 2022.11.16
    [이데일리 김영환 기자] 지난 1988년 2월 예술의전당 시설 가운데 음악당과 서예관이 1차 개관했다. 음악당은 변변한 공연장이 없던 당시 한국에서 유일하게 콘서트 전문 공연장으로 설계돼 기대를 모았다. 개관과 동시에 국내외 연주자들과 합창단, 실내악단, 관현악단들이 참가한 개관 기념 음악제가 열렸다.김승연 한화그룹 회장(가운데)이 지난 2011년 교향악축제 첫날 공연이 시작되기 전 협력업체 대표이사들과 함께 담소를 나누고 있다.(사진=이데일리DB)이듬해 이 같은 음악제를 살려나가자는 의견이 모였다. 역시 한 달여간 국내 관현악단들의 공연이 음악당에서 연달아 개최됐고 공식적으로 이 음악회를 ‘제1회 교향악축제’로 작명했다. 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됐고(最古), 가장 큰 규모인(最大) 오케스트라 페스티벌의 시작이었다.음악회는 지방의 악단들을 한 무대로 모아 서로 실력을 겨루거나 골고루 중앙 무대에서 공연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게 개최 취지였다. 재능있는 독주자들을 발굴해 관현악단과 협연 기회를 마련하거나, 한국 작곡가들의 창작 관현악 작품들을 초연하는 무대도 제공했다.지난 2022년 4월2일부터 24일까지 34회째를 맞아 공연을 성료했지만 위기가 없던 것도 아니었다. 지난 2000년에는 외환위기 여파로 기업들이 후원을 꺼리면서 아시아 최고·최대 교향악축제가 중단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했다.교향악축제라는 이름 앞에 ‘한화와 함께하는’이라는 인연이 시작된 계기다. 클래식 공연에 대한 후원이 대부분 일회성이거나 단기 후원인 경우가 많은데 한화가 23년째 이어오고 있는 교향악과의 인연은 이례적이다. 그 배경에는 김승연 한화 회장이 있다.‘2021 교향악축제’ 공연 장면(사진=예술의전당)김 회장은 ‘예술의전당 종신회원 1호’로 추대됐다. 예술의전당이 지난 2009년 처음으로 도입한 종신회원제도에 후원활동 10년을 기록한 김 회장을 첫 대상으로 삼은 것이다. 후원 20년째인 지난 2019년에는 후원기념 명패를 제작해 음악당 로비 벽면에 설치하는 제막식도 치렀다.김 회장은 클래식 음악 전문가로 알려졌다. 지난 8월 별세한 배우자 서영민씨가 특히 클래식 애호가였다. 김 회장은 좋아하는 클래식 음악이 나오면 하던 일을 멈추고 심취하기도 한다는 전언이다. 음악이 갖는 하모니의 가치는 김 회장이 생각하고 있는 공존과 상생의 키워드 ‘함께 멀리’와도 맞닿아 있다. 지난 2011년 김 회장은 교향악축제에 협력사 임직원을 초대해 동반성장의 의미를 되새기기도 했다. 김 회장이 직접 제안했던 행사다. 때로는 과격한 언행으로 세간의 시선을 받기도 했지만 김 회장이 평생을 지켜온 ‘의리’와도 결이 유사하다.김 회장의 클래식에 대한 조예는 지난 2013년 ‘한화클래식’으로도 발전했다. 한화클래식은 세계적인 아티스트들을 초청해 한국 관객들에게 선보이는 장이다. 합창계의 거장이자 바흐 해석의 양대산맥으로 불리는 헬무트 릴링이 첫 주자로 한국을 찾아 수준 높은 클래식 공연을 선보였다.‘한화클래식’은 클래식 애호가들에게 문호를 넓히는 한편, 관객과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레퍼토리 선정에 심혈을 기울였다. 일반인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상세한 해설도 곁들인 것이다. 지난 2020년 코로나19로 인해 온라인 공연을 한 것을 제외하고는 매년 직접 관객과의 만남을 추구하고 있다.지난 10월 한화그룹 창립 70주년을 맞은 김 회장의 기념사 이후 한화 측은 성료했던 ‘세계불꽃축제’와 함께 ‘한화클래식’을 사회공헌 철학의 실천 방안으로 제시했다. 김 회장은 기념사에서 “‘신용과 의리’의 한화정신이 있었기에 그룹의 성장이 가능했다”고 했다.지난 2019년 폐관한 금호아트홀 내부 전경(사진=금호아트홀)지난 2019년 폐관의 역사를 밟았지만 클래식 공연장 금호아트홀을 만든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역시 클래식을 사랑하는 경영인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많은 클래식 연주자들이 거쳐 갔을 만큼 클래식 영재 지원에도 적극적이었다.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의 경우 아내가 플루트 연주자일 만큼 평소 음악계 인사와 교류가 있어 왔다. 정 부회장 역시 클래식 음악에 조예가 깊고 피아노 실력도 상당하다는 평가다. 2011년부터는 연간 2차례에 걸쳐 ‘신세계 클래식 페스티벌’도 개최 중이다.이건산업 창업주인 박영주 회장도 ‘음악사랑’에서는 뒤지지 않는다. 올해로 33회를 맞는 ‘이건 음악회’는 기업이 주축이 돼 무료로 여는 클래식 공연 중 가장 오래된 음악회다. 지난 11일 롯데콘서트홀을 시작으로 △인천 아트센터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성료됐고 △부산 금정문화회관(16일) △통영 통영국제음악당(17일) 일정이 남았다.이건음악회가 2022년 첫 일정으로 스타트를 끊은 롯데콘서트홀은 롯데그룹이 2016년 롯데월드몰에 설치한 정통 클래식 공연장으로 예술의전당에 버금가는 클래식 공연 명소다.피아니스트 이혁.(사진=금호문화재단)재벌들의 후원 속에 클래식 인재들도 두각을 보이고 있다. 지난 13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2022 롱티보(Long-Thibaud) 국제 콩쿠르’ 피아노 부문에서 우승을 차지한 피아니스트 이혁은 두산연강재단 출신 장학생이다. 두산연강재단은 만 12세이던 2012년부터 이혁을 꾸준히 후원해왔다.두산연강재단은 두산그룹 초대회장인 ‘연강’ 박두병 회장의 호에서 따왔다. 박 회장의 이념 실천을 목표로 세워진 교육 및 문화재단으로 지난 1978년 10월 발족돼 현재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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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딴소리]축구가 인권에 앞서선 안된다
    축구가 인권에 앞서선 안된다
    김영환 기자 2022.11.27
    [이데일리 김영환 기자] 1. 프랑스의 변호사 겸 축구 행정가 쥘 리메는 국제축구연맹(FIFA) 3대 회장을 역임하면서 월드컵을 만들고 발전시키는 데 큰 기여를 한 인물이다. 초창기 FIFA 월드컵의 우승컵인 ‘쥘 리메 컵’이 그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들이 지난해 3월 아이슬란드와의 FIFA 2022 카타르 월드컵 유럽 지역예선 J조 1차전 경기에 앞서 카타르의 이주노동자 인권 신장을 촉구하는 내용의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사진=로이터)1928년 쥘 리메가 국제적인 축구 대회를 개최하고자 이를 추진한 데서부터 FIFA 월드컵의 역사가 시작된다. 지금이야 세계 각국이 서로 월드컵을 개최하려 하고, 월드컵 출전권을 따내기 위해 노력하지만 당시만 해도 찬밥 신세였다.당시 세계 최강이었던 우루과이가 개최 의사를 드러냈다. 축구 실력도 괜찮은데 마침 우루과이 독립 100주년을 기념할 만한 대회로 월드컵과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졌다. 그러나 유럽 대륙에서 남미 끝자락에 위치한 우루과이를 가려면 대서양을 건너가야 했다. 잉글랜드를 중심으로 유럽 상당수 국가들이 월드컵에 불참하려는 움직임이 보였다. 쥘 리메는 사비를 털어 각국 정부를 설득해 첫 월드컵의 개최를 성공시켰다.2. 쥘 리메에 대한 평가는 시각에 따라 다소 다르다. 그는 아직까지도 FIFA 회장으로 가장 오래 재임한 인물이다. 전세계 최고의 단일 종목 스포츠 대회가 된 월드컵을 만들고 자리잡는 데 공을 세웠으니 추앙 받아야 마땅했으나 그러지 못했다.첫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개최한 쥘 리메는 이념이나 사상보다는 축구를 가장 중심적 가치로 뒀다. 그것도 일부 대륙에 치우친 국제 축구 대회가 아닌 전세계가 참여하는 대회를 목표로 했다. 한국이 1954년 스위스 월드컵에서 헝가리에 0:9로 대패한 뒤 실력이 떨어지는 대륙의 참가를 막아야 한다는 주장에 “지금은 한국이 무너졌다고 해도, 수십 년 뒤엔 어찌 될지 모르는 일”이라고 두둔했다고 한다.쥘 리메는 1956년 노벨 평화상 후보로 지명됐으나 수상까지는 이어지지 않았다. 1938년 FIFA 월드컵에서 나치식 경례로 논란을 빚었던 영향으로 알려졌다. 쥘 리메는 2004년에서야 FIFA 공로 훈장을 수여받았다.3. 특히 1934년 두 번째 월드컵은 여전히 최악의 대회로 남아있다. 개최지 이탈리아의 독재자 베니토 무솔리니가 자신의 선전장으로 월드컵을 이용해 먹은 때문에 쥘 리메는 파시스트로도 오해를 받아야 했다.무솔리니는 경기에 배정된 심판을 따로 만난 정황이 있다. 실제로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8강전을 맡았던 스위스 주심은 편파 판정 논란 속에 스위스 축구협회로부터 정직을 받았다. 무솔리니는 자국 선수들에게는 우승에 실패하면 사형이라고 협박도 일삼았다.2회 월드컵은 초대 대회와는 다르게 중계에도 신경을 썼다. 라디오 중계를 통해 9개국이 월드컵 경기를 청취할 수 있었다. 그러나 노리는 바는 달랐다. 무솔리니는 전파에 파시즘 선전을 집어넣었던 것이다.이탈리아 국민에 대한 통제도 뒤따랐다. 당시 무솔리니가 만든 응원구호가 ‘이탈리아를 위해 죽어라’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무솔리니가 파시즘 선전을 위해 월드컵을 정치적 무대로 만든 흑역사다.이 역사를 떠올리면 FIFA가 왜 그토록 스포츠와 정치를 떨어뜨려 놓으려고 했는지 일견 이해가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2022 카타르 월드컵은 경기장 밖에서 이 같은 FIFA의 결정이 끊임없이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4. 월드컵으로 FIFA는 막대한 부를 축적한다. 그러나 막상 대회를 개최한 개최국은 적자에 직면한다.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부터 2018 러시아 월드컵까지 총 14차례 대회 중 개최국이 수익을 낸 경우는 러시아 월드컵뿐이었다.지난 23일 카타르 알라이얀의 할리파 인터내셔널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E조 독일과 일본의 경기에서 독일 선수들이 무지개 완장을 금지한 FIFA에 항의하기 위해 손으로 입을 가린 채 사진 촬영에 나서고 있다.(사진=연합뉴스)이번 대회 유치를 위해 약 300조원을 쏟아부은 카타르의 적자는 자명해보인다. 반대로 FIFA는 다시 수입 최대치를 경신했다. 카타르 월드컵과 관련해 FIFA의 수익은 10조원에 이른다고 한다.카타르는 이번 대회 개최를 위해 사막 한복판에 축구장 7개를 만들면서 공항, 고속도로 등 사회간접자본(SOC) 건설에도 힘을 기울였다. 인구 32만명의 카타르는 건설을 위해 전세계 각국에서 이주노동자를 받아들였는데 폭염으로 이들 중 1만5000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사망자의 70%는 원인조차 모른다.이역만리 외국의 공사현장에서 사망한 외로운 넋을 기리기 위해 몇몇 유럽 국가 주장들이 착용하려던 무지개 완장에 FIFA는 ‘옐로우 카드’를 주겠다며 막아섰다. 성 정체성이나 인종, 문화, 국적 등에 따른 차별에 반대하겠다는 목소리에조차 재갈을 물리겠다는 건, 정치의 뒤에 숨어 돈잔치나 벌이겠다는 FIFA다.
  • [딴소리]빈 살만
    빈 살만
    김영환 기자 2022.11.20
    [이데일리 김영환 기자] 1. 지난 2003년 잉글리시 프리미어 리그(EPL) 첼시FC를 인수했던 이는 로만 아브라모비치다. 러시아 최대의 정유기업이자 세계 4대 정유 기업이었던 시브네프티의 회장이 팀을 인수했다는 소식에 축구팬들은 설레었다. 러시아에서 약 10위 정도의 재벌이었고, 전세계에서도 100위권의 부호가 팀에 얼마나 투자를 할지 관심이 높아진 것이다. 실제 그가 첼시FC를 인수한 이후 10년도 채 되지 않아 첼시FC는 유럽 축구 연맹(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 우승하는 등 명문 클럽으로 거듭났다.뒤를 이어 EPL 팬들을 환호하게 만들었던 사람은 맨체스터 시티FC(맨시티)의 만수르다. 만수르는 한국에서도 ‘부호’를 상징하는 대명사처럼 쓰였을 만큼 세계적으로 돈이 많은 사람에 속한다.로만은 한 때 220억 달러까지 재산을 불린 것으로 알려졌으나 최근에 거론된 재산은 112억 달러(15조원) 가량이다. 만수르의 개인 재산은 390억 달러(52조원) 정도로 알려졌는데 그가 관리하는 가문의 재산은 1000조원께로 추정된다.2. 이번엔 빈 살만이다. 사우디아라비아 왕세가자 지난해 10월 같은 리그의 뉴캐슬 유나이티드FC를 인수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뉴캐슬의 서포터들은 홈경기장으로 몰려와 마음껏 기쁨을 만끽했다.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7일 방한한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겸 총리와 회담을 마친 뒤 환담하고 있다.(사진=대통령실)그의 이름은 무함마드이고 빈 살만은 ‘살만의 아들’이라는 뜻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빈 살만으로 더욱 알려졌다. 부호의 대명사 만수르보다 10배 더 재산이 많다고 한다. 뭐든 다 할 수 있다, 별명이 ‘미스터 에브리씽(Mr. Everything)’인 남자다. 로만과 만수르를 거치면서 세계 최고의 리그 중 하나인 EPL도 ‘돈’으로 성적이 좌우될 수 있다는 사실이 입증됐다. ‘졸부’라는 인식으로 기존 축구팬들은 오일 머니의 유입을 꺼려했지만 맨시티는 이제 세계 정상급 클럽의 하나가 됐다.2조 달러, 우리 돈으로 2800조원을 갖고 있는 비공식 세계 최고 갑부 빈 살만의 팀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지켜보는 것은 축구팬들의 또다른 재미가 될 것이다. 3. 최근 방한한 빈 살만이 환대를 받는 것 역시 우리 경제에 빈 살만이 미칠 영향을 긍정해서일 것이다. 왕세자이지만 고령의 국왕을 생각하면 빈 살만은 사우디의 사실상 최대 권력이다.그가 추진하는 핵심 사업은 ‘네옴시티’, 지구 역사상 최대 도시 프로젝트다. 고대 이집트 파라오들이 사막 위에 지었던 피라미드, 빈 살만이 네옴시티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다.이 도시는 100% 친환경 에너지로 자급자족하는 시스템을 추구한다. 오일로 막대한 부를 벌여들였지만 이를 넘어서겠다는 의지다. 한-사우디 ‘수소동맹’과 같은 친환경 용어는 그래서 등장했다. 5세대(5G) 이동통신, 인공지능(AI) 등 한국의 기술력이 수출을 눈 앞에 두고 있다.사우디는 과거에도 우리에게 낯선 이름이 아니었다. 1970~1980년대 우리 건설 노동자들이 중동에 진출해 외화를 벌어왔다. 사우디 왕가 역시 당시 한국 기업의 기술력에 만족도가 높다는 이야기도 들린다.4. 로만의 입지는 의외의 곳에서 흔들렸다. 지난 2월 24일에 터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다. 영국이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감행했는데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측근인 로만이 제재 대상이 됐다. 결국 로만은 지난 5월 첼시FC의 지분을 팔고 영향력을 잃었다.만수르와 빈 살만은 입장이 매우 다르다. 그들은 구단주 이전에 ‘부총리’, ‘총리’라는 직함을 달고 있었다. 정치적으로 로만과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안정적인 배경을 갖고 있다.그러나 부와 권력을 모두 쥔 이면에는 아름답지 못한 이야기도 많다. 빈 살만은 손자병법과 윈스턴 처칠의 저작을 즐겨 읽는다. 결국 본인보다 27살이 많은 사촌형을 권좌에서 몰아내고 왕세자에 책봉됐다. 이 과정에서 본인의 할아버지가 내세운 유지였던 ‘형제세습’도 없던 일이 됐다.왕족 숙청도 감행했으니 더한 권력도 휘둘렀다. 2017년에는 레바논 총리를 납치해 사임을 협박하는 말도 되지 않는 일을 저질렀다. 2018년에 발생한 사우디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암살 사건의 배후로도 의심받고 있다. 여성 운전을 허용하고 여성 참정권을 허용하는 등 개혁 행보 이면에는 필경 경계해야할 면모도 있는 것이다.
  • ‘공군 1호기’…무임탑승? 내돈내산! [딴소리]
    ‘공군 1호기’…무임탑승? 내돈내산!
    김영환 기자 2022.11.12
    [이데일리 김영환 기자] 1. 대통령 전용기인 공군 1호기는 2022년 1월부터 보잉 747-8B5(747-8i) 기종을 쓰고 있다. 소유자는 대한항공이다. 대한항공의 비행기를 대통령실이 장기간 ‘빌려’ 쓰는 형태다. 공군 1호기 탑승 좌석 수는 총 233석(전용석 2, 비즈니스 42, 이코노미 169)이다. 대통령 수행원들은 주로 비즈니스석을 쓰고 이코노미는 취재진에 배분된다. 공군 1호기(사진=이데일리DB)공군 1호기 탑승과 관련해 많은 이들이 오해하는 지점이, 언론사가 항공기를 무료로 이용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는 사실과 전혀 다르다. 언론사가 자비를 부담한다. ‘회돈회산’(회사가 돈을 주고 회사가 산 것)이다. 지난 9월 5박7일 일정의 영국·미국·캐나다 3개국 해외 순방은 2699만원의 계산서가 청구됐다.더욱이 공군 1호기는 비즈니스 클래스에 준하는 비용을 받는다. 전술했듯 취재진이 사용하는 좌석은 이코노미 수준이다. 기내 서비스는 비즈니스 클래스가 제공되지만 비용 대비 좌석은 불편할 수밖에 없다.대통령실은 순방지에서 손꼽히는 시설의 숙소를 섭외한다. 통신시설이 필요한 미디어센터를 마련하는 데도 생각보다 큰 비용이 든다. 모두 언론사에서 갹출해 부담한다.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비용을 더 걷고 1년 단위로 남는 차액에 대해서는 환급한다.2. 지난 9일 밤 지인들과 저녁자리를 갖다가 팀원으로부터 급한 연락을 받았다. 대통령실에서 동남아 순방 기간 동안 MBC 출입기자에게 대통령 전용기인 ‘공군 1호기’에 대해 탑승을 불허하겠다는 통보를 했다는 것이었다.대통령실은 “전용기 탑승은 외교·안보 이슈와 관련해 취재 편의를 제공해오던 것으로, 최근 MBC의 외교 관련 왜곡·편파 보도가 반복된 점을 고려해 취재 편의를 제공하지 않기로 했다”고 사유를 밝혔다. 출국을 불과 이틀 앞둔 시점이었다.대통령은 해외 순방 시 공군 1호기인 전용기를 이용한다. 대통령 가까운 곳에서 대통령의 정치 행위를 취재하는 출입기자단도 이 비행기에 동승하면서 일거수일투족을 보도한다. 대통령이 탑승 전 어떤 색깔의 넥타이를 맸는지조차 취재 대상이다.윤 대통령은 아세안(ASEAN·동남아국가연합) 관련 정상회의 및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 등 다자회의 참석을 위해 11~16일 캄보디아 프놈펜과 인도네시아 발리 두 곳을 차례로 방문한다.3. “장관님, 이렇게 답변하실 거면 세금을 받지 마세요. 저희가 내는 세금으로 일하시는 거잖아요.”문재인 정부의 초대이자 우리나라 정부 39대 통일부 장관이었던 조명균 전 장관 당시 통일부를 출입했다. 당시 출입기자 중 한 명은 늘 날카로운 질문으로 조 전 장관을 당혹케했다. 조 전 장관은 “세금을 받지 말라”는 다소 공격적인 언사에도 언론과의 간담회가 있을 때마다 대개 첫 질문자로 해당 기자를 지목했다. 기자가 질문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했고, 국민의 세금으로 일하는 고위공직자로서 국민들에게 알 권리를 전달하는 언론의 역할을 존중한 것이다.세금으로 일하는 고정급적 연봉제 적용대상 공무원 중 가장 높은 월급을 받는 것은 당연히도 대통령이다. 2022년 대한민국 대통령의 연봉은 2억4455만7000원이다. 더 엄중하게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언론의 감시를 받아야 한다.4. 대통령 전용기를 탄다는 것은 일종의 특혜다. 가장 피부에 와닿는 장점은 출입국 관리소를 거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수행원들이 길게 늘어서 출입국 심사를 받는 동안 대통령이 이를 기다린다는 것은 아무래도 이상한 광경이다. 취재 편의를 위한 특혜라 할 수 있다.달리 말하자면 이번 순방기간 동안 민항기를 선택한 언론사들은 이동에 상당한 제약을 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프놈펜에서 발리로 가는 직항편은 없다. 이들 취재진은 경유를 통해 빠듯한 일정을 맞춰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의 당선인 시절 대변인을 지낸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은 “취재 자체를 불허한 것이 아니고 전용기 탑승만 제공하지 않겠다는 것”이라며 “언론사 타이틀 달았다고 받는 당연한 좌석은 아닌 것”이라고 했다.국민이 낸 세금으로 빌려 쓰고 있는 대통령 전용기에서 특정 언론을 배제하겠다는 데서 권력을 바라보는 윤석열 정부의 인식이 느껴진다. 공군 1호기도, 윤 대통령이 구성한 정부도 2022년 대한민국 국민으로부터 임대해 쓰고 있는 것이다. 일방적 탑승 배제는 권력 오남용이다.엄연히 대통령실 출입기자단(출입기자단 제도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갈리지만, 논의에서 벗어나므로 제도 자체를 존중함)이 있는데 어떠한 논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이를 결정한 것이 그 근거다. 취재 윤리를 벗어난 보도 행태가 발생한다면 이미 대통령실과 출입기자단은 해당 언론사에 적절한 페널티를 부과하고 있다.윤 대통령은 이 문제를 놓고 “대통령이 많은 국민들의 세금을 써가며 해외 순방을 하는 것은 그것이 중요한 국익이 걸려있기 때문”이라며 “외교안보 이슈에 관해서는 취재 편의를 제공한 것이고, 그런 차원에서 받아들여달라”고 했다. 이번 조치에 대해 수많은 외신이 쏟아내고 있는 비판은 어떤 ‘중요한 국익’이 걸렸는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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