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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갈등 심화에 산업 지원 법안 무산
앞서 지난 10일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헌정 사상 최초로 감액 예산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예산안 감액은 국회 권한이지만 증액은 정부 동의가 필요한데, 이같은 절차 없이 예비비 등 감액만 반영된 예산안을 처리한 것이다. 예산안과 함께 처리된 부수 법안에도 여야가 합의한 내용이 대부분 반영되지 못했다.
이 때문에 산업 지원을 위한 법안들은 사실상 처리가 물 건너갔다는 우려가 나온다. 대표적인 게 반도체 지원 관련 법안이다. 앞서 여야는 반도체 기업의 통합투자세액 공제율을 현재보다 5%포인트 올리는 것에 대해 잠정 합의했는데, 이번에 통과된 예산안 부수 법안에는 이런 내용이 담기지 않았다. 여야 간 충분히 논의된 사안임에도 기존 정부안 그대로 법안이 통과되며 공제 일몰 기한만 3년 연장하는 수준에 그쳤다.
반도체 클러스터 기반 시설 구축에 대한 지원도 흐지부지됐다. 정부는 지난달 말 반도체 생태계 지원 강화방안을 발표하면서 약 3조원에 달하는 용인·평택 반도체 클러스터의 송전선로 지중화 사업에 대해 비용을 분담하겠다고 밝혔다. 또 국가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 기반시설 지원 한도를 현행 단지별 500억원에서 상향하겠다고 했다. 정부 관계자는 “(정책 추진을 위해) 국회에서 예산 증액 관련 협의를 진행하고 있었지만 최종적으로 예산안에 담기지 않았다”고 말했다.
반도체법 처리가 중요한 것은 주요 국가들이 너도나도 천문학적인 지원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지난달 말 반도체 산업에 10조엔을 지원하는 종합경제대책을 발표했다. 중국은 역대 최대 규모인 64조원의 반도체 투자기금 ‘빅펀드’를 조성했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미국, 일본, 인도까지 반도체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적극 움직이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아무것도 못 하고 있다”이라며 “이른바 ‘골든타임’을 놓치면 경쟁 국가들보다 뒤처질 수 있다”고 말했다.
“경제 활성화 뒷전…정쟁 조속히 마무리해야”
반도체뿐 아니다. 다른 산업들의 지원을 위한 논의까지 무위에 그쳤다. 인공지능(AI) 산업 발전을 지원할 근거를 마련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AI 발전과 신뢰 기반 조성 법안’(AI 기본법)은 지난 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상정될 예정이었지만, 여야 대립으로 법안 심의가 연기됐다.
경제계에서 오랜 기간 추진에 공을 들여온 상속·증여세법 개정안은 국회 본회의에서 결국 부결됐다. 핵심은 최고세율을 50%에서 40%로 낮추고, 자녀 상속공제를 1인당 5000만원에서 5억원으로 상향하는 것이었다. 민주당은 최고세율 인하에는 반대 입장을 확고히 했지만, 공제 확대에는 협상의 여지가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그러나 비상계엄 사태 이후 정치 혼란이 커지며 법안은 폐기됐다.
전문가들은 정치 불안으로 인해 국가 경제와 기업 경쟁력이 약화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부 교수는 “정치 갈등 심화로 국가 경쟁력을 높이고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한 논의가 불발된다면 결국 한국 경제가 더 어려워지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정쟁 상황을 조속히 마무리해 밀린 법안을 처리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재계는 탄핵 정국 속에서도 활로를 찾고 있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은 12일 오후 더불어민주당 당대표실에서 열린 민생현안 긴급 간담회에 참석했다. 손경식 회장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 “불안정한 정국에서 기업들이 안정적으로 투자와 경영활동에 임할 수 있도록 노력해 달라”고 당부했다.
손 회장은“이런 때일 수록 우리 사회에 불안감이 더 확산하지 않고 특히 기업 활동을 위축시킬 우려가 있는 상법 개정이나 법정 정년 연장 같은 사안들은 보다 신중하게 검토해 달라”며 “반도체 같은 첨단전략산업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보조금 지원, 근로시간 규제 완화 같은 입법도 적극적 검토해 달라”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