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엔탈정공은 법정 정년(60세)이 지난 근로자를 대상으로 ‘5년 단위’로 재고용하는 제도를 2019년에 도입해 운영 중이다. 정년퇴직 후에도 재계약 시 65세까지 일할 수 있는 셈이다. 재고용 제도를 도입한 기업 대부분이 1년 단위로 계약하는 점과 대조적이다.
경기 화성에 위치한 용기 제조·세척 기업 ‘식판천사’는 정년을 아예 폐지했다. 이 회사 김경남 대표는 “개인 역량과 체력만 있다면 정년은 필요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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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정년을 자체적으로 연장하거나 정년퇴직한 직원을 재고용하는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 숙련된 인원을 확보하고, 제품이나 서비스의 품질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전략이다.
노사 모두 현행 정년 제도를 손볼 필요가 있다는데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근로자는 국민연금 수급 연령(현행 63세, 2033년 65세)까지의 ‘소득 공백’을 메우기 위해, 경영계는 저출생 심화로 생산 인구가 부족해지는 상황에서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성재민 한국노동연구원 부원장은 “2031년이면 인구 절반이 50세 이상이 되는 등 향후엔 인구 상당수를 60세 이상이 차지하게 된다”고 말했다.
문제는 정년 제도 재설계 방식을 놓고 노사 간 입장이 첨예하다는 점이다. 노동계는 법정 정년을 연금수급 개시 나이에 맞춰 연장해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경영계는 현행 정년을 유지한 채 정년퇴직 후 재고용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현재 60세인 법정 정년을 연장하자고 논의에 불을 붙인 정치권 상황도 비슷하다. 국민의힘은 정년 연장의 필요성에 공감하지만, 경제사회노동위원회와의 사회적 대화 재개가 먼저라며 선을 긋고 있다.
“연공형 임금체계 먼저 바꿔야”
반면 이수영 고려대 고령사회연구원 특임교수는 “법정 정년 연장 중심의 고용 연장은 경기 변동과 산업구조 변화, 기업 상황 변화에 대응하기 어려운 한계가 있다”며 “재고용과 정년폐지 등 다양한 대안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고령자고용법에 재고용 의무 연령을 규정하고 단계적으로 시행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특히 임금을 둘러싼 노사 간 이견이 커 진통이 예상된다. 노동계는 ‘임금 삭감 없는’ 정년 연장을 요구하고 있고 경영계는 ‘임금 개편을 동반한’ 재고용 도입을 주장하고 있어서다. 임금 문제의 경우 청년 고용 문제와 직결될 수 있어 기업이 비용을 줄이는 등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다만 전문가들은 어떤 방식으로 정년을 연장하든 소득을 보장하는 것이 필수라고 보고 있다.
정흥준 서울과학기술대 경영학과 교수는 “정년 연장은 피하기 어려운 시대적 과제”라며 “다만 지금과 같은 임금피크제 대신 고령자에 대해선 근로시간 선택제를 둬 기업이 비용을 줄일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정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정년이나 고용 연장을 통해 고령자가 65세까지 어떻게든 수입이 끊어지지 않도록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며 “그러나 지금과 같은 연공형 임금체계를 바꾸지 않으면 논의는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