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권혜미 기자] 36년 전인 1989년 5월 18일. 한 가정집에서 생후 7개월 된 어린 아이가 30대 초반의 여성에게 납치돼 실종된 사건이 발생했다.경기도 수원시에서 살고 있던 이모씨는 당시 두 살이었던 첫째 아들을 시부모에게 맡긴 뒤 생후 7개월 된 둘째 딸 한소희 양을 등에 업고 시장에 다녀왔다. 다음 날 가기로 한 가족 나들이를 위해 돗자리와 반찬거리를 사기 위해서였다.사진=경기남부경찰 페이스북오후 6시쯤 집으로 돌아온 이씨는 보행기에 소희 양을 앉히고 마당 한 쪽에 놓인 평상에 앉아 잠시 휴식을 취했다. 그런데 그때 “계세요? 여기가 진영 엄마네 집인가요?”라며 한 여성이 문을 두드렸다.이씨는 문을 열어주면서 “진영이 엄마가 누군지 모른다”고 했지만, 이 여성은 불쑥 집 안으로 들어오더니 마루에 걸터앉았다. 그리고는 “‘진영 엄마’를 찾아 온 동네를 뒤지고 다니느라 힘들다. 물 한 컵을 달라”고 요청했다. 여성은 30대 초반으로 보였으며, 경상도 사투리를 사용했다.당시만 해도 이웃 간에 왕래가 많았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이씨는 거절하지 않고 여성에 물 한 컵을 갖다주었다. 그런데 이 여성은 보행기에 앉아 놀고 있는 소희 양을 보며 “나도 이만한 아이가 있는데 참 예쁘다”며 유독 많은 관심을 보였다. 이씨는 불편했음에도 그만 가보라는 말을 차마 하지 못했다.남편이 집에 들어올 시간이 되자 이씨는 쌀을 씻으려 부엌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잠시 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아 뒤를 돌아보니, 여성과 소희 양 둘 다 사라진 상태였다.사건 당시 제작된 30대 여성의 몽타주.(사진=EBS 유튜브 캡처)이씨는 곧바로 남편에게 전화를 한 뒤 파출소에 신고했다. 이씨는 “주변 이웃들은 한 여성과 소희가 집 밖을 나서는 모습을 봤다고 했다”며 “그 여자가 내 신발을 신고 가길래, 친척인 줄 알았다고 하더라”고 당시의 상황을 전했다.경찰은 전국에 지명수배를 내리고 부산, 마산, 대구 등지의 고아원과 보육원을 수색했지만 단서를 찾지 못했다. 유일한 단서는 여성이 남긴 신발 한 짝과 물을 마신 컵이었으나, 지문 감식 결과 이씨와 경찰관의 지문만 확인됐다.그리고 36년이 지난 지금까지 소희 양의 행방을 찾지 못했다. 유괴 당시 소희 양은 분홍색 유아복을 입고 있었으며, 눈이 오목하고 볼이 처진 것이 특징이다.과거 어머니 이씨는 한 매체에 “소희가 어디서 구박받고 살지는 않았는지 걱정 뿐”이라면서 “소희를 만나게 되면 먼저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어릴 때 입었던 옷과 가장 좋아했던 곰인형을 주고 싶다”고 했다.(사진=EBS 유튜브 캡처)
"죄송합니다"… '훼손 시신' 매주 찾아가 술 따른 살인자
채나연 기자2025.05.17
[이데일리 채나연 기자] 2021년 5월 17일 노래주점에서 손님을 살해한 후 유기해 신상이 공개된 30대 남성이 검찰에 송치 전 직접 마스크를 벗고 얼굴을 공개했다. 그는 “유기 장소에 4번 정도 찾아가 술을 두 번 정도 따랐다”고 말했다.술값 시비 끝에 손님을 살해한 뒤 훼손한 시신을 유기한 노래주점 업주 허민우(당시 34). (사진=연합뉴스)이 남성은 ‘인천 노래방 살인사건’의 범인 허민우(당시 34)이다. 인천시 중구 신포동 한 노래주점을 운영하던 허민우는 2021년 4월 22일 오전 2시께 추가 술값 10만 원을 두고 40대 손님 A씨와 말다툼을 벌였다.A씨는 추가 요금 지불을 요구받자 “집합 금지 조치 위반으로 신고하겠다”며 경찰에 전화해 “술값을 내지 못했다”고 말했다.당시 코로나19 확산으로 집합금지 조치가 내려져 밤 10시 이후에는 유흥시설의 영업이 불가능했으나 허민우는 불법으로 영업을 하고 있는 상태였다.전화를 끊은 A씨가 허민우의 복부와 뺨을 때리자 허민우는 A씨의 얼굴을 주먹으로 가격하기 시작했다. 계속된 폭행에 의식을 잃은 A씨는 13시간가량 방치돼 결국 숨졌다.허민우는 범행 이후 노래주점 인근 고깃집에 들러 폐쇄회로(CC)TV가 작동하는지를 확인하고 인근 마트에서 14ℓ짜리 락스 한 통, 75ℓ짜리 쓰레기봉투 10장, 테이프 2개 등을 구매했다.그는 노래주점 내 빈방에 A씨 시신을 숨겨뒀다가 흉기로 시신을 훼손해 부평구 철마산 중턱 풀숲에 유기했다.허민우(당시 34)가 운영하던 인천시 중구 신포동의 한 노래주점. (사진=연합뉴스)허민우의 범행은 A씨 가족의 실종 신고로 세상에 드러났다. A씨의 아버지가 실종 나흘째 경찰에 실종신고를 접수했고, 수사에 나선 경찰은 범행 20일 만에 허민우를 검거했다.경찰에 체포된 직후 허민우는 혐의를 전면 부인했지만 계속된 추궁에 “화가 나 주먹과 발로 여러 차례 때려 살해했다”고 자백했다. 경찰은 허민우를 구속한 뒤 신상공개위원회를 열고 신상을 공개했다. 범행이 잔혹하고 국민의 알권리 기준을 충족한다는 이유 등에서다.과거 인천지역 폭력조직인 ’꼴망파‘ 조직원으로도 활동했던 허민우는 2020년 1월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아 보호관찰 대상자로 분류된 상태에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이후 살인 및 사체손괴, 사체유기, 감염병 예방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허민우는 1심에서 징역 30년과 벌금 300만 원을 선고받았다. 양형부당을 이유로 항소한 허민우는 항소심 결판 공판에서 “저는 살인자입니다. 반성하고 죗값을 받겠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호소했지만 2심 재판부는 1심의 선고를 유지했다.재판부는 “(피고인의) 건장한 체격에 비해 비교적 마르고 술에 취한 피해자를 폭행하고 무참히 살해했다”며 “(피고인은) 시신 실었던 자동차를 수리 맡기고, 자신의 연인을 만나는 등 일상을 영위했다”고 말했다.그러면서 “비록 우발적으로 범행에 나아간 것으로 보이나 이어진 범행이 매우 폭력적이고 결과가 너무 참혹하다”며 “피해자 유족들은 유품은커녕 장기조차 없는 토막 나고 부패한 시신 앞에서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며 중형을 선고한 이유를 밝혔다.한편 경찰의 부실 대응도 도마에 올랐다. A씨가 살해되기 직전 112에 신고했으나 112 치안 종합상황실 근무자가 관할 인천 중부서에 출동 지령을 내리지 않았다.사건 발생 당시 코로나19 확산으로 노래주점의 영업이 금지된 새벽 시간대였으나 신고를 받은 상황실 근무자는 행정명령 위반 사항을 구청에 통보하지도 않았고, 신고자의 위치도 조회하지 않았다.이에 해당 근무자는 “A씨가 통화가 끝날 때쯤 ‘제가 알아서 할게요’라는 말을 했으므로 신고 취소로 받아들였다”고 해명했다.이후 해당 근무자는 감찰 조사를 받고 성실의무 위반으로 징계 처분 가운데 가장 낮은 수위인 견책 처분을 받았다.
“함께 사는 부부라도 강간죄 성립”…대법원 첫 인정한
이로원 기자2025.05.16
[이데일리 이로원 기자] 2013년 5월 16일 대법원은 ‘부부 강간죄’를 사상 처음으로 인정했다. 실질적인 혼인관계가 유지되는 경우라도 남편이 아내를 성폭행한 경우 강간 혐의로 처벌할 수 있다는 판결이다. 이 날은 부부의 날(5월21일)을 닷새 앞둔 날이었다. 사진=게티이미지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신영철 대법관)는 이날 특수강간 등의 혐의로 기소된 A씨(45)에게 유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다수 의견으로 “부부 사이에 민법상 동거의무가 인정되고 있고 여기에는 배우자와 성생활을 함께할 의무가 포함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 동거의무에 폭행, 협박에 의하여 강요된 성관계를 감내할 의무가 내포돼 있다고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그러면서 “혼인이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한 포기를 의미한다고 할 수 없고 성적으로 억압된 삶을 인내하는 과정일 수도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이어 “형법 제297조가 정한 강간죄의 객체(대상)인 ‘부녀’에는 법률상 처(아내)가 포함된다”며 “부부 사이에서 혼인관계가 파탄된 경우뿐 아니라 실질적인 혼인관계가 유지되는 경우에도 남편이 폭행이나 협박을 가해 아내를 간음한 경우에는 강간죄가 성립한다고 보아야 한다”고 밝혔다.강간죄의 객체에 아내를 포함시키는 것에 대해서는 일부 반대 의견도 나왔다. 이상훈·김용덕 대법관은 “남편이라도 아내를 강제로 간음했다면 형사처벌해야 한다는 점에는 동의한다”며 “그러나 강간죄는 ‘배우자가 아닌 사람’이 성관계를 강요한다는 요소를 고려해 형량을 정한 만큼 강간죄를 부부관계에까지 확대하면 처벌이 지나치게 무거워진다”고 밝혔다.앞서 A씨는 지난 2011년 아내를 폭행한 뒤 흉기로 위협하고 강제로 성관계를 맺은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2001년 결혼한 A씨 부부는 두 자녀를 낳고 평범하게 살았으나, 사건 발생 2~3년 전부터 불화가 심해지면서 A씨는 여러 차례 아내에게 폭력을 휘두른 것으로 조사됐다.1심은 A씨에게 징역 6년을 선고했다. 2심도 유죄를 인정했으나 부인이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탄원서를 제출한 점이 참작돼 징역 3년6월로 감형했다.한편 외국은 부부 강간죄를 인정하는 추세다. 미국은 1984년 부부 강간을 유죄로 인정했고, 영국은 1991년 최고법원 전원합의체 판결로 배우자 강간 면책조항을 공식 폐기했다. 프랑스는 오히려 부부간 강간을 일반 강간죄보다 더 엄하게 처벌하고 있다.대법원 관계자는 “이번 전원합의체 판결은 아내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보호하고 혼인과 성에 관한 시대적 변화에 발을 맞췄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처장은 “가정폭력 사건의 경우 성폭력은 무혐의 처분되고 폭력행위만 처벌받아왔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가정성폭력 피해자들이 구제받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