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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은 다수 의견으로 “부부 사이에 민법상 동거의무가 인정되고 있고 여기에는 배우자와 성생활을 함께할 의무가 포함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 동거의무에 폭행, 협박에 의하여 강요된 성관계를 감내할 의무가 내포돼 있다고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혼인이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한 포기를 의미한다고 할 수 없고 성적으로 억압된 삶을 인내하는 과정일 수도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강간죄의 객체에 아내를 포함시키는 것에 대해서는 일부 반대 의견도 나왔다. 이상훈·김용덕 대법관은 “남편이라도 아내를 강제로 간음했다면 형사처벌해야 한다는 점에는 동의한다”며 “그러나 강간죄는 ‘배우자가 아닌 사람’이 성관계를 강요한다는 요소를 고려해 형량을 정한 만큼 강간죄를 부부관계에까지 확대하면 처벌이 지나치게 무거워진다”고 밝혔다.
2001년 결혼한 A씨 부부는 두 자녀를 낳고 평범하게 살았으나, 사건 발생 2~3년 전부터 불화가 심해지면서 A씨는 여러 차례 아내에게 폭력을 휘두른 것으로 조사됐다.
1심은 A씨에게 징역 6년을 선고했다. 2심도 유죄를 인정했으나 부인이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탄원서를 제출한 점이 참작돼 징역 3년6월로 감형했다.
한편 외국은 부부 강간죄를 인정하는 추세다. 미국은 1984년 부부 강간을 유죄로 인정했고, 영국은 1991년 최고법원 전원합의체 판결로 배우자 강간 면책조항을 공식 폐기했다. 프랑스는 오히려 부부간 강간을 일반 강간죄보다 더 엄하게 처벌하고 있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번 전원합의체 판결은 아내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보호하고 혼인과 성에 관한 시대적 변화에 발을 맞췄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처장은 “가정폭력 사건의 경우 성폭력은 무혐의 처분되고 폭력행위만 처벌받아왔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가정성폭력 피해자들이 구제받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