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뉴스·카우나스(리투아니아)=이데일리 이지은 기자] 리투아니아는 구소련 국가 중 가장 처음 독립을 선언한 나라다. 그러나 1940년 강제 병합 이후 50여년간 이어진 소련 강점기는 리투아니아 사회에 뿌리 깊은 트라우마를 남겼다. 그 시절을 견뎌낸 이들은 이제 은퇴 연령을 넘긴 노인이 됐지만, 이들은 자신들의 세대를 특징짓는 가장 결정적인 경험으로 여전히 ‘소련 치하’를 언급했다.
 | 리투아니아 빌뉴스에 위치한 옛 KGB 건물과 소련 점령 희생자 추모비. (사진=이지은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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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1일 카우나스에서 열린 시니어 이니셔티브 센터(Senjors iniciatyvu centras) 소모임에서 이데일리와 만난 에디타 샤티에네(64) 회장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참는 게 피에 새겨진 것 같다”고 표현했다. 1991년 독립 이후에도 3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공개적인 장소에서 자신의 마음을 솔직히 표현하는 일은 자연스럽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샤티에네 회장은 “어렸을 때는 KGB가 들을까 봐 간단한 농담을 하는 것도 무서웠다”며 “10년 전만 해도 이런 얘기는 절대 못 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가장 연장자인 야네 스타크빌리에비츄테(78)씨는 소련 공포정치의 상징인 굴라크(교정노동수용소총국) 체제의 희생양이었다. 당시 소련은 반체제 인사로 의심되는 이들을 춥고 외진 지역으로 보내 강제노역을 시켰다. 스타크빌리에비츄테씨의 가족은 그가 태어나자마자 시베리아로 이주해 11세가 되던 해 리투아니아로 돌아올 수 있었다. 스타크빌리에비츄테씨는 “러시아어를 쓰다가 언어를 다시 배우는 것도 어려웠고 차별도 심했다”며 “부모님은 일을 못 구하셨고 친구 집에 초대받기도 힘들었다”고 돌이켰다.
 | 시니어 이니셔티브 센터 회원들이 지난달 21일 리투아니아 카우나스에서 이데일리와 만나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은 왼쪽부터 야네 스타크빌리에비츄테(78)씨, 에디타 샤티에네(64) 회장, 이레나 아르마나비치에네(75)씨, 유디타 레이키에네(72)씨. (사진=이지은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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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투아니아는 ‘2024년 세계 행복 보고서’를 통해 30세 미만 행복도 1위 국가로 등극했지만 같은 조사를 60세 이상으로 보면 순위는 44위까지 떨어진다. 이레나 아르마나비치에네(75)씨는 자유를 억압받은 경험이 Z세대와 고령층 사이 발생한 이같은 격차를 설명하는 요인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아르마나비치에네씨는 “손주들은 독립된 상태를 자연스럽게 느끼는 것 같다”며 “마음대로 여행을 다니는 것도 영어를 배울 수 있는 것도 독립으로 누릴 수 있는 혜택”이라고 말했다.
노인들은 소련시대의 경험을 공유하다가 친구와 다투는 일도 종종 생긴다고 했다. 한국의 친일파 논란 같은 셈이다. 이들은 이런 갈등 비용을 지불하지 않아도 되는 Z세대가 독립이 가져다준 행복에 대해서 더 진지하게 여겨주길 기대했다. 특히 자유를 기반으로 자신의 인생을 주체적으로 살아간다면 더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거라고 조언했다.
 | 비올레타 스카르진스키에네(71) 메다르도 초보토 제3세대 대학(Medardo Coboto treciojo amziaus universitetas) 문화대학장이 지난달 22일 리투아니아 빌뉴스에서 이데일리와 만나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이지은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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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의 공무원 생활을 은퇴한 후 메다르도 초보토 제3세대 대학(Medardo Coboto treciojo amziaus universitetas)에서 재능기부를 하고 있는 비올레타 스카르진스키에네(71) 문화대학장은 “독립은 리투아니아인이 세상을 자유롭게 바라볼 수 있도록 시각을 틔워준 중대한 사건”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청년들이 구소련 체제 아래 우리 세대를 나쁘게 말하기도 하지만, 사람보다는 시대의 문제였다고 생각한다”며 “이제 국제적 시스템을 통해 개인에게 기회가 훨씬 많아진 만큼 Z세대들은 스스로 노력해 자신의 삶을 더 행복하게 이끌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통역 도움=카롤레 뮬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