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이지은 이지현 기자] “연금개혁은 2월 내 마무리돼야 한다. 특별위원회를 설치해 모수개혁 관련 공감대가 형성된 사안부터 이달 먼저 진행하고 나머지 구조개혁 과제에 대해서는 예컨대 1년으로 기한을 정해 그 안에 처리하도록 여야에 말씀드리고 있다. 개혁의 분위기가 무르익었는데도 해내지 못한다면 우리는 모두 역사의 죄인이 될 것이다.”
 | 이기일 보건복지부 1차관이 지난 7일 서울 중구 순화동 KG타워에서 이데일리와 만나 연금재정 전망을 적은 패널을 들고 설명하고 있다. (사진=이영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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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일 보건복지부 1차관은 지난 7일 중구 순화동 KG타워에서 이데일리와 만나 “31년 차 공무원으로서 국가를 위해 바람직한 길을 가기 위해 할 말은 하겠다”며 정치권이 2월 내 모수개혁부터 합의를 이뤄달라고 호소했다. 이 과정에서 ‘역사의 죄인’이라는 문구는 다섯 차례나 등장했다. 그는 “합의가 이뤄진 부분조차 이달 처리하지 못한다면 정치 일정상 2028년 총선(4월 12일)이 끝난 뒤 그해 하반기나 돼야 다시 논의가 가능해진다”며 “지금도 연금개혁이 하루 지연되면 후세대에 전가되는 부채가 885억원에 달하는데 그때가 되면 1000억원이 넘어설 수 있다”고 우려했다.
“선 모수개혁, 후 구조개혁’ 제시…“크레딧 논의도”모수개혁은 국민연금 보험료율(내는 돈), 소득대체율(받는 돈) 등 국민연금 제도 내 숫자를 조정하는 방안이다. 앞서 지난 21대 국회에서 연금개혁특별위원회를 꾸렸던 여야는 공론화 과정을 거쳐 보험료율을 9%에서 13%로 올리는 데는 합의했으나 소득대체율을 두고는 43~45%에서 줄다리기를 하다가 막판 정부와 여당에서 기초·퇴직연금을 포함한 구조개혁까지 함께 가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회기 내 처리는 무산됐다. 이후 정부가 지난 9월 제시한 21년 만의 단일안에는 ‘보험료율 13%·소득대체율 42%’를 비롯해 자동조정장치, 세대별 차등 인상 등 모수개혁과 구조개혁 방안이 모두 담겼다.
12·3 비상계엄의 여파로 중단됐던 이같은 연금개혁 논의는 최근 조기대선을 겨냥한 여야의 민생의제 선점 경쟁과 맞물려 22대 국회에서 재점화됐다. 게다가 국민의힘이 최근 종전 입장에서 한발 물러나 모수개혁을 우선 진행할 필요가 있다는 더불어민주당의 주장을 수용하면서 연금개혁이 18년 만에 국회 문턱을 넘을 수 있을지 주목되는 상황이다. 다만 민주당에서는 관련 상임위원회인 보건복지위원회(여당 8명·야당 16명)가, 국민의힘에서는 여야 동수로 구성된 연금개혁특위가 논의를 주도해야 한다고 각각 주장하고 있다.
정부는 ‘선(先)모수개혁, 후(後)구조개혁’이라는 절충안을 앞세워 여야 설득에 고삐를 조이고 있다. 이 차관은 “여야가 연금개혁을 해야 한다는 같은 목적 아래 서로 다른 방법을 제시하는 거지, 틀린 얘기를 하고 있는 게 아니다”라며 “특위를 설치하는 과정에서 우려 사항은 사람을 뽑고 의제를 정하다 보면 시간이 걸린다는 건데 이는 2월 내 공감대가 있는 사안에 한해 먼저 처리하면 되는 문제고 모수개혁을 먼저 하면 구조개혁을 할 수 있는 동인이 떨어져버리는 게 사실인 만큼 이번 협의 과정에서 일정 기한 내 처리하자는 선언으로 담보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 이기일 보건복지부 제1차관이 지난 7일 서울 중구 순화동 KG타워에서 이데일리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이영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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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정 협의체를 통해 마련될 이번 협상 테이블에는 사회적 기여를 국민연금 가입기간으로 인정해주는 ‘크레딧 제도’도 주요 안건으로 올라야 한다는 게 이 차관의 생각이다. 정부안에 따르면 여성의 경력단절을 보완하기 위해 둘째 아이부터 적용되던 출산크레딧은 첫째아부터 가입기간 상한 없이 12개월씩 인정해 대상을 늘리기로 했다. 군크레딧의 경우 인정 기간을 현행 6개월에서 전체 복무기간(육군·해병대 18개월, 해군 20개월, 공군 21개월)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이 차관은 “출산크레딧이 적용되면 소득대체율을 약 1%포인트 끌어올리게 되고, 군크레딧의 경우에도 0.75~0.94%포인트 상승효과를 낳는다”며 “지난해 공론화 과정에서는 논의되지 않았으나 소득대체율을 논의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지점인 만큼 이번에는 같이 감안해 결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탄핵 정국 속 정치·경제적 단기 과제가 몰아치면서 연금개혁 논의는 언제든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수 있는 상황이다. 이에 이 차관은 건강보험 부과체계 개편이 이뤄졌던 8년 전으로 시선을 돌렸다. 2017년 3월 10일은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를 내린 날이었다. 이 차관은 “그 당시 개편안 발표를 1월 30일에 했고 3월 30일에 법이 통과돼 7월에 시행했다”며 “그때처럼 정국이 혼란스럽기는 하지만 정책은 합리적으로 추진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노인연령, 정부 논의 본격화…연내 사회적 선언 목표복지부는 지난 7일 전문가 간담회를 시작으로 노인연령 조정과 관련한 공론화 작업을 본격화했다. 현행 65세로 굳어진 기준 연령을 상향해 초고령사회(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이 차지하는 비율이 20% 이상)에 대응하겠다는 것이다. 75세까지 단계적으로 조정해야 한다는 대한노인회의 공식 제안 등 민간에서는 여러 경로로 요구가 제기됐으나, 정부 차원에서 논의에 나서는 건 1981년 노인복지법 제정 이후 사실상 처음이다.
해당 간담회를 주재했던 이 차관은 “65세 이상이 된 노인들이 자신을 노인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을뿐더러 건강하게 살 수 있는 수명도 2021년 기준 71.5세까지 늘어났다”며 “노인 비율로 봐도 2033년에는 70세 이상 인구 비중이 전체의 20%가 될 거고 2061년엔 국민 5명 중 1명이 80세 이상이 된다는 얘기도 나왔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이대로 가면 사회가 지속 가능하지 않은데도 지난 40년간 관련 논의 자체가 없었던 만큼 올해 사회적 합의라도 선언하려 노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 이기일 보건복지부 1차관이 지난 7일 서울 중구 순화동 KG타워에서 이데일리와 만나 이달 내 연금개혁안의 국회 통과를 기원하는 ‘삐끼삐끼춤’을 선보이고 있다. (사진=이영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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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차관은 2022년 5월 10일 이번 정부 출범과 함께 복지부 2차관으로 부임해 그해 10월 24일 1차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1000일이 넘는 재임 기간 연금개혁은 그가 마무리해야 할 숙원사업으로 자리잡았다. 이 차관은 “2월 내 처리만 된다면 뭔들 못하겠나. 광화문 한복판에서 ‘삐끼삐끼 춤’을 추라고 해도 다 할 수 있다”면서 “이 밖에도 노인연령, 정년연장 등처럼 꼭 해결해야 하지만 어려워서 못하고 있는 문제들에 대해 해결의 실마리라도 놓고 후배들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