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시크가 던진 충격 “위기 닥쳐야 반짝 대책, 체력부터 키우자”

[만났습니다]② 이우근 “중국 반도체 기술 크게 성장해”
“과학 강국 기조 확실해, 데이터 처리 기술로 AI도 두각”
“우리 규제 묶일 때 선시장·후기준으로 R&D 적극 투자”
“방위산업 발전 희망, 소부장부터 수학·물리도 관심 필요”
  • 등록 2025-02-13 오전 8:44:05

    수정 2025-02-13 오후 11:17:17

[베이징=이데일리 이명철 특파원] “한국이 반도체 산업 자립 필요성을 실감하고 고민하기 시작한 건 불과 몇년 전입니다. 일본의 수출 제한 이슈가 터졌던 2019년부터라고 봐야합니다. 반면 중국은 이미 10여년 전부터 핵심 전략을 달성하겠다며 모든 분야에 투자하고 있었습니다. 기술 자립하겠다는 중국인들의 의지는 결연해 보이기도 해요.”

이우근 칭화대 반도체 집적회로학과 교수는 지난 7일 베이징 본교 연구실에서 진행한 이데일리와 인터뷰에서 중국의 연구개발(R&D) 강점의 비결 중 하나로 ‘자립화’를 꼽았다. 미국과 패권 경쟁을 벌이면서 첨단기술을 키워야 한다는 인식이 강하게 있다는 것이다.

이우근 칭화대 집적회로학과 교수가 중국 베이징 본교 연구실에서 기자 질문을 듣고 있다. (사진=이데일리 이명철 특파원)


중국에서 20년 가까이 활동한 이 교수는 미국 정보통신(IT) 기업 IBM 연구원으로 일했고 지금도 한국 학계와 꾸준히 소통하고 있는 한·미·중 반도체 전문가다.

이 교수는 “7~8년 전만 해도 창신메모리는 내수용일 뿐 한국을 절대 따라올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기술력이 생기니 이젠 우리가 쫓기는 상황”이라며 “시스템 반도체도 그렇고 인공지능(AI), 그래픽처리장치(GPU) 등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엄청나게 투자한다”고 평가했다.

최근 중국 AI 모델 딥시크의 등장으로 반도체 등 중국 첨단기술에 대한 세상의 인식도 바뀌는 분위기다. 이 교수는 효율적이라고 평가받은 딥시크가 시작일 뿐 앞으로 효율을 높인 프로세싱인메모리(PIM) 같은 신기술이 주목받을 것이라고 봤다. 기술 개발 경쟁이 더 치열해지면서 한순간도 방심할 때가 없다는 것이다.

사회적 합의 없이 전폭적 지원이 가능한 중국과 우리를 동일선상에서 비교하기는 무리가 있다. 하지만 적어도 중국 기술자들을 우대하고 그들의 전략을 정책에 적극 반영하는 분위기는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기업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노력할 테니 그들을 방해하지 말고 정책적 뒷받침만 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정책을 세울 때는 중장기 계획, 특히 기초 체력을 키울 수 있는 과학 분야 투자와 인재 양성을 위한 교육에 신경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이 교수와의 일문일답이다.

-지금 우리와 중국의 반도체 수준 격차는 어느 정도인가.

△우리가 앞서는 건 메모리쪽인데 반도체는 분야가 너무 많아 일괄적으로 비교하기가 쉽지 않다. 반도체 격차는 상용화해서 대량 생산할 때를 기준으로 본다. 지금 중국은 시제품이 나오면 양산하기 어렵더라도 시장에 내놓기 때문에 예전 기준으로 격차가 애매하다.

7~8년 전만 해도 중국 창신메모리를 보고 메모리 반도체는 절대 따라올 수 없다고 생각했고 내수 시장에 파는 거라 전략도 달랐다. 지금은 중국 업체들이 국내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이고 기술력이 발전하면서 이야기가 달라졌다. 심지어 메모리 쪽에서도 경쟁력이 생기면서 우리를 쫓아오고 있다.

반도체 전자설계자동화(EDA) 같은 도구는 격차를 말하기 힘들 정도로 거의 비슷하다. 시스템 반도체의 경우 화웨이가 스마트폰의 앱 프로세스를 만들고, 범용 반도체나 라우터 등도 중국이 만들고 있어 격차가 있는 건가 싶기도 하다.

-한국의 반도체 초격차는 유지되고 있다고 보나.

△‘초격차’라는 말이 물론 중요하긴 한데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초격차를 이야기한 순간부터 경쟁력이 약해진 측면도 있다. 결과를 놓고 이야기하는 거지만 추상적인 초격차는 말하고 듣기에 좋으나 구체적 전략이 없을 수도 있다. 어그레시브(aggressive·공격적)하게 새로운 공정을 하면서 수율 관리에 실패하기도 한다.

파운드리는 TSMC 지위가 확고부동하다. 차라리 1위를 인정하고 2위 전략을 펼쳤으면 어땠을까 생각도 든다. TSMC가 감당하지 못하는 물량만 우리가 받았어도 시장에서 30%는 쉽게 점유할 수 있었을 것이다. 방향은 초격차가 맞지만 1위를 아예 이기려고 하기보단 쫓아가면서 물량도 받고 (개발하면) 더 현실적인 전략이 아닐까 한다.

-반도체 굴기를 펼치고 있는 중국이 노력하는 부분은 무엇인가.

△중국은 일단 R&D를 중시하는 문화가 크다. 자신들이 약하다고 생각하는 분야는 전부 투자하고 있다. 칭화대만 해도 1년 예산이 7조원대에 달한다. 우리나라 웬만한 톱대학의 5배 수준이다. 거기서 10%만 성과가 나와도 우리가 7000억원을 투입해 100% 성과를 내는 것과 같은 셈이다. 화웨이도 매출의 15%를 R&D에 투자한다고 하는데 과학이 부흥해야 강국이 된다는 기조는 확고하다.

또 중국은 ‘선(先) 시장 후(後) 기준’이다. 처음에는 우후죽순 (기업들이) 등장해 나중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지만 어쨌든 처음에는 마음껏 풀어놓는다. 이게 적어도 기술 방면에선 우리나라에도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우리는 먼저 규제하기 때문에 그 틀 안에서 해야 하니 안되는 게 많다.

-미국의 대중 반도체 제재는 앞으로 더 늘어날까.

△미국이 조직적으로 마음만 먹으면 다 차단할 수 있을 것이다. 반도체가 국가안보 산업이 되다 보니 미국은 허브 국가로서 모든 분야를 끌어모으려 하고 있다. 다만 미국 입장에서도 중국 시장이 중요하기 때문에 고사양이 아닌 범용까진 제한하지 못하고 있다. 지금 실리콘밸리 회사들이 미국 정책에 전적으로 동의하기 힘든게 지금 중국에 대한 매출이 막대하다. 지금 매출 출혈을 감수하며 동조하고 있는데 언제까지 될 수 있을까. 트럼프 대통령이 이런 부분을 홀대하면 중국이 그 부분을 파고들 수도 있다. 앞으로 두고 봐야 할 것이다.

-딥시크가 화제다. 중국 반도체 기술은 세계 최고가 아닌데 AI 기술 수준이 높은 이유는.

△예전에 얘기하던 AI는 소프트웨어 측면에서 인간의 뇌를 모방하는 식의 개념이었으나 아직 연구 단계다. 지금의 AI는 데이터 처리 기술을 말한다. 단순히 음성을 인식하는 수준에서 이젠 대화하면서 데이터를 정리하는 거다. 중국은 데이터가 많고 그것을 마음껏 활용할 수 있어 노하우가 있고 더 체계화할 수 있던 것 같다. 반면 우리나라는 법과 규제 때문에 데이터를 마음대로 쓸 수 없다는 게 차이점이다. 딥시크도 방대한 데이터와 처리 기술을 갖고 할 수 있는 게 많지만 우리는 해볼 기회조차도 없을 수 있다는 것이다.

-딥시크의 방식이 효율적이라고 하는데 다른 AI 모델과 차이는.

△데이터를 걸러내고 세분화한 다음에 그에 맞는 방식을 운영하게끔 한 것 같다. 고성능으로 일반적인 작업을 해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범용으로 트레이닝 시켜 효율성을 높였을 수 있다. 그래도 처음에는 고성능 GPU 없이 힘들었을 거다.

이우근 칭화대 집적회로학과 교수가 본교 연구실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이데일리 이명철 특파원)


-AI 기술 측면에서 데이터 처리 이후 다음 발전 단계가 있나.


△데이터 처리는 수많은 연산을 통해서 하는 것인데 앞으로 GPU 계속 성능이 개선돼야 하고 아무리 혁신하더라고 전력량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 이제는 아날로그(연산할 때 데이터 소모량을 줄일 수 있는)와 디지털을 혼합하는 방식이 많이 연구되고 있다. 디지털에선 간단한 곱셈이라도 엄청난 연산이 필요한데 아날로그는 단순히 이를 줄일 수 있어 전력량이 확 줄어든다. 결국은 시스템과 메모리 반도체가 같은 역할을 하는 게 중요하다. 앞으로 PIM 같은 새로운 구조가 나올 수밖에 없는데 그렇게 되면 더 시스템·메모리가 중요해질 것이다.

-AI 기업의 원천 기술을 두고 갈등이 생길 수 있을까.

△지금 당장 AI 기업들이 특허 소송할 가능성은 적다. 특허 소송은 개발을 끝내고 양산을 시작해 돈을 벌고 시장이 커진 후에야 하는 경우가 많다. 지금 AI 기술 자체로 큰돈을 버는 경우는 거의 없다. 서로 기술을 개발하면서 충돌하거나 라이선스 사용을 하면서 서로 상용화하는 과정을 밟을 것이다. 나중에 상대방이 어떤 특허가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특허는 논문과 달리 질보다 양이 더 중요할 때가 많다.

-중국은 첨단기술 논문도 많고 AI 특허도 많다.

△질과 양 모두 성장한다는 게 상대방에게 무서움을 줄 수 있다. 지금 국제학계 커뮤니티에 가면 중국인이나 중국계 미국인들이 다 요직을 차지하고 있다. 정보통신(IT) 분야에선 이들이 중국으로 돌아오는 추세가 있고 나중에 고국에서 일하겠다는 생각도 많이 갖고 있다.

-반도체 산업 발전을 위해선 어떤 정책을 세워야 할까

△10여년 전만 해도 반도체 과제는 기업에서 주로 하는 것이라고 여겨져서 대학이 반도체 분야에서 정부 과제를 신청하는데 어려움이 많았다고 한다. 그러다가 2019년 일본의 수출 제한 조치로 소부장(소재·부품·장치)이란 단어가 나오면서 관심을 가지게 됐다. 역설적으로 당시 일본이 한국 반도체 산업 발전에 크게 기여했단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한다.

걱정은 단순히 유행에 맞춰 일회성, 단기적 정책을 내놓을 수 있다는 것이다. 국가 중점 계획을 세우고 세분화해서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소부장은 물론 GPU 등 첨단기술과 수학·물리 등 기초 체력도 키워야 한다.

예전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 장관이 기업 방향에 대해 그냥 놔두면 알아서 잘할 것이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이에 동의한다. 기업은 어차피 정글에서 싸우기 때문에 살아남기 위해 최대한 노력할 것이고 정치권은 기업들이 뭐가 필요한지만 확인하면 된다. 그게 바로 정치 아닐까.

-한국의 반도체 등 첨단기술의 기회 요인이 있다면

△한가지 큰 희망이 있다면 우리 방위산업이 잘 되는 것이다. 처음 중국 와서 놀란 게 IT가 열악한데도 톈궁(우주정거장)을 만들고 로켓을 쏘고 하기에 배경을 봤더니 지금 과학 기술 발전의 가장 큰 힘은 방위산업이었다. 방위산업은 반도체의 경우 전성비(전력대비 성능)을 따지지 않고 최고의 성능만을 목표로 개발하기 때문에 더 혁신적인 기술 개발이 가능하다.

방위산업을 통해 새로운 과제를 해보고 물리학 같은 기초과학에도 투자하다 보면 새로운 혁신 기술도 나오고 노벨상도 나오는 기반이 될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한국의 방위산업이나 조선업이 잘되는 것은 고무적이다.

이우근 교수는

△서울대 전자공학 학사 △캘리포니아주립대 전기공학 석사 △일리노이주립대 전기공학 박사 △전 미국 커넥선트 시스템 수석엔지니어 △전 미국 IBM 왓슨연구소 연구원 △전 재중한인과학기술자협회 2대 회장 △국제전기전자공학회(IEEE 고체회로협회 저널 편집장(현) △IEEE고체회로협회 이사회 멤버(현) △IIEEE 펠로우 선출위원회 위원(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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