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그랬구나!” 일상 곳곳에서 우리 삶을 지탱해 주지만 무심코 지나쳐 잘 모르는 존재가 있습니다. 침구, 종이, 페인트, 유리, 농기계(농업) 등등 얼핏 나와 무관해 보이지만 또 없으면 안 되는 존재들입니다. 우리 곁에 스며 있지만 숨겨진 ‘생활 속 산업 이야기’(생산이)를 전합니다. 각 섹터별 전문가가 매주 토요일 ‘생산이’를 들려줍니다. <편집자주>
[무림P&P 임건 펄프제품개발팀장] 지난 12월 10일(현지 시간) 스웨덴 스톡홀름 콘서트홀에서 진행된 노벨상 시상식에서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는 감격스러운 장면이 전 세계로 타전됐다. 두 달 전, 노벨문학상 선정 소식이 처음 전해졌던 당시의 감동이 아직도 잊혀 지지 않는다. 한국 문학계는 물론 온 국민이 흥분과 기대로 들썩였다. 한국인 최초이자 아시아 여성 최초의 수상자가 되어 발표 직후 서점가에는 작가의 작품을 찾는 독자들로 붐볐고 주요 온·오프라인 서점에서 하루 만에 30만 부 이상이 판매된 것은 물론, 출판사들이 추가 증쇄에 들어갔다는 내용이 뉴스로 보도됐다. 이러한 풍경은 단순히 한국 문학계의 성취를 넘어 종이책이 여전히 사랑을 받고 있고 종이책이 독자들과 강하게 연결돼 있음을 보여준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 (사진=무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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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만든다는 것은 단순히 글자를 인쇄하는 작업이 아니다. 책 한 권에는 작가의 메시지뿐만 아니라 그 생각과 가치를 충실히 전달하기 위해 최적의 종이 질감과 촉감을 깊이 있게 녹여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책 제작에 사용되는 대표 종이인 ‘백상지’는 작가의 이야기가 독자 손끝에서부터 스며들게 하는 통로다. 종이 특유의 매끄럽고 선명한 질감은 텍스트와 이미지의 미세한 표현들을 보다 생생하게 전달하며 문학을 촉각적으로 느끼게 해준다. 특히 책장을 넘길 때 서걱거리는 소리와 종이 냄새는 독서를 하는 동안 우리의 감성을 충만하게 만든다.
사실 종이책에는 우리나라 제지인들의 숨은 노력과 도전의 역사가 녹아 있다. 오늘날 우리가 손쉽게 구할 수 있는 백상지는 몇 십년 전만 해도 전량 수입에 의존해야 했던 귀한 자원이었다. 이같은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1959년, 무림은 국내 최초로 백상지 대량 생산에 성공했고 지속적인 품질 개선을 통해 한국 출판 산업 발전에 크게 기여해 왔다. 백상지 대량 생산은 종이 국산화뿐 아니라 더 많은 독자가 책을 손쉽게 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백상지는 경제적 효과를 넘어 한국 문학의 대중화를 가능케 했으며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이라는 역사적 성취를 이루기까지 한국 출판 산업의 중심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백상지에는 환경을 보호하고 지속 가능한 세상을 구현하고자 하는 환경의 가치도 담겨있다. 국내에서 연간 약 40만톤(2023년 기준)의 백상지가 소비되는 가운데 탄소 배출을 최소화하고 보다 친환경적으로 종이를 생산하고자 하는 노력들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 (사진=무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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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대표적인 사례로 무림은 2013년 국내 최초로 저탄소 백상지 개발에 성공, 환경부 인증을 획득하며 지속 가능한 종이 생산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이는 국내 유일하게 펄프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바이오매스 ‘흑액’을 자체 연료로 활용해 탄소 배출을 크게 줄이는 친환경 공정을 도입한 결과다. 무림P&P 울산공장의 ‘기름 한 방울 쓰지 않고 종이를 만드는’ 친환경 공장 운영 시스템이 바로 그것이다. 이를 통해 백상지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량은 535kgCO₂/ton에 불과하며, 이는 전체 인쇄용지 제품군의 평균 탄소 발생량(1058kgCO₂/ton)의 절반 수준이다. 한강 작가의 대표 작품 ‘흰’ 역시 국내 최초이자 유일하게 저탄소 인증을 받은 무림의 ‘네오스타백상지’로 제작되었다. 저탄소 백상지는 단순히 기업의 이익을 넘어 작가와 독자를 연결하는 매체로서 지속 가능한 문화를 만들어가는 데 실질적으로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한강 작가는 한 인터뷰에서 종이책이 가진 매력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다. “사람들이 아날로그에 굶주리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것에 배고파 있다고 생각합니다. 크기와 무게, 감촉이 있는 매체를 그리워하고 있지 않나 싶어요.” 그의 말처럼, 종이책은 단순한 읽을거리를 넘어 독자들에게 공감각적 감동을 선사한다.
이처럼 여러 장의 백상지가 모여 만들어진 종이책은 단순히 문학과 예술을 담는 매체를 넘어 작가의 이야기를 손끝으로 전하고 독자의 감성을 깨우는 특별한 메신저다. 앞으로도 종이책이 가진 지속 가능성과 문화를 품은 메신저로서 많은 이에게 꾸준히 사랑받길 기대해 본다.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고마운 분들에게 종이 책으로 따뜻한 마음을 전하다면 더 특별하고 의미 있는 선물이 되지 않을까 싶다.
| 임건 무림P&P 펄프제품개발팀장 (이미지=문승용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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